물병과 사자 :: 물병과 사자
2018.11.18 00:30 미술 이야기

어제는 에드워드 호퍼의 "찹 수이"라는 작품의 경매소식. 내가 좋아라 하는 작가의 소식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글은 요기!

그리고 오늘은 데이비드 호크니 작품의 경매 소식!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나의 짧은 블로그 역사 내에 등장한 바 있는 분!  '개인적으로 흥미있어 하는 작가인데,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왕성한 탐구열과 실험 정신에 있어서 경의를 표하는 바'라는 내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호크니에 대한 글은 요기!

물론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 1937-)는 지난 수십년 그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도 있고 유명하기도 작가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온 작가이다.  그리고 며칠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전후 현대미술 작품 경매에서 $90.3-millions [약 1,022억 상당]에 판매되었다.  

흔히 경매에서 천문학적 금액으로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과연 작품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해지는가?' 그리고 '과연 그 작품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떠오르고, 종종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정확한 해답은 여기서 내릴 수 없고 의문만 가중할 뿐인지도 모르지만, 거기에 관련해서 생각할만한 정보가 있다. 

이 작품은 1972년 처음 판매될 때에는 불과 $18,000 [약2,037만원 상당]에 판매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6개월 이내에 2배 이상의 금액인 $50,000 [약5,660만원 상당]에 판매되었다. 그러던 것이, 반세기만에 가격이 무려 1800여배가 뛴 것이다.   과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새삼 궁금해진다. 


David Hockney (b. 1937),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1972). Acrylic on canvas ; 213.5 x 305 cm 

작품의 제목은 "화가의 초상 (두 인물이 있는 풀장)"(1972년 작)은 당시 미국 화가 피터 슐레진저 (Peter Schlesinger)와 수영을 하고 있는 인물 2명이 그려져 있다.  호크니는 그와 연인관계로 있던 5년간 그를 모델로 한 작품도 많이 남겼지만, 그가 회화적으로 특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물에 대한 관심, 혹은 물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빛의 굴절과 이미지의 반영에 관한 것이었던 것이었다.  

Preparatory photograph for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Le Nid-du-Duc, 1972 © David Hockney


런던의 켄싱턴 가든에서 그의 당시 연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사진의 모습을 바탕으로 "화가의 초상 (두 인물이 있는 풀장)"(1972년 작)의 오른쪽 인물을 그렸다. Film still from A Bigger Splash, 1974. Photo: Jack Hazan / Buzzy Enterprises Ltd


호크니는 1963년 LA를 여행한 이래, 그곳의 태양과 풀장에 매료되어 이후 1976년 LA로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현재에는 런던과 LA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비슷한 주제의 작품으로는 "A Bigger Splash" (1967년 작)라는 작품이 있다. ('splash'는 동사로는 '(액체 따위가) 튀기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명사로 사용되었고,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풍덩' 혹은 '첨벙' 정도에 해당하는 의성어이다.)   


A Bigger Splash, 1967


호크니는 다작의 화가일 뿐 아니라, 글을 통해 자신의 예술관과 예술에 대한 관심사에 대해서 밝히는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오고 있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기록해오고 있다.  덕분에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늘의 주인공인 "화가의 초상화 (두 인물이 있는 풀장)" 만큼 자세히 기록되어 잘 알려진 작품은 드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에 대해서는 1988년 출판한 데이비드 호크니에 의한 <<데이비드 호크니: 나의 초창기 시절 David Hockney by David Hockney: My Early Years >>이라는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1971년부터 73년에 걸쳐 영국 감독인 잭 하잔 (Jack Hazan)의 A Bigger Splash 라는 호크니의 1967년 작품과 동명인 영화에서도 작품의 제작 과정이 잘 담겨져 있다.  (이 영화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 픽션 영화로 당시 호크니의 거처이자 작업실이 있던 영국의 노팅힐을 배경으로 그의 연인이자 동료 화가였던 피터 슐레진저와의 1970년부터 1973년사이의 순탄치 못했던 연애사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호크니는 1974년 Gregory Evans를 만나 1976년 LA로 이주할 때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 계속 함께하고 있으며 그의 동업자이기도 하다.)   


영화의 스틸 중 하나로 호크니가 작업 중인 장면을 담고 있다.  Still from the film ‘A Bigger Splash’. Photo: Jack Hazan/Buzzy Enterprises Ltd via David Hockney and Christie’s


뉴욕 크리스티 경매 프리뷰 장면, Sept. 13, 2018.


나로서는 경매에서 그토록 고가로 거래되는 작품들의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은 설명할 길 없고, 엊그제의 경매의 결과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일부 비평가들이 논하듯, 위의 작품이 동성애자로서의 심리적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는지, 혹은 이 시대 최고의 걸작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하지만 산뜻한 초록 계열로 산뜻하게 그려진 LA의 풍경과 햇살 받아 일렁이는 풀장에서 느껴지는 쾌적함.  그리고 그러한 풍경과 풀장과 조화를 이루며 절묘하게 배치된 두 인물은 시각적 균형을 제공한다. 그와 동시에 정지 화면에 있는 듯한 수영하는 인물, 그리고 경직되어 서있는 듯한 뻣뻣한 인물들의 모습으로 인해 긴장감이 만들어 지고 있음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절묘한 긴장감은 두 인물 사이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을 수도 있으나, 오히려 전체적으로는 왠지 모르게 경쾌한 풍경과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영리하게 계산된 즐겁고 아름다운 품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17 00:30 미술 이야기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에 대해서는 나의 길지 않은 블로그 역사 중에서도 몇번이나 다루었다.  개인적으로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대중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나 평판도 인기도 좋은 작가이기 때문에 할 말이 원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그의 매니저이자 조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그의 부인 조세핀 (별칭 Jo)이 그의 사후 대부분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그의 주요 작품들은 휘트니 미술관에서 많이 소장하고 있고, 유명한 "나이트 호크스(Nighthawks)"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워낙 인기 있는 화가인데다가 그의 주요 작품들은 이미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라 그의 작품이 경매에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18년 11월 13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찹 수이 (Chop Suey)"(1929년 작)이 $91,875,000 (약 1,040억 상당)에 판매되었다.  이로서 이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 되었다. 역대 경매가로 비교해보자면,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가격 47위에 해당하는 마크 로스코의 "주황, 빨강, 노랑 (Orange, Red, Yellow)" (1961년작)의 바로 뒤를 잇는 48위에 해당하게 된다. [마크 로스코의 "주황, 빨강, 노랑"은 2012년 같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86.9-millions [인플레 고려가격 $92.6-millions]에 판매된 바 있다] 

호퍼의 "찹 수이"는 식당 안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테이블에서 마주한 두 여인이 화면의 주를 이룬다. 두 여인 모두 화가의 아내인 조세핀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퍼가 생전에 자주 가던 뉴욕시의 콜럼버스 서클에 위치한 저가의 중국 음식점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dward Hopper, Chop Suey (1929) oil on canvas ; 81.3 × 96.5 cm

작품의 제목이 된 찹 수이 (Chop Suey)는 미국화된 중국 음식의 이름 중 하나이자, 그림 속의 간판으로 미루어 식당의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 음식이 현지화 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찹수이는 그런 관점에서는 미국식 자장면. 조리법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의 잡채와 비슷한 음식이다.  찹 수이란 원래 雜碎에서 나온 단어로 미국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대중적인 음식에 속한다.  조리법도 비교적 간단해서 고기나 해산물, 그리고 잘게 썬 야채를 볶다가 간장, 참기름, 피쉬 소스, 칠리 페이스트 등 여러가지 소스를 넣어 후루룩 볶은 stir fry라는 총칭으로 불리는 조리법을 사용한 요리다.  


이러한 대중적 음식, 그리고 그 요리 이름을 딴 음식점, 그리고 그 속의 마주한 두 인물.  미국의 일상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그의 기존 작품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호퍼의 작품은 당시 미국의 일상과 풍경이긴 하나,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심의 일요일 오전 풍경이나 깊은 밤의 간이 식당, 그리고 변두리의 한적한 주유소 등, 현대인의 고독을 도드라지게 표현되게 그려왔다. 따라서, 이 "찹 수이"라는 작품은 호퍼로서는 예외적으로 작품 속에 그려진 인물들이 모두 일행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는데, 따라서 이 작품은 호퍼의 작품 중에는 가장 따뜻한 작품이라고도 평가되기도 한다. 

Edward Hopper, Chop Suey (1929) oil on canvas ; 81.3 × 96.5 cm  세부 화면 왼쪽 가장자리 중간의 여인의 측면이 절묘하게 잘려나간 것도 재미있는 한 측면. 


오랜 시간 생계를 위해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다가 매니저의 역량이 탁월한 아내 조를 만나면서 작품 판매가 순조로워지면서 호퍼는 후반의 작가 생활 동안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화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과묵하고 내성적인 호퍼는 연극과 영화를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그가 극장에 자주 가는 것이 가장 큰 사치라고 밝힐 정도로 경제적인 성공 후에도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세계관은 부귀영화나 세속적 가치에 대한 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한 호퍼가 지금 살아서 자신의 자그마한 작품이 1천억도 훌쩍 넘는 가격에 거래된 것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하는 보너스 이미지들

Hopper, Early Sunday Morning (1930), oil paint, canvas ; 89.4 × 153 cm 

  

Hopper, Lighthouse Hill (1927), oil on canvas ; 71.76 x 100.33 cm, Dallas Museum of Art, Dallas, TX


Hopper, Gas (1940), oil on canvas ; 66.7 x 102.2 cm, MoMA


Hopper, Automat (1927), oil on canvas ; 71.4 × 91.4 cm,  Des Moines Art Center, Des Moines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15 00:30 일상 이야기

건강이 최고라는 말은 누구나 다 한번씩 하고 들어본 상투적인 말이지만, 뼈저리게 절감하는 순간은 내 몸이 정말 아플 때이다. 

감기라는 감기는 종류별로 돌아가면서 하다보니 앓기 시작한지 한달이 넘어간다. 이미 잡혀 있던 일정들에도 앞으로의 계획에도 많은 차질이 생긴다.  

아프면 일단 떨어진 체력만큼 자신감이 떨어진다.  매사가 뜻대로 안 이뤄지다보니 우울해지고, 비관적이 되기 쉬운 것같다. 그리고, 생활이나 삶의 질도 떨어진다. 

긍정적인 측면은 내가 언젠가 끄적였듯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던 일상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짧게 약간 아플 때엔 그런 기특한 생각도 들더니만, 장기전으로 가다보니 좀 힘이 빠진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매일 하나씩은 올리자 했는데, 그렇게 해온지 돌아보니 두달이 조금 넘었다. 그닥 뚜렷한 명분 없이 그냥 일단 시작했으니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먼저 건강을 좀 회복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횟수를 조금 줄이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인듯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14 00:30 일상 이야기

노희영 이라는 사람이 며칠전 내가 인터넷 뉴스 보는 시간대에는 실검 1위에 올랐다. 이분은 누규?~ 하는 심정으로 찾아보니, 엊그제 이승기가 메인 MC를 보는 프로그램에 '사부'라는 형식으로 나온 모양인데, 댓글에 '꼰대'라느니 '갑질 조언'이라느니 비판이 뜨거워서 그 방영되었다던 프로그램을 한번 찾아서 봤다.

나는 그 분을 전~혀 모르고,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반감이나 동경의 감정 또한 전혀 없었는데, 그냥 방송을 보자하니, 사업에 대한 지식이나,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도 잘 모르니 그냥 그 사람, 참 자기 철학 뚜렷하구나 싶던데.

그 사람이 오락프로그램에 나와서 웃음기 쫙 빼고 진행한게 잘못이라면 '아주 큰' 잘못이긴 하지만, 각 출연자들에게 주는 조언도 '팩폭'이라는 생각이 들던데. 그리고 무엇보다 나부터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게 무엇인가? 나다운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나름 교육적이다라는 생각까지 했는데....

그러나~~  가열찬 비판이 하도 뜨거워 실검 1위에 오르는 작금의 현실을 보니, 내가 뭘 잘못봤던 것일까? 아님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감상은 나이브하기 이를데 없어서 창업의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는 다 상식적인건데, TV 나와서 얄팍한 지식을 침소봉대한건지 새삼 궁금해졌다. 누가 이 분야를 아시는 분이시라면 좀 알려주시면 좋겠다. 나라도 미술사에 대해서 언론에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서 막 아는 척하면 같은 분야를 공부했고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쫌 빈정 상할것 같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수의 댓글에서 아이돌 가수나 MC 이승기의 감정을 다치게 했다는 이유에서의 비난이 많은 것을 보면, 짐작컨대 어린 학생들이 많지 않을까 싶은데, (팬심이라는 것에 대해 피상적으로 내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혹 그 이면에 다른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릴 때 기억이 안나서 뭐라 단정은 할 수 없지만 (솔직히 나도 그다지 어른스럽거나 지혜롭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정할 수 있다), 그 때 기억은 다 사라져 버리고 개구리 올챙이 기억 못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꾸짖음을 받아 본 경험보다는, 행여 감정이 다칠까 걸맞지 않게 들려준 칭찬에만 어린 학생들이 길들여져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TV 오락프로그램이라는 것도 한몫을 하겠지. 스타들의 비굴할 정도의 친절이나 과장된 겸손이 익숙한 프로그램들이니까.)

하지만, 만약 비판의 융단 폭격을 날린 것이 어린 학생들이라면, 때론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적확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미성숙한 자신의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며 책임없이 내뱉는 칭찬의 세례를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꼭 알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인격이 완성된 사람의 충고나 비판만 받아들이려고 들자면 평생 한번도 그럴 일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없을테니까.  상대의 인격의 완성도나 전달력의 우아함과는 무관하게 내게 도움이 되는 충고나 비판은 제대로 받아들여야만 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너무 진지하게 (진지충?) 오락프로그램에 대한 댓글들에 반응하는 것인지도 모르나, 지난 수 년 간 가끔 20대 초반의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껴지곤 하는 면면도 있는 것 같아 잠시 시간을 내서 적어보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13 00:30 영화 이야기


보통 리메이크 영화는 믿고 거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의 경우,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경우에도 좀 신중해지는 편이다. 특히, 내가 리메이크가 되는 그 책을 이미 읽었던 경우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서 소설은 상상력을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 두었는데, 현실 속의 배우들이 제한된 예산안에서 찍은 영화를 보면 대부분 실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는 내가 자체적으로 거르거나, 아니면 보고는 '역시~'하고 실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경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었던 탓일까 잘 모르겠지만, 멋진 영화들이 많다는 것도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피에르 앙브로아즈 프랑소아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Ambroise François Choderlos de Laclos: 1741-1803)라는 기다란 이름을 가진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 출신 소설가의 1782년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이 서간체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고 보기 보다는 이 작품에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작품을 참고로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짐작한다.)  

혹자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이 미술사에서는 로코코로 표현되는 귀족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행태'를 고발하기 위했다는 해석도 있으나, (서간체 소설답게) 소설의 끄트머리에 마담 볼랑지가 쓴 편지에서 '원래 인생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집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은 워낙 충격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이 작품은 당시 그 외설성으로 인해 큰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다는데, 따라서 작가는 한동안 '외설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고.  정작 작가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을 쓰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명성이 자신의 조국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은 물론, 이백여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ca. 1767), oil on canvas ; 81 × 64.2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위의 그림은 당대의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던 귀족 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작품으로, 로코코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이다. 이 작품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부인이 탄 그네의 줄을 당겨주고 있는데, 정작 아내는 젊은 애인과 눈을 맞추며 슬리퍼를 던져 밤의 밀회를 약속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당대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하는 게 워낙 관례처럼 되어 있어 결혼 후 애인들을 만드는 것은 흉도 아닐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들키지만 말아줘.' '내 눈에만 띄지 말아줘~' 그런 분위기였다고.  프라고나르는 그런 로코코적 풍조를 유머를 담아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다 암묵적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리 널리 알릴 일은 아니었음은 위 작품 왼쪽의 큐피드 상이 손가락을 입 위에 대고 '쉿~'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가자면, 앞서 밝힌대로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기 보다는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던 서구의 영화를 참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대표적으로는 1959년 로제르 바딤의 프랑스 동명 영화와 1988년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영화 <Dangerous Liasons>(불어 원제의 영어 번역)가 있다.  ('리에종'이라는 이 단어는 불어의 쓰임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영어에서는 '연락, 연결'이라는 의미 이외에 '불륜' '간통'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하다.) 

1988년 작품 Stephen Frears 의 영화 <Dangerous Liasons프랑스 원제의 영어 번역이 작품인 이 작품은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및 창작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초기 프랑스 영화는 내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영국 감독과 미국 배우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1988년 영화 <위험한 관계>는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2003년 이재용 감독의 2003년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아니 창작의 원천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작품이다.  

1988년 미국 영화에는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 등 개성파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뿐 아니라, 당시 화려한 프랑스 귀족들의 풍모와 생활을 보여주는 화려한 의상과 배경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이다.  

이에 2003년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의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조선시대로 옮겨 와서 각색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을 모르고서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긴 하지만, 비교해서 보면 그 재미가 배가 되는 영화이다. 그 힌트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면서도 배경음악에는 바로크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 로코코 비슷한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 영화가 고증에 신경을 썼다면, 한국의 영화는 고증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더해서 시각적으로 더 풍부한 아름다움을 가진 영화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영화내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이나 한복의 색상과 디테일들은 고증이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현대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따라서 시각적 볼거리가 풍부해졌다. 

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영화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훌륭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이나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의 1988년작 영화 <위험한 관계>와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여담이지만,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예로는 최근 상영된 <라이프 오브 마스>를 들고 싶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 드라마 쪽이 BBC의 원작보다 훨씬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12 00:30 일상 이야기

아래 그림에 나온 작품들 중에 읽은 작품은 몇 작품이나 되나요?


이 페이지를 방문하신 덕에 몇달정도의 시간은 절약하셨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세상에 안읽은 책 참 많구나 싶으신지도.  그런 분들을 위한 위로 공연~


그리고 책 쫌 읽은 사람들이 보면 푸하하 웃을 만한 내용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11 00:30 미술 이야기

요새 미술 - 제프 쿤스의 표절 Jeff Koons's Plagiarism 

네오팝 아티스트 혹은 차용 작가로 불리는 제프 쿤스는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미학 (그런 것이 있다면) 담론을 결합하여 극대화 시킨 작가라고 있다.  뒤샹은 철물점의 소변기를 그대로 사서 엎어 놓더라도 작가의 선택 있었다면 작품이 되도록 하면서 예술가들로 하여금 손수무엇인가를 만들지않아도 되도록 만들었다. 워홀은 배고픈 천재 작가의 신화를 벗어던지고 성공한 예술가는 헐리우드 배우만큼의 유명세와 부를 누려도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따라서, 제프 쿤스는 한편으로는 직접 제작하는 수고없이 수많은 조수들에게 일을 시켜 제작하면서 (한때 수백명에 이른 조수들의 수를 최근 수십명 해고 했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아이디어를 짜내는 고뇌 따윈 집어치고 광고나 이미 유명한 작품들의 패러디와 차용을 해서 제작하면서, 헐리우드 스타만큼이나 유명세를 톡톡히 누리며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그는 생존 화가 가장 비싼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일부러 싸구려처럼 보이게 만든 작품은 현대 미술의 수준 염려하는 진지한 미술 비평가와 애호가들에게 비판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다.  


Jeff Koons. Photo: Adam Berry/Getty Images. 절묘하게 잘찍은 사진. 그의 뒷쪽의 둥근 등의 모습이 마치 후광처럼 보이게 찍었다. 

제프 쿤스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데미안 허스트와 함께 생존 작가로서는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작가 랭킹 3위안에 드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 작가이다그는 애당초 키치’ (고급 미술에 대응한 개념으로 저질이고 싸구려 미술) 지향하며 의도적으로  싸구려 같고 저질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이율배반적으로 경매에서는 연이어 최고 가격으로 팔아 치워왔다

초기에는 일부러 삼류 잡지의 표지와 같은 사진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거나포르노 배우였던 아내와의 성관계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조각을 등신대로 만들어내는 식이었다. 1988년부터는 진부함 (Banailty)’ 시리즈물로 조각품들을 유사한 미감 (이것도 미감이라면)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서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그의 공방에 소속한 조수들과 함께 전문 기술자들을 고용해서 말이다

그런 제프 쿤스의 의도적 저질 미술 혹은 키치 미술은 외설 논란과 함께 종종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해왔다. 이번에는 그의 1988 Fait d’Hiver 프랑스 의류 나프나프 (Naf-Naf) 1985년의 광고를 표절했다는 논란끝에 최종적으로 프랑스 법정에서 표절 판결을 받았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랭크 다비도피치 (Franck Davidovici) 제기한 소송에 쿤스가 작권 위반으로 €300,000 (£270,000) [4억원 상당] 배상하도록 최종 판결을 받았다. 아이러니 점은 제프 쿤스의 작품은 2007 크리스티 경매에서 프라다 재단이 무려 3.7 million (£2.8m) [305천만원 상당] 구매했었다는 사실이다


Jeff Koons, Fait D'Hiver (1988) CREDIT:  RALPH ORLOWSKI/GETTY IMAGES EUROPE  표절 소송에서 패배한 제프 쿤스의 1988년 작품 Fait D'Hiver


Franck Davidovici’s original advert for Naf Naf, which he says American artist Jeff Koons plagiarised for his work Fait d'Hiver CREDIT: TELEGRAPH  제프 쿤스가 표절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유명 의류 브랜드 나프나프의 광고

나프나프의 광고를 보면 젊은 여인이 밭에 누워 있는데, 설정상 눈사태의 희생양으로 보이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마치 조난자를 구조하는 세인트 버나드와 같이 돼지가 목에 럼주가 담긴 작은 통을 매고 그녀의 곁에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다. 작품은 나프나프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벽돌집을 지었던 막내 돼지의 이름인데서 설정이리라.

작품 모두, 조각 작품이라는 유사점 이외에도, 프랭크 다비도비치가 주장한 바대로 소녀의 표정과 목에 통을 매단 돼지가 자신의 작품과 동일함하다. 굳이 전문가의 식견을 묻지 않더라도, 작품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도 놀랍도록 유사하다.  제프 쿤스의 경우, 추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인 , 펭귄 두마리를 덧붙였다는 점, 쿤스의 돼지가 선물 포장의 리본 같은 것을 두르고 있는 것 이외에는 여인과 돼지라는 등장인물과 구도까지 동일하다. 게다가 제목까지 ‘Fait d’Hiver’라는 동일하게 달았는데, 이는 영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The Fact of the Winter”라고 해석  있는 뜻이 명확하지는 않은 불어 단어인데, fait divers (‘짧은 뉴스라는 ) 동일한 발음에서 언어유희이다.   

다비도비치는 제프 쿤스의 작품의 존재를 2014 퐁피두 센터에 전시되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전시로 인해 퐁피두 센터도 2014 전시로 인해 벌금을 물게 되었다. 1988 이후 그가 유명 광고 등에서 있는 저작권이 있는 이미지들을 이용해서 제작한 쿤스의 ‘Banailty (진부함)’라는 조각 시리즈는 그의 본국인 미국에서 끊임없는 논란을 야기해왔다. 그리고 쿤스에게 프랑스에서의 소송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에는 제프 쿤스 개인 유한회사인 Jeff Koons LLC 작고한 프랑스의 사진 작가 -프랑소아 보레 (Jean-François Bauret)에게 51백만원 (€40,000) 배상하도록 판결했다.


왼쪽) 프랑스 사진작가 Jean-François Bauret의 'Enfants' (1975)의 사진 작품 ; 오른쪽) 제프 쿤스, 도자기 작품 '나체 (Naked)' (1988) - 프랑스 법정은 제프 쿤스에게 장-프랑소아 보레에게 4만 유로를 지불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제프 쿤스의 나체 (Naked)” 1988 제작된 1미터 남짓한 도자기 조각으로 나체의 어린이가 어깨 동무를 한 채, 남자 아이의 오른손에 들려진 꽃을 여자 아이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프랑소아의 1975 사진 작품 어린이 (Enfants)”라는 사진과 몹시 유사한데, 작품은 엽서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진 작품에서는 어린이가 꽃을 들고 있지는 않고, 그냥 나란히 서서 어깨 동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소녀의 숙인 고개의 모습 소년의 시선 등에서 유사하다.   

미국에서의 경우, 여러 논란들이 있었지만, 법정 소송으로 발전한 경우는 없는데 비해, 프랑스 법정은 차용미술 재벌 작가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듯하다.

이는 순수 예술의 역사를 이끌어온 프랑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 이해해도 될까?

Art Roger, 'Strings of Puppies'  

Jeff Koons, Puppies  String of Puppies (1988), polychromed wood, 106.7 x 157.5 x 94 cm © Jeff Koons Edition of 3 plus AP   사진 작가 아트 로저의 '줄줄이 강아지'라는 사진 작품을 쿤스가 채색 목재 조각품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소송까지는 가지 않고 '표절'이 의심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사진 작가와 법정 밖에서 합의로 매듭지었다 알려졌다. 

참고로 제프 쿤스의 다른 작품은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왠만한 패션 브랜드보다 잘 꾸며 놓았다.  그의 홈페이지 주소는 여기~ http://www.jeffkoo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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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0 00:30 영화 이야기

BBC에서 100편의 외국 영화를 선정한 것을 발견하였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 

한국 영화에는 29위를 차지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눈에 띈다.  

Fritz Lang의 작품들이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13위의 'M' (1931)과 16위 'Metropolis' (1927)에 등극)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품들이지만, 미술사와 연관해서도 당시 미술사조들과의 관련해서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이다.  

'화양연화'와 '중경삼림' 같은 익숙한 작품도 포함되었다.  1위와 4위를 모두 쿠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차지. ('7인의 사무라이'와 '라쇼몽').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다소 의아. 외국에서 엄청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앞으로 봤던 작품들도 한번씩 더 찾아보고, 미처 보지 못했던 작품들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BBC Culture’s 100 greatest foreign-language films:

100. Landscape in the Mist (Theo Angelopoulos, 1988)

99. Ashes and Diamonds (Andrzej Wajda, 1958)

98. In the Heat of the Sun (Jiang Wen, 1994)

97. Taste of Cherry (Abbas Kiarostami, 1997)

96. Shoah (Claude Lanzmann, 1985)

95. Floating Clouds (Mikio Naruse, 1955)

94. Where Is the Friend's Home? (Abbas Kiarostami, 1987)

93. Raise the Red Lantern (Zhang Yimou, 1991)

92. Scenes from a Marriage (Ingmar Bergman, 1973)

91. Rififi (Jules Dassin, 1955)

90. Hiroshima Mon Amour (Alain Resnais, 1959)

89. Wild Strawberries (Ingmar Bergman, 1957)

88. The Story of the Last Chrysanthemum (Kenji Mizoguchi, 1939)

87. The Nights of Cabiria (Federico Fellini, 1957)

86. La Jetée (Chris Marker, 1962)

85. Umberto D (Vittorio de Sica, 1952)

84.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Luis Buñuel, 1972)

83. La Strada (Federico Fellini, 1954)

82. Amélie (Jean-Pierre Jeunet, 2001)

81. Celine and Julie go Boating (Jacques Rivette, 1974)

80. The Young and the Damned (Luis Buñuel, 1950)

79. Ran (Akira Kurosawa, 1985)

78.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Ang Lee, 2000)

77. The Conformist (Bernardo Bertolucci, 1970)

76. Y Tu Mamá También (Alfonso Cuarón, 2001)

75. Belle de Jour (Luis Buñuel, 1967)

74. Pierrot Le Fou (Jean-Luc Godard, 1965)

73. Man with a Movie Camera (Dziga Vertov, 1929)

72. Ikiru (Akira Kurosawa, 1952)

71. Happy Together (Wong Kar-wai, 1997)

70. L’Eclisse (Michelangelo Antonioni, 1962)

69. Amour (Michael Haneke, 2012)

68. Ugetsu (Kenji Mizoguchi, 1953)

67. The Exterminating Angel (Luis Buñuel, 1962)

66. Ali: Fear Eats the Soul (Rainer Werner Fassbinder, 1973)

65. Ordet (Carl Theodor Dreyer, 1955)

64. Three Colours: Blue (Krzysztof Kieślowski, 1993)

63. Spring in a Small Town (Fei Mu, 1948)

62. Touki Bouki (Djibril Diop Mambéty, 1973)

61. Sansho the Bailiff (Kenji Mizoguchi, 1954)

60. Contempt (Jean-Luc Godard, 1963)

59. Come and See (Elem Klimov, 1985)

58. The Earrings of Madame de… (Max Ophüls, 1953)

57. Solaris (Andrei Tarkovsky, 1972)

56. Chungking Express (Wong Kar-wai, 1994)

55. Jules and Jim (François Truffaut, 1962)

54. Eat Drink Man Woman (Ang Lee, 1994)

53. Late Spring (Yasujirô Ozu, 1949)

52. Au Hasard Balthazar (Robert Bresson, 1966)

51. The Umbrellas of Cherbourg (Jacques Demy, 1964)

50. L’Atalante (Jean Vigo, 1934)

49. Stalker (Andrei Tarkovsky, 1979)

48. Viridiana (Luis Buñuel, 1961)

47. 4 Months, 3 Weeks and 2 Days (Cristian Mungiu, 2007)

46. Children of Paradise (Marcel Carné, 1945)

45. L’Avventura (Michelangelo Antonioni, 1960)

44. Cleo from 5 to 7 (Agnès Varda, 1962)

43. Beau Travail (Claire Denis, 1999)

42. City of God (Fernando Meirelles, Kátia Lund, 2002)

41. To Live (Zhang Yimou, 1994)

40. Andrei Rublev (Andrei Tarkovsky, 1966)

39.  Close-Up (Abbas Kiarostami, 1990)

38. A Brighter Summer Day (Edward Yang, 1991)

37. Spirited Away (Hayao Miyazaki, 2001)

36. La Grande Illusion (Jean Renoir, 1937)

35. The Leopard (Luchino Visconti, 1963)

34. Wings of Desire (Wim Wenders, 1987)

33. Playtime (Jacques Tati, 1967)

32. All About My Mother (Pedro Almodóvar, 1999)

31. The Lives of Others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2006)

30. The Seventh Seal (Ingmar Bergman, 1957)

29. Oldboy (Park Chan-wook, 2003)

28. Fanny and Alexander (Ingmar Bergman, 1982)

27. The Spirit of the Beehive (Victor Erice, 1973)

26. Cinema Paradiso (Giuseppe Tornatore, 1988)

25. Yi Yi (Edward Yang, 2000)

24. Battleship Potemkin (Sergei M Eisenstein, 1925)

23. The Passion of Joan of Arc (Carl Theodor Dreyer, 1928)

22. Pan’s Labyrinth (Guillermo del Toro, 2006)

21. A Separation (Asghar Farhadi, 2011)

20. The Mirror (Andrei Tarkovsky, 1974)

19. The Battle of Algiers (Gillo Pontecorvo, 1966)

18. A City of Sadness (Hou Hsiao-hsien, 1989)

17. Aguirre, the Wrath of God (Werner Herzog, 1972)

16. Metropolis (Fritz Lang, 1927)

15. Pather Panchali (Satyajit Ray, 1955)

14. Jeanne Dielman, 23 Commerce Quay, 1080 Brussels (Chantal Akerman, 1975)

13. M (Fritz Lang, 1931)

12. Farewell My Concubine (Chen Kaige, 1993)

11. Breathless (Jean-Luc Godard, 1960)

10. La Dolce Vita (Federico Fellini, 1960)

9. In the Mood for Love (Wong Kar-wai, 2000)

8. The 400 Blows (François Truffaut, 1959)

7. 8 1/2 (Federico Fellini, 1963)

6. Persona (Ingmar Bergman, 1966)

5. The Rules of the Game (Jean Renoir, 1939)

4. Rashomon (Akira Kurosawa, 1950)

3. Tokyo Story (Yasujirô Ozu, 1953)

2. Bicycle Thieves (Vittorio de Sica, 1948)

1. Seven Samurai (Akira Kurosawa,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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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9 00:30 일상 이야기

Gustave Caillebotte - The Yerres, effect of rain (1875)

가을비가 어제부터 계속 내리고 있다. 

오늘 같은 날은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에 자리하고는 느긋하게 커피라도 한잔 하는 여유를 부리고 싶어진다.  비를 맞는 건 싫지만, 비를 구경하는 일은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현실은 독감 예방주사도 맞았건만, 기침 감기는 미련 덕지덕지 많은 애인처럼 일주일 넘게 나를 떠나려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그대로 쌓인 채, 매일매일 할 일이 더해져 간다.  

구스타브 카이유보트는 비의 효과를 표현하는 것에 관한 한 가장 탁월한 화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위의 작품은 원체 부유했던 그의 집안의 영지 중 하나에서 그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림 뒷쪽에 작게 그려진 보트도 모르긴 몰라도 카이유보트의 것이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보트 놀이를 상당히 좋아해서 조정 경기에도 열의를 올리곤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모습은 르느와르의 <선상의 파티>에도 그려져 있다. 

그의 좀더 유명한 작품,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이라는 작품은 19세기 말의 파리지앵들의 산책하는 장면을 포착한 작품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눈을 끄는 것은 촉촉하게 젖은 포도의 모습.  

Gustave Caillebotte - Paris Street, Rainy Day (1877)


이 비가 그치고 나면 한동안 젖은 아스팔트 위로도 낙엽들이 다닥다닥 붙어 투명한 빛을 내다가 가을은 더 깊어지고 겨울이 성큼 다가와오겠지. 어느새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영롱하고 그렇게 이 해도 저물겠지...  몸이 아프니까, 왠지 울적 우울.  

그렇지만, 가로등 불 빛 아래의 거리 모습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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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01:16 미술 이야기

엊그제 "단순화한 현대미술 한 컷 - Simplified Modern Art"라는 제목으로 일러스트레이션 하나를 올렸다. 내가 그린 것은 아니고, 재치 있는 그림을 늘 올려서 간혹 들러서 작품들을 구경하고는 후훗 즐거워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참고로 그 포스팅은 여기 http://sleeping-gypsy.tistory.com/75)


거기에 소개된 미술사조는 다음과 같다. 

  • Impressionism

  • Pointillism

  • Art Nouveau 

  • Fauvism

  • Expressionism

  • Cubism

  • Futurism

  • Dada

  • De Stijl 

  • Constructivism

  • Surrealism

  • Abstract Expressionism

  • Pop

  • Minimalism

  • Conceptualism  

  • Postmodern art 


실제로 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생각 중이다. 

오늘은 먼저 빅픽처 소개. 

원래 현대미술의 계보를 처음으로 만든 건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의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H. 바, 주니어 (Alfred H. Barr, Jr.)이다. 그가 그린 계보도는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이라는 전시회의 카탈로그의 표지에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고, 이후 거의 모든 개론서나 미술사 수업이 그의 분류에 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래가 알프레드 바의 현대미술 계보도. 

Alfred H. Barr, Jr.가 제작한 모더니스트 미술사 차트 - 1936년 "큐비즘 및 추상 미술" 전시회 카탈로그 자켓으로 사용됨.  Jacket for the exhibition catalogue Cubism and Abstract Art, with a chart of modernist art history by Alfred H. Barr, Jr. Offset, printed in color. New York: The Museum of Modern Art, 1936.  ALFRED H. BARR, JR. PAPERS, THE MUSEUM OF MODERN ART ARCHIVES, NEW YORK/COURTESY MUSEUM OF MODER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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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7 00:30 영화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를 꼽다보면 그 좋아함에도 여러가지 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휴일'처럼 매번 볼 때마다 왠지 아련하면서도 즐거워지는 영화가 있는 반면, '블레이드 러너'처럼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그 묵직한 감동에 맘까지 무거워지면서 '명작'이라고 꼽기엔 주저함이 없지만, 여유로운 휴일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는 포함시키지 않을 영화도 있다. 물론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가의 제작 당시의 맘과는 별개로 내가 내 거실에다 걸어놓고 매일매일 보면서 가까이 두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전시회가 열린다면 반드시 가서 보고 싶긴 하지만, 내 거실에 걸라고 누가 줄까봐 겁나는 작품들도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터

블레이드 러너는 원래 필립 K. 딕이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 리들리 스콧이 1982년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이다.   소설에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공감능력'인가 아닌가 하는게 주제였다고 하는데, 영화에서의 관건은 '기억' 내지 '추억'의 유무이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패러랠 월드 러브 스토리'와도 비슷하긴 하다. 내가 믿고 있는 기억과 추억이 실은 내 것이 아니라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대부분의 혼란과 의문은 해결되지만,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Philip K. Dick,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Doubleday, 1968) 필립 딕의 소설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초판 커버


리들리 스콧은 워낙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지만, 그가 <블레이드 러너>에 쏟은 애정도 남다른 듯 한게,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까 무려 7가지 버전이 있다.  '감독판' 혹은 '최종판'등이 상영된 버전과 함께 존재하는 영화는 적지 않지만, 이런저런 변주를 거쳐 7가지나 버전이 존재하는 영화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딱히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그냥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예전에 몇 번 봤던 그 <블레이드 러너>가 몇 번째 버전인지, 아니면 그 몇 번 봤던 영화가 모두 동일한 버전의 것인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내 기억에는 유니콘을 본 기억이 확실히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1992년 발표된 감독판이 아니었나 짐작만 할 뿐이다)

심지어 다시 생각해보니, 새삼스럽게도 그 '블레이드 러너'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도 불분명하고, 좀 조사를 해봤으나 그 의견도 분분한듯 한데 대체로 아래와 같다. 

1. 정의의 첫번째로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대부분, 이 영화로 근원이 돌아오면서, 수명이 다한 레플리칸트 (외형적 모습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감정선까지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인조인간)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정의이다. 

2. 1번과 연결되는 정의로 칼 (blade)을 잽싸게 놀려 (run) 처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er)

3. 칼날 위를 달리는 듯한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사람

4. 하반신이 불구라서 의족을 단 사람 (요새 특수 제작되는 의족들의 모습이 날렵하기도 하고, 얼음 위를 달리는 스케이트 날을 연상한 데서 온 것인 듯한데, 칼날 같은 다리를 단 사람이라는 뜻인 듯하다) 


난 소설은 읽지 못했고, 그렇게 홈을 파듯 여러 버전 섭렵하면서 영화를 연구하며 보지는 못했지만, 처음 그 영화를 봤을때 묵직한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그 감동은 이면은 일종의 강렬한 공포감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 두번 더 봤던 것 같은데, 약간씩 느낌이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은 그 공포감의 원인을 정리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도 핵심적 척도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기억'내지 '추억'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영화에 대한 감상과 비평은 훨씬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레플리칸트, 타이렐과 레플리칸트와의 관계의 신학적 해석 등등) 

결국, 인간은 생물적으로나 물리적, 화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척도로 다른 방식의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피부에 닿는 정의는 지난 날의 경험의 축적과 그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이뤄진 유기체라는 것이다.  극중에서 레플리칸트이었던 레이첼이 이식된 기억을 추억이라 믿으며 따라서 자신은 인간이라고 믿는 대목.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나중에 보물 찾으러 다니시며 긴 채찍을 휘날리실 해리슨 포드가 분한 대커드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어우러진, 숲 속을 자유롭게 달리는 아름다운 유니콘의 꿈을 떠올리며 피폐한 현실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곤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의 종이접기로 만든 유니콘 하나로 그 인간이라는 확신이 흔들릴 때.  그건 공포영화에 가까운, 간담서늘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영화의 키워드인, '과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와 관계 있는 종이로 접은 유니콘.  


대커드를 관리감독하던 개프가 대커드의 가장 사적인 기억이자 추억인 유니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자, 결국 대커드도 그가 제거해왔던 레플리칸트, 즉 주입된 기억으로 인간이라 착각하며 사는 레플리칸트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의 불씨가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언제인가?  나라는 존재는 결국 무엇인가?  남자이냐 여자이냐, 성인이냐 아이이냐, 어떠한 직장을 갖고 어떠한 음식을 먹고, 어떠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어떠한 집에서 살다가 죽는가? 이런 모든 것이 '나'를 정의해 주는가? 그러한 공통 분모 내지는 보편적 변별 요소들을 다 제거해나가다 보면, 나는 결국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것들의 축적체이고, 그 기억과 추억은 그런 축적체의 나의 존재를 확신하게 해주는 증거들이 아닌가? 그러한 경험들로 사고와 가치관이 형성되고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변에 의한 영향으로 형성된 유약한 존재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서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할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06 01:19 미술 이야기

이번에는 저번의 튤립 매니아 이어 바니타스 정물화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Philippe de Champaigne, Vanitas or Still Life with a Skull, 17th century. Oil on panel, 28 × 37 cm. Musée de Tessé, Le Mans


바니타스라는 라틴어는 영어로는 ‘vanity’ 해당하지, 용어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라는 전도서의 도입부 (Ecclesiastes 1:2;12:8)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니타스 회화 혹은 바니타스 정물화는 특정 종류의 정물화 장르를 지칭하는 용어로, 성서의 구절과 연관하여, 기독교적인 가치의 영원함에 비해서 세속적 삶은 덧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상징적인 사물들을 그린 정물화라고 정의해볼 있다. 

장르는 네덜란드의 황금기라고 있는 17세기의 네덜란드 사실주의 화가들이 발전시켰는데, 이런 의미로 일종의 기독교 예술이라고도 . 

이렇게 배경에는 잠시 유럽의 역사를 살펴보자. 

시기는 유럽을 오랫동안 지배해온 종교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반발해 야기된 종교 개혁과 이에 따라 카톨릭 교회의 -종교개혁 대한 반작용으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네덜란드의 경우, 카톨릭 국가였던 스페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반발로 적극적으로 개신교를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1620-1650 사이 네덜란드의 부유하고 신실한 중산층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로 돌아선 네덜란드는 이후 칼뱅이 가세해서 이상 부를 축적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이전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보다 어렵다 배워왔다면, 이제는 운명은 신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으므로 현세에서 주어진 직업 충실해야 한다고 배우게 된다. 그리고 현세의 부귀는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라고 여기게 되면서 보다 부위 축적에 대해서 이전보다 훨씬 당당하게 여길 있게 것이다.  

신이 17세기 네덜란드의 국운에 축복을 증거하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해상무역과 도시화로 인해 생활이 윤택해진 중산층이 많이 늘어난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주로 상공업에 종사했던 이들은 이전의 귀족이나 교회의 관직자들과 같이 오랫동안 철학이나 예술을 공부하여 조예를 쌓을 만한 시간이나 여력은 없었지만, 예술애호에의 열정은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적 여유를 갖게  중산층은 이제까지 귀족과 왕실가족의 전유물이라고만 여겼던 예술 작품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꼈음에 분명하다 조사에 따르면 중상류층의 가정에는 평균 53점의 작품을보통 중산층의 가정도 평균 7점의 작품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이는 작품 크기가 비교적 작았음을 감안하더라도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비교해봐도 상당한 소장량이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중산층이 고객의 주를 이루는 가운데, 바니타스 정물화가 유행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여러가지 상황이 겹쳐서 일어난 사회 현상이라고  .  

먼저 이전까지의 주된 후원자의 위치가 갑자기 공백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과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받아들인 네덜란드에서는 교회 등에서의 성상 (聖像) 금지되었다는 것을 지적할 있다.   

당시 화가의 입장으로서는 이제까지의 주요 고객층 (?)이었던 교회와 귀족층을 잃게 되면서 이를 대체할 고객층 확보를 모색하는 한편, 이전까지의 노골적으로 종교적이어야만 했던 주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던 중에 개발한 장르라고 수도 있다. 또한 수요자 층의 입자이었던 신교도 중산층으로서는 금욕적인 신교의 교리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시각적 즐거움과 현세적 성공에 대한 과시를 죄책감 없이 있는 절묘하고 적절한 주제였을 것이다.    

이전의 대형 커미션의 경우에는, 규모에 있어서나 아카데미에서의 정한 위계에서나 단연 장중한 역사화 역사 상의 주요 사건을 묘사하거나, 신화상의 영웅담을 담은 그림이 일순위였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 생활을 묘사한 소규모의 장르화, 풍경화, 정물화로 옮겨가게 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성상을 금지하는 교리와도 관련되는 것이지만, 주문자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이리라. 새로운 후원자들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중산층, 이들의 관심사는 생활 밀착형 회화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캘빈주의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었다고 하나, 검약함은 강력한 미덕으로 자리하고 있었기에, 부를 쌓은 중산층들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와는 상충되는 . 여기에 멋진 변칙이 들어가게 된다. 이를테면 풍성한 과일과 꽃이 담긴 정물화라도 사치에 탐닉한 어떤 것으로 표현되는 것만 아니면 된다.’ 이런식이다.    

따라서, ‘바니타스 정물화 네덜란드 황금기의 번영과 부를 만끽함과 동시에 인생의 덧없음과 도덕성을 상기하는 균형을 획득한 장르화로 자리잡게 된다.    

바니타스 회화의 주제로 사용된 주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가장 대표적이자 원론적인 바니타스 정물화에 주로 다루는 사물들은 단연 해골, 모래시계, 척도계, 시계, 촛불, 인간의 유한함, 피할수 없는 죽음을 상기시키는 대상물이다.  이를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네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주제라고도 일컫기도 한다.  

2) 금은 보화, 금화, 지갑직접적으로 부를 상징

3) 파이프, 와인 글래스, 주사위, 트럼프 카드현세적 즐거움을 상징

4) , 잉크병과 , 지도, 망원경, 지구본현세적 지식을 상징한다.  흔히 탈속적이라고도 여길수 있는 지성에의 추구도 현세적 욕망에 포함시켰다는 점이 흥미롭다.

5) 때로는 악기와 악보를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음악이 머물지 않고 날아가버리는 것이라는 것이라는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소재들은 엄격히 나눠져서 그려졌다기 보다는 여러가지 소재들을 경우에 따라 섞어서 그린 그림이 많다.  그리고 화가에 따라 자신의 특기를 발휘하는 차원에서 전문화가 이뤄지기도 한다.  

외에도, 껍질을 벗기다 레몬 같은 경우, 속껍질 알갱이들까지 표현한 섬세함과 정확한 묘사에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레몬의 상징은신산한 인생 대한 상징이라고. 물론 이면에는 화가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바니타스 회화를 보면 지상에서 인간들이 욕망하는 것들, 현세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 명예, 권력 등이 얼마나 질없는가, 그리고 인간은 결국 죽음을 피할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사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각각의 사물들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유명한 바니타스 정물 화가들에는 누가 있을까? 하렘 (Haarlem), 델프트 (Delft), 라이덴 (Leiden), 이트렉트 (Utrecht), 도르드렉트 (Dordrecht) 암스텔담 (Amsterdam) 등지에서 널리 유행했고, 화가들도 대부분 네덜란드인이었다.  

대표작가들로는 Jan Davidszoon de Heem (1606–1684, 혹은 Jan Davidsz de Heem 이라고도 표기됨), Willem Kalf (1622-93), Willem Claesz Heda (1594-1681), Abraham Hendriksz van Beijeren (c. 1620-1690 혹은 Beyeren이라고도 표기됨)이 있다. 

이들은 보통 가족 간에 기술을 전수하는 가내 기업 형태라, 아들 형제들이 함께 화가로 활동한 경우도 많기에 동일한 성을 가진 작가들이 엄청 많다.  게다가 외국어 중에서는 영어에만 익숙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에게 이들의 이름의 발음이란 무척이나 어렵고 추측하기도 쉽지 않다 (나도 포함해서).  여기에 영어식 표기와 발음까지 섞이면 더더욱 혼란은 가중된다. 러니, 이번에는 그냥 그림들만 쭈욱 살펴보는 걸로~.  ^^;;;  


아래는 해골모래시계척도계시계촛불꽃 등의 메멘토  (Memento Mori) 주제를 다룬 정물화의 예들

Pieter Claesz, Vanitas Still Life with Oil Lamp and Writing Utensils (1628)



Jan Davidsz. de Heem  (1606–1683/1684), Vase of Flowers (ca. 1645), oil on canvas ; 69.6 × 56.5 cm, National Gallery of Art

 금은 보화금화지갑 – 직접적으로 부를 상징 - 등이 등장하는 정물화의 예

Evert Collier  (ca. 1640-1708), Vanitas Still-life (1705) oil on canvas ; 98 x 124 cm

Abraham van Beyeren (1620/21–1690), Still Life with Lobster and Fruit, probably early 1650s, Oil on wood; 96.5 x 78.7 cm

Jan Davidsz. de Heem (1606–1683/1684), A Table of Desserts (1640), oil on canvas ; 149 x 203 cm, Louvre   이러한 잔치 음식들을 그린 바니타스 정물화를 특화하여 네덜란드어로는 “Pronkstilleven”, 영어로 말하면 ‘ostentatious', 'ornate' 또는 'sumptuous' still-life라고 하는데, ‘사치스러운 정물화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독특한 정물화는 1640 년대 앤트워프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스타일이다.  

Antonio de Pereda  (1611-1678), Allegory of Vanity (1632-36) oil on canvas ; 139.5 x 174 cm, Kunsthistorisches Museum  - 바니타스 정물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종합선물 같은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스페인 작가에 의해 그려진 스페인의 바로크 작품에 해당한다. 이처럼 남 유럽 쪽의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천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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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5 04:46 미술 이야기

한동안 비트 코인 신드롬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Tulip Mania)와 비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시리즈 전에 잠시 단편극 형태로 튤립 매니아와 미술사와의 관련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혹은 "튤립 광풍"이 용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자면, 소위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어지던 시기, 희귀 품종의 튤립의 구근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 상상을 초월한 고가로 거래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렇게 과열된 투기로 일대 열풍이 일었다가, 1637년 갑자기 가격이 폭락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산하거나 빚더미에 올랐다고 한다.

1636년~37년 사이의 튤립 가격 그래프


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역사상 최초의 투기가 관련된 버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특정 품종의 구근 하나의 가격이 크기에 따라 3,000~4,200 길더나 되었다는데, 이 가격은 당시 숙련된 기술공의 1년치 월급이 불과 300 길더였다니, 10년치 월급을 훨씬 웃도는금액이라고 한다.

작가 미상 17세기 수채화 Semper Augustus, tulip mania 당시 가장 비쌌다고 알려진 튤립의 종. 이게 사실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돌연변이 종이라고…

Admirael van der Eijck from the 1637 catalog of P.Cos., sold for 1045 guilders on February 5, 1637. 1637년 1045 길더에 판매된 튤립. 이게 거의 튤립 광풍의 끝자락의 꽃. 같은 해 열기는 폭삭무너지게 되니까.

이런 투기의 배경에는 우선 식물학의 발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카롤러스 클루시우스 (Carolus Clusius)라는 분이 일찌감치 왕실의 개인교사로 일하다가 라이덴 대학의 식물학 교수로 임명되면서 식물학 연구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그 중 그가 몰두한 분야가 튤립의 연구였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에 몰두하던 중, 그는 튤립에서 일종의 돌연변이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귀족들 사이에서는 수집벽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밝혀진 바로는 그 돌연변이로 알려졌던 희귀품종은 사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런 모양이 나온 거라고 하는데, 당시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Carolus Clusius 1585


그리고 웃돈이 붙게 된 배경에는 튤립의 독특한 생태계도 한몫을 했다. 튤립이라는게 원체 씨를 뿌려서 제대로 된 꽃으로 자라는데 무려 4~5년이 넘게 걸린다 한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도 씨를 받아낸 엄마 꽃과는 다른 모양의 꽃으로 자라는 게 또 함정. 그래서, 보통의 경우, 구근을 받아서 그 구근에서 꽃을 피워야 엄마 꽃과 비슷한 모양이 될 확률이 훨씬 높고, 자라는 시간도 훨씬 단축이 된다고. 그렇지만, 구근이라는게 한 꽃에서 그다지 많이 나올 수 없는 것이고, 구근에서 싹이 나서 잎과 꽃으로 완전히 자라는데 시간이 걸리니, 거기에 웃돈이 막 걸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구근을 거래 하는 시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밝은 태양 아래, 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꽃밭에서 우아하게 이뤄지는것도 아니었다. 거래는 음침하고 은밀한 주점의 뒷방, 담배연기로 가득한 밀실에서 암암리에 은밀하게. 그렇게 음성적인 거래였기에, 나중에 탈이 났을 때, 그 거래에 대한 보상을 받을 기회도 적었다.

어쨌든 한 십수년 네덜란드 전역에 튤립 광풍을 일으키다가 무슨일인지 갑자기 거품이 쫘악 빠지면서 갑자기 가격이 떨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판돈을 미리 맡겼던 중산층의 매수인들의 가정이 줄줄이 도산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고! 국가에서 빚을 탕감하는 정책도 폈다고는 하는데, 피해자들을 다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동안 뜨거웠던 비트 코인의 열풍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튤립 매니아, 튤립 광풍이 역사적으로 되풀이 되는 건 아닌가 염려하는 것이었으리라.

Jan Brueghel the Elder, Flowers in a Wooden Vessel, 1603 Oil on Wood ;98 x 73 cm, Kunsthistorisches Museum

위의 그림은 브뤼겔 형제 중 꽃의 정물화로 유명했던 형님의 꽃 정물화. 아래는 아이러니하게도 튤립 광풍에 대한 희화화를 그린 브뤼겔 형제 중 동생의 그림. 아래의 풍자화에서는 상류층의 귀족들이 얼빠진 원숭이들로 묘사되었는데, 이들도 하나같이 튤립에 열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중 더 얼빠진 원숭이가 튤립 꽃밭에 오줌을 누는 바람에 붙잡혀서 혼나고 있는 장면도 보이고 있다.

Jan Brueghel the Younger, A Satire of Tulip Mania (ca. 1640) 얀 브뤼겔 형제중 동생이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 (1640년경)

얀 브뤼겔 형제중 동생이 그린 ‘튤립 광풍의 풍자’화 (1640년경), 세부



Gerritsz Pot, Wagon of Fools (1637)


위의 그림은 튤립 광풍에 맥없이 휘둘린 사람들에 대한 풍자화. ‘바보들의 마차’라는 제목의 작품속 인물들을 보면 마차 위의 인물들은 튤립 열풍에 휩싸여 흥청망청하고 있고, 그 마차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인물들도 보인다. 그 마차가 향하고 있는 곳은 죽음의 세계. 결국 멸망의 길로 기꺼이 가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화이다. 이 작품이 그려진 것이 1637년 인걸 보면, 튤립 가격의 폭락이 있고 나서 그려진 그림일까? 아니면, 그 폭락의 직전, 폭락을 예견한 그림이었던 것일까?

Hans Bollongier (1623-72) Still Life with Flowers (1639)


위의 그림은 돌연변이 종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젬퍼 아우거스터스 튤립 Semper Augustus tulip 으로 가득 찬 화병이 그려진 작품이다. 이 이상 확실한 인생무상, ‘바니타스’* 교훈의 화병이 또 있을까 싶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튤립 시장이 폭락했던 1637년 동안은 꽃의 정물화의 제작이 거의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거슨~~ 꽃들을 볼 때마다 튤립 때문에 돈을 잃은 사람들이 맘이 너~무 아파서 꽃 그림 조차도 보고 싶어하지 않아서였다고.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은 역사에서 무엇인가를 배워서 지난 과오는 반복해서 범하지 않는 슬기로운 존재일까? 앞으로 비트 코인의 열풍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차피 소심한 나는 그냥 궁금해만 하겠지만.


*바니타스 정물화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지는 관계로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야겠다. ^^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04 01:00 미술 이야기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관련해서 게재했던 글입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블라맹크의 열정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layzine/pzArticle?searchSeq=3627

지난 전시에 대한 글이기는 하나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블라맹크 작품들이 소개되었던 전시회였기에, 글로나마 좋은 화가 하나 소개 더 하자하는 맘으로 올립니다. 


붓의 흔적이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들의 경우, 화면을 납작하게 표현해버리는 사진만으로는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혹시나 표현주의적인 작품의 전시회를 보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반드시 '직접' 가셔서 한번 전시를 보실 것을 강추합니다. 

가을이 가기전 주말에 미술관 나들이 나가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03 00:30 일상 이야기

오늘은 페북에 연결하다가 우연히 페북에서 질문을 올린 것을 발견하였다. 
"당신은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신선한 질문이다.  한국에서 과연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일까? 새삼 궁금해진다.  내가 짐작하기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다.  시골에서 취재를 하는 오락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만 봐도 젊은 사람들은 다 대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지키는 것은 나이가 든 노인층 밖에 없다고 하니 말이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 중에서 서울 토박이도 사실상 얼마나 되겠는가?  

나만해도 태어난 곳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지금 여기 뿐 아니라 이곳저곳 많은 곳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는 걸.  그러다가 예전 비행기에서 만났던 분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텍사스 오스틴에 살고 있었고. LA로 향하는 비행기였던 것 같다.  

비행기 옆자리에는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타고 있었는데, 원래 미인이기도 했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짓는 모습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자분이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옆자리에 앉은 그 분이 왠지 긴장하는 듯 해서 다시 살펴보니까, 한손에는 묵주를 들고 또 다른 한손으로는 팔걸이부분을 꽉 쥐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하는 분이군.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냐고 물어보니 수줍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괜찮다면 내 손을 잡아도 된다고 했더니, 괜히 잡으랬나 후회될 정도로, ^^;;; 내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꼭 움켜잡았고, 드디어 이륙을 마치고 나서야 꼭 쥔 손을 풀고서는 무안한듯 내눈을 보고 웃었다.      

덕분에 맘의 거리가 많이 가까워져서였을까?  비행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텍사스의 작은 도시 출신이라는 그 분은 소위 하이스쿨 스윗하트, 즉 고등학교때의 커플이었던 분과 결혼해서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다 했다.  심지어 자신은 물론 남편 쪽 친척들도 거의 모두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5마일 내의 거리 안에서 살고 있다고.  친척들이며 가족들도 다 근처에 살 뿐 아니라, 자신들 부부는 둘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해서 (We enjoy each other's company.라는 표현도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평소에는 그다지 여행도 멀리 하지 않고, 그래서 살면서 비행기를 탈 일은 전혀 없었다 했다.  이번에는 일가 친척 중 유일하게 멀리 있는 친척 하나가 LA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생일을 맞아 'Surprise Party'를 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자기가 대표로 그 모임에 가는 거라고.   


나는 내 주변에 이렇게 태어난 곳에서 모든 친척들이 모여 사는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이라 신기해 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나처럼 태어난 곳은 고사하고 태어난 나라도 아닌 곳을 여기저기 다니는 인간을 처음 만났으니 신기해 하면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미국이라는 넓디 넓은 나라에 태어나서 살면서 삶의 반경이 5마일이었던 여인과, 비슷한 또래로 살면서 한국에서도 태어난 곳이 아닌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하고, 또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을 하는 나.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면서.  서로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또 다른 삶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 이러한 감정을 교류하며 즐거운 만남을 가졌고, 이후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만남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전혀 다른 인생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해 하며 '만약 내가 다른 삶을 선택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떠오르지 않네.  과연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택하게 될까?  

오늘 우연히 던져진 질문 앞에서, '나는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본인 뿐 아니라 온 가족이 태어난 곳에서 살고 있는 어떤 여인을 난 만난 적이 있다'라고 대답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02 00:30 미술 이야기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푸훗~ 하면서도 과연~ 이라며 즐겁게 공감할 한 컷 소개.

이제 인플레를 고려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미술 시리즈도 끝났겠다, 이젠 이 그림에서 단순하게 나타낸 사조별로 한번씩 훑어볼까 생각 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1.01 00:30 일상 이야기

컨텍스트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는 것에 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한 컷

특히, 중간의 한 컷을 이해하는 당신은 우후훗 현대미술 전문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0.31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 왔고, 오늘 드디어 대망의 1위 발표~  

두구두구두구두구  짠~~~ 


인플레 고려 1위) attribut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450.3-million (약 5,138억 상당)

예수 그리스도가 왼손에는 수정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는 제스춰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제목하야 '세계의 구원자, Salvator Mundi'이다. 이 작품은 1500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화가들이 생전에는 가난과 몰이해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고독한 투쟁을 하고, 사후에나 인정을 받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하고, 모딜리아니가 그러하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에 이미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을 받아 유럽의 각국의 왕실에서 스카우트 경쟁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살았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임종은 프랑소아 1세가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인데,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왕과 친밀한 관계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 같다.  (바사리에 따르면 그의 임종 때, 왕이 그의 머리를 안고 손을 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많은 화가들이 그 장면을 상상하여 그렸으나 그 진위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는 우리말로 하자면 팔방미인,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은 물론, 과학, 음악, 수학, 공학, 문학, 해부학, 지질학, 천문학, 식물학, 작문, 역사 및 지도 제작 등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1480년 Duke of Milan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면서 군사 공학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는 여러가지 무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화가로 알려진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고, 유럽 각지의 러브콜에 이끌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완성작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오늘날 확실하게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작품은 20여점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작품은 적으나, 그의 놀라운 그림 솜씨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도제 시절부터 그의 실력은 남달랐다고 한다.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 그 세부

위의 작품은 초기에 그가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를 도와 어린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다. 이 중에서 레오나르도가 천사 한 명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승인 베로키오가 그린 천사가 그 동네 사는 소년같이 그렸던 것에 비해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는 기품과 신성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 스승은 천사는 그리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레오나르도가 그린 신성이 담긴 아름다운 천사는 아래 두명 중 어느쪽일까요?  궁금하신 분은 맨 아래 정답을 확인하세요~)   

대망의 1위를 차지한 레오나르도의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황태자가 아부다비의 문화관광부를 대신해서 $451.3-millions (약 5,138억 상당)에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다. 2018년 가을에는 아부다비의 루브르에서 전시된다고.   

그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 작품은 한 두 작품이 아닌데, 이 작품은 최근 대다수의 전문가가 진품으로 인정한 작품 중 하나이다.  최근들어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은 또 하나의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또 다른 버전.  오랫동안 레오나르도의 위작으로 여겨졌으나, 2015년부터 16년에 거쳐 수많은 검증을 거쳐 비로서 그의 진품임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구별하여 소장자의 거처를 따 Isleworth Mona Lisa라고 불린다. 




Isleworth Mona Lisa, 2015~6년 전문가들에 의해 레오나르도의 작품임이 판명됨

사실 우리는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모나리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당시부터 유명했던 그를 둘러싼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도 원체 많고, 이후 그를 연구한 학자들은 차고 넘치면서 담론은 더욱더 증가하지만, 대중들은 이미지와 이름으로 워낙 친숙해서 모두가 알기도 전에 질려버려 그다지 더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남긴 회화의 작품 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그가 임종을 왕의 무릎위에서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생전에 높은 지위를 지녔고 거기에 걸맞는 학식과 견문을 갖춘 만능 학자로서, 이전의 장인의 위치에 있던 화가의 위치를 인문학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위의 정답: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는 우리가 바라봤을 때, 왼쪽의 천사. 아름다운 눈빛과 곱슬거리는 빛나는 금발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0.30 00:30 일상 이야기

오늘도 1위 발표 전에 한 번 쉬어가는 날로 할까요?

저번에 올린 '물고기들의 화파' 다들 재미있어 하시는 것 같아 오늘도 하나 올립니다. 

저번보다는 약간 난이도가 높은 거 같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10.29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가 계속 되고 있어요.  처음에 전체 랭킹에 관한 포스팅은 요 바로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오고 있죠.  어느새, 오늘은 3위 작품을 살펴볼 시간이네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보면 3위때부터는 두둥두둥 소개할 때 음악부터 달라지던데.  ^^ 


 

인플레 고려 3위)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272 +-millions 

미술사에서는 폴 세잔 (Paul Cézanne: 1839-1906) 은 폴 고갱 (Paul Gauguin: 1848-1903),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와 함께 후기 인상파로 분류되는 화가이다.  그렇다고해서, 이들이 한날 한 장소에 모여서, '우리 오늘부터 후기 인상파 창립하는 거다! 으샤으샤!' 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단체 여행이라도 가서 한 방을 쓰게 했다면, '왜 하필 쟤랑 같은 방이람!' 하면서 못마땅해 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예술에서 지향하는 방향이 각각 다르고, 화풍도 많은 차이가 난다.  이들을 '후기 인상파'로 묶은 것은 이후의 미술사학자들로 순전히 분류 목적이다. 인상주의는 아니고, 그렇다고 이후에 오는 추상의 경향과는 또 다른, 그렇다고 그냥 두기에는 너무 거물들. 따라서 이렇게 모아서 '후기 인상파'

폴 세잔은 이 후기 인상파 작가들 중에서 아마도 후대 화가들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라 할 수 있다.  20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피카소조차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며 세잔을 칭송했고, 야수파의 거장이라고 불린 마티스도 아직 젊은 화가 시절, 결혼해서 어린 자식들까지 부양하느라 쪼들리던 시절에도 세잔의 욕녀 작품들의 소품들을 세 점이나 사 모을 정도였다.  

세잔은 생전에 이미 그의 작품이 평가를 받았지만, 초반에 파리 화단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서 은둔아닌 은둔을 하며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였다. 대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사과가 있는 정물, 생트 빅투와르 산, 목욕하는 여인들 등 시리즈 물로 주로 그렸는데,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도 그 중 하나이다. 

세잔은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섯점을 제작하였고, 그것은 미국에 2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그리고 프랑스의 오르세이 미술관, 영국의 코트올드 미술관, 이렇게 4점이 있고, 이 작품은 2011년 카타르의 왕족이 구입하므로써 유일하게 개인 소장 작품이 되었다.  

다섯 작품 중 두 명만 그려진 작품은 위의 작품을 포함 영국과 프랑스의 미술관들, 이렇게 세 작품이 있다. 그 중 크기는 가장 작지만 구도가 가장 안정되고 색상도 가장 아름답고 조화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은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중인 작품 (아래)으로 개론서 같은데서 대표로 실릴 때 주로 이 작품이 실리고, 이 작품은 기념 우표 제작때에도 대표로 발탁되었다. 

     

분명히 모델이 된 것은 그의 고향마을 농한기에 심심풀이로 카드놀이를 하는 농부들일터인데, 어찌된 셈인지 이들의 자세와 태도는 고요하고 분위기는 적막하고, 심지어 자세는 경건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특징때문에, 세잔의 초상화는 '인간으로 그린 정물화 (human still-life)'라고 불리는데, 이는 세잔의 관심사가 원체 인간관계가 아닌 형태들의 상호관계에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세잔도 원체 사회관계에는 서툴기도 하고 크게 관심없었던 사람이었던듯 하기도 하다.)  

원류를 따라가자면 풍속화 장르 중에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이라는 소 장르가 있고, 이는 또 원류를 좇아가보면, 성서에서의 '돌아온 탕아'에서 파생된 주제이다. 하지만, 처음 착안은 그렇다고 해도 정작 세잔이 추구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형태와 주변 사물이 이루어내는 조화, 형체들간이 구축해가는 구도, 이러한 것이었다는 것. 

참고로 다른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은 아래와 같다.

 메트로폴리탄 소장품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소장품

영국의 코트올드 미술관 소장품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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