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2019. 1. 9. 00:30 일상 이야기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도.... 내 천성이 천지개벽하게 바뀌지 않는한 엇비슷하게 살았을거 같긴하다.  어쩌면,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알기라도 한다면, 반드시 바람대로만은 되지 않았을 일을 미리 더 괴로워하며 지낼지도 모른다. 따라서, 가끔씩 내 어린 시절, 젊은 시절 그립기도 하고, 어릴 적 어리석은 판단들에 대한 후회가 남긴 하지만, 다시 살아내는 것이 더 큰일인지도 모르겠기에 난 그냥 지금 이대로 사는게 낫다 싶다. 어쩌면 어릴 때 몰랐던 것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인생의 더 큰 묘미인지도.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자면, 내가 인생의 전환점마다 배워야 했던 불어에 관한 경험이다. 

대학 때 교양 한 학기 배우는 '불어'라 무시하고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배워서 땜빵해서 대~충 시험 치르고는 그걸로 나랑 불어와의 인연은 끝! 인줄 알았다.   

그런데, 대학원 입학 시험 때 한 학교는 입학 시험 때, 또 한 학교는 졸업 전까지는 또 불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 대학 교양 불어 때 좀 열심히 할걸~' 후회를 했다. 부랴부랴 몇 달 간 알리앙스를 다니며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고, 그 때 시험을 치렀고.... 또 그로서 나랑 불어와의 인연은 이제야말로 끝! 이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미국 가서도 대학원 과정에서 불어 시험은 또 봐야 했었고, 영어랑은 다르게 실생활에서 쓸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다 까먹어버린 불어를 시험을 위해 또다시 문법책을 꺼내들고, 다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나마, 저녁마다 '알리앙스' 쫓아다녔던 시절이 있어 기억을 되살리는데 비교적 짧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그 뒤로도 불어를 사용할 일은 많이 없어서 이제는 발음 규칙이나 불어 동사 규칙 같은 것만 아련히 기억에 남아 있을 뿐, 대부분 까먹어 버렸다.  그런데, 또 불어를 알고 있다면 편리한 상황에 부딪쳤다.  이번에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면, 이번에야말로 매번 문법책을 다시 펼쳐봐야 할 어중간한 단계가 아닌 제대로 된 어학으로서 기본을 다지고 싶다. 




이와 연관되어 '토익' 시험을 준비하는 어린 학생들을 보며 느꼈던 단상이 떠오른다. 예전 공공 도서관에서 토익 준비를 하느라 토익 문제집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학생을 보고 이 중에 베스트셀러는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난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다들 '토익 몇 점 이상'이 되어야 취업을 하네마네 하길래, 도대체 어떤 시험이길래 다들 그렇게 목숨을 거나 싶어 시험의 내용과 구성이 궁금했고 (당시 그 도서관 자리를 차지한 대부분의 학생은 '토익'을 공부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엔 토익 문제집 베스트셀러가 제격이라 여겨져서이다.  

그 학생이 건네 준 책을 살펴보니, 전반적인 시험의 구성에 대해서는 알 수 있었다.  시험 문제로 나오는 내용은 예전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영어시험이나 토플보다는 실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많았고, 독해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정도가 파악이 되었다.  

그런데,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책의 본 내용이었다. 기억 나는 것은 테니스 복 차림의 여성이 보도블럭에서 도로 쪽으로 다리를 내리고 앉아 신발을 고쳐 신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나와있었고, 아래 해석에는 '인물의 사진이 전경에 있을 때에는 현재 완료형은 답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 그 챕터의 주제 문구였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이제는 잊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람이 주어가 되어 그 사람이 행위를 하고 있다면 동작 중이기 때문에 시제 상, 행위가 완료된 것을 의미하는 현재완료형을 사용하는 것은 문법적으로 틀리기 때문일 터이다. 문법적인 내용을 이해하고 아는 것이 그 의미없는 공식들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당시 내 느낌이었다. 그렇게 챕터별로 이해하자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이후에 전혀 쓰임이 있을 것같지 않은 요령들로만 채워진 그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의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일까? 책 날개에는 저자가 '미국 물 한번 먹지 않고도 토익에도 우수한 점수를 얻었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뭐, 이런 식으로 광고 문구가 있었던 것 같다.  다들 한 학기라도 해외 연수를 가거나, 혹은 하다못해 워킹 홀리데이도 간다고 하는 때였는데, 그런 때 혼자 자력으로 국내에서만 영어 공부를 해서 다들 고득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영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점에서는 크게 칭찬해줄 만 한 일이다. 

문제는 그 책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과연 일 년 후, 자신들의 전공 교재나 혹은 실무에 필요한 영어 자료들을 읽을만한 실력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난 내가 지금 하는 공부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다져서, 수 년 후에도 내가 지금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난 내가 지금 하는 공부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다져서, 수 년 후에도 내가 지금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만약 어린 내가 '토익'을 공부해야만 한다면, 난 그 시험을 치르고 나서도 영어로 읽고 쓰고 하는 것이 체화되어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서, 지금 내가 쏟아붓고 있는 나의 젊음이 헛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점수'만 잘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 길지 않은 내 인생의 시간을 가치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당장 적은 노력으로 (내가 보기엔 그 베스트셀러의 공식을 외우는 노력이 실제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딱히 쉬운 것같지도 않았다) 눈 앞의 성과를 꾀하는 요령은 단기적으로는 이득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손해이다. 요령으로 쌓은 지식은 쓰려고 조금만 힘을 줘도 금방 찢어지는 습자지 같아서 쓸모가 없다.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 다 엇비슷하기에 기초 없이 요령만으로 이어가기엔 인생이 길고, 그것만으로 버티기엔 밑천은 금방 드러나는데, 그것을 새롭게 따라잡기엔 인생이 짧다. 

'요령 없이' 우직하게 기초를 다지는 것이 지금 당장은 어리석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확실한 요령이다.  시험 수준보다 좀 더 어렵게 공부하고, 내가 지금 하는 공부가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땜빵으로 공부하고, 그때그때 무사히 넘어갔지만, 또 다시 공부해야 하는 사람의 조언이니 믿어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