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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1.13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
2018. 11. 13. 00:30 영화 이야기

 

보통 리메이크 영화는 믿고 거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의 경우,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경우에도 좀 신중해지는 편이다. 특히, 내가 영화화가 되는 소설을 이미 읽었던 경우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서 상상력을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펼쳐 두었는데, 현실 속의 배우들이 제한된 예산안에서 찍은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무대의 스케일이나 주인공의 모습들에 실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에는 내가 자체적으로 그 영화를 거르거나, 아니면 보고는 '역시~'하고 실망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경우,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 수 있었던 탓일까 잘 모르겠지만, 멋진 영화들이 많다는 것도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리고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후자에 속하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은 피에르 앙브로아즈 프랑소아 쇼데를로 드 라클로 (Pierre Ambroise François Choderlos de Laclos: 1741-1803)라는 기다란 이름을 가진 프랑스 혁명기의 군인 출신 소설가의 1782년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이 서간체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고 보기 보다는 이 작품에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작품을 참고로 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하는 짐작한다.)  

혹자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이 미술사에서는 로코코로 표현되는 귀족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행태'를 고발하기 위했다는 해석도 있으나, (서간체 소설답게) 소설의 끄트머리에 마담 볼랑지가 쓴 편지에서 '원래 인생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밝히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집필 한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은 워낙 충격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을 이 작품은 당시 그 외설성으로 인해 큰 비판을 야기하기도 했다는데, 따라서 작가는 한동안 '외설 작가'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고.  정작 작가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을 쓰고 싶어했다고 하는데,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명성이 자신의 조국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은 물론, 이백여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Jean-Honoré Fragonard, The Swing (ca. 1767), oil on canvas ; 81 × 64.2 cm, Wallace Collection, London  

위의 그림은 당대의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던 귀족 문화를 잘 반영해주는 작품으로, 로코코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이다. 이 작품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부인이 탄 그네의 줄을 당겨주고 있는데, 정작 아내는 젊은 애인과 눈을 맞추며 슬리퍼를 던져 밤의 밀회를 약속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당대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하는 게 워낙 관례처럼 되어 있어 결혼 후 애인들을 만드는 것은 흉도 아닐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들키지만 말아줘.' '내 눈에만 띄지 말아줘~' 그런 분위기였다고.  프라고나르는 그런 로코코적 풍조를 유머를 담아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다 암묵적으로 행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리 널리 알릴 일은 아니었음은 위 작품 왼쪽의 큐피드 상이 손가락을 입 위에 대고 '쉿~'하는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로 돌아가서 얘기를 이어가자면, 앞서 밝힌대로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 소설을 직접적으로 참조했다기 보다는 원작 소설을 영화화했던 서구의 영화를 참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대표적으로는 1959년 로제르 바딤의 프랑스 동명 영화와 1988년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의 영화 <Dangerous Liasons>(불어 원제의 영어 번역)가 있다.  ('리에종'이라는 이 단어는 불어의 쓰임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영어에서는 '연락, 연결'이라는 의미 이외에 '불륜' '간통'이라는 뜻으로 쓰인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하다.) 

1988년 작품 Stephen Frears 의 영화 <Dangerous Liasons프랑스 원제의 영어 번역이 작품인 이 작품은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면에서 우리나라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및 창작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초기 프랑스 영화는 내가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영국 감독과 미국 배우들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1988년 영화 <위험한 관계>는 고증과 시각적 효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2003년 이재용 감독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모델, 아니 창작의 원천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작품이다.  

1988년 미국 영화에는 글렌 클로스,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 등 개성파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뿐 아니라, 당시 화려한 프랑스 귀족들의 풍모와 생활을 보여주는 화려한 의상과 배경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이다.  

이에 2003년 한국의 영화는 프랑스의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조선시대로 옮겨 와서 각색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원작을 모르고서도 영화를 감상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긴 하지만, 비교해서 보면 그 재미가 배가 되는 영화이다. 그 힌트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면서도 배경음악에는 바로크 음악이 사용되고 있다. (바로크 로코코 비슷한 시기이다.)  그리고, 미국 영화가 고증에 신경을 썼다면, 한국의 영화는 고증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더해서 시각적으로 더 풍부한 아름다움을 가진 영화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영화내에서 사용되는 소품들이나 한복의 색상과 디테일들은 고증이라는 틀에서 자유롭게 현대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따라서 시각적 볼거리가 풍부해졌다. 

나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영화의 리메이크가 성공적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훌륭한 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이나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미국의 1988년작 영화 <위험한 관계>와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여담이지만,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준 예로는 최근 상영된 <라이프 오브 마스>를 들고 싶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 드라마 쪽이 BBC의 원작보다 훨씬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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