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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1.01 나이에 관한 소고
2019. 1. 1. 00:01 일상 이야기

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취하는 나이에 대한 태도가 왠지 좀 불편하다.  

프로그램의 주된 시청자 층이 10-20대의 젊은이라고 가정해서 그런걸까?  4-50 정도 된 출연자가 몇 나오면, '둘 나이 합해서 100세'라는 자막이 으레 붙기 마련이다.  그 정도야 웃으며 넘길 수 있지만, 마치 50대가 지나면 마치 살 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은 대접을 과장되게 하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 

나는 이러한 나이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희화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불편하다. 

첫번째로는 4-50대의 출연자를 두고 '노인네'라고 공공연히 부르거나 자막에 내거는 일견 불손한 태도는 어쩌면 일종의 코믹 릴리프 일 수도 있다.  평소에 4-50대의 소위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에게 소위 '꼰대짓'을 했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 세대들에 대한 꼬집기를 통해 웃음을 이끌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이를 무기 삼아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만을 내세워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이를 누르려는 태도는 참 못난 행동이다. 나이에 따라 언어와 호칭이 달라지는 문화권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기 힘든 일인지.... 개인적으로는 논쟁이나 싸움에서 '너 몇살이야?'라고 상대방에 묻는 지점에서 그는 사실 항복의 백기를 흔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죽 다른 것으로 내세울 게 없으면 기껏해야 상대보다 먼저 태어난 것으로 상대를 누르려 하는 것인가?  이는 나이 들어가는 세대들이 경계해야 할 태도 중에 하나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런식으로 희화화 함으로써 젊은 세대가 실생활에서 구세대에게 당해온 것들에 대한 억울함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따라서, 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그런 식의 '나이 먹은 사람들'에 대한 홀대 (?)를 볼 때마다 현실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나이가 깡패'인 사회인가 생각하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런 의식은 결국 '나이 차별'을 야기하고 이는 어느 누구도 행복 할 수 없을텐데 싶어서 말이다.  

두번째로는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나이로 규정지어 나이 50이면 이미 '뒷방 노인네' 이라고 어느 정도는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불편하다. 다들 말로는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렇게 가정해야 팔리는 상품을 선전하는 때 뿐인 것 같다. 현실적으로 4-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힘들다고 여기고,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실제로 50대 중반이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일까? 주변에서 이 나이즈음해서 스스로를 인생을 다 살아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개인적으로는 옳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물론 시간적인 기한이 있어 어느 시간이 지나면 통과 의례처럼 지나는 것들은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아이가 태어나 어느 정도 되면 첫 걸음을 떼고, 어느 정도 되면 말을 시작하고 하는 것이라거나, 사회적으로는 초등학교 입학 후 졸업하면 중학교 입학과 졸업하는 것 등이다.  성장기의 어린이들은 나이 먹으면서 키가 크고 성인의 경우 노화가 진행된다.  사회적으로 어느 조직이든 먼저 그 조직에 들어가서 경력을 쌓은 이들에 대해서는 존중한다. 그건 어쩔 수 없고 어떤 의미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어디 사는게 맘 먹은대로, 시간표대로 진행되는 것이던가?  인생은 생각과는 다르게 수많은 우연으로 이뤄지는 것의 비율이 계획대로 이뤄지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너무 나이 별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삶의 시간표를 단정해놓고 지내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인생은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전제로 살지만, 그것이 언제 내게 닥칠지는 모른다. '이 나이에~' 라고 생각하고 남은 시간을 보내기엔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 너무 '젊다'.  '내 나이 10년만 젊었어도~'라며 한탄하며 10년을 더 산 사람은 10년 후에 '내가 20년만 젊었어도~'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나이에 또 다시 '내 나이 10년만 젊었어도~'라고 한탄하며 지낼 것이다.   

우리는 내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죽는 나이가 정해져 있다면, 연령대별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내야 할 지를 사회적 규범으로 대략적으로 규정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것이 어떤 의미 인생의 묘미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보람을 찾으면서 말이다. 

'나이'에 연연해하지 않고 그렇게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치열하게 살다가 마지막을 담담히 맞이하는 것.  그것이 내일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100세 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에 맞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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