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김민지 ‘자칭 임상심리학 박사’ 사건 – 그 뒤에 가려진 진짜 피해자들

잠자는 집시 2025. 6. 12. 19:28

지난 며칠 간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을 통해 빠르게 확산된 김민지 씨의 허위 경력 사태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 구조의 취약함과 감정 중심 공론장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이 글은 사건의 흐름과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침묵하게 된 진짜 피해자들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 우연히 의혹 제기 단계부터 당사자의 사망까지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처음엔 최근 스레드에 사기 사건에 대한 경험에 대한 글이 많기도 하고 자신의 경력을 부풀리는 사람도 워낙 많아서 그냥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인가보다 했다. 그런데 김민지 씨 사건은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아서 한번 논의해보려 한다.

지난 며칠 동안 스레드에서 시작되어 전개된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1. 사건의 시작

김민지 씨는 『현명한 부모는 적당한 거리를 둔다』라는 책의 홍보에서 자신은 “하버드 심리학·뇌과학 학사, UCLA 임상심리학 박사”라고 소개하였다. “하워드 가드너, 데이비드 카루소, 딘 키스 시몬튼” 등 해당 분야 유명 교수가 직접 추천 찬사를 보냈다는 주장과 함께 저명 교수들의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2. 경력 의혹 폭로 흐름

스레드에서 누군가 ‘김민지 임상심리학자에 대해서 아느냐?’며 자신이 경력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갑자기 자신을 차단했다’는 짧은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이어서 한글로 쓴 책에 어떻게 미국 전문가가 극찬을 했는지도 이상하다는 의혹도 떠오르고, 연령대를 봐서도 주장하는 경력을 갖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면서 의혹이 확산되었다. 결국 실제로 임상병리학자 학위를 가진 사람이 의혹에 동참하며 졸업자 리스트에 ‘김민지’라는 이름도 없고, 라이선스 소유자 목록에도 없다는 것까지 밝혀졌다. 결국 김 씨의 연구에 찬사를 보냈다는 해당 교수들에게 문의를 했더니, ‘김민지라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며 그의 논문을 ‘추천한 적도’ 당신의 사진을 ‘제공한 적도 없다’는 답장이 왔다는 얘기도 올라왔다. 하루이틀 사이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를 언론에서 옮겨 싣기 시작하고, 해당 출판사 길벗은 책 판매 중단·회수 조치 발표하기에 이른다.

3. 권위 도용의 구조적 문제

위의 사항을 종합해보면 김민지 씨는 허위 경력 권위 도용의 범죄 저지른 것이 된다. 명문대 학력 및 박사 학위 모두 검증이 불가하고, 교수들의 사진, 추천사 모두 허위 사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출판사의 검증 실수 문제도 대두된다. 마케팅용 띠지에 그녀가 주장한 내용을 검증없이 그대로 사용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피해의 규모도 크다. 해당 분야가 ‘심리’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고가의 상담료를 내고 김민지 씨에게 수년간 상담을 받아온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무자격자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상담해왔기 때문이다. 듣자하니 공공도서관에까지 다 들어가있는 그 저서를 읽은 독자들 또한 피해자다. 간접적으로는 그의 말을 믿고 같이 찍은 사진과 함께 미디어에 노출된 진짜 전문가들도 명예를 실추했으므로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 사망 이후 ‘약자 프레임’ 역전

스레드에 그녀의 경력이 모두 허위라는 사실이 확실시 된 뒤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던 모든 SNS를 폐쇄하고 상담소도 문을 닫고 잠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모든 것이 모두 2~3일만에 이뤄진 일이다. 그리고 곧 김민지 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편이 SNS에 부고 게시)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허위 경력을 밝혀낸 것을 두고 ‘사적 제재’니 ‘마녀사냥’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판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허위 경력을 드러낸 일이 ‘정의감에 취한 마녀사냥’이며 ‘잔인한 폭력’이었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본질을 흐린다. 진짜 피해자가 누구인지, 왜 검증 시스템이 실패했는지라는 중요한 문제가 사라진 채 ‘감정적 동정’만 남게 된다.

5. 핵심 분석 포인트

보통 부고를 받으면 우리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한다. 이번에도 명복은 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민지 씨가 야기한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도 면죄부가 발행되는 것도 아니다. 값싼 동정과 얄팍한 휴머니즘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만 한다. 그녀가 살아 있었다면 마땅히 물어야 할 도의적 법률적 책임은 어디에 갔고, 그로 인해 진짜 피해를 입은 수많은 피해자들의 정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말이다.

권위에 대한 조직적 기만 vs. 감정적 동정의 착시

김씨는 도용된 권위를 통해 상담료,·출판과 강연 등을 통해 실제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의 극단적 선택은, 의도치 않게 ‘책임 회피’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감정 중심으로만 해석하고 덮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폭로자 공격은 문제의 핵심 회피 수단

“방법이 가혹했다”는 건 도용 자체와 무관한 문제다. ‘사적 제재’라는 말이 옳지도 않지만 이 모든 허위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만 하고 가만히 있어야한다는 비판자들의 주장은 그녀의 죽음을 통한 ‘책임회피’를 정당화 시킨다. 그렇다면 그 허위 경력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보호는 왜 논의되지 않는가?

피해자의 목소리가 실종됨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몇몇 포스팅에서 실제로 상당한 상담비를 내고 그녀와 상담했다며 망연자실한 목소리도 올라온다. 그리고 그녀의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 책을 산 독자들, 강연을 초빙하고 그녀의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면서 그 과정의 담당자들 모두 피해자다. 해당 저서를 낸 출판사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출판사의 신뢰에 큰 금이 가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 곳 역시 피해자다.자살자 보호 프레임만 강화되면서 진짜 피해자들이 심리·경제적 피해를 호소할 창구가 사라졌다.

진짜 질문은 “왜 이런 행위를 몇 년간 아무도 몰랐는가”여야 한다.

‘감정 중심 약자 프레임’의 도덕적 함정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 약자의 증거라고 한다해도, 그러면 약자가 만든 거짓까지 모두 책임에서 면제시켜야하는 것인가?

‘진실탐사와 비판이 곧 폭력’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공익을 생각한 책임있는 비판자체는 금지되어야하는가?

“동정이 곧 정의”라면 구조적 문제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사건의 추이를 살펴보다 보면 진실 시스템의 붕괴와 도덕적 위선이 결합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십수년 전에도 한번 위조 학력논란이 크게 있었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내가 몸담고 있는 미술사 분야에서 시작된 위조 학력 논란이 연예계와 언론, 정치권 할 것 없이 확산되어서 우리가 존경하고 선망하던 많은 이들의 학력이 실은 위조되었고 근거 없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내 기억에 그 당시 해당 큐레이터 빼고는 모두 ‘창피함’이라는 형벌 이외에는 큰 처벌 없이 넘어갔었다.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학벌 숭상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었 던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잊혀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검증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해야한다는 논의가 앞서야한다고 본다.

이번 문제에서 다뤄야할 문제는, 검증 실패의 구조, 시장 시스템과 권위의 책임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의미가 있다. 그리고 ‘마녀사냥’운운 하는 사람들 탓에 감정 중심 공론장의 위험도 한번 논의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참고 기사 링크를 달까 하다가 그냥 안달기로 했다. 이 기사들이라는 것이 사실상 며칠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민들이 집요하게 추적한 내용을 요약한 것에 가깝다. 기자들이 직접 해당 교수나 기관에 취재한 것이 아니라, 이미 공유된 내용을 정리한 수준에 머문다. 이러한 보도 양상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지금 시대에 진실을 밝혀내는 힘이 언론이 아니라 ‘시민 감시’에 있다는 점, 그리고 오보 혹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얼마나 손쉽게 유통되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