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태그의 글 목록
2018. 10. 31.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 왔고, 오늘 드디어 대망의 1위 발표~  

두구두구두구두구  짠~~~ 


인플레 고려 1위) attribut 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450.3-million (약 5,138억 상당)

예수 그리스도가 왼손에는 수정구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축복을 내리는 제스춰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이 작품은 제목하야 '세계의 구원자, Salvator Mundi'이다. 이 작품은 1500년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고 있는 대부분의 유명 화가들이 생전에는 가난과 몰이해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하기 위한 고독한 투쟁을 하고, 사후에나 인정을 받곤 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러하고, 모딜리아니가 그러하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생전에 이미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을 받아 유럽의 각국의 왕실에서 스카우트 경쟁 속에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살았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임종은 프랑소아 1세가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인데,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그가 왕과 친밀한 관계였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것 같다.  (바사리에 따르면 그의 임종 때, 왕이 그의 머리를 안고 손을 쥐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고, 많은 화가들이 그 장면을 상상하여 그렸으나 그 진위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는 우리말로 하자면 팔방미인, 진정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화와 조각, 그리고 건축은 물론, 과학, 음악, 수학, 공학, 문학, 해부학, 지질학, 천문학, 식물학, 작문, 역사 및 지도 제작 등 그가 관심을 갖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이다. 1480년 Duke of Milan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면서 군사 공학자라고 강조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는 여러가지 무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화가로 알려진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의 다양한 관심사와 활동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고, 유럽 각지의 러브콜에 이끌려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완성작은 더더욱 줄어들었다. 오늘날 확실하게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작품은 20여점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작품은 적으나, 그의 놀라운 그림 솜씨에 대해서는 전설처럼 여러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도제 시절부터 그의 실력은 남달랐다고 한다.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Andrea del Verrocchio and Leonardo, The Baptism of Christ (1472–75) oil on panel ; 177 × 151 cm, Uffizi ; 그 세부

 

위의 작품은 초기에 그가 그의 스승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를 도와 어린 제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다. 이 중에서 레오나르도가 천사 한 명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승인 베로키오가 그린 천사가 그 동네 사는 소년같이 그렸던 것에 비해 레오나르도가 그린 그림에는 기품과 신성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후 스승은 천사는 그리지 않았다나 어쨌다나....  (레오나르도가 그린 신성이 담긴 아름다운 천사는 아래 두명 중 어느쪽일까요?  궁금하신 분은 맨 아래 정답을 확인하세요~)   

대망의 1위를 차지한 레오나르도의 <세계의 구원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2017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황태자가 아부다비의 문화관광부를 대신해서 $451.3-millions (약 5,138억 상당)에 구입한 것으로 되어있다. 2018년 가을에는 아부다비의 루브르에서 전시된다고.   

그의 작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 작품은 한 두 작품이 아닌데, 이 작품은 최근 대다수의 전문가가 진품으로 인정한 작품 중 하나이다.  최근들어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은 또 하나의 작품이 있는데, 그것은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또 다른 버전.  오랫동안 레오나르도의 위작으로 여겨졌으나, 2015년부터 16년에 거쳐 수많은 검증을 거쳐 비로서 그의 진품임을 인정 받은 작품이다. 루브르의 모나리자와 구별하여 소장자의 거처를 따 Isleworth Mona Lisa라고 불린다. 

 

 

 

Isleworth Mona Lisa,  2015~6년 전문가들에 의해 레오나르도의 작품임이 판명됨

 

사실 우리는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모나리자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얼마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당시부터 유명했던 그를 둘러싼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도 원체 많고, 이후 그를 연구한 학자들은 차고 넘치면서 담론은 더욱더 증가하지만, 대중들은 이미지와 이름으로 워낙 친숙해서 모두가 알기도 전에 질려버려 그다지 더 알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가 남긴 회화의 작품 수는 얼마되지 않지만, 그가 임종을 왕의 무릎위에서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생전에 높은 지위를 지녔고 거기에 걸맞는 학식과 견문을 갖춘 만능 학자로서, 이전의 장인의 위치에 있던 화가의 위치를 인문학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위의 정답: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는 우리가 바라봤을 때, 왼쪽의 천사. 아름다운 눈빛과 곱슬거리는 빛나는 금발은 이후 그의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7. 00:30 미술 이야기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처음에 전체 순위에 대해서 살펴본 포스팅은 아래를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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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한 작가씩 살펴보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늘은 4위를 차지한 폴 고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인플레 고려 4위)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217-millions [약 2,471억원 상당]

타락한 문명사회를 버리고 물질주의에 찌들지 않은 자연을 찾아 떠난 자유로운 영혼.  그것이 일반적인 폴 고갱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가 타히티에 정착한 뒤 제작한 그림들은 그러한 이미지에 부합하는 원주민들의 모습과 자연의 모습.  그 이후 그는 '종합주의 (Synthetism)' 혹은 '구획주의 (Cloisonnisme)'라고 칭해지기도 하며 이후 상징주의의 효시로 수많은 화가들의 추종을 받았다.  이들은 색과 선을 통해 화가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자연현상의 묘사에 초점을 맞춘 인상주의자들과 차별화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화가들은 스스로를 '나비파(Nabis)'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히브루어로 예언자라는 뜻이라고.]  

사실 그의 역할과 영향은 미술사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은 부정할 수 없으나, 눈치빠른 독자나 관람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요즈음 폴 고갱에 대한 전시회나 개론서에서의 그에 대한 언급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식민사관을 반영하는 듯한 타이티에 대한 견해, 그리고 오늘날이면 소아성애자라고 처벌받을 수 도 있었을 타이티에서 미성년자들과의 사실혼 관계 등은 전시를 준비하거나 그에 대한 에세이를 쓸 때 무시하기는 힘든 사실이고, 그러한 불편함 때문에 점점 교묘히 그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게 되어온 것이다. 

그가 예술을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친 것은 아니고, 당시 우리나라의 IMF에 해당할 만큼의 경제 붕괴 사태가 있었을 당시 실직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십수년간 가정을 책임지며 다섯명의 아이를 키워왔던 부인을 버리고 자유롭게 타히티로 건너가버린 무책임한 가장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건너간 타히티가 실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상당한 문명화가 이뤄져 있어 그가 기대한 만큼의 '순수한 자연'의 상태는 아니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럽인들의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시 상태의 타히티를 그려서 '이국 취향'을 선호하는 파리 화랑에서 팔려고 했다는 점....  속속 드러나는 그의 삶과 예술의 이면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위의 작품은 2014년 카타르의 왕족에게 약210-millions에 판매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2,471억원 상당한 금액이다.       

"Nafea Faa Ipoipo?" 원제는 타히티의 원주민어로 굳이 달아놨다. 이것도 아마도 이국 취향 저격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해석을 하자면 '언제 결혼할래?' 라는 뜻이라고.  우리나라도 명절마다 듣는 이 말이 듣기 싫어 가족모임 자체가 괴로울 젊은이들이 많을텐데, 거기도 예외는 아니었나보다.   화면에는 어느새 장성해 결혼할 나이가 된 두 명의 원주민 소녀가 그려져 있다.  앞쪽의 소녀는 그 질문을 받자 자리를 피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뒷 쪽에 자리한 여성이 입고 있는 옷은 원주민들의 전통 의상이 아니라 유럽의 현대 의상.  생각보다 현대화 되어 있어서 실망스럽다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던 고갱은 파리 화랑에 그림을 팔 때에는 당시 유럽인들의 이국 정취에 대한 환상을 만족시킬만한 작품을 제공하고자 애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던 고갱은 이 작품에서 현대화 된 타히티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누설해버린 것일까?   

이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문명사회와는 다른 원시적이지만 순수한 자연의 상태에서의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으나 평온한 삶에 대한 동경은 고대 그리스부터 있어왔고,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이 극에 이른 로코코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 인기가 있었다.  이러한 장르를 문학에서는 '전원시' 혹은 '목가' 미술에서는 "전원적 풍경화" "전원의 교향곡"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데, 고갱의 타히티 풍경화는 일종의 19세기 말 버전의 '전원시'라고 할 수 있다. 

다음시간에는 이러한 '전원시' 장르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5. 00:30 미술 이야기

한 번 시작한 순위 프로그램, 계속 진행해가고 있습니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전체 랭킹에 대해서 올린 포스팅은 여기를 참고!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지난 2차례 걸쳐서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에 대해서 살펴봤다. 오늘도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햐는 화가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그의 작품 중 순위에 포함된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7위)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 $192-millions


앞의 포스팅들 (윌렘 드 쿠닝잭슨 폴록 편 참고)에서도 밝혔지만,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들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émigré, 이민자들이었다. 마크 로스코도 본명은 Markus Yakovlevich Rothkowitz. 유태계 혈통인 그는 러시아 내에서의 반유태정서를 염려한 부모를 따라 오레곤주의 포틀랜드로 이민을 왔다. 이주 후 곧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낯선 땅, 낯선 언어 속에서 빈곤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비록 가정형편 탓에 자퇴를 하긴 했지만, 예일대학에 입학을 할 수 있을 정도였고, 어릴 때에는 출신지인 러시아의 언어는 물론, 이디시, 히브루어를 공부했고, 시나고그에서 탈무드를 배우기도 했던 로스코는 상당히 지적인 화가였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뉴욕에 이주한 후, 그는 다양한 배경의 화가 지망생들과 어울리는 한편,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와 융 심리학은 물론 키에르케고르와 니체의 철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다른 추상표현주의자들처럼 로스코도 시그니처 스타일이 있었는데, 전형적으로 직사각형의 캔버스 위에 두 세개의 사각형이 그려진 단순한 구조다. 그의 작품을 묘사할 때는 'floating rectangles'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경계선이 명확한 사각형이 아닌 가장자리가 번져 있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마치 물 속에서 떠오르는 듯한, 그 위를 부유하는 듯한 사각형이라는 의미이다.   

'멀티폼 (multiform)'이라고 알려진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그가 다른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융 심리학의 영향을 반영하는 단계를 거치고 난 후, 1940년대 말, 1950년대 초였다.  

그의 회화 작법은 로스코가 생전 스튜디오에 사람을 들이기를 극도로 꺼리며 비밀을 유지한 덕분에 아직까지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그의 회화작품을 수복을 위해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짐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 천 위에 엷은 물감을 여러차례 바르는 기법을 사용했다. 따라서 흰색 캔버스 천의 흰색이 여러가지 색상의 엷은 물감이 서로 섞이는 와중에 비쳐나오면서 마치 사각형이 떠오르는 듯한 효과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인 이 작품도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그려진 것인데, '이런 것을 그림이라고...'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을 평면화 시켜버리는 사진으로가 아니라, 직접 보면 생각보다는 '복잡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조그만 썸네일이나 작은 사진으로 보면 그냥 사각형 두세개가 그려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사각형 하나하나가 단색이 아닌 명도와 채도가 색상들이 여러 층에 걸쳐 그려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엷은 물감은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번지면서 스며들어 가장자리에는 번진 자국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floating'이라고 묘사하는 사각형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각형이 캔버스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빛에 따라 일렁거리는 물결 아래 잠겨 있다가 떠오르다가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후기에 이를수록 점점 색상이 짙고 어두워지긴 하지만, 전성기 그의 작품 속의 사각형은 밝고 아름다운 색상으로 그려진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그를 'colorist'라고 부르기도 했다. 정작 본인은 그러한 평가에 대해 펄쩍 뛰면서 '내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작품앞에서 통곡을 하게될 것이라' 천명하였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 제임스 브레슬린은 서문에서, 어떻게해서 로스코의 전기를 쓰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자신이 힘든 시기였을 때, 우연히 로스코의 작품을 보고 그 앞에서 펑펑 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후 작가의 위의 언급을 읽고 로스코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전기를 쓰게 되었다고. 

자신의 작품은 결국, 비극과 환희,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 (tragedy, ecstasy, doom)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던 로스코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한 것일까?  68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부호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 (Dmitry Rybolovlev)가 고갱과 로댕의 작품을 포함해, 스위스의 아트딜러 이브 부비에 (Yves Bouvier)로부터 구매한 고가의 미술품 중 하나이다.  [이들과 관련한 논란 및 법정공방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4.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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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오고 있다.  

오늘 다룰 작품은 순위에 든 작품들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바로크 시대 작품이다. 

인플레 고려 8위)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oil on canvas ; 208 x 132 cm. 

Louvre and Rijksmuseum (joined-ownership)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186-millions [약2,106억원 상당]

마르텐 술만스와 우펜 코핏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인물들은 갓 결혼한 커플로, 이 두 작품은 이들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한 쌍으로 제작된 것이다. 물론 각 작품은 따로따로 제작되었지만, 이처럼 한 곳에 나란히 걸릴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피카소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는 또한 화가들의 화가라고도 할 수 있다. 화가들 중에서는 화가들 사이에 더 폭넓게 회자되고 존중받는 화가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 예가 벨라스케스, 고야, 카임 수틴, 렘브란트 등이 있다.  

렘브란트는 그의 자화상과 초상화로 유명한데, 자화상에는 자신의 당시 상황과 심리 상태를, 또 초상화의 경우 그림의 모델이 되는 이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는 화가이다.      

이러한 전통적 초상화의 경우, 경매에 나오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이는 유명 화가의 작품들은 이미 대형 미술관들이 소장 중이고, 그러한 작품들은 여하한 이유없이는 경매에 나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렘브란트의 결혼 기념 초상화는 2015년 비공개 경매에서 루브르 미술관과 암스텔담에 있는 릭스뮤지엄 (Rijksmuseum)이 공동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들은 앞으로 이 두 군데에서 번갈아가며 전시되리라 생각된다. 새롭게 복원 과정을 거쳐, 2018년 9월부터는 루브르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러한 결정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이 작품을 구매함에 있어서 두 미술관이 함께 결정을 내린 것일텐데, 이 두 작품이 펜던트 작품이었다는 것이 공동 구매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된다. 이처럼 두 작품이 한쌍을 이루는 작품을 펜던트 작품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함께 걸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판단이 참 성숙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산 맞춰서 작품 하나씩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작품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판단하에 두 미술관이 협의하에 함께 구매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하는 지난 6월까지의 Rijksmuseum에서의 전시회 광고.  전시회 제목도 광고도 아이디어 굿~  사실 셀카로 가볍게 찍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초상화를 유명화가들에게 제작하게 한다는 자체가 그림의 모델들이 'High Society'에 포함되었다는 의미. 게다가 그들이 그렇게 작정하고 초상화를 제작하는데, 아무 옷이나 걸치고 포즈를 취하겠는가.  

 

2019년 7월부터 Rijksmuseum에서 렘브란트의 대표작인 <야경>(1642)의 수복작업을 대중에게 공개한 상태로 진행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만약 내년 여름 유럽 방문할 생각이라면 이곳의 수복 진행사항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이다. 

Preliminary research on Rembrandt van Rijn’s The Night Watch (1642) at the Rijksmuseum. Photo by Daniel Maissan, courtesy the Rijksmuseu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2. 05:11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쭈욱~ 계속 됩니다~ 

먼저, 전체 랭킹을 논한 포스팅은 여기를 클릭!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은 추상표현주의자들 중 잭슨 폴록과 함께 소위 액션 페인팅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1904-1997)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순위에 포함된 드 쿠닝의 작품은 두 점인데, 이제까지처럼 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포함 된 경우, 중복되는 언급을 피하기 위해서 이처럼 묶어서 진행하려고 한다.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무려 2위와 12위에 빛나는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2위)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310-millions [약3,511억원에 상당]

인플레 고려 12위)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약1,890억원에 상당]


위의 두 작품은 각각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윌렘 드 쿠닝의 두 가지 관심사를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여인의 인체에 대한 관심이고, 또 하나가 회화에서의 형과 바탕, 즉 figure/ground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였다.    

먼저,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12위를 차지한 <여인 III> (1953)을 살펴보자. 윌렘 드 쿠닝은 <여인> 시리즈로 가장 유명한 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현재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 소장 중인 <여인 I>이 있다.   

20살 되던 해에 밀항으로 네덜란드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드 쿠닝은 초반에 생활이 어려워 같은 캔버스에 여러차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곤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경우, 적외선, x-ray등으로 검사해 본 결과, 무려 70차례의 채색을 한 흔적이 보인다고! 힘찬 붓질 탓에 캔버스 더러 구멍이 난 부분도 있다고 한다.  시민권이 없던 관계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예술가 구제책이던 FAP (연방 예술 프로젝트)에도 자격 미달이었던 그는 남의 집 페인트 칠해주는 일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알려졌는데, 따라서 그가 사용한 물감도 회화 전문용 물감이 아닌 가정용 페인트였다. 

윌렘 드 쿠닝의 대표작, <여인 I>   Willem de Kooning, Woman I (1950-52) oil and metallic paint on canvas ; 192.7 x 147.3 cm, MoMA 

이 작품은 비평가 헤롤드 로젠버그가  ‘액션 페인팅’ 이라는 명칭을 만들게  계기가  작품이다. 거친 붓질로 구현해놓은 여인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전형적 미인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큰 눈과 날카로운 이, 그리고 큼지막한 손과 가슴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긴 한다.  이여인의 모습을 융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여인의 '원형'상에 가깝다고 이해할 수 있다.  드 쿠닝의 <여인 I>은 세계사나 미술사 초반에 등장하는 고대의 여인상과 유사한데, 그 대표적인 예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있다. (아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여성의 생산에 관련된 신체부분이 강조된 여인상. 독일의 빌렌도르프 지방에서 출토되어 붙은 별명.  원형의 여인상이라고 여겨진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되었다고도 여겨진다. 

한편,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랭킹 2위를 차지한 <나들목 (Interchange)>(1955)의 경우,  그가 여인 시리즈 뿐 아니라, 그가 중반기에 몰두했던 풍경화에서도 지속적으로 몰두했던 figure/ground 관계에 대한 관심을 잘 드러낸다.   

figure/ground 관계란, 그림을 그릴 때 주제가 되는 형태 (figure)와 그 주변 및 바탕 (ground)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통적 회화에 있어서는 그 관계가 뚜렷한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 추상에 오면 그 관계가 모호해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잭슨 폴록의 작품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의 그림에서 주를 이루는 형태와 바탕을 구분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드 쿠닝의 경우, 인체를 포기하지 않은 추상화가로서 그로서는 추상에서 구현된 figure/ground 관계를 자신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관심이 높았음에 분명하다.  이 <나들목>이라는 작품에서는 입체교차로라는 대상과 그 주변 배경과의 관계를 탐구했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 게픈 재단 (the David Geffen Foundation)이 헤지 펀드 재벌 케네스 그리픈 (Kenneth C. Griffin)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번에 살펴볼 잭슨 폴록의 <Number 17A>과 함께 $500-million 패키지로 판매했다고. (드 쿠닝의 작품이 $300-million, 폴록의 작품이 $200-million. 드 쿠닝에 대한 경쟁심이 남달랐던 폴록이 살아있었더라면 분통을 터뜨렸을지도. 

이 작품은 현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대여 전시 중이므로 시카고 여행 중이고, 직접 보고 싶다면, 그곳에서 한번 찾아보시길.    

드 쿠닝은 92세의 나이에 별세하였는데, 만년에는 알츠하이머를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규칙적으로 작업실에 나가 작업을 계속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본능이자 습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투병 중에 그린 작품들도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보인다. 

뉴욕주 이스트 햄튼 작업실에서의 윌렘 드 쿠닝과 만년의 작품들

그의 예술가로서의 공적과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담은 드 쿠닝의 전기는 2005년 플리처 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는데, 밀항자였던 네덜란드 예술가의 전기 제목이 '미국인 대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de Kooning: An American Master, by Mark Stevens and Annalyn Swan (Alfred A. Kn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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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9. 01:0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시작했으니 계속 달리는 걸로~  

처음 밝힌 대로,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공약을 지켜가고 있는 겁니다.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지만~  ^^  (처음 소개 포스팅은 여기!)

오늘은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9위와 15위를 차지한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981-1973)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9위와 15위를 차지한 작품은 각각 아래와 같다.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s (2015 Christie's auction)   $185.2-millions

15)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162.8-millions 

20세기 화가로 가장 유명한 화가를 꼽자면 단연 파블로 피카소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20세기 태어나고 활동한 화가 중에 피카소의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모두가 피카소를 추앙하고 따랐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 화가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자면, 그를 숭배하고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와 그의 작품을 너무 싫어해서 의식적으로 그런 작풍과 경향을 피한 화가들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인플레 고려 9위)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s (2015 Christie's auction)   $185.2-millions [약 2,082억에 상당]

피카소는 자신이 거장임을 잘 알고 있었고 마티스가 자신의 적수가 될만한 상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티스가 세상을 뜨고 난 뒤, 그는 '나는 내일부터 두배 열심히 일해야 한다, 마티스의 몫까지.'라고 멋있는 말을 하고 난 뒤, 이제는 세상을 뜬 동시대의 적수를 대신해 서양미술사 내에서 존재하는 거장들에게 차례차례 시합을 신청했다.  위의 작품은 낭만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외젠 들라크로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알제리의 여인들>을 재해석한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볼 때까지 해보는 타입이었다.  '알제리의 여인들'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이후 미술사가들은 그 작품들을 연구하기 위해 작품들에 알파벳의 별칭을 붙였다. 위의 작품은 이름하여 '버전 O'.  그 외에도 다양한 스케치, 유화, 석판화 등으로 동일한 주제의 작품들이 남아있다.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포문을 열었고 추상미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입체파 (Cub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초로 '입체파' 양식의 작품을 제작한 것은 초기에 피카소의 룸메이트로 지내며 공동작업을 했던 조르주 브라크라는 것도 입체파 전문가들 다수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후에도 브라크는 조용히 입체파적 작품을 평생 꾸준히 제작하며 독자적 영역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왕성한 창작열과 창의성에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작품 수는 어마어마해서 그의 긴 인생의 나날들로 나누어봐도 하루 20여점은 제작한 것으로 나온다고도 한다. 그는 '창의적인 진공청소기'라 불리며 항상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을 창조해냈고, 회화 뿐 아니라 판화, 도자기, 조각, 무대 장치,시, 희곡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쳤다.  자타공인 그의 이미지를 '황소'에 비유한 것은 단지 그가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카소는 왕성한 창작열 뿐 아니라 그의 엄청난 '연예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잘 알려진 그의 여자친구만 해도 무려 7명, 두번의 결혼을 했고, 세명의 자손을 남겼다.  물론 그외 잘 알려지지 않은 여자친구는 수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15세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창가를 드나들기 시작한 이래, 여인들은 그의 삶과 예술의 동력이기도 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한 연구에 따르면, 그의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 (1907)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졌던 성병, 매독에 대한 공포와 그의 여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의 딜레마, 그리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부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Picasso, Demoiselles d’Avignon (1907) oil on canvas; 243.9 × 233.7 cm, MoMA

오늘의 주제인 <꿈>이라는 작품은 Marie-Thérèse Walter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그림으로 일기를 쓰는 화가여서, 그의 연애 변천사는 작품 속에 다 드러나서 그의 작품을 조금만 연구하다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마리-테레즈 월터의 경우, 그의 7명의 애인들 중 4번째의 여인에 해당한다.  (그녀와 연애를 할때에는 그는 첫번째 부인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상태였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녀와 사는 집은 본가 살림 집 근처에 따로 구해야만 했었다.  이후 올가가 집을 나가고 이혼을 신청했지만, 위자료가 주기 싫어서 '끝까지 이혼은 안했다'는 후문이 있다.) 

공교롭게도 마리-테레즈 월터를 그린 초상화는 모두 경매에서 고가로 거래되었다.  이 작품은 예술계의 두 큰 손 사이에 거래되어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을 뿐 아니라, 호텔 재벌 윈 (Wynn)이 증권계 큰손 스티브 코헨 판매 직전에 작은 흠집을 내어서 한때 거래가 중지되었다가, 수리 후 처음보다 훨씬 고액으로 결국 다시 코헨에게 팔았다는 에피소드가 더해져 더 유명해졌다.  

인플레 고려 15위)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s (2013 private sale)   $162.8-millions [약1,834억원에 상당]

마리-테레즈 월터를 모델로 한 또 다른 작품이 아래. 생전, 피카소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인이 있지. 한 종류는 여신이고 또 한 종류는 발닦개 (doormat)'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는데, 여기에는 여신 (흉상으로 묘사)과 발닦개 (바닥에 누운 여인으로 표현)가 다 등장한다.  이 작품은 개인 소장으로 한동안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가 소장자 Frances Brody가 2009년 사망 후, 현재는 장기 대여형식으로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 중이다.  

Picasso, 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  oil on canvas; 162 × 130 cm (2010년 경매 $106.5-millions) (private collection ; 현재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장기 대여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6. 01:30 미술 이야기

며칠전 올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꼼꼼히 살펴보기 시간!

오늘은 인플레를 고려한 순위 18위에 당당히 자리하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바우어 의 초상 I" 을 살펴보는 시간이지만, 편의상 그의 작품을 한데 모아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실 클림트에 대해서는 일전에 포스팅을 한 적이 있으므로 그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100주년이라니....빈 모더니즘을 기념하는 2018년  

http://sleeping-gypsy.tistory.com/52

 

구스타프 클림트 (1862-1918


우리가 살펴보는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순위 20위 안에서 빈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클림트의 작품이 무려 세 작품!!!  따로 따로 이야기 하자면 중복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 하나로 통일해서 올리도록 한다.  그 세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6위)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s (2012 private sale)  $193.1-millions

인플레 고려 14위)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s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인플레 고려 18위)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s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  $153.0-millions 

올해 서거 100주년이라 세계 곳곳에서 행사도 많이 진행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는 구태의연한 아카데미를 박차고 나와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고자 한 열혈 화가들의 모임인 비인 분리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비인 모더니즘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의 예술은 프랑스에서는 '아르 누보 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라는 명칭으로 통용되었고,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유겐트 스틸 Jugend Stil' ('젊은 스타일'이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예술의 주요 작가이기도 하다.  

당당히 6위를 차지한 <물뱀 II>의 경우, 클림트의 그의 '황금기'의 작품 중 하나로, 금박을 사용해서 그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또한 다른 그의 작품의 특징인 '여인의 관능성'의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물뱀 I>이 유화 작품이 아니라는 점도 있어 두 작품의 매제의 차이가 느껴지는 점도 흥미롭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재벌인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 (Dmitry Rybolovlev)가 고갱과 로댕의 작품들과 함께 스위스의 아트 딜러인 이브 부비에(Yves Bouvier)에게서 고가로 구매한 작품들 중 하나 이다. 이후 이 둘은 예술품의 위조, 예술품 도난, 자금 세탁 및 탈세 등의 문제에 연루되게 되는데, 이를 "부비에 사건"이라고 부른다.    

6) 구스타프 클림트, <물뱀 II>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s (2012 private sale) 현재 가치 $193.1-millions 

구스타프 클림트, <물뱀 I>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 (Water Serpernt I)" (1904) 


금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였을까?  그의 황금 빛 사랑은 남달랐는데, 찬란한 금박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인물화가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이다.  여성의 묘사에 있어서 혁신을 일으킨 그의 대표작 <키스>와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1907)가 그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Gustav Klimt, The Kiss (1907), oil on canvas ; 180 x 180 cm,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적이 있으므로 일전에 포스팅을 참고하세요~  http://sleeping-gypsy.tistory.com/52

아델 블로흐-바우어 초상 I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이 그려진 이후, 5년 후, 같은 모델을 대상으로 II를 그린 것인데, 첫번째 작품이 2006년 기록을 세우며 판매된 이후 10년 만에 두번째 작품도 나란히 기록을 세우게 된다.  아델의 경우, 구스타프가 유일하게 같은 인물을 대상으로 두번 초상화를 그린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첫번째 초상화는 한때 나치에 의해 몰수되었다가 전후 비인의 갤러리 벨베데어 (Galerie Belvedere) 미술관에 넘겨졌다. 이후 기나긴 법정 소송 끝에 비로소 블로흐-바우어 가문이 소유권을 회복하게 되었고, 그 길로 바로 2006년의 경매에 등장.  그 해 최고가를 기록하며  에스티 로더 화장품 회사를 소유한 재벌 Ronald S. Lauder가 구매하게 되어, 그들의 소유인 뉴욕의 노이 갤러리 (Neue Galerie)에 걸리게 되었다.   

두번째 초상화의 경우, 한때 오프라 윈프리가 소장했었으나 2016년 가고시안 갤러리를 통해 비공개 경매로 익명의 중국인에게 판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4) 클림트,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I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s (2006 Christie’s auction)  현재 가치 $163.9-millions   판매자: Maria Altmann 구매자: Ronald Lauder

18) 클림트,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화 II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s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  현재 가치 $153.0-millions 

이 둘의 사이에 대한 소문도 무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도 제작되었다고 하나, 원체 클림트는 에밀리 플뢰게 (Emilie Flöge: 1874-1952)를 위시해 수많은 여성 편력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모친이 사망할 때까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고 알려졌는데, 일설에는 그의 사생아가 14명이 된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신비주의를 유지하며, 인터뷰 때 사생활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내 인생은 내 예술만큼 재미가 없다.'며 극도로 말을 아꼈었다.  

클림트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초기 작품의 주제는 불안과 회의, 그리고 여인의 관능성, 혹은 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주를 이루었던데 반해, 후기에 이르면, 자연을 빛의 효과와 추상적 형상을 통해 나타낸 풍경화가 주를 이루게 된다.  1908년 그는 회장을 맡기도 했던 비인 분리파에서 탈퇴를 하면서 보다 개인적인 감성과 직관에 충실한 작품활동을 하게 되는데,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화풍의 변화를 갖게 된다.  인물화를 그릴 때처럼 주문자의 심기를 살피지 않아도 되어서 그랬을까? 이후에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에 심취하여 풍경화를 위주로 그리게 된다.  그의 풍경화도 오늘 살펴보는 인물화 만큼의 고액은 아니지만, 경매에서 항상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곤 한다.   아래의 작품만 해도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31,375,000 (약 351억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거래가 성사되었다.  

Klimt, Houses at Unterach on the Attersee (1916) oil/canvas,  110x110cm, Private Collection [Christie's - Price Realized $31,376,000 - 8 November 2006 (약 351억)]

온 종일 숲속을 그의 유니폼 같은 가운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숲속의 악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할 정도로 자연에 심취하여 많은 풍경화를 남겼고, 그의 풍경화는 에곤 쉴레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표적 풍경화로 알려진 아래의 작품의 경우, 빨강과 녹색의 보색 대비, 치밀하고 자잘한 원색의 붓질 등에서 인상파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한다.  

Gustav Klimt (1862–1918), A Field of Poppies (1907),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클림트는 상징주의 Symbolism, 아르누보 Art Nouveau, 예술공예운동 Arts and Crafts Movement, 그리고 자포니즘 Japonisme 등 20세기 초의 다양한 사조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독특한 회화 세계를 확립함으로써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지나치게 높은 그의 작품 가격에 대해서는 다소 이의가 있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점에 대해서만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5. 01:30 미술 이야기

일전에 올렸던 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2018'을 밝힌 후에 한 작품씩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 그 첫번째 글을 올렸다. 제목하야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2018-무려17위와 20위

오늘은 그 두번째 시간.  오늘은 인플레를 적용했을 때, 2018년 현재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거래되었던 작품으로는 19위에 해당하는 작품  프랜시스 베이컨의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 (1969)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s (2013 Christie's auction)  현재 추정 가격 약 $149.6-millions 

이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42.4-millions (약1천613억원)이었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약 $149.6-millions (약1천695억) 상당하는 금액이다. 이 작품은 라스베가스의 호텔 체인을 소유한 스티브 윈 (Steve Wynn)의 전부인 (Elaine Wynn)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1909-1992)가 그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 (Lucian Freud: 1922-2011)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1974년 프로이트와 베이컨, Harry Diamond 사진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화가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바닥에 있는 인물들을 위한 세 습작> (1944)이 발표된 이후로 전후의 가장 인기있는 작가이자, 그가 세상을 뜨는 1992년까지 생존 화가 중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로 군림하였던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영국 수상이었던 마가렛 테처 여사가 한 모임에서 멀리 보이는 그가 프랜시스 베이컨이라고 귀띔해주자, “아, 그 흉칙한 그림 그리는 사람~ (That man who paints those dreadful pictures).” 이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 Oil and pastel on Sundeala board ; 94 × 74 cm (ea), Tate Britain, London 

위의 작품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을 슬퍼하는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괴물과도 같은 인물들의 침통해하는 모습은 전후의 참상과 맞물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프랜시스 베이컨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불우하게 자랐다는 점,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점, 그리고 도박과 술에 찌든 생활을 했다는 개인사와 함께, 강렬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주는 그의 작품, 그리고 연신 갱신하는 경매에서 높은 가격으로 팔린 작품들로 늘 화제의 중심에 있어 왔다. 

대중적으로 아주 사랑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작가들이 그의 작품에 받은 감명에 대해서 언급하였고, 특히 그의 작품에서 자신의 철학과의 교집합을 발견한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질 들뢰즈 (Gilles Deleuze)는 <<Francis Bacon: The Logic of Sensation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1981; 영어번역 2002)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프랜시스의 작품에는 삼면화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 다수 있는데, 원래 '삼면화'란 중세 이래, 종교화에서 많이 채택해 온 형식이다. 이를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표명해 왔던 베이컨이 자주 채택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이에 대해서는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안에서 수 차례 언급했고, 베이컨 자신도 여러 차례의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삼면화라는 양식은 서사적 narrative 이거나 삽화적 illustrative인 성격을 배제하면서도 '감각'을 구현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베이컨이 즐겨 이용한 양식이다.  좀 쉽게 풀어서 얘기하자면, 삼면화는 만화의 컷에서처럼 연속적인 행위를 단계별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델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기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들뢰즈의 책에는 그가 생각한 베이컨의 작품 세계가 자세히 서술되고 해석되어 있고, 상당 부분 수권에 걸쳐 출판된 베이컨의 인터뷰 내용과 중첩되는 바이다.  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들뢰즈의 책과 데이비드 실베스터와 베이컨과의 인터뷰 집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화가로서는 드물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굉장히 말을 많이 한 화가이다. 그의 전문 인터뷰어라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실베스터와의 인터뷰가 책으로 1960년대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David Sylvester, Interviews with Francis Bacon, 1963, 1966, 1971, 1973, 1979...1987, 1998, 2000, 2002]

그러면, 오늘의 주제가 되는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모델이 된 루시앙 프로이트는 건축가 에른스트 프로이트의 아들이자, 유명한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이며 20세기의 대표적 초상화가이다.  비록 베이컨과 프로이트는 띠동갑의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1940년대 중반 만난 이후 1960년대 말 무슨일에서인지 절연하기까지 둘은 절친으로 지냈는데, 이들의 우정은 예술계에서는 유명했다.  

추구하는 예술 세계는 달랐지만, 둘은 서로의 작품에 대한 존경을 종종 표현하였고, 그 밖에도 도박과 술에 깊이 빠져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어, 스튜디오에서 뿐 아니라 술집과 도판판에도 항상 붙어 다녔다고 전해진다.  둘다 논쟁을 좋아했기에 종종 뜨거운 논쟁을 벌이기도 하곤 했다고 전해지는데, 따라서 그들이 사이가 멀어진 1969년경 사람들은 그들이 사이가 멀어져서 놀랐다기 보다는 불같은 성격의 둘의 우정이 그때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에 더 놀랄 정도라고.  

1952년경의 베이컨과 프로이트 

프란시스 베이컨은 루시앙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자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표적 작품이 아래의 작품이다.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Portraits of Lucian Freud, 1964

베이컨의 경우 주로 사진을 통해 작업을 하였는데,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사후, 청소 한번 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그가 작업 중이던 사진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아래에는 그 예로 볼 수 있는 사진들과 작품화된 것들.

좌: 베이컨의 스튜디오에서 발견된 그가 작업중이던 사진들 중 루시앙 프로이트의 사진 (Daniel Earson 촬영), 1963; 우: 오늘의 작품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세부) (1969). Christie’s e-Catalogue에서 발췌, pp. 158-159

좌: 루시앙 프로이트를 찍은 사진 (세부) John Deakin 촬영, (c. 1964)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우: 오늘의 작품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세부) (1969). Christie’s e-Catalogue에서 발췌, pp. 150-151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화의 특징은 일견 왜곡되고 뒤틀리게 그렸다고 여겨지나, 묘하게 모델과의 유사점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주로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데, 베이컨 자신이 이에 대해서 자신은 사진을 가지고 주로 작업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의 사진으로는 작업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사진을 보면서 그리지만, 그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그와의 관계속에서 축적된 인물의 에너지를 화폭에 옮기는 방법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루시앙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는 단 두작품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작업하는 데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걸리는 화가이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그가 베이컨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꼬박 삼 개월 동안이나 포즈를 취했고, 그럼에도 그 작품이 완성되는 데에는 일년 반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는 구상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나 정작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베이컨의 제작 방식과는 차이가 난다. 1952년 완성된 프로이트가 그린 베이컨의 초상화 (아래)는 불행히도 베를린 전시회 이후 분실되어,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프로이트, 프랜시스 베이컨 (1952) - 현재 분실

또 다른 작품은 미완성 작인 프로이트의 베이컨 초상화 (아래)인데, 2008년 크리스티의 전후 현대미술 부문에서 고가로 판매되었던 작품이다. (Christie’s auction of Post-War and Contemporary Art for £5,417,250 / $9,404,346 / €6,972,001)[80억 9,201만 7,187.50 원 ; 106억 5,512만 4,018 원 ; 91억3,047만6244원으로 환산되므로, 대략 81억과 106억원 사이에 판매]

Lucian Freud (b. 1922), Portrait of Francis Bacon. Photo: Christie's Images Ltd. 2008

현대미술의 거장 두 사람이 절연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오늘의 주인공인 "루시앙 프로이트의 세 습작"이 완성된 1969년 경에 둘의 사이가 틀어져 다시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베이컨은 프로이트의 부유함과 거만함을 견딜 수 없다고 했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둘의 우정은 이전에 20여년간 유지되었기에 확실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두 작가 모두 서로의 후반기의 작품은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프로이트는 1980년대 제작된 베이컨의 작품을 '무시무시한' 것이라며 비판했다고.   

개인적으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은 혹 누군가가 내게 거실에 걸 그림으로 선물한다면 받기를 망설이겠지만 (물론 받아서 재판매하는 경우라면 응당 받겠지만서도...), 그의 전시회가 있다면 반드시 보러 가고 싶은 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축적된 에너지를 한 화면에 모두 담아내는 그의 회화적 특징은 그러기에 초상화의 경우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듯 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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