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19세기 미술' 태그의 글 목록
2019. 4. 23. 01:14 미술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 6. 00:46 미술 이야기

우연히 페북에서 발견한 그림....

Gabriel von Max, Drunken Monkey  

작자와 작품의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못하나 재미있어서 일단 올려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술먹으면 '강아지 (격조 있는 블로그이므로 좀 순화한 표현을 사용함)'라고 하지 않나?  서양에서는 다른 표현이 있는 것일까?  Gabriel Cornelius Ritter von Max (1840-1915)라는 체코 출신의 화가의 Drunken Monkey라는 제목의 그림.  구글링을 좀 해보니 원숭이를 잘그리는 화가였던듯 하다.  기법을 보아하니 정통적인 예술교육 받은 분 같고, 굳이 분류하자면, 일종의 '장르화'에 해당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르화 (genre-painting)'란 풍속화의 일종으로 귀족이나 교회가 주축이 된 대작과는 대조되는 소품 위주의 중산층의 오락을 위해 탄생한 회화장르인데,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에 의해 많이 소비되었다)  일례로 '튤립 매니아"에 대한 글에서도 풍자화로 귀족들을 원숭이로 묘사한 그림을 하나 소개했다. (그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교회나 궁전에 그려지거나 걸린 회화 작품은 신화나 종교적 주제를 다루고 있고, 대부분 교훈을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TV 프로그램으로 비유하자면, EBS나 BBC의 교양프로그램이라면, 장르화는 저녁시간 오락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장르화가 David Teniers (1610-1690)의 "술집의 원숭이들" 시리즈로 제작된 작품들 중 하나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에서 풍속화에서나 19세기 가브리엘 폰 막스의 작품 속에서의 원숭이 둘 다 풍자와 해학의 의도가 다분하다.  거기에 특히 19세기 중반 다윈의 '종의 기원'을 발표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다윈의 학설에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도 짐작해본다.  

좀 찾아보니, 가브리엘 폰 막스라는 이 작가는 자신의 아이처럼 원숭이를 안고 그린 자화상도 있는 것이 있던데, 그렇다면 그가 실제로 원숭이를 키웠던 듯도 하지 않을까?  그리는 대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자세히 관찰했음이 느껴지던데, 원숭이를 원체 좋아했었나보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는 인간에 대한 풍자는 오브 가 코스로 담겨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연말연시 '지나친 음주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라는 캠페인에 사용해도 손색없을 듯한.... 아니면, 이 사진 옆에 쌩쌩한 젊은이 사진하나 대비해서 넣고, '컨디*' 혹은 '헛개**'을 마신날과 마시지 않은 날.... 이렇게 비교하면서 숙취예방 내지 해소제 광고에 쓰여도 좋을 법한...  

세상에는 정말 모르는 화가들도 많고, 모르는 작가들도 많고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  그닥 유명화가는 아니었던 탓에, 표피적인 구글링으로는 자료를 많이 발견할 수 없다보니, 과연 그는 어떠한 화가였고,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작품은 당시 화단에서 어떤 평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시간이 나면 한번 찾아보고 싶어진다.   

Drunken Monkey라는 바가 현재 프라하에 있어서 검색하면 맨 먼저 뜨는 것을 보면, 성업중인듯 한데, 이것도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심지어, 한글로 '술취한 원숭이'를 검색해보니, 실제로 '술취한 원숭이'라는 이름의 홍탁주라는 생소한 술이 우리나라에 있다. 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먹거리 마실거리가 참 많고나...하는 생각도 함께 드는 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9. 07:00 미술 이야기

Edgar Degas (1834-1917) The Bellelli Family (1858-1867) oil on canvas ; 250 x 200 cm, © RMN-Grand Palais (Musée d'Orsay) / Gérard Blot 



개론서에는 편의상 인상주의에 포함시키고, 실제로 까칠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에드가 드가는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자신의 작품을 인상주의라고 하는 것에는 크게 거부감을 표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에드아르 마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집안의 자제였던 드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이탈리아와 미국 등지를 다니면서 집안을 일으키고자 노력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고모를 방문해서 그녀의 가족을 그린 초상화이다. 


화면에는 고모와 그의 남편 벨레리 남작과 그들의 두 딸들이 모여 일단 가족 초상화의 형식을 띈다.  벽에는 최근 작고한 그의 아버지이자 고모에게는오빠인 오귀스탕 드가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드가의 고모는 화면의 왼쪽에 두 딸과 함께 자리하고 서 있고, 남편인 남작은 화면의 오른쪽에 놓인 의자에 등을 돌린 채 앉아서 딸들과 아내가 있는 쪽을 바라다보고 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은 인상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설득력이 실릴만큼, 이 작품은 북유럽의 초상화와도 같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 가족 초상화에서는 지체 높은 귀족의 '화목한 가정'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일설에는 고모부가 처녀시절의 고모를 억지로 범해 결혼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화면 전반에는 고모의 고고함에 미치지 못하는 듯한 이탈리아인 고모부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남편과 아내는 화면의 좌우 가장자리로 멀리 떨어져 있고, 7세와 10세가 되는 조카들은 놀이용 앞치마라고 할 수 있는 pinafore를 착용하고 있지만,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상중이라 검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입을 꽉 다물고 있어 귀족적 풍모를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모부는 편안한 옷을 입고 가족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지만 그 사이에는 세로선이 강조된 문과 거울의 틀, 그리고 중간에 놓인 탁자로 이들의 사이는 단절되어 있다.  이 둘의 사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암시는 의자에 걸터앉은 조카가 한쪽 다리를 미처 다 뻗지 않고 접은 채 앉아있는 모습, 화면 하단의 오른쪽의 강아지가 잘려나가 화면에 다들어오지 않게 그려진 점 등에서 더 강조된다.  




사실주의자로 불리기 원했던 드가는 전통적 화법으로 그려진 작품을 통해 모델들의 심리를 꿰뚫는 예리한 초상화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그가 그린 수 많은 발레리나 그림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7. 08:00 미술 이야기

이번에는 한 남자가 안개로 자욱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다.  

저번의 작품이 '실내'의 '여인'이라면 이번에는 '거친 자연'속의 '남성'이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등을 보이며 서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이다.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c.1817),  oil on canvas ; 98 x 74 cm, Kunsthalle Hamburg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는 “뒷모습의 인물 (Rückenfigur, 혹은 figure from the back)"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인물을 많이 그렸다.  이 '뒷모습의 인물'들은 관람객이 그림 속의 인물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지극히 감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 그 뒷모습의 인물들과 함께 자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소위 알레고리 풍경화인데, 밤 하늘이나, 안개낀 아침, 헐벗은 나무나 고딕 풍의 폐허를 바라보는 사색적인 인물이 주를 이룬다. 그의 이러한 상징적인 그림은 보는 이로하여금 감상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고전주의적 화풍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거대한 대 자연 속의 미미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다름 아닌 신 앞에서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대한 자연으로 드러나는 신의 존재를 그린 그의 그림의 크기는 실제로 접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작은 크기이다.  (실제로 아주 작다기 보다는 그 이미지의 규모에 비해 작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를 필두로 대작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 더욱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고.)  

 

Caspar David Friedrich, Monk by the Sea (1808-1810)  oil on canvas ; 1.1 x 1.72 m, Alte Nationalgalerie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바닷가의 승려 (Monk by the Sea)'라는 작품은 아주 작은 작품은 아니지만, 소위 대작이라고 하는 큰 캔버스에 작품과 비교하면 그리 큰 크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을 마주하고 겸허한 태도로 신에 대한 명상을 하는 승려의 모습은 'size'가 아닌 'scale'면에서는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드물정도이다. 

 

Seashore by Moonlight (1835–36). 134 × 169 cm. Kunsthalle, Hamburg

 

1835년 처음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 그는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위의 작품은 그가 남긴 마지막 대작이라고 알려진 그림이다.  달빛을 받으며 항해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그의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그려져 그 의미가 남다르다.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한 시기를 풍미했던 화가는 이후 낭만주의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미술계에서 잊혀져 친구들의 온정에 기대어 생활하며 쓸쓸하게 인생을 마쳤다.  그의 명성은 표현주의자들이나 상징주의자들에게 그의 작품세계를 재평가 받으며 부활되는 듯 했으나, 나치가 좋아했던 작품으로 낙인 찍히면서 두번째의 몰락이라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이 재평가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나 되서야 되서 였다.  그야말로, 그의 작품 인생은 독일 낭만주의의 모토 처럼 '질풍 노도의 시대'와도 같은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는 격정적 감정보다는 고요한 명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 철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I have to stay alone in order to fully contemplate and feel nature. The painter should paint not only what he has in front of him, but also what he sees inside himself.” —Caspar David Friedrich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6. 03:44 미술 이야기

한 여인이 두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채, 고개만 내밀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Caspar David Friedrich, Woman by a Window (1822) oil on canvas ; 44 × 37 cm, Alte Nationalgalerie, Berlin


젊은 여인이 서있는 곳은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의 드레스덴에 있던 스튜디오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카홀리느 (Caroline), 화가의 아내이다. 그녀는 남편의 스튜디오 창 밖으로 보이는 엘브 강과 그 위를 지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린 푸른 빛의  포플러 나무들로 보아, 때는 바야흐로 북구의 긴 겨울을 나고 맞이하는 봄이다. 

강한 수직선으로 이뤄진 그녀를 둘러 싼 모든 환경과 배경과 그녀의 몸과 드레스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곡선의 대조는 그녀의 심리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먼저, 강한 수직이 주를 이루는 실내의 구조를 보라!  창틀에서 마루바닥에 이르기까지 실내에는 수직선이 위주를 이룬다.  특히, 그녀의 양쪽에 내려오고 있는 창 옆의 두 기둥은 그녀를 속박하고 있는 듯하고, 곧게 뻗은 배의 마스트, 저 멀리 보이는 곧게 뻗은 포플러 나무들, 모든 것이 수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둥글게 말아올린 머리, 그녀의 작고 둥근 어깨, 주름이 잔뜩 들어간 그녀의 드레스...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둘러싼 수직의 세계와는 상반된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그녀는 외부 세계를 동경하며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내비치고 있다.  

한편, 그녀의 모습과 실내의 모습, 그리고 어두운 실내와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외부의 풍경에서 이중적인 태도와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실내광이 따뜻하게 채워진 집 안에서 아늑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두손은 마주 모으고, 동그랗게 만 몸은 창 쪽으로 기울이고 고개는 길게 창 밖쪽으로 빼고 서있는 그녀의 뒷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안락한 집안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집 앞 수로 앞을 지나는 배가 이끌어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그녀의 호기심이 집안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이기게 될 때, 그녀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는 잠시 후, 한차례의 꿈을 꾼 듯 멋진 세계에의 상상을 접고 조용한 일상으로 복귀할지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4. 07:00 미술 이야기

Georges Seurat (1859-1891),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86)  oil on canvas ; 207.6 × 308 cm,  Art Institute of Chicago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의 대표작은 단연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인증샷  ^^  혹시 직접 작품을 본 적이 없는 분은 대략 사이즈를 가늠해보세요~

만약 쇠라가 오래 살았더라면 미술의 지평이 바뀌었으리라 평하는 천재적인 화가.  그는 당시 유행하던 색채 이론을 깊이 연구하여 역작인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는 그가 2년간의 연구와 다수의 습작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사물에 고유색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Michel-Eugène Chevreul 등의 연구로 여러가지 색채이론이 대두되었다. 시각의 인식와 대뇌의 인지 관계에 대한 차이에 대해 알게 되며, 색채 대비로 인한 착시, 보색 이론 등이 밝혀졌다.  보통 사람들은 이과적 성향과 문과적 성향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쇠라 같은 경우는 이과와 문과의 성향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던듯 하다.  당시의 과학서와 이론서를 섭렵하면서 그 이론을 <그랑자트>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최종적으로는 캔버스를 늘려 가장자리를 빙 돌아가면서 채색을 하였는데, 거기에도 보색이론을 적용하였다] 

Seurat, Child in White, 1884-85,  Conté crayon on paper.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그리고, 위의 작품은 종이 위에 콩테 크레용으로 그린 드로잉으로 <그랑자트>의 작품 속의 어린 소녀의 습작이다.  직접 보면, 과연 흑과 백 사이에 그토록 다양한 단계의 채도와 명도가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게 된다. 그 다채로운 흑과 백이 가슬가슬한 미샬레 종이의 표면의 질감과 조화를 이루는데, 자세히 보노라면 그 다양하고 심오한 세계에 빠져들 듯한 느낌이 든다.  

Georges Seurat,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의  세부.  중앙 부분에 위치한 어린 소녀  

이 소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작품 <그랑자트>의 캔버스에서의 대각선이 만나는 중심에 자리한 인물로 관람자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순수한 소녀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이쪽으로 바라보게 그림으로써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역할, 그림에서의 focalizer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르주 쇠라는 이과 문과를 섭렵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색상에 대한 감수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흑백에 대한 안목도 탁월했음이 분명하다.  과학이면 과학, 섬세한 감수성이면 감수성, 색상이면 색상, 흑백이면 흑백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 ; Seurat, L’écho (Echo), study for Bathers at Asnières (1883–84)  Conté crayon on Michallet paper ; 31.2 x 24 cm, Yale University Art Gallery 

수 많은 드로잉들 속에는 얼마전 다뤘던 <아니에르에서의 해수욕>에 등장한 등굽은 소년도 있고, 손나팔 부는 소년도 있다.  완성작에서 볼 수 없는 적막한 고요가 아련함과 함께 전해져 온다.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

그리고, 위의 여인을 보라!  눈,코,입 하나도 확인할 수 없으나, 저 여인은 분명 아름다울것만 같지 않은가!

그가 살던 19세기 말의 프랑스에도 달은 어김없이 뜨고 졌나보다.   짙은 어둠이 깔린 풍경과 휘영청 밝은 달을 쇠라는 오직 흑색의 농담 조절만으로 표현했다. 


추석입니다. 달보고 소원 많이 비시라고 마지막에 달 그림 올렸네요.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2. 06:33 미술 이야기

걸작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평소에 공개하지 않고 커튼으로 막아놓은 작품이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맺은 글, 다시 시작해본다. 


본격적으로 검색에 착수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실제로 그 안트워프의 성모대성당이 그러했다고 알게 되었다. 


김새는 일이다. 


물론, 회화와 커튼은 오랜 인연이 있다.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 Zeuxis 가 파라시우스Parrhasius 와의 경쟁 에피소드부터 존재한다. 그 얘기에 따르면, 둘이 그림을 하나씩 그려와서 서로 실력을 겨뤄보자며 한 자리에 모인다.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의 그림은 너무도 생생하고 진짜 같아서, 새들이 몰려와 그 포도를 쪼아먹으려다가 다 부딪혀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의기양양 제욱시스가 '자, 이제 당신 그림을 보여주시지...그 커튼을 거두어보란 말이다~~'라고 하자, 파라시우스가 씨익 웃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커튼이야말로 그가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제욱시스는 '인정!! You Win!!' 외치게 되는데...  쿨한 제욱시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그림은 새들의 눈을 속였지만, 파라시우스는 바로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누가누가 더 잘그리냐의 문제는 전문용어로 '눈속임 (trompe l'oeil)'의 기법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즉 누가 더 진짜같이 잘 그리냐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커튼을 그려넣은 화가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덴마크 출신의 코넬리스 노베터스 기스브레히트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 (ca. 1630-ca.1675)라는 어려운 발음의,  잘 안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그 예이다.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 Trompe l'oeil. Board Partition with Letter Rack and Music Book (1668), oil on canvas ;123.5 × 107 cm, Statens Museum for Kunst 


그리고 보다 유명한 화가로는 베르메르 (요새 표기로 하면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있는데,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작품 47점 중 7점에 커튼이 그려져 있다. 


Johannes Vermeer, Girl Reading a Letter by an Open Window (ca. 1659)

베르메르는 커튼을 자주 이용해서, 이 작품을 포함해 총 7점에 커튼이 등장한다고.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커튼을 자주 이용한다.  그의 경우, 눈에 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 현실과 진실 사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 화가로 유명하기에 왜 그가 커튼을 자주 쓰는지 이해가 된다. 


René Magritte, The Human Condition (1933)

oil on canvas ; 100 x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하지만, 이들은 모두 그림안의 커튼들 이야기이다. 


그런데, 찾아보면, 실제로 커튼을 치고 입장료 내지는 구경하는 값을 낸 사람에게만 그림을 보여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 최초의 자생적 화파로 알려진 허드슨 강 화파 (Hudson River School)의 대표자 격이라고 할수 있는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이다.


그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초기 이민자의 자손으로, 부유한 은세공사이자 시계제조자 집안의 자손으로 일찌감치부터 그림을 공부했던 인물이다. 그는 여러차례 미국 대륙은 물론 극지방을 탐험하여 그 곳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 유명해졌는데, 대표적 작품이 <안데스의 중심>, <빙하>, <나이아가라 폭포> 등이 있다.  


Frederic Edwin Church, Niagara (1857), oil on canvas ; 101.6 x 229.9 cm,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 The Heart of the Andes (1859)

oil on canvas ; 168 x 302.9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Frederic Edwin Church, The Icebergs (1861), oil on canvas ; 163.8 x 285.8 cm, Dallas Museum of Art


그 중에서도 <빙하 (The Icebergs)>는 그의 탁월한 역량을 과시하는 역작일 뿐 아니라, 그 전시 방법에 있어서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이 직접 1859년 한 달간의 탐험한 북극지방을 묘사한 작품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색상, 매끈하면서도 광택이 나는 화면, 만지면 차가울것만 같은 생생한 빙하의 표현은 보는 이의 맘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처치는 무려  100점이 넘는 사생 스케치를 바탕으로 탐험 경험자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읽으며 키운 그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뉴욕 스튜디오에서 위의 <빙하>라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던 1861년 뉴욕과 보스턴에서 전시되었고, 열광적인 호평을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전쟁때문에 구매자를 찾을 수 없었던 처치는 결단을 내려, 1863년 런던으로 건너가 <나이아가라>와 <안데스의 중심>과 함께 그곳에서 이 작품을 전시하였다.  이 때, 처치는 이 <빙하>만은 따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안에 별도로 전시를 하면서, 캔버스 앞에 커튼을 장치하였다. 그 작품을 보고자 하는 관람객은 25센트를 내야만 했고, 돈을 낸 관람객은 작품 해설이 적힌 팜플렛을 받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전시는 그럼에도 호황을 누렸고, 결국 그곳의 자산가가 그 작품을 구매하게 되고, 이후 시간이 흘러흘러 경매에 나온 작품을 익명의 구매자가 높은 가격에 낙찰. 이후 댈러스 미술관에 기증. (2010년에야 그 기증자가 Lamar Hunt, 어메리칸 풋볼 리그 AFL을 창시한 인물임이 밝혀졌다고)....  결국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의 마케팅 전략은 멋지게 성공한 셈이다.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해본 모습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없고 BBC 다큐멘터리도 없던 시절, 보통 사람들로서는 구경할 수 없던 진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를 했으니, 누구라도 작품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짐작컨대, 오늘날 아이맥스 영화나 4D 영화 이상의 경이로운 경험이었으리라.   



여기서부터는 나의 망상 ~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관계자 중 누군가가 처치의 <빙하>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성당의 재정난을 타파할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성당의 유명소장품 루벤스 작품에 커튼을 만들어 걸고 관람료를 받게 하자 제안하고 그 제안은 통과된다.  그리고 안트워프 여행 때, 성당의 입장료 제도를 목격한 "플란다스의 개"를 쓴 소설가 Marie Louise de la Ramée가 이 내용을 소설에 포함시킨다. 그녀도 '그건 쫌 너무한걸 ....'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 후 일본에서 그 책은 애니메이션화되어, 그 이래, 안트워프 성모 대성당에는 수많은 일본인과 한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이어지고, 심지어 그 성당 앞에는 일본 자동차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여 제작한 네로의 동상까지 만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7. 07:30 미술 이야기

흔히 미의 여신 비너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폴리트 플랑드랭은 청년의 누드로 지극히 고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바닷가에 올 누드로 저런 포즈로 앉아있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체가 표현해내는 곡선과 사색적인 포즈,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푸른색의 바다와 하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고요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Hippolyte Flandrin (1809-1864), Young Man by the Sea (1836) oil on canvas ; 98 x 124 cm, Musée du Louvre, Paris


이 젊은이의 동그랗게 말린 등의 곡선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비단 나뿐은 아니었고, 그렇게 동그란 등을 가진 인물이 저 젊은이가 최초도 아니다. 


Piero della Francesca, Resurrection (c.1460) the Palazzo della Residenza, Tuscany, Italy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부활>에서는 예수님이 다시 깨어나시는 역사적 순간을 놓치고 잠이 들어버린 안타까운 보초병들의 한명이 등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있다. 


Piero della Francesca, Resurrection (c.1460) the Palazzo della Residenza, Tuscany, Italy, 세부 


그리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보초병과 플랑드랭의 청년에게서 영감을 받은 화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19세기말의 신인상주의자 조르주 쇠라 (1859-1891)이다. 


Georges Seurat  (1859-1891), Bathers in Asnières (1884, retouched 1887)  oil on canvas ; 201 x 300 cm, National Gallery   



일요일 강변에 물놀이를 하러 나온 청년들을 그린 <아니에르에서의 목욕하는 사람들>에는 플랭드르의 누드를 연상시키는 굽은 등의 청년이 등장한다. 


Georges Seurat, Bathers in Asnières (1884, retouched 1887)  세부



그리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보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청년도 눈에 띈다. 굽은 등과 세운 무릎, 그리고 보초가 입은 외투의 주름을 연상시키는 주름진 바지에서 쇠라가 확실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포즈는 원경의 흰색 옷을 입은 남성에게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Georges Seurat, Bathers in Asnières (1884, retouched 1887)  세부


그리고, 아래의 작품은 아베 코야의 프린트 작품. 플랑드랭의 작품 이미지에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문신의 이미지를 덮어 씌운것.  플랑드랭의 작품이 서구의 미를 표현했다면, 거기에 우타가와 쿠니요시의 문신을 함께 표현하여 이를 통해 동양의 아름다움을 결합한 것이라고.... ('이레즈미'라고 하는 문신.  뜯어보면 아름답긴 한데, 저 청년은 우리나라 대중탕은 출입하기 힘들 것 같다) 


Abe Koya, Inkjet print combining Young Man Beside the Sea by Hippolyte Flandrin and Ding Desun and a Snake by Utagawa Kuniyoshi. From an edition of 10.  55.9 x 43.2 cm, reproduced by permission of the artist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한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움을 지닌 플랑드랭의 청년의 등, 그러나.... 그것은 건강에는 좋지 않다.  정녕 건강과 아름다움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어쨌든 척추가 바로 잡혀야 건강하다는 사실!  바른 자세로 생활합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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