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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6. 00:10 미술 이야기

이전에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좋아하는 영화를 꼽다보면 그 좋아함에도 여러가지 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휴일'처럼 매번 볼 때마다 왠지 아련하면서도 즐거워지는 영화가 있는 반면, '블레이드 러너'처럼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그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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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내가 하는 블로그 글 밑장 빼서 윗장 괴기 작업의 일환으로 오늘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글을 퍼 올리는 한편,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필름 느와르 (Film Noir) 장르와 에드워드 호퍼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좀 덧붙이고자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단연 <나이트 호크스 (Nighthawks)>(1942)라고 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서도 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 (1942)

 

니가 외로움의 맛을 알아?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 (1942)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 84.1 x 152.4 cm, Art Institute of Chicago '도시 군중 속의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에드워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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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긴 하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도 영감을 준 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최근의 작품으로는 <<셜리 (Shirley)>>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점을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한 독특한 작품으로 미국의 3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긴 시간을 배경으로 셜리라는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호퍼의 작품이 미장센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서 배우의 극적인 동작보다는 정지된 듯한 장면이 많아 연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다.  

영화 <<셜리>>의 공식 트레일러 Shirley: Visions of Reality (2013)

구스타프 도이치 (Gustav Deutsch)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감독 작품인 이 작품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영화 감독들에게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력을 이야기하면서 더 자주 언급된다.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의 호퍼의 인기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의 감독들에게도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젠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만 인기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호퍼의 작품이 영화 감독들에게 그토록 인기가 높은 것일까? 

Edward Hopper, Night Shadows (1921) Etching: Plate: 17.4 x 20.8 cm, Sheet: 33.5 x 36.6 cm, MET

그의 스케치나 소품의 에칭 작품 (윗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 제작시의 콘티라고 부르는 '스토리보드'와 무척 유사하다. 그의 작품을 그대로 영화의 콘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호퍼의 독특한 시각은 그대로 카메라의 각도로 적용시킬 수 있고, 그의 감성이 녹아든 화면은 영화 장면으로 그대로 옮기고 싶게 만든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1935년 영화 "39 Steps"의 한 장면.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그림자'라는 에칭 작품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호퍼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 활용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콘티 혹은 스토리보드의 예. Robert Wise 감독, Maurice Zuberano 제작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스토리보드와 함께 쥴리 앤드류스와 7명의 아이들이 넓은 정원을 가로누비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콘티' 혹은 '스토리보드'란 영화 제작시 일종의 가이드라인 혹은 설계도로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구획되는 세계 속에 어떤 식으로 글로 된 시나리오를 이미지화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두는  것이다. 일견 네모난 틀 안에 그려진 만화의 컷과도 같은 이러한 콘티를 통해 실제 영화 제작전에는 준비를, 실제 촬영시에는 배우의 동작과 동선, 카메라의 움직임과 위치를 지시하는 것이다.     

대공황에 이어 급격히 현대화의 과정을 지나온 미국의 모습을 잘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 호퍼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흑백의 대비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필름 느와르에 적합한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Edward Hopper (1882–1967),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33 1/8 × 60 in. (84.1 × 152.4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영화 Abraham Polonsky 감독의 1948년 영화 Force of Evil의 한 장면.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거리 장면과 유사하다.  동시대를 그린 동시대의 작품이니 풍경이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의 구도와 필름 느와르의 미장센과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호퍼의 작품을 관통하는 적막감과 고독감은 필름 느와르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고, 이는 동시대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세기말 적이고도 묵시록적 <<블레이드 러너>>의 분위기도 호퍼의 <<나이트호크스>>의 적막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야시장의 장면은 호퍼의 작품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97년 영화와 같은 제목의  PC 게임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은 각도까지 호퍼의 작품과 유사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한 장면
1997년 비디오 게임 Blade Runner의 한 장면으로 영화에서 데커드가 들렀던 야시장의 국수집을 묘사한것. 이는 다시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와 구도가 유사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특히 <나이트 호크스> (1942)와 필름 느와르의 관계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았다.  자, 그럼,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그만큼 유명한 회화 작품,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콜라보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 

Juan Cairos라는 작가의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패러디로 화면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등장인물로 구성했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알아봐도 더 이상 알아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화룡점정은 카페안의 '매 한마리' 진짜 나이트 호크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7. 00:30 영화 이야기

좋아하는 영화를 꼽다보면 그 좋아함에도 여러가지 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휴일'처럼 매번 볼 때마다 왠지 아련하면서도 즐거워지는 영화가 있는 반면, '블레이드 러너'처럼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그 묵직한 감동에 맘까지 무거워지면서 '명작'이라고 꼽기엔 주저함이 없지만, 여유로운 휴일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에는 포함시키지 않을 영화도 있다. 물론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술가의 제작 당시의 맘과는 별개로 내가 내 거실에다 걸어놓고 매일매일 보면서 가까이 두고 싶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전시회가 열린다면 반드시 가서 보고 싶긴 하지만, 내 거실에 걸라고 누가 줄까봐 겁나는 작품들도 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터

블레이드 러너는 원래 필립 K. 딕이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감독 리들리 스콧이 1982년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이다.   소설에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공감능력'인가 아닌가 하는게 주제였다고 하는데, 영화에서의 관건은 '기억' 내지 '추억'의 유무이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패러랠 월드 러브 스토리'와도 비슷하긴 하다. 내가 믿고 있는 기억과 추억이 실은 내 것이 아니라면,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는 대부분의 혼란과 의문은 해결되지만, 리들리 스콧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Philip K. Dick,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Doubleday, 1968) 필립 딕의 소설 <앤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의 초판 커버


리들리 스콧은 워낙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지만, 그가 <블레이드 러너>에 쏟은 애정도 남다른 듯 한게,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까 무려 7가지 버전이 있다.  '감독판' 혹은 '최종판'등이 상영된 버전과 함께 존재하는 영화는 적지 않지만, 이런저런 변주를 거쳐 7가지나 버전이 존재하는 영화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딱히 영화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그냥 영화보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가 예전에 몇 번 봤던 그 <블레이드 러너>가 몇 번째 버전인지, 아니면 그 몇 번 봤던 영화가 모두 동일한 버전의 것인지도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내 기억에는 유니콘을 본 기억이 확실히 있으니, 모르긴 몰라도 1992년 발표된 감독판이 아니었나 짐작만 할 뿐이다)

심지어 다시 생각해보니, 새삼스럽게도 그 '블레이드 러너'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도 불분명하고, 좀 조사를 해봤으나 그 의견도 분분한듯 한데 대체로 아래와 같다. 

1. 정의의 첫번째로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대부분, 이 영화로 근원이 돌아오면서, 수명이 다한 레플리칸트 (외형적 모습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감정선까지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인조인간)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는 정의이다. 

2. 1번과 연결되는 정의로 칼 (blade)을 잽싸게 놀려 (run) 처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 (-er)

3. 칼날 위를 달리는 듯한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사람

4. 하반신이 불구라서 의족을 단 사람 (요새 특수 제작되는 의족들의 모습이 날렵하기도 하고, 얼음 위를 달리는 스케이트 날을 연상한 데서 온 것인 듯한데, 칼날 같은 다리를 단 사람이라는 뜻인 듯하다) 


난 소설은 읽지 못했고, 그렇게 홈을 파듯 여러 버전 섭렵하면서 영화를 연구하며 보지는 못했지만, 처음 그 영화를 봤을때 묵직한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그 감동은 이면은 일종의 강렬한 공포감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 두번 더 봤던 것 같은데, 약간씩 느낌이 다르긴 했지만,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한동안은 그 공포감의 원인을 정리할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궁극적이고도 핵심적 척도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기 짝이 없는 '기억'내지 '추억'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영화에 대한 감상과 비평은 훨씬 다양하겠지만 말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와 레플리칸트, 타이렐과 레플리칸트와의 관계의 신학적 해석 등등) 

결국, 인간은 생물적으로나 물리적, 화학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척도로 다른 방식의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가장 피부에 닿는 정의는 지난 날의 경험의 축적과 그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 이뤄진 유기체라는 것이다.  극중에서 레플리칸트이었던 레이첼이 이식된 기억을 추억이라 믿으며 따라서 자신은 인간이라고 믿는 대목.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 나중에 보물 찾으러 다니시며 긴 채찍을 휘날리실 해리슨 포드가 분한 대커드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어우러진, 숲 속을 자유롭게 달리는 아름다운 유니콘의 꿈을 떠올리며 피폐한 현실에서 인간성을 회복하곤 했는데, 그것이 마지막의 종이접기로 만든 유니콘 하나로 그 인간이라는 확신이 흔들릴 때.  그건 공포영화에 가까운, 간담서늘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영화의 키워드인, '과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와 관계 있는 종이로 접은 유니콘.  


대커드를 관리감독하던 개프가 대커드의 가장 사적인 기억이자 추억인 유니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자, 결국 대커드도 그가 제거해왔던 레플리칸트, 즉 주입된 기억으로 인간이라 착각하며 사는 레플리칸트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논란의 불씨가 되는 중요한 장면이다.  

인간이 인간임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언제인가?  나라는 존재는 결국 무엇인가?  남자이냐 여자이냐, 성인이냐 아이이냐, 어떠한 직장을 갖고 어떠한 음식을 먹고, 어떠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어떠한 집에서 살다가 죽는가? 이런 모든 것이 '나'를 정의해 주는가? 그러한 공통 분모 내지는 보편적 변별 요소들을 다 제거해나가다 보면, 나는 결국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것들의 축적체이고, 그 기억과 추억은 그런 축적체의 나의 존재를 확신하게 해주는 증거들이 아닌가? 그러한 경험들로 사고와 가치관이 형성되고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며 살다가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닌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변에 의한 영향으로 형성된 유약한 존재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에서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할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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