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빨간 두건 Little Red Riding Hood
2019. 1. 12. 02:17 옛날 이야기

며칠 전 '아기 돼지 세 마리'에 대한 글을 올리다보니, 크고 못된 악당 늑대, Big Bad Wolf가 등장한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올랐다. '빨간 두건' 혹은 Little Red Riding Hood라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도 대부분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엄마가 만들어준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는 숲 속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찾아가게 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소녀의 엄마가 음식 바구니를 내밀며 편찮으시다는 할머니께 갖다 드리라는 퀘스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 이야기에서는 '커다란 악당 늑대 (Big Bad Wolf)'는 폐활량이 엄청났지만, 이번 늑대에는 일단 식욕이 엄청나고 그 엄청난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변장도 불사하는 것으로 등장.  숲 속에서 만난 소녀에게 들은 말 만으로 지름길을 이용해서 할머니 집에 먼저 도착해서 할머니를 '꿀꺽' 삼켜버리는 것으로 보아 길눈도 엄청 밝은 걸로. 

늑대가 소녀를 잡아 먹으려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할머니를 먼저 잡아 먹고 할머니로 변장하여 소녀를 속여 그녀마자 잡아먹는 것은 동일하나, 그 과정이나 결말에 있어서는 다양하게 변형된 버전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원래 구전되던 이야기이던 만큼 현재 남아있는 이야기에도 구전시 암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채용했을 리드미컬한 반복이 많이 남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할머니의 옷과 나이트 캡을 쓰고 침대에 누워서 빨간 두건 소녀를 맞이한 늑대를 향해 소녀가 할머니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은 반복적인 구문으로 진행되는데, 이는 구전동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를 보며, 할머니의 신체 부분이 왜 이렇게 크고 기냐며, 팔, 다리, 귀, 눈, 입에 대해 질문하는데, 이 모든 특징이 다 소녀를 잘 안기위해서, 빨리 뛰기 위해서, 소녀의 소리를 잘 듣고, 소녀의 모습을 잘 보기 위해서라고 설명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커다란 입은 그녀를 잘 잡아먹기 위해서라며 소녀도 '꿀꺽' 잡아먹는데, 이 둘의 대화가 리드미컬하게 반복되고 점층법을 사용해 긴장을 고조시킨 다음에 결국 소녀를 잡아먹어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을 냉정하게 보면, 아 빨간 두건 소녀는 눈이 엄청 나쁘구나....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버전에서는 할머니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는 이번에는식인을 빨간 두건 어린이에게도 종용하는 것으로도 나오는데, 이 과정이 모두 리드미컬한 구문으로 진행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방송, 아니 블로그 심의 규정상 아래쪽에 따로 마련하였다. 정 궁금하면 맨 아래쪽에서 읽어보시길.) 

이야기에 교훈을 주입하는 것은 사실 후대의 노력으로 '구전동화'란 원래 주방의 화로 주변에 모여 하인과 하녀들의 오락거리였기에, 딱히 교훈이 필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지루한 겨울 밤, 할 일을 막 끝내고 피로를 풀려고 하던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얘깃거리가 그들 사이에서는 더 인기가 있었으리라.  보다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는 매번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다보니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 갔을 것이다.  

이를 글로 처음 옮긴 이가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이고, 이후 우리들에게 '페로 동화'라고도 널리 알려진 “어미 거위” 이야기가 탄생한다.  1697년 출판 당시의 원제는 "과거와 도덕에 관한 이야기들"로 "어미 거위"는 부제였다. [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 Les Contes de ma Mère l'Oye] 그리고, 이야기에 교훈을 본격적으로 주입시킨 이도 페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의 주제는 '좋은 집안 출신의 아름답고 젊은 규수들은 친절하게 접근하는 낯선 '늑대'들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고. 그리고, 이전의 자극적이고 충격적 이야기를 좀 순화시키면서 손녀의 식인부분은 생략하였지만, 교훈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소녀가 변장한 늑대의 침대로 오르는 것에서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우연히 지나가던 사냥꾼이 늑대의 계책과 만행을 눈치채고, 잠든 늑대의 배를 갈라, 할머니와 소녀를 구하고, 자신은 늑대의 가죽을 얻는다는 윈윈 전법으로 변형된 이야기는 이후의 또 다른 유명 동화, '그림 동화'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이 그림 동화는 '그림이 있는 동화'라는 뜻이 아니라, 야콥 그림 (Jacob Grimm: 1785-1863)과 빌헬름 그림 (Wilhelm Grimm: 1786-1859) 형제의 합작으로 전래 동화를 집대성하여 만든 Children's and Household Tales, Grimm's Fairy Tales이다.  독자가 어린이들임을 염두에 둔 만큼 우리의 주인공들이 무참하게 늑대에게 먹혀버린 것으로 끝내기에는 못내 찝찝했었음에 분명하다. 



물론 구전 동화라면 다 그렇듯 여러가지 버전이 있어서 이 밖에도 다양한 변형이 존재하는데, 그 중 하나는 할머니와 소녀가 합작하여 복수하는 버전도 있다. 앞의 부분까지는 그림 동화와 동일하여 할머니와 소녀가 구조되었으나, 숲 속에 사는 늑대가 한 마리가 아니라는게 함정. 이번에는 할머니와 소녀는 오히려 늑대를 굴뚝으로 유인, 그 아래에는 펄펄 끓는 물이 가득 담긴 솥이 놓았다는 이야기.  늑대는 안을 들여다보려고 목을 쭈욱~ 빼고 내려다보다 몸의 균형을 잃어 굴뚝 밑으로 쑥 떨어져 물이 끓고 있는 솥에 풍덩 빠지고, 결과적으로 사냥꾼은 늑대의 가죽을, 소녀와 할머니에게는 늑대 스프를 한 솥 가득 갖게됨으로써 복수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초기 이야기에는 할머니께 갖다 드리고자 한 음식들도 변주가 다양하다. 처음엔 커스터드와 버터 한 덩어리였다가, 스프였다가, 빵과 와인이었다가....(그러나 뭣이 중헌디... 말을 옮기다보면 그 정도야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한, 초기의 이야기에는 아이의 옷차림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가, 그냥 두건으로만 나오거나, 옷의 색상도 빨강이 아닌 노랑색인 경우도 있고 말이다.  북구쪽의 유사한 이야기에서는 마법이 깃든 황금으로 만든 것이었다는 것  

이 유명한 이야기에 대해 여러가지 분석이 존재한다소녀가 입고 있는 것이 붉은 'riding hood'는 주로 말을 탈 때 여성들이 덧입는 옷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장옷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이러한 옷으로 주인공 소녀가 등장하는 것은 후대의 버전으로 이전에는 빨강색 두건이었지만, 앞서 언급했듯 노랑색으로도 존재한다는 것

대부분 붉은 색에서의 상징에 주목하여 소녀가 여인이 되는 가정에 겪는 '생리혈'의 상징으로 보고, 늑대가 소녀를 침대로 이끈다는 점에 주안하여 이것에서 성적인 상징을 읽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아이가 빨간 두건을 쓰고 등장한 이후, 그리고, 교훈이 첨가된 이야기일 경우에는 적용가능하지만, 두건의 색이 다르거나, 주인공 소녀가 붉은색의 의상을 착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 맹점이 있다.  

그보다는 이러한 이야기는 '낯선 자를 경계하라'는 교훈의 cautionary tale라는 데서 의미를 찾는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cautionary tale'이란, 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조심시키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보통 이러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어른이나 신성한 존재에게 '~만은 절대 하지마라'는 경고를 듣는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주인공은 꼭 그 하지말라는 행동을 하고, 그 때문에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빨간 두건' 소녀의 경우, 할머니와 소녀 자신의 목숨이 댓가였던 셈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구전동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인데, 예전의 사회가 서양이나 동양이나 대부분 농본사회로 소규모 이웃이 모여사는 고정된 사회였음을 반영한다. 따라서, '낯선 사람' 혹은 '이방인'은 경계의 대상이자, 그 작은 커뮤니티의 이질적인 존재로 그 사회에 흡수되기 어려웠음을 반영한다.      

오늘은 '아기 돼지 삼형제'와 마찬가지로 늑대가 악당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 '빨간 두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내일은 '빨간 두건'과 관련해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럼 내일 다시~



이하는 블로그 심의 규정상 다소 잔인한 버전의 "빨간 두건" 이야기. 노약자나 임산부, 맘 약한 사람들은 주의하시고,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건너뛰심이....

이태리 버전에는 늑대 대신 오거 (orge)가 나오는데, 할머니의 내장을 걸어두고, 찬장에 할머니의 이를 담아두고, 컵에 할머니의 피를 담고, 탁자의 접시 위에 할머니의 살을 발라 놔두고 차례로 마시고 먹으라고 시킨다. (오거란 슈렉과 같은 종류의 괴물. 우리 슈렉이야 좀 더러워서 그렇지 엄청 착하지만, 원래 그의 조상은 잔혹한 괴물이다.)  

에 들어선 빨간 두건 소녀가 말한다. "할머니, 배고파요."

오거가 대답한다. "부억 찬장에 가보렴. 거기 쌀이 좀 있단다."

빨간 두건이 찬장에서 이를 담아둔 접시를 꺼내곤 이야기 한다. 

"할머니, 이 쌀들이 무척 딱딱해요!"

"닥치고 먹기나 해! 그건 네 할미의 이니까!"

"뭐라고요?" 

"닥치고 먹기나 하라고!" 

이런식으로 전개되면서 "닥치고 먹기나 해! (Eat and keep quiet!)"가 반복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