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파랑색의 역사와 티파니의 청록색
2019. 7. 7. 17:23 미술 이야기

구글 어스에서 마우스를 잘못 놀려 바다 쪽으로 커서가 움직여서 확대 화면이 되기라도 하면 컴퓨터 스크린에 검푸른 색만 가득할 때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렇게 화면 전체가 검푸른 색이 될 때 왠지 모를 공포심이 느껴진다. 난 그렇게 느끼는 내가 좀 유별난가보다 라고만 느꼈는데, 우연히 나보다 더 예민하게 푸른 색에 공포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 같은 경우, 푸른 색 벽지의 벽만 봐도 공포가 느껴지고, 심지어는 푸른색 원피스 같은 옷도 무서워서 못입겠다고 했다.  언젠가 본 설문 조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 파랑색이었다는 걸 기억하는데, 그게 결국 개인차가 있다는 얘기다.  나의 경우 극단적 파랑색 공포증은 아니고, 심연을 연상시키는 검푸른 바다로 가득찬 화면에서 '죽음'과 '숨막힘'이 연상되어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이지,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푸른 색 계열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심연에 대한 연상은 정신분석학이나 종교적 측면에서 더 깊이 할 이야기도 많겠지만, 오늘은 일단 봐서 기분 좋은 파랑색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파랑색을 좋아한 예술가는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루이 브루조아 등 셀 수 없이 많지만,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파랑색은 뭐니뭐니해도 이브 클라인 (Yves Klein: 1938-1962)의 IKB (International Klein Blue)일 것이다. 서양미술에서의 전통적 푸른색 울트라마린을 연상시키지만, 라피스 라즐리라는 자연석에서 추출한 것이 아닌 합성 안료로 제작법을 특허받은 색상이다. 

이브 클라인 (1928-1962)가 자신의 IKB를 손바닥에 찍어서 들어보이고 있다. Yves Klein with his signature International Klein Blue. Photograph: . Charles Wilp/BPK Berlin

 

Yves Klein, IKB 191 (1962) monochromatic painting

단명한 이브 클라인이 보다 깊은 탐구를 미처 다 못한 그의 푸른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적어도 그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색상이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색상이었다. 그가 발명한 푸른색과 스펀지를 이용한 작품이 200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6,716,000에 거래된 것을 보면, 그의 파랑색의 인기는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Yves Klein, RE I (1958), Dry pigment and synthetic resin, natural sponges and pebbles on plywood ; 78 1/2 x 65 x 5 inch, Museum Ludwig, Cologne, Germany © The Estate of Yves Klein c/o ADAGP, Paris  $6,716,000 at Christie's New York in November 2000

일설에 따르면 여러가지 기본색들 중 가장 늦게 '발견'된 색이 파랑색이라고도 하고, 하늘을 파랑이라고 느끼는 것은 파랗다는 교육을 받고 나서라고 하는데, 적어도 고대에는 자연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색이 아니라는 얘기다. 파랑색을 알고 사용했던 가장 오래된 자취는 고대 이집트의 예술에서이다.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 파랑 (Egyptian blue)는 최초의 합성 안료로 그들이 만든 조각품이나 벽화등에 사용된 은은한 푸른 색이 그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조각품, 하마 (Hippopotamus)(c. 3800-1700 BC), Louvre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 그려진 연못이 있는 정원의 그림 속에 다양한 색조의 푸른색이 사용되어 있다.  Pond in a Garden from the Tomb of Nebamun, Thebes, Egypt. Late 18th Dynasty, around 1350 BC

중세 때부터는 푸른색의 최고봉, 울트라캡숑 비싸고 귀중했던 "울트라마린 (Ultramarine)"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라피스 라즐리 (Lapis Lazuli), 청금석이라고 하는 귀중한 준보석으로 만든 안료라 성모 마리아의 망토에만 사용될 수 있는 아주 값비싼 안료였다.  천하의 라파엘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 안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에 아주 쪼끔씩 아껴서 써야만 했고, 때로는 안료의 품귀현상으로 작품제작에도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고 한다.  '진주 귀걸이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메르도 이 안료 구입하는데 돈을 많이 써서 엄청난 빚을 지기도 했다는데....

Johannes Vermeer (1632-1675), Girl with a Pearl Earring (c.1665)

이토록 값비싼 푸른색 안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여러가지 대안안료가 개발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8세기 만들어진 '프러시안 블루 (Prussian Blue).' 프러시아의 염료제작자가 우연히 만들어낸 이 화학염료는 장-앙토안 바토와 같은 유럽의 화가들 뿐 아니라 일본까지 퍼져서, 우키요에 화가들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호크사이, 카나가와의 큰 파도 神奈川沖浪裏 (1829-33)  

그 밖에 파랑색은 '청사진 (blue print)'라는 단어에도 드러나듯이 사진에도 활용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피카소의 '청색 시대 (Blue Period)'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표적인 색상으로 자리잡아왔다.  2009년에는 새로운 파랑 안료 개발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색상인지 궁금해진다. 

색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맘에 들어하는 푸른색은 아래의 푸른색이 아닐까 한다.

Tiffany Blue Box®. © Tiffany & Co. Courtesy of the Tiffany & Co. Archives

 

Michael Moebius, Audrey Tiffany Blue 2, 2018Eternity Gallery

티파니가 언제부터 이 독특한 청록색을 독점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한다. 다만 만국박람회 출품 당시부터 이 청록색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푸른색과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초록색을 절묘히 섞은 '티파니 블루'.  물론 포장지 색에서보다 뚜껑 열었을 때 내용물에 더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의 티파니 전시장
1878년 티파니 포장 박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