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풍요로운 가을과 추석
2019. 9. 13. 05:21 미술 이야기

John Atkinson Grimshaw – November Moonlight (1883)

난 추석하면 무엇보다 보름달이 떠오른다.  어릴 때, 지방의 큰댁에 모였을 때 봤던 휘영청 밝은 달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물론 그 때의 풍요롭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사진으로 찍을 생각도 그림으로 남길 생각도 못했기에 지금은 낭만주의 풍의 (조금쯤 우울해보이는) 달 그림으로 대신하지만 말이다.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1943)

모르긴 몰라도, 미국 사람들 맘 속에 추석, 아니 추수감사절 (Thanksgiving)이라고 하면 노먼 락웰의 이미지가 떠오르리라.  그래서인지 추수감사절 시즌이면 수많은 매체에서 그의 작품을 패러디하곤 한다.

드라마 <모던패밀리>에서 락웰의 이미지를 패러디해서 Tableau vivant (살아있는 그림) 버전을 제작 
자고로 심슨즈가 패러디 하지 않은 작품은 명작이 아니다! 

맥락은 조금 벗어나지만, 그리스 신화에서 수확과 풍요를 관장하는 것은 데메테르 (혹은 로마 버전으로는 세레스)이다. [때로는 케레스라고 표기된 것도 봤는데, 아침마다 먹는 시리얼과 어원이 같다는 점에서 '세레스'라는 표기가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풍요로움을 기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일텐데, 이번에 신화 공부를 하면서 찾아볼 때, 데메테르 여신에 대한 회화나 조각의 이미지가 많이 없어서 의외라 생각했다. 오히려 미모탓에 지하의 신 하데스에 납치된 페르세포네의 이미지는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쁜 것은 중요하다)  

18세기 후반 도자기로 만든 세레스 여신상. 데메테르 혹은 세레스의 지물인 풍성한 이삭 다발을 쥐고 있는데, 때로는 풍요를 상징하는 과일이 담긴 뿔 (Cornucopia)을 함께 들고 등장하기도 한다. Porcelain model of Ceres with cereals by  Dominik Auliczek  of the  Nymphenburg Porcelain Manufactory , late 18th century

 

 

폼페이에서 발견된 세레스 여신을 묘사한 프레스코의 스케치, 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of Naples)  Pompeii in the Casa del Naviglio
2세대 라파엘전파에 속하는 프레드릭 레이튼의 작품 속에서도 데메테르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하데스의 꾐에 빠져 일년에 4개월은 지하로 되돌아와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어머니 데메테르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된 페르세포네.  Frederic Leighton, The Return of Persephone (1891) oil on canvas ; 203 x152 cm, Leeds Art Gallery 

페르세포네의 이미지로는 단연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회화에서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신화속의 여인들을 많이 그렸고, 그 중 프레드릭 레이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 데메테르는 어디까지나 페르세포네가 구출되는 장면에 등장하는 조연이다.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놓은 석류를 손에 쥐고 있는 페르세포네. 제목은 로마식으로 표기하여 '프로세르피네'라고 되어 있다. Dante Gabriel Rossetti, Proserpine (1874) oil on canvas ; 125.1 × 61 cm, Tate Britain, London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닥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심슨즈와 락웰은 중시했던,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더도덜도 말고 딱 요만큼만 하라던 풍요로운 추석이다.  즐거운 추석을 다들 보내시길 바라는 의미에서 짧은 포스팅 하나~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