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왓쳐 (Watcher) - 오랜만에 드라마 보기
2019. 9. 15. 14:47 일상 이야기

언젠가 블로그에서 밝혔듯이, 난 체질상 드라마를 잘 보지는 않는다.  중간 중간 CM 나올 때 그 사이를 못견디고 딴 짓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다시 방송을 시작할 때를 놓치기 일쑤고, 그러다 보면 그냥 흐지부지 시들해져서 못보게 되기를 반복하다보니.  그래서 혹 드라마를 본다고 해도 스트리밍으로 보게 되서, '본방사수'는 못해본 상황. 그리고 내가 약간 취향이 독특한 건지 로코는 현실성 떨어지고, 오글거려 못보겠고, 시청률이 4-50프로 된다는 드라마도 딱히 재밌어보이는 게 없었고, 무엇보다 장르의 특성상 긴 호흡으로 봐야하는게 좀 답답하게 느껴져서이다.     

한국 드라마 중에서 재밌게 본 걸로는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가 있고, 좀 황당하게 끝까지 본 드라마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그리고 BBC 원작이 있어서 궁금증에 본 '라이프 온 마스'가 있다. [그 중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 대해서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단연 '비밀의 숲'인데, 이번에 그와 유사한 드라마 하나를 발견해서 정주행했다. 이름하야 '왓쳐.

빈 말로도 '네이밍 센스'가 좋다고는 말 못하겠는데, 일반화된 외래어도 아닌 Watcher라는 영어 단어를 꼭 저렇게 낯선 한글로 바꿔 드라마 제목으로 했어야 했나 싶었다.  제목을 빼고는 뭐하나 나무랄데 없이 재밌게 본 드라마인데, 이번 추석 집안 일 하면서 다시 보았는데, 다시 봐도 재밌었다.  매회 끝날 때마다 그 담주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까 생각해보느라 머리 속이 바빴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전개를 아니까 그런 추리는 건너 뛰었지만, 새삼 이야기의 전개가 참 절묘하게 잘 되었다고 감탄하면서 보게되었다.  매 회 전개될 때마다 '나쁜 놈'은 누굴까 추리하면서 매번 그 추리가 엇나가다가 나중에 다시 그 처음의 '나쁜 놈'이 결국 '나쁜 놈'이 맞다는 결과에 이를 때까지 퐁당퐁당 지그재그 전개가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쁜 놈'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착한 놈'이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착한 놈'도 언제나 '나쁜 놈'이 될 수도 있다는 대전제가 유치하고 단락적인 권선징악이 아니라 맘에 들었다. 

스포일러(?) 경고~  혹 안본 분들 찾아 보시라~ 강추!  

다 지난 드라마이니 스포일러 한다고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경고 날리고 계속 얘기를 이어가자면, 워낙 시청자와의 밀당이 탄탄해서 미처 생각 못했는데, 다시 보다보니 결정적 '옥의 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억울한 누명을 썼던 김재명이 15년이나 감옥살이를 하면서 간직하고 있었다는 비밀금고가 결국 전체 드라마를 이끄는 견인차이자, 전체  문제를 푸는 핵심 열쇠가 되는 셈인데....  조그마한 usb 드라이버 하나도 발견했다는 사실을 불과 두명에게 더 알렸을 뿐인 상태에서도, 5분도 안되어 '나쁜 놈'이 나타나 뺏어가는 상황인데, 어떻게 핵심 인물이 그것도 감옥에서 15년간이나 매달 꼬박꼬박 돈을 내며 유지해온 비밀금고를 그 '나쁜 놈'들이 몰랐을 수 가 있었단 말인지. 다 이해한다 치고, 그건 차명계좌로 개설해서 그렇다 치고 이해하려 해도, 김재명 사후 한달만에 경찰인 그의 아들 주소지로 비밀계좌 유지비 미납건으로 독촉장이 날라오는데... 그럼 차명도 주소지 위조도 안한 상태란 말인데...    

백보 양보해서, '나쁜 놈'들도 실수를 해서, 이전에는 감옥에 있는 김재명만 지켜보느라 그의 계좌는 추적을 안해서 그렇다 쳐도, 불과 일이주 전에는 더 긴박하고 신속하게 대처했었는데 말이다.  즉 김재명 아들이 집안에서 usb 드라이브 발견한지 몇 분 안되서 그 집으로 '나쁜 놈'이 난입해서 난폭하게 그 usb를 뺏어갔는데.... 은행 비밀금고 유지비 미납 독촉장 건은 독촉장 받아 아들이 확인할 때까지 우편함에 놓여있어서 그 공백이 꽤 있는데도 그 '나쁜 놈'들이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  그게 무엇보다 '나쁜 놈'들이 혈안이 되어 찾아헤매던 핵심 열쇠인데 말이다.  드라마의 모든 원인이자 해결책. 

웃자고 만든 드라마, 또 죽자고 덤벼보았다. 그래도 한국와서 본 가장 재밌는 드라마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드라마 각본을 쓴다는 건 정말 힘드는 일이겠구나 다시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드라마에서는 하다못해 잠시 등장하는 마약 중독 재벌 3세역까지 연기를 못하는 배우가 없었다는 점도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는 큰 요소. 다들 경험한 것도 아닐텐데 참...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은 극작가, 연출가이고 연기자들이라 생각되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