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3 글 목록
2019. 3. 31. 14:14 일상 이야기

달력을 보니 블로그 시작한지 어느덧 7개월. 중간에 건강상의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애초에 시작할때 매일 글 한번 올려보자는 다짐이 퇴색되고, 매일 올리는 글의 퀄리티 문제도 있고 해서 매일 올리는 건 포기.  그래도 계속해서 글을 올리자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글을 올리니 장점이 많은 것 같다. '덧없는 세상 (우키요)'을 살면서 그냥 스쳐가는 생각들을 '붙잡아' 글을 써두는 것. 그리고 혼자서만 즐기던 미술 작품들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의 글을 이웃과 나누며 공감을 나눈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 같다.  사실 그 짧은 기간임에도 초창기에 내가 올린 글을 보면서 '아 그때, 내가 저런 생각을 했군!' 할 때도 있으니.  그리고 글을 씀으로써 머리 속에서 떠오르던 여러가지 어지럽던 생각이 정리도 되고,  글을 쓰는 과정에 아이디어가 솟기도 한다. (그리고, 부수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글의 소재거리를 찾게 됨으로써 관찰력이 증가한다고나 할까?)  어쨌든 글은 계속 올리려고 맘 먹고 있는 중.

But, 그러나... 아직 나의 티스토리 블로그의 편집실력은 서툴기 짝이 없다.  난 주로 PC로 글을 써서 올려서 핸드폰으로 볼때는 어떤지 확인을 잘 못했는데, 어쩌다 들어가서 보면, 이상하게 폰트도 PC에서 보는 거랑 다르게 크기고 행간이고 제멋대로다.  PC에서 작업할 때도 아주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하면서 글을 적다 보니, 전체 목록을 어떻게 해서 보는지, 그리고 보통 다른 블로그에는 있는 화면 상단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화살표 아이콘 이런 것도 내건 없고.... 여하튼 총체적 난국이다.  날 잡아서 탐구를 해봐야겠다. 

탐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날까지 처음 올렸던 글들을 다시 한번씩 올려볼까 생각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5. 00:30 일상 이야기

어제 뉴스에서 이마트와 디지털 사이니지 라는 기사를 읽었다. 

출처: 파이낸셜 뉴스 http://www.fnnews.com/news/201903240903129669 

'디지털 사이니지'라는 용어 자체는 좀 생소한데, 뉴스 본문을 인용하자면, ''디지털 사이니지'란 TV, LED 등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옥내외 광고로, 중앙관제센터에서 통신망을 통해 광고 내용을 제어할 수 있는 광고판을 말한다."라고 나와있다.  그러니까, 현재 시내 한복판 커다란 건물 위에 있는것 같은 전광판인건가. 확인할 겸, '디지털 사이니지'가 'digital signage'인건가 싶어 찾아보니, 그냥 '전자간판'을 의미한다. 즉, 대형 전자광고판을 외부에 설치해서 거기다 서구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여러 개 보여주는 것을 연말까지 하겠다는 것 같다.

시각적인 시대에 시각적인 프로젝트라는 면에서는 시의적절하다고 해야할까? 동네 축구가 잘되어야 궁극적으로 월드컵에 참가할 선수가 많아진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과연 이런 프로젝트가 예술의 저변확대에 도움이 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모나리자는 질리게 봐왔지만, 과연 그 때문에 모나리자를 사랑하게 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긴하다. 모르는 사람도 없었지만.  저화질의 화보나 패러디로 먼저 접한 모나리자는 자칫 알기도 전에 질리는 작품 중에 하나가 되기 쉽다. 물론 직접 루브르로 가도 유명세에 몸살을 겪는 모나리자는 그닥 적절하지 않은 예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와 감각을 얼마나 바꾸었는가를 생각하면 굉장히 놀랍다.  게티 센터의 프로젝트로 돈황 벽화가 가상 경험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을 시작으로, 폴 세잔의 카탈로그 레조네가 온라인으로 그것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이 뉴스는 굉장히 혁신 적이었는데, 이제는 왠만한 미술관은 360도 회전해서 볼 수 있는 가상경험이 다 가능하다.  구글 맵이나 네이버 맵에서 길찾기 하는 것 처럼 미술관 안을 휘휘 둘러 보며 다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직접 가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직접 돈황 벽화를 일일이 여행가서 탐방하는 수고는 덜 수 있고, 미술관의 가상 경험은 가기전 오리엔테이션으로, 그리고 갔다와서 추억을 되살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 2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블라맹크 전>>의 경우, 블라맹크의 눈이 내린 풍경화를 디지털화하여 마치 그 풍경 속을 차를 몰고 달리는 듯한 가상현실 공간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본 작품들을 직접 봤을 때, 지면으로 봤을 때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만, 직접 봤을 때 놀라운 감동을 느낀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러한 '버추얼 시각 경험'은 전반적으로 좀 조심스럽다.  물론 나부터도 보고 싶은 작품 있는 나라로 다 여행다닐 수 없는 터라, 해상도 높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진 21세기 현대의 시각적 문화를 만끽하는 사람중 하나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은 환영하지만, 자칫 어설픈 경험은 초심자들에게 애초에 좋아할 기회를 앗아갈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우려도 된다. 이왕 시작하는 프로젝트에서 퀄리티 높은 화면이 제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어떻게 진행될 지 앞으로 이마트 앞을 지날때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4. 13:32 영화 이야기

문학성은 차치하고 일본에는 유난히 다작의 소설가들이 많은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러하고 이사카 코타로가 그러하다. 이들의 작품들은 또한 영화나 드라마화 많이 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동안 일어를 좀 재밌게 배우려고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열심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나아가서 재밌게 본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은 그때 알게 된 것이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워낙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혹자는 그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작품들을 출판했다는 가설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 히가시노 게이고나 이사카 코타로도 그런 맥락으로 좀 의심을 했다. 좀 읽다보니, 묵직한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다소 가볍다는 느낌도 들고, 모르긴 몰라도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 되면 자료조사를 하거나 편집의 과정에서 돕는 조수나 제자들도 많으니 여러사람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는 건 아니겠다 싶긴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창작력이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와 그것을 작품화 시키는 실천력은 정말 대단하고 부러운 능력이자 재능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경우, 세상을 보는 눈이 참 특이한 작가인 것 같다.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고, 이들의 문단의 평가에 대해서도 난 알지 못하니, 이건 '내맘대로 작품보기-일본 문학과 영화'편 쯤 되겠다. 내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접한건 2006년 영화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 (陽気なギャングが地球を回す ; A Cheerful Gang Turns The Earth)>>이다. 동명의 소설도 있는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어떤 내용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독특한 내용이다. '코메디, 범죄'로 분류되는 영화인데, 그 속의 영화배우들도 다 좋고, 극의 전개도 빨라 재밌게 본 영화다.  


독특한 주제가 재밌어서 그 원작자의 작품으로 찾아본 그 다음 영화가 2007년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락커 (The Foreign Duck, the Native Duck and God in a Coin Locker ;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ー)였다. 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는 무슨 코메디 영화인가 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다소 무거운 사회문제에 대한 영화라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내맘대로 리뷰'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본 것이 2009년의 영화 <<중력 피에로 (重力ピエロ ; A Pierrot)>>인데, 이 역시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는 앞의 <<집오리~코인 락커>>와 유사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가족애가 주제로 녹아들어 있기에 감동은 배가 되는 그런 영화였다.

이 글을 위해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 출품해서 상도 많이 받고, 한국에서도 상연된 적이 있는 듯하니 전문적 영화평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실려 있을 것이라 믿고, 나만의 감상을 이어가보고자 한다. (찾아보니, 내가 읽거나 봤던 작품들은 거의다 번역이 되어있고, 영화 포스터에도 한국어 캡션이 달린 것 보니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이고 작품들임이 분명하다) 

워낙 인기 있었던 듯하고, 시간이 좀 지난 상영작이니 약간의 줄거리로 스포일러를 날려보자면, 포스터에 크게 얼굴이 찍힌 두분이 '이즈미'와 '하루'라는 형제로 이 영화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영화나 소설 모두 화자는 형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이 두 형제의 출생의 비밀, 정확히는 동생의 출생의 비밀과 '강간'이라는 범죄, 그리고 가족애가 이 영화의 주제이다. 강간의 결과로 임신을 했음에도 출산을 결심한 엄마, 그 엄마의 결단을 존중하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보둠어 사랑이 넘치는 가족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 강간범이 다시 출현함에 따라 형제가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그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어린 '하루'가 역시 아직 어린 형 '이즈미'에게 '형 '레이프 (rape)'가 뭐야?하고 묻는 장면이다. 아마도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면서 '넌 레이프로 낳은 아이야.'라는 얘기를 들었으리라. 그러자 어린 형은 한참 궁리하다가 갑자기, '레이프 레이프 환타 그레이프!'라고 외친다. 그 말을 반복하자, 어두워져 있던 동생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함께 '레이프 레이프 환타 그레이프!'를 외치며 침대위에서 팡팡 뛰면서 장난을 친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첫 장면과 영화에서의 첫 장면이 겹쳐서 인상적인 장면은 '하루가 이층에서 뛰어내렸다'는 문구는 실제로 동생 하루가 이층에서 공중부양하듯이 뛰어내린 장면과 벚꽃잎들이 흐드러지게 내려앉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아름답게 묘사된다. 봄을 의미하는 '하루'의 착지장면과 봄의 상징이 벚꽃잎들이 어우러지면서 말이다.  소설에서는 형으로서 동생이 태어날 때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던 형은 들떠서 좋아하기만 했는데, 그 동생이 2층에서 뛰어내린 것은 그 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뛰어내린 행위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방황하게 되는 동생의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원문: 弟が生まれた時、私ははしゃいでいた。覚えているわけがないが、そのはずだ。少なくとも、親の苦悩や、周囲の人間の冷ややかな目の理由に気づいてはいなかった。

その弟が二階から落ちてきたのは、それから十七年後、つまり、彼が高校生の時のことになる。]

히가시노 게이고나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나 인기작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소설의 묘사가 굉장히 시각적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아마도 이 점이 이들의 작품들이 연이어 드라마나 영화화되는 이유가 아닐까한다. 

봄을 맞아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아름다운 비상을 그린 이 영화를 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2. 23:52 일상 이야기

한때 '알쓸신잡'이라고 '알면 쓸데없는~' 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옥탑방 문제아들'이라는 프로그램도 그렇다. 옥탑방에 모인 연애인들이 '알면 쓸데없는' 질문 10개를 다 맞추어야만 귀가할 수 있다는 룰 아래 퀴즈 푸는 프로그램이다. 말만 들어선 그러려니 할텐데, 요새 이 프로가 재밌다. 솔직히 거기서 나오는 질문들이 다 그게 질문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사는데 지장도 없는 그런 질문들이다. 그런데 막상 질문으로 나오고 나면 그렇게 또 답이 궁금하다. 

미술에 대한 문제도 가끔 나오는데, 사실 진위여부는 확실하지가 않아 보이는 것도 있다. 최근 '옥탑방 문제아들'에 나온 문제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문제인 즉슨,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는데 무려 2년 6개월이 걸렸는데, 그 중 2년 3개월은 '이것'에 소비를 했고, 채색하는 데에는 3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해답은 레오나르도가 워낙 미식가라 탁자에 올려 둘 음식의 내용을 궁리하는데 2년 3개월을 보냈다는 것. 그 설명의 내용 중,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음식에 관심이 많았냐면, 그가 또다른 르네상스의 유명 화가 '보티첼리'가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레오나르도 (1452-1519)는 왠지 밀라노와 프랑스의 궁정을 오가며 비단옷 입고 귀족들하고 노닐었을 것 같고, 보티첼리 (1445-1510)는 메디치 궁에서 지내고 있었을 것 같았는데. 설마...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야사를 다룬 사이트에서 실제로 1470년경  레오나르도나 보티첼리나 아직 베로키오의 도제시절, 용돈이 궁해서 인근 여인숙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다한다. 그러다 의기투합해서 짧은 시간 "개구리 세마리 (Tre Rane)"라는 여인숙을 경영했다고 나왔다.  예전엔 레스토랑이라기 보다는 숙박업에 겸해서 음식을 파는 곳이 많았으니 '음식점을 운영했다'라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레오나르도가 정말  그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올릴 음식의 내용을 궁리하느라 2년 3개월을 보냈을까? 개인적으로는 좀 회의적이다. 

Leonardo da Vinci, Last Supper (1495-98) tempera on gesso, pitch and mastic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위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는 진수성찬은 그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에서도 '빵'을 예수 그리스도의 '살'이요, '포도주'를 그의 '피'로 여기라고만 나와있지, 예수와 그의 12 제자들이 상다리 휘어지게 만찬을 즐겼다는 얘기는 없다. 그렇다고 레오나르도가 2년 3개월을 고민하며 보냈다는 말이 그냥 마냥 뻥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 시간 동안 다른 수많은 프로젝트 (하늘 나는 날개 설계하랴, 무기 설계하랴, 흐르는 냇물이랑 동물들 관찰까지...그리고 짬짬히 시체해부까지, 그는 정말 하는 일이 많았다.)를 하면서 이 작품의 구도를 고안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는 워낙 레오나르도의 이 작품에 익숙해져서, 마치 원래부터 <최후의 만찬> 장면은 이랬을것만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 누구하나 실제로 이분들 모여 식사하는 것 본 사람없고, 성서에도 예수와 제자들의 식사 장면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지 않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화가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Andrea del Castagno, Last Supper (1447) tempera on plaster (Sant'Apollonia, Florence) 

일례로 위의 작품은 초기 르네상스의 작가가 그린 최후의 만찬 장면이다. 여기서는 귀중한 분들이 식사하는 장면에 적합하게 대리석에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멋진 실내에 그리스 스핑크스 조각까지 있는 식탁과 의자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소중한 분들의 모습이 행여 가릴까 겹치지 않게 일렬로 배열하고, 배반을 한 나쁜 유다는 한 테이블에 앉히긴 괘씸하니까 테이블 반대편에 앉히기로 했다. 

이에 반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에서는 실내와 가구를 최대한 단순화해서 인물들의 다이나믹한 심리상태에만 집중하였다.  예수님에 모든 관심이 다 쏠릴 수 있게 일점 원근법의 중심에 그를 배치시키고, 그의 자세를 통해 삼각형 형태를 이루며 안정된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식탁에는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와인잔 이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과연 이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하는 것은 아직까지 논란 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를 나눠 장면이라기 보다는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라는 말을 한 직후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놀라운 폭탄 선언 후, 스승에 대한 애정과 염려, 그리고 충격과 공포, 분노 등으로 동요하는 제자들의 모습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온한 그리스도의 모습과 대조되는 제자들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의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반응들도 제각각이다. 오른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전 아니죠?'하며 한 손으로 자신을 가르키고 있는 필립이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사도 요한이 눈을 감은 채 몸을 한쪽으로 기대고 있는데, 이는 도상적 표현이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이 요한이 요한이 아니라 막달렌 마리아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Leonardo da Vinci, Last Supper (1495-98) (세부) tempera on gesso, pitch and mastic Convent of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왼쪽의 두번째 그룹은 좀더 격렬한 감정과 심리상태가 드러난다. '대체 그 놈이 누굽니까? 아주 경을 쳐놓을테니 알려만 주십시요' 하는 듯한 베드로 (심지어 나중에 예수를 잡으러 온 군인의 귀를 자르는 행위를 암시하며 칼까지 들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뜨끔해서 밀고의 댓가로 받은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는 유다가 예수와 같은 접시를 집으려다 멈칫하고 있다. 또 나중에 예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며 확인하는 토마스는 그 중요한 행동을 할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정녕 그게 하늘의 뜻입니까요?' 하고 있기도 하다.  제자들이 제각각 표현해내는 감정의 동요는 파도같은 모습의 제자들의 움직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움직임은 식탁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식탁을 경계로 신성한 이들의 모임과 그것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이 구분지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도의 면에서나 개별 인물들의 심리묘사 또 그들의 군집을 통해 드러나는 형식적 조화와 상징의 표현 등을 신경 쓰며 배치를 하기엔 2년 3개월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 말고도 레오나르도는 항상 바빴다.)  식탁의 메뉴만 신경을 쓰면서 2년 3개월을 썼다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의 해답은 따라서 설득력이 부족하다. 

웃자고 만든 오락 프로그램의 퀴즈에 너무 죽자고 달려든 것인지 모르지만, 오해는 마시라. 난 지금 너무 재미있어 하면서 문제를 푼 것이다.  난 이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되거나 개편 때 소리소문 없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 계속 되었음 바라는 사람 중 하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2. 00:08 미술 이야기

지지난주였던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때, 창 밖이 온통 뿌옇게만 보이고, 평소 날 맑을 때 잘만 보이던 산과 한강, 그리고 근처 건물들까지 레오나르도 풍경화 속 스푸마토 효과 최고조일때, 창을 닫고 있어 그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SF나 공상미래 영화에서 미래는 항상 그렇게 그려졌다. 돈많은 부자들은 아예 다른 행성으로 이사가거나, 아니면 첨단 공기 정화 시스템, 인공 태양 빵빵하게 작동되는 인공 도시 속에 살고, 빈민들은 모두 공기 저렇게 뿌옇고 건물들 다 무너져가는 폐허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바깥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박탈감과 위기감이 극에 달하던 주가 지나고, 다시 푸른 하늘을 다시 봤을 때의 감격이란!  늘 있어 감사함을 잊고 지내는 것을 공기에 빗대는 말은 이제는 고어가 되었다.  정말 공기의 중요함이 뼈저린 시간. 안그래도 짧아지는 봄날이 더욱더 소중해지는 순간.  

오지호, <남향집> (1939) 캔버스에 유화, 80.5 x 6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봄날의 따스한 햇빛을 이보다 잘 표현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은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근대회화의 선구자 중 하나로 잘 알려진 오지호 화백의 <남향집>이라는 작품이다. 해방 전후로 개성에 살던 집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림 속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화가의 둘째따님이라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나 귀엽게 생겼음이 분명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버지의 애정이 담겨 있어서일까?  마당에서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과 함께 이를데 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양화계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동경미술학교의 유학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에 대해서 알게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빛과 어둠, 일광의 효과에 대한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토담과 초가 지붕 위로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는 검정 혹은 회색이 아닌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이다.  <남향집>에서는 그 푸른색이 지붕 너머 푸른 하늘과 맞닿으면서 청명한 공기와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인상주의의 대표작격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최근 이 작품이 그려진 제작년도를 1960년대로 주장하는 연구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그의 후기 작품은 필치가 좀더 빠르고 붓자국이 좀더 거칠다고 느꼈는데, 좀 의외였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둔 상태에서,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가 오지호가 인상주의의 색과 빛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깊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프랑스산 인상주의를 성공적으로 '한국화'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 중이므로  언제 기회가 된다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블로그가 전시 소개 블로그라고 하기엔 다소 뒷북 소개가 되어 면목이 없긴 한데, 현재 그 이 작품이 현재 전시되는지 아닌지는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해서 모르긴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소장품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을 열고 있다. 소장품 위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깜짝 놀랄만한 작품은 없을지 모르나,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전시일 것 같다.  시작은 작년 여름부터 했는데, 다행히 올해 5월 12일까지 전시를 한다고 하니 한번쯤 봄나들이 나간 김에 전시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장품 위주의 연대순으로 정리한 전시라서, 무난히 연대순으로,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전시되는 듯하니 참고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외국에서 새로운 미술 양식 유입  한국 미술 전환기 (1900~1920)

  • 개성적인 양식과 독창적인 예술정신 표출 (1930~1940년대)

  • 고난과 좌절의 극복, 예술로 그린 희망 (1950~1960년대)


봄날이 다가기 전에, 또다시 미세먼지들이 습격해와서,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흙먼지 같은 공기 속 폐허 같아지기 전에 찬란한 봄과 꽃과 새순들의 향연을 만끽하러 가봐야겠다. 그리고, 한국근대미술 복습도 해봐야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1. 00:30 일상 이야기

이 블로그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못하니 좋아하지 않는건지 좋아하지 않아 잘하게 되지 않는건지 알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작년부터 체력이 떨어지는 걸 자각하게 되었고, 목감기가 오래가서 너무 고생을 하고나서는 운동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동안은 운동을 등록하고도 그것만으로도 뿌듯해하며 실상은 운동에 한번도 안나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나가자 하고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달랑 두번 나가는데, 일주일 내내 온 몸이 아프다. 내 몸의 그런 곳에 근육이 있었나~ 할 정도로 땡기고 쑤시고...  근육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이왕 시작한 운동이니 좀 제대로 빠지지 말고 제대로 해봐야겠다. 

친구 중 하나가 '죽지 않으려고 운동 시작했어'라는 톡을 보냈을 때 하하호호 웃었는데, 사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계속 해야겠다. 운동 좋아하기로 알려진 김 모 종국 씨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정도가 되어봤음 좋겠다. 체력과 근력을 기르는 게 올해 목표!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0. 21:25 일상 이야기

몇 차례 작은 수확 (그래봤자 대여섯개씩 두세번)



지난 주일엔 놀러온 조카들에게 하나씩 하사. 

오늘 마트에 갔더니 봄이라 그런지 유난히 꽃 화분이 많았다. 예전부터 허브도 길러보고 싶은데 그곳에서 일하는 분한테 여쭤보니 꽃화분보다 허브를 키우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고 한다. 

유실수를 성공적으로 길러본 나로썬 직접 수확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기 힘든데... ㅎㅎ  봄엔 허브를 키워볼까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19. 20:31 미술 이야기

올해는 유난히 큰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 듯하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전시회이긴 하지만, 마르셀 뒤샹 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고, 다른 거물급 작가들의 전시들도 줄을 서고 있다. (뒤샹전 소개 글은 여기를 클릭!)

그리고 3월 두둥~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열린다. 


3월22일부터 8월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와의 협력하에 열린다고 하니 제대로 된 전시가 될 듯해서 기대가 된다.  

이 블로그에도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서는 여러차레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은 아래 링크를 클릭클릭~) 

데이비드 호크니-팔순의 아이패드

경매소식 - David Hockney -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실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영국 화가이면서 LA로 이주한 이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굳이 예술 사조의 범주로 구분해보자면 팝아트에 속한다고 할 수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폭넓고도 다양해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회화 작업만 해도 이전의 팩스가 등장하자마자 팩스로 작업하는 것은 물론, 팔순이 넘은 나이에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얼리 어댑터'로 다양한 기기와 기법을 활용한 작업을 해왔다. 예술 이론적인 면으로도 관심이 많아 서양미술의 원근법이 아닌 동양 산수화의 원근법에도 관심을 가져 자신의 풍경화를 동양의 원근법을 적용해서 제작하기도 했다. 

뿐 만 아니라 서양 대가들의 카메라 옵스큐라의 사용에 대한 저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도 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어 있다.  그 대표작으로는 Secret Knowledge: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와 A History of Pictures: From the Cave to the Computer Screen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이 전의 글에 쓴 적이 있으니 그 글을 참고 할 것)

광고를 보아하니,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시로는 처음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라고 하고, 그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을 망라한 전시라고 한다.     

내가 누누히 얘기하는 바이지만, 특별전은 특별전 만의 이점이 있다. 혼자서는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동시에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나란히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의 격동기를 거쳐 온 대가가 일생에 걸쳐 생산해 온 창작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임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짧고 찬란한 봄 날 나들이 삼아 전시회를 하나 본다면?  난 이걸로 정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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