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한대로 그 경매에서 낙찰 받은 익명의 유럽인 여성 콜렉터는 그 작품을 그대로 소장하기로 했고, 이 작품은 이제는 <Love is in the Bin> (2018)이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다. 이 제목을 달게 된 것은 경매가 끝난 후 일주일 경 지난 10월 11일 소더비 측이 뱅크시의 정식 인정기관인 "해충구제 (Pest Control)"에서 발부한 인증서가 첨부되어 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모를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그 기세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강렬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 뿐인건가?
이후 뱅크시 자신의 작품이 절반 정도만 분쇄된 것에 대해서는 '분쇄기의 오작동'이라며 '해명 (?)'을 했다고 한다. (건전지는 수명이 긴 에너자이저를 썼는데, 분쇄기는 좋은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나보다)
이 해명을 읽고, 잠시 내가 올린 위의 글에서 제기한 의혹을 뱅크시가구글 번역기를 돌려 읽었나 생각을 했.... 그럴리는 없고. 사실상 이 절반 쯤 분쇄된 작품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으리라.
이 작품은 이제는 <Love is in the Bin> (2018)이라는 제목을 달고, 지난 2월 5일부터 3월 3일까지 독일의 바덴바덴 소재의 프리다 버다 미술관 (Museum Frieder Burda, Baden-Baden)에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그 익명의 낙찰자가 독일계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관람객들에게 관람료를 받지 않고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그 미술관의 웹사이트에 소개글에 언급된 것같이, 과연 경매시장이라는 불에 기름을 때려 부으면서 그러한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남긴다.
사실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배경음악은 바로크 음악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이 영화와 패러럴을 이루는 것은 바로크일지도 모르나, 정서는 어디까지나 로코코라는게 개인적 감상이다. 프랑소아 부셰는 로코코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위의 작품은 그 중에서도 '로코코'의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제목은 <비너스의 화장대> 정도에 해당할텐데, 여인의 모습은 여신이라기보다는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의 정부같은 분위기다. 발그레한 볼을 가진 곱디고운 그림 속의 앳된 여성은 '신들은 누드로 그리자'라는 회화적 관례에 따라 비너스라고 억지로 주장하기엔 그녀가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현세적이기 때문이다. 쾌락적이고 방탕하고 경박한 것이 로코코 문화의 특징이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비판의 근거로 사용해도 될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 천사, 푸토들이 있어도, 품에 새하얀 비둘기를 품고 있어도, 이 여성은 궁전이나 저택의 한 방에서 꽃 단장을 하고 있는 현세의 여인이지 천상의 비너스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부셰의 이쁘지만 왠지 분위기 요상한 이 그림은 당시 귀족들의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의 일면을 보여줬던 <<위험한 관계>>라는 프랑스 소설, 그리고 그 프랑스 소설의 창조적인 한국화 버전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사정은 부셰의 또다른 작품 <목욕 후 휴식을 취하는 다이애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초승달 모양의 티아라를 머리에 장식하고 있고, 사냥 도구와 포획물들이 옆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보아 사냥을 즐기던 달의 여신, 다이애나의 지물은 충실히 지니고 있다. 설정상, 사냥을 마친 다이애나가 자신의 수행원의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다이애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처녀의 신으로 자신만 처녀로 남기를 고집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수행원들도 처녀로 남기를 명했고, 이를 어길시엔 엄벌을 내렸던 여신이다. 오죽하면 우연히, 정말 우연히 사냥하다 다이애나가 목욕하는 장면 한 번 쳐다봤다고 악테온을 쪽쪽 찢어 죽임을 당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부셰의 다이애나가 그렇게 결벽증 있는 여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너무 숨김이나 경계가 없어, 감상자들이 맘껏 그녀의 아름다운 누드를 감상할 수 있게 그려져있다. 위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앳되보이고 발그레한 볼이 어여쁜 이 아가씨 둘이 누드라는 것의 정당성은 결국 제목에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라는 (얇디얇은) 외투를 입은 암묵적이지만 명백한 관능성 또한 로코코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긴 하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도 영감을 준 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최근의 작품으로는 <<셜리 (Shirley)>>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점을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한 독특한 작품으로 미국의 3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긴 시간을 배경으로 셜리라는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호퍼의 작품이 미장센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서 배우의 극적인 동작보다는 정지된 듯한 장면이 많아 연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다.
구스타프 도이치 (Gustav Deutsch)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감독 작품인 이 작품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영화 감독들에게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력을 이야기하면서 더 자주 언급된다.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의 호퍼의 인기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의 감독들에게도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젠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만 인기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호퍼의 작품이 영화 감독들에게 그토록 인기가 높은 것일까?
그의 스케치나 소품의 에칭 작품 (윗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 제작시의 콘티라고 부르는 '스토리보드'와 무척 유사하다. 그의 작품을 그대로 영화의 콘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호퍼의 독특한 시각은 그대로 카메라의 각도로 적용시킬 수 있고, 그의 감성이 녹아든 화면은 영화 장면으로 그대로 옮기고 싶게 만든다.
대공황에 이어 급격히 현대화의 과정을 지나온 미국의 모습을 잘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 호퍼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흑백의 대비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필름 느와르에 적합한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세기말 적이고도 묵시록적 <<블레이드 러너>>의 분위기도 호퍼의 <<나이트호크스>>의 적막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야시장의 장면은 호퍼의 작품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97년 영화와 같은 제목의 PC 게임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은 각도까지 호퍼의 작품과 유사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특히 <나이트 호크스> (1942)와 필름 느와르의 관계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았다. 자, 그럼,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그만큼 유명한 회화 작품,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콜라보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