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7 글 목록
2019. 7. 15. 00:15 미술 이야기

이전에도 진주에 대해서 한번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어보려면 여기를 클릭!)

진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귀중한 보석으로 여겨졌다.  중국에서는 무려 기원전 2300년부터 왕실에서 선물로 주고 받았다고 알려져 있고, 고대 로마에서도 진주를 몸에 지니는 자체가 궁극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한다. 얼마나 귀중했으면, 기원전 1세기 줄리어스 시저는 지배계층만 진주를 착용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좋은건 지들만 하려구!) 고대 로마인들의 진주 사랑은 그만큼 각별했던듯 하다.  진주는 부와 지위의 상징이었고, 미의 여신인 비너스 상에 최상의 진주를 장식하기도 했다고. 진주의 가치를 각별히 여기다보니, 그 가치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진주를 걸치는 것 자체를 금하기로 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경우, 진주가 사랑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기에 결혼식에서 많이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진주는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신화에 따르면, 비너스는 바다의 포말이 일어난 곳에서 태어났고, 진주 역시 바다에서 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였을 것이다.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 이상 아름다운 진주와 어울리는 신이 또 어디 있겠는가?  보티첼리의 작품에서 커다란 조개 껍질을 타고 해안에 도달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도 이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4–86). Tempera on canvas ; 172.5 cm × 278.9 cm. Uffizi, Florence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진주 장식품으로는 루브르에 전시중인 '수사 목걸이'가 있다. 현재 이란에 해당하는 수사 지역에서 발굴된 진주 목걸이로 금과 함께 엮은 작품이다. 

루브르에 있는 Susa Necklace. 기원전 1-2세기. 각 줄에 72개의 진주가 금 장식과 함께 엮여 세줄로 된 목걸이. 페르시아만이 진주조개의 최대 산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곳에서 일찌감치부터 이러한 진주 장식품이 제작되었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서양미술사에서 진주 장식을 한 인물상은 많고도 많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페르메이르(이전에는 '베르메르'라 표기했었던)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일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하고 있는 귀걸이가 실은 '모조 진주'라고 밝혀지긴 했지만 말이다.  (자세한 정보를 위해서는 여기를 클릭!)

모조 진주이긴 하지만, 커다란 귀걸이와 그녀의 입술, 그리고 아련한 눈빛의 커다란 눈동자까지 삼위일체로 은은하고도 우아한 광택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Johannes Vermeer, Girl with a Pearl Earring (c. 1665) oil on canvas ; 44.5 cm × 39 cm, Mauritshuis, The Hague, Netherlands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 길게 진주이야기와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아래 작품 때문!  

루시 멕켄지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진주'와 소녀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해서 아름다움이 배가 된 작품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 맘대로 작품보기'라는 코너는 특징 상, 내가 잘 모르는 작가의 처음보는 작품에 대한 글을 올리고 있다. 이 작품도 우연히 발견한 작품으로, 작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고, 작품을 직접 본 적도 없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낸 바로는 작품의 크기가 무척이나 작다는 것이 특이한데,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에서도 항상 그녀의 눈동자에 맘을 빼앗겨 나도 모르게 한참씩 바라보곤 했었는데, 루시 멕켄지의 작품에서는 진주 목걸이의 아름다운 광택과 소녀의 눈동자를 번갈아가며 계속해서 바라보게 된다. 제목은 <Vermeer Eyes with Pearls>인데 굳이 해석하자면, '진주 장식을 한 페르메이어의 눈' 정도가 될까? 인상적인 작품이다.  

루시 멕켄지, <진주 장식을 한 페르메이어의 눈> Lucy Mackenzie, Vermeer Eyes with Pearls (2012) oil on board ; 6.4 × 7.6 cm, Nancy Hoffman Gallery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7. 13. 18:52 미술 이야기

'빨간색'하면 머릿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붉은 장미꽃, 혹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빨간색은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과 연관이 깊다. 그도 그럴것이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빨강과 파랑의 혼색이기 때문이다.  빨간색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상인데 (생각해보니 나는 싫어하는 색이 그닥 없는거 같네) 빨강과 자주가 절묘하게 혼합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Mark Rothko,  Untitled (Red and Burgundy Over Blue) , 1969, oil on paper mounted on board. 

'무제'라는 제목에 이어 괄호 안에 (파랑위에 빨강과 버건디)라는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들이 다 모여 있어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종이위에 그려진 유채라서 그런지 표면의 질감이랄까 마티에르감이 그의 다른 작품과는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몇 년전 경매에도 나왔던 이 작품 이외에도 로스코의 작품은 붉은 색이 많다.  작가의 생존시에도 엄밀히 비밀을 엄수했기에, 아직도 정확한 작법이 밝혀지지 않은 로스코의 작품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톤이 다양한 붉은 색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닌게 아니라 물 속에 잠겨 있는 색면이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 관람자라면, 작품 앞에서 통곡을 할 것이라 작가는 말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통곡'까지는 아니라도 왠지모를 울컥함을 느꼈다는 사람은 가끔 볼 수 있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해두는 바이다. 빨간색 색조가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초기의 작품에 많고, 이후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70년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파랑색이 더 강해지면서 밤하늘 같은 푸른색이나 머룬 색, 어두운 갈색을 거쳐서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지게 된다.  

Mark Rothko, ‘Untitled (Red on Red),’ 1969. Courtesy Sotheby’s 다양한 빨강의 변주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Mark Rothko, Red, Orange, Orange on Red (1962) oil On Canvas ; 233 x 204.5 cm, Saint Louis Art Museum  이 작품은 창을 통해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크 로스코도 빨강의 변주곡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미술사를 통틀어 빨강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뭐니뭐니 해도 앙리 마티스라고 할 것이다. 그의 1911년 작품 <붉은 스튜디오>는 야수파의 리더이자,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로 칭송받는 화가인 마티스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색상을 다루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자연의 재현'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던 회화에서는 사물에는 으레 정해진 '색'이 있었다. 하지만, 마티스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얼굴 한가운데 녹색 선을 과감하게 그어버림으로써 작품 별명을 녹색 선 (Green Stripe)라고 불리게 만든 이후, 화가들은 더이상 일대일 식의 정해진 색상의 규범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마티스의 공로는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초등학생이 나무나 산을 빨갛게 색칠하고 있는 것을 본 선생님은 어린 학생에게 조용히 빨간색 크레파스 대신 초록색 크레파스를 쥐어줄지도 모르고, 아니면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요새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볼 지도 모를 일이다.  

Henri Matisse, The Red Studio (1911)  빨강색 하나만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표현한 마티스는 단연 '색채를 해방시킨 작가'로 불릴만 하다.  

[인터넷 상의 해상도와 색조가 제각각이라 마티스의 진짜 빨간색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MoMA의 이미지를 참고해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 붉은 색이라면, 예전 댈러스의 유명한 콜렉터 라초프스키 (Rachofsky)의 개인 미술관인 라초프스키 하우스(The Rachofsky House)에서 본 마크 퀸 (Marc Quinn)의  <자신 (Self)>이라는 작품이다. 방 한켠에 투명한 플랙시 글래스 안에 들어가 있는 냉동 두상은 작가 마크 퀸이 자신의 얼굴 모양의 본을 뜬 뒤에, 조금씩 수혈한 자신의 피 5.6리터를 모아 액상 실리콘을 혼합해서 얼려 만든 작품이다. 냉동장치에 연결되어 얼어있는 상태로 보존된 이 작품은 둘러쌓인 공간의 흰색 벽과 대조되어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그곳을 안내해주던 그곳의 큐레이터가 전해주는 에피소드 때문에 더더욱 내 머리 속에 각인되는 결과가 되었다.  말인 즉슨, 그 뜨거운 텍사스의 기후 속에서 냉동장치가 고장이 난 적이 있어서 한번은 그 작품이 폭발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피가 흰벽의 방 사방에 튀어서 그것을 청소하는 데도 힘들었고, 이후 작가가 다시 수혈을 거쳐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왜 그런 작품을 만드는지, 또 왜 그런 작품을 수집하는지 이해불능이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본을 떠서 그 속에 한 사람의 몸 속에 존재한다는 피의 양을 사용해서 만드는 두상은 현대판 '바니타스 정물화'인지도 모른다. 

Marc Quinn, Self (1991) 작가 마크 퀸은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본을 뜬 캐스트에 자신의 피 5.6리터를 수차례의 수혈을 통해 모은 뒤 이 속에 채워서 얼려서 '자신 (Self)'라는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보통 인체에 존재하는 피의 양 5.6 리터라고 하는데서 착안한 5.6리터이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생과 사를 함께 언급하는 작품이라고.  피는 시간이 지나면 굳기에 액상 실리콘 등의 화학약품을 혼합해서 만들고 이 조각은 플랙시 글래스 안에 보관되고 냉동장치가 연결되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유명한 콜렉터인 라초프스키가 댈러스에 지은 일종의 서머하우스이자 개인 미술관. 

동굴 속에서 살던 석기인들은 돌에서 추출한 황토색인 '오커(ochre)'를 사용했고, 이후 진사 혹은 주사라고 부르는 시나바 (cinnabar)라는 광물에서 붉은 색을 추출하였다. 이 시나바를 분쇄한 것을 버밀리언 (Vermilion)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이 밖에도 금과 은 다음으로 비쌌다는 카마인 (Carmine)은 특이하게도 콩처럼 생긴 벌레,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 혹은 코치닐 (Cochineal bug)을 분쇄하여 제조했다고. 마티스가 주로 사용한 붉은 색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색상으로 카드민 레드 (Cadmine Red)로 전통적인 버밀리언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색이다.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한 로스코의 경우 리솔 (Lithol)이라는 안료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 안료의 경우 결정적으로 빛에 약한게 문제. 로스코 채플에서 천정에 난 창을 통해 자연스런 자연광이 작품에 비추도록 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가림막을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색의 역사를 훑다보면 오늘날 만큼 생활 속에 다양한 색이 풍요롭게 존재하는 시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쪼꼬마한 벌레들을 직접 잡아 으깨서 빨간색을 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붉은 색의 옷이나 구두를 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7. 11. 02:03 일상 이야기

글을 기한안에 써본 사람은 크게 공감하겠지만, 꼭 원고가 아니래도 숙제가 밀려있는 학생이라던가, 회사에서 맡은 일의 데드라인이 닥친 회사원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누가 보내줘서 알게 된건데... 재밌지만, 내가 이걸 남에게 보낼 일은 없을거 같아 구매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여기다 올리면 저작권에 위배가 되려나?  아님 특정 이모티콘으로 지적을 받으려나?

혼자 보긴 아까워서 일단 한번 올려본다. 

'혹시 게임하고 계신가요? 키보드 소리가 찰지네요~' 난 게임은 안하지만 이 대목이 젤 웃기다.   '이것저것 고민만 하고 계시진 않나요? 멍만 때리고 계신건 아니죠?' 사실 이 대목은 찔려서 그렇게 웃을수만은 없는게 함정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7. 10. 01:20 미술 이야기

며칠전 파랑색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오늘은 파랑색 그림을 발견~!

Anne Packard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는데, 우연히 페북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고, 그 분의 웹사이트를 보고 미국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밖에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은 갖고 있지 않다. 하긴 그게 '내 맘대로 작품보기'의 뽀인트! 

작가 이름으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작품들이 대체로 낭만주의적 정서가 풍기는 풍경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 나는 아래의 그림 <푸른색 위의 노젓는 배>가 가장 마음에 든다.  작가는 파랑색에 꽤 친숙한 것이 분명하다. 한 화면에 얼마나 다양한 톤의 푸른색이 사용되었는지를 보라!  그리고 같은 톤의 푸른색인데도 그 와중에 깊이감과 원근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왠지 저 노젓는 사람이 어느새 영원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 

Anne Packard, Row Boat on Blue
Henri Matisse, The REd Studio (1911)

앤 패커드의 작품은 한편으로는 마티스의 <붉은 스튜디오>(1911)을 연상시킨다. 솔직히 위의 이미지가 마티스의 색조를 잘 재현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이트에는 좀더 빛바랜 붉은 색인데.... 위의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들 중 가장 맘에 드는 빨강색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가져왔다.  직접 MoMA의 사이트의 색조를 확인해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아무래도 다음번 글은 빨강색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7. 8. 19:54 미술 이야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제 파랑색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자유연상 작용으로 오늘 보라색에 대해서도 쓰게 되었다.  어제 파랑색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라고 밝힌 바가 있고, 나도 파랑색을 좋아한다고 썼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밝고 청아한 보라색보다는 좀더 붉은기와 검은톤이 도는 버건디나 머룬 같은 자주색을 가장 좋아하지만 말이다.  무엇인가 색을 골라야하고, 버건디나 머룬이 없으면 바이올렛 색이라도 고른다.  보라색은 다 좋다.  색상 때문은 아니지만 심지어 '마룬 5'라는 그룹도 좋아한다.  (옛날엔 노래방에서 가수 강수지 씨의 '보랏빛 향기'를 즐겨부르기도...하하하 전혀 안어울리는 분위기이긴 하다.)   예전에 내가 '보라색' 좋아한다고 하면, 으레 '보라색 좋아하는 사람은 천재 아님 정신이상자'라던데...라며 내가 어느쪽에 속하는지를 파악하려고 실눈을 뜨면서 나의 정신상태를 가늠해보려는 사람들이 좀 많았는데.  난 천재도 아니지만, 딱히 현재 한국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정신이상자'인거 같지는 않으니 그런 설은 맞지 않는걸로.  하지만, 보라색과 함께 연상되는 것은 상반되는 것이 많긴 하다. 

유럽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보라색' 혹은 '자주색'에 해당하는 purple은 왕실이나 신성성 등 귀중한 것, 희소성이 있는 것으로 연상된다. 때로는 마법이나 미스테리와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보라색이 분홍분홍 분홍색과 함께 등장하면 우~ 에로티시즘, 여성성, 그리고 유혹적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보라색,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자주색의 보편적 이미지가 왕실을 연상시키는 데에는 서양에서는 역사적 유래가 깊다. 비잔틴과 신성로마제국을 통틀어 통치자들이 입는 의상의 색상이자 로마 카톨릭의 교주들의 의상의 색상이기도 했다. 유사하게 일본에서도 자주색은 왕과 귀족들을 연상시키는 색상이기도 하다. 

Ravenna의 San Vitale 성당의 모자이크 세부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겉옷이 원래는 자주색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1세와 그의 시종들 모자이크,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Justinian I in the Basilica of San Vitale, Ravenna. consecrated 547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부인인 황녀 테오도라와 시종들의 모자이크,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Mosaic of Empress Theodora and attendants in Basilica of San Vitale in Ravenna Italy.

왜 그러면 보라색은 왕실 전용의 색상이 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염료의 색상을 만들기가 어렵고 따라서 가격이 무지무지 비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왕족이 아니면서 자주색 옷을 함부로 입었다가는 대역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고도 하니 요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싶다.

영국을 너무 사랑하여 영국과 결혼하느라 처녀 여왕으로 지냈다고 칭송받는 대영제국을 이끈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실은 '나보다 예쁜 애들 다 꺼져!'라는 정책을 펴신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신만 화려한 옷을 입고, 다른 여인들은 모두 수수한 색상의 옷만을 입게 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도 보라색을 함부로 입었다간 아주 큰 벌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Queen Elizabeth in Tyrian Purple (mollusk)

 

1998년의 영국 영화 <엘리자베스 1세>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분한 케이트 블랑쳇.  짙은 보라색의 복장을 차려 입은 배우의 모습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보라색이 너무 잘어울리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왕족이라서 그런건가?

알고보면 이 보라색은 뿔조개에서 채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개 하나에서 정말 개미 눈물만큼 밖에 얻을 수 없었고 채취방법도 까다롭기에 엄청난 노동량이 필요했다고. 그러니 염료의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었다고. 요새도 해안가에 이 조개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도 있다하니, 이 조개로서는 체액의 색상이 인간들 눈에 이뻐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대량학살을 당해왔던 셈이다.  

Bolinus brandaris 라는 어려운 이름의 이 뿔소라는 자주색 염료를 채취하는데 주로 사용했던 관계로 purple dye murex 혹은 the spiny dye-murex라고 불린다. 
뿔소라를 각각 다른 각도에서 찍은 모습

이에 비해 멕시코 인들도 이 뿔소라의 염료를 이용해서 자주색을 채취했지만, 죽이는 대신 뿔소라를 염색하고 싶은 천 위에다 놓고 소라들에게 바람을 쐬는 방식을 택했다 한다. 그렇게 바람을 불어넣어 주면 이 소라들이 스스로 체액을 짜내고, 그 체액이 점차 천에 스며들며 자연스레 염색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염색이 완전히 끝나면 멕시코인들은 이 소라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주고, 산란기에는 이러한 행위조차 금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 뿔소라가 멸종하는 일은 면했다고 하는데, 고대 멕시코인들은 참으로 지혜롭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태양신을 믿어서 인간제물의 피를 태양에게 바치느라 살아있는 인간의 심장을 꺼내서 제사 지낸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p.s. 자연에서 보라색을 추출하는 방법은 그밖에서 식물들에서 얻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슈퍼푸드들 -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의 각종 딸기들과 나무 껍질이나 체리나무의 뿌리등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연 속의 색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7. 7. 17:23 미술 이야기

구글 어스에서 마우스를 잘못 놀려 바다 쪽으로 커서가 움직여서 확대 화면이 되기라도 하면 컴퓨터 스크린에 검푸른 색만 가득할 때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렇게 화면 전체가 검푸른 색이 될 때 왠지 모를 공포심이 느껴진다. 난 그렇게 느끼는 내가 좀 유별난가보다 라고만 느꼈는데, 우연히 나보다 더 예민하게 푸른 색에 공포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 같은 경우, 푸른 색 벽지의 벽만 봐도 공포가 느껴지고, 심지어는 푸른색 원피스 같은 옷도 무서워서 못입겠다고 했다.  언젠가 본 설문 조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 파랑색이었다는 걸 기억하는데, 그게 결국 개인차가 있다는 얘기다.  나의 경우 극단적 파랑색 공포증은 아니고, 심연을 연상시키는 검푸른 바다로 가득찬 화면에서 '죽음'과 '숨막힘'이 연상되어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이지,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푸른 색 계열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심연에 대한 연상은 정신분석학이나 종교적 측면에서 더 깊이 할 이야기도 많겠지만, 오늘은 일단 봐서 기분 좋은 파랑색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파랑색을 좋아한 예술가는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루이 브루조아 등 셀 수 없이 많지만,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파랑색은 뭐니뭐니해도 이브 클라인 (Yves Klein: 1938-1962)의 IKB (International Klein Blue)일 것이다. 서양미술에서의 전통적 푸른색 울트라마린을 연상시키지만, 라피스 라즐리라는 자연석에서 추출한 것이 아닌 합성 안료로 제작법을 특허받은 색상이다. 

이브 클라인 (1928-1962)가 자신의 IKB를 손바닥에 찍어서 들어보이고 있다. Yves Klein with his signature International Klein Blue. Photograph: . Charles Wilp/BPK Berlin

 

Yves Klein, IKB 191 (1962) monochromatic painting

단명한 이브 클라인이 보다 깊은 탐구를 미처 다 못한 그의 푸른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적어도 그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색상이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색상이었다. 그가 발명한 푸른색과 스펀지를 이용한 작품이 200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6,716,000에 거래된 것을 보면, 그의 파랑색의 인기는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Yves Klein, RE I (1958), Dry pigment and synthetic resin, natural sponges and pebbles on plywood ; 78 1/2 x 65 x 5 inch, Museum Ludwig, Cologne, Germany © The Estate of Yves Klein c/o ADAGP, Paris  $6,716,000 at Christie's New York in November 2000

일설에 따르면 여러가지 기본색들 중 가장 늦게 '발견'된 색이 파랑색이라고도 하고, 하늘을 파랑이라고 느끼는 것은 파랗다는 교육을 받고 나서라고 하는데, 적어도 고대에는 자연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색이 아니라는 얘기다. 파랑색을 알고 사용했던 가장 오래된 자취는 고대 이집트의 예술에서이다.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 파랑 (Egyptian blue)는 최초의 합성 안료로 그들이 만든 조각품이나 벽화등에 사용된 은은한 푸른 색이 그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조각품, 하마 (Hippopotamus)(c. 3800-1700 BC), Louvre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 그려진 연못이 있는 정원의 그림 속에 다양한 색조의 푸른색이 사용되어 있다.  Pond in a Garden from the Tomb of Nebamun, Thebes, Egypt. Late 18th Dynasty, around 1350 BC

중세 때부터는 푸른색의 최고봉, 울트라캡숑 비싸고 귀중했던 "울트라마린 (Ultramarine)"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라피스 라즐리 (Lapis Lazuli), 청금석이라고 하는 귀중한 준보석으로 만든 안료라 성모 마리아의 망토에만 사용될 수 있는 아주 값비싼 안료였다.  천하의 라파엘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 안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에 아주 쪼끔씩 아껴서 써야만 했고, 때로는 안료의 품귀현상으로 작품제작에도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고 한다.  '진주 귀걸이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메르도 이 안료 구입하는데 돈을 많이 써서 엄청난 빚을 지기도 했다는데....

Johannes Vermeer (1632-1675), Girl with a Pearl Earring (c.1665)

이토록 값비싼 푸른색 안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여러가지 대안안료가 개발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8세기 만들어진 '프러시안 블루 (Prussian Blue).' 프러시아의 염료제작자가 우연히 만들어낸 이 화학염료는 장-앙토안 바토와 같은 유럽의 화가들 뿐 아니라 일본까지 퍼져서, 우키요에 화가들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호크사이, 카나가와의 큰 파도 神奈川沖浪裏 (1829-33)  

그 밖에 파랑색은 '청사진 (blue print)'라는 단어에도 드러나듯이 사진에도 활용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피카소의 '청색 시대 (Blue Period)'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표적인 색상으로 자리잡아왔다.  2009년에는 새로운 파랑 안료 개발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색상인지 궁금해진다. 

색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맘에 들어하는 푸른색은 아래의 푸른색이 아닐까 한다.

Tiffany Blue Box®. © Tiffany & Co. Courtesy of the Tiffany & Co. Archives

 

Michael Moebius, Audrey Tiffany Blue 2, 2018Eternity Gallery

티파니가 언제부터 이 독특한 청록색을 독점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한다. 다만 만국박람회 출품 당시부터 이 청록색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푸른색과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초록색을 절묘히 섞은 '티파니 블루'.  물론 포장지 색에서보다 뚜껑 열었을 때 내용물에 더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의 티파니 전시장
1878년 티파니 포장 박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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