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2019/09 글 목록
2019. 9. 30. 08:47 미술 이야기

며칠 전 유튜브에서 10대 청소년 둘에게 다이얼식 전화기를 보고 어떻게 전화 거는지 알아내라고 했는데 주어진 시간안에 결국 전화를 거는 것을 실패하는 것을 봤다.  한편으로는 생전 써본 적 없는 기계를 못쓰는게 이상할 건 없지만, 나로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에피소드를 보니까, 얼마전 한국에서 최근에 대규모 회고전을 했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했던 것이 생각났다.  

 

https://youtu.be/oHNEzndgiFI

17세의 두 소년에게 다이얼식 전화기를 주고 4분내에 전화를 걸어보라는 미션을 줬는데 결국 실패했다.   

David Hockney, Mr. and Mrs. Clark and Percy , (1970-71) acrylic on canvas, 84×120 in.

이 작품에 관해서 설명을 하면서, 호크니는 이 그림 속에 백색 전화기를 넣은 이유가,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당시 패션계를 주도하던 힙한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후대의 사람들이 저 흰색 기계의 용도를 알기나 할까?' 호크니가 덧붙인다.  그 백색 전화가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기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다.  

이것이 미술사가 필요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사소한 것도 기록해 버릇해야하고, 또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기억하는 것들만 남기 때문이다.  

p.s. 요즘 집안 정리를 하면서 예전 수첩이나 메모가 눈에 띌때가 있어서 뒤적이다보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겠는 것들이 간혹 있다. 분명히 그때는 중요했으니 메모를 남겼을 것이고,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어서 그냥 약자로 간략하게 적어놓은 일들일텐데 말이다. 남의 기억도 아니고 나의 기억도 이렇게 재빨리 휘발되는 마당에... 앞으로는 좀더 기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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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9. 10:44 일상 이야기

이미지 검색은 chrome과 google을 사용하라는 말은 새로운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다. 난 기계나 컴퓨터는 젬병이라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내가 주로 검색하는 미술 이미지의 경우, 경험상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는 크롬이, 그리고 국내 검색툴이나 다른 국외 검색툴보다는 구글로 검색하는 편이 훨씬더 해상도 면에서나 다양성 면에서나 좋은 이미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짐작으로는 구글 아트 프로젝트라는 것도 영향이 있고, 게티 이미지 측과의 협업도 있는 것 같고 하여튼 그렇다. 

그런데 어제부터인가? 구글 검색창에 들어가면 위의 이미지가 대문에 뜬다. 구글 창립한지 21주년이란다.  마치 태고적부터 있었던 것 같은 구글이 이제 21년. 긴 세월이라면 긴 세월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학문적으로나 생활면에서 혁신을 이룬 '구글 검색'이 가능했던 것이 21년 밖에 안되다니!  이젠 'googling'이라는 단어도 생겼는데 말이다. 

구글 초창기엔 수업시간 교수님께서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의 신뢰도를 언급하시며 거기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도서관에서 직접 '믿을 수 있는' 자료를 찾아보라고 조언을 하시기도 했었는데.  이젠 어떤 새로운 주제로 연구를 좀 해볼라치면, 예전, 교수님이 찾아보라던 레퍼런스를 들춰보는것도 인터넷 검색으로 하는 시대가 왔다. 대부분의 주요 참고문헌이나 아티클은 디지털화가 다되어서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있고, 아주 초창기에는 아는척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만 글을 올려 신뢰도가 엄청 낮던 위키피디아 조차도 요새는 꽤 정돈되고, 그 내용도 믿을 만하다 (물론 더블체크는 필요하지만). 

농담으로 요새 아이들은 나중에 다음 세대 어린 사람들에게 '우리 땐 말야, 2층에서도 와이파이 안터지던 시절이었다구!'라며 고생담을 늘어놓을거라더니, 벌써 그 얘기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보리고개 전설 쯤이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인터넷이 안되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 왔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떨치고 있지만, 가정에서 인터넷 검색을 손 쉽게 하고, 더군다나 광대역 인터넷을 대중적으로 보급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결코 얼리어댑터라고 할 수 없는 나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고, 지금도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엔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 게 있을 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찾기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왔다.  대나무판 쪼개서 그 위에 글을 써 책으로 삼던 시절 지나서, 파피루스에 글 쓰던 시절 지나서, 직지심체요절,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거쳐서...  그렇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으려면 조그만 서랍들로 가득찬 장 속에 들어가있는 색인카드를 검색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그걸 기반으로 연구 자료를 찾던 것이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과거이다. 옛날 신문기사를 찾을 때, 무슨 영사기 같은 커다란 기계앞에서 휠을 돌려 어렵사리 인쇄가 번지거나 희미해진 예전 기사를 찾아야 했던 것도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예전 잡지의 오래된 아티클을 두꺼운 제본 상태의 책으로 도서관에서 찾아서 그걸 복사기 앞에서 오랜 시간 어렵사리 요래조래 뒤집어가며 복사를 해야만 내 손에 쥐고 펜으로 노트 남기며 읽을 수 있던 시절도 불과 몇 십년 전이다. 그런데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그 필요한 기사들이 pdf 파일 상태로 내 컴퓨터 안에 고스란히 저장되기도 하고, 프린터로 뽑아내 종이 상태로 읽을 수도 있게 되었다. 

이미지도 예전엔 직접 사진을 찍어 슬라이드 필름으로 옮겨서 그걸 캐러솔이라는 동그란 판에 집어넣어야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 이젠 거의 모든 이미지는 구글 검색만으로 찾을 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 상업적 목적이 아닌 이상 자유롭게 그 이미지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학문하는 방법과 과정도 많이 바꾸었다. 튜브 물감의 발견으로 화가들을 좁은 화실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뛰어들게 만들고, 그로서 인상주의가 탄생하게 만든 것처럼.  예술이고 학문이고 기계문명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이렇게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이러한 편의가 반드시 학문의 깊이를 더했나, 예술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나에 대한 판단은 아직은 유보해놔야 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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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7. 19:25 미술 이야기

난 고대 미술사에 대해서는 필수 교양으로 들어야 해서 들은 수준 밖에 되지 않지만, 고대 유물에 관한 뉴스는 꽤 관심있게 보는 편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살았나 뭘 먹고 뭘 입고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 하는 이야기는 참 흥미롭다. 며칠 전 본 기사도 그러했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도 아기에게 염소나 양젖을 먹일때, 젖병을 사용했다는 기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기사에 올려진 사진이 꺄악! 너무 귀엽다.  당시 사용했던 젖병 (이라고 쓰고 토기라고 읽는다)을 재현해서 실제로 아기에게 먹여보는데 쪽쪽 잘 먹고 있는 아기의 모습.  온 정신을 집중해서 젖을 먹고 있는 아기도, 그 아기의 오동통한 볼살과 닮아있는 토기의 모습도 다 너무 사랑스럽다. 고대인들의 미감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토기들은 청동기와 철기 시대 아기들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이의 부모들이 죽은 아기가 저세상에서도 굶주리지 않도록 토기들을 함께 묻어줬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맘은 매한가지인가보다.  그 옛날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과 자식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듯 감동스럽다.  이런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로 겪고 공감하는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보편적 인류애가 샘솟곤 한다.  

청동기 시대 젖병의 예들. 해당기사 참고 (https://www.smithsonianmag.com/science-nature/bronze-age-baby-bottles-reveal-how-ancient-infants-were-fed-18097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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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6. 02:36 미술 이야기

열화같은 성원 (?)에 힘입어 이번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천호점에서도 강의를 하게 되었네요.  공부하기 좋~은 (물론 놀기는 더좋지만) 가을에 미술사의 아름다운 세계로 한번 구경오세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분들과 기초부터 시작하는 강의!   많이 기대가 됩니다~  

정규 강의 제목: 촘촘히 읽어보는 서양미술사 I: 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 (8주 강의)

날짜: 2019년 10월 2일~11월 27일 수요일  

시간: 14:30~15:40

장소: 현대백화점 천호점 문화센터 11층  6번 강의실 (02-489-4560) 

온라인 신청을 하시려면 이곳을 클릭! 하시면 됩니다. (회원 가입하시고, 신청 버튼 누르시면 됩니다)

그리고 기타 궁금하신게 있으면 위 전화번호로 문의해주세요~  (정확한 강의실 위치는 개강일 11층 안내 데스크 가시면 안내해주실거에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9. 25. 11:36 영화 이야기

요새 집안 정리할 것이 많다보니, 정리하는 동안 영화를 많이 보게 된다.  엊그제 본 영화도 재미있었는데, 어제 본 것은 "예스터데이"라는 영화였다. 

무명가수인 내가 이 세상에서 비틀즈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발칙한 상상이 영화의 근간이 된다.  발상도 재밌고, 코미디 영화의 전개도 재밌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비틀즈의 음악이 즐겁다. 

 이 영화를 볼 사람이 많을 것 같아 스포일러 없는 영화의 주제 몇 가지 남기자면,

1. 자기 능력 이상의 것으로 과대평가 받게 된다는 것은 반드시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상식적인 사고를 하고 사는 보통의 사람의 경우, "거짓된 인생의 정의 속에 살아가는 것" 같아서 맘이 편치만은 않다. 

2. 유명인들은 사생활의 고충을 겪고, 사랑을 위해서라면 명성따윈 개나 줘버려야 한다.  안그러면 빨리 죽는다. 

3. 비틀즈가 없는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진다. 

영국 영화 특유의 어이없는 유머 포인트 몇가지. 

1. 비틀즈가 없는 세상은 코카 콜라도 담배도 없다.

2. Hey Dude

3. 엉성하지만 좋은 곡이야. 

4. The Beatles 검색하면 곤충 Beetle, 딱정벌레에 대한 정보만 뜬다. 

 

난 가끔 유명한 석학들의 지식의 깊이와 넓이를 보면서, 저 사람들은 전생의 기억이 남아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00년도 안되는 인생을 살면서 저렇게까지 그들이 아는 것을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 세계가 12초 동안 정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9. 23. 21:27 미술 이야기

뭉크의 <절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뿐 만 아니라 그닥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은 미술책에서 소개될 뿐 아니라, 광고 등에서도 수없이 차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나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맥컬리 컬킨의 앙증스러운 포즈도 그의 작품에서 따온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품을 직접 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소듕한 작품이라 이 작품은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에서 외부로 반출되는 일 없이 그곳에 모셔져 있기에.   

이전의 뭉크에 대한 포스팅은 아래를 참고 

광고에서의 예술.... 뭉크 (Edvard Munch)의 절규 (Scream) 

르느와르 도둑 맞다 - 예술작품의 도난사건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서 국보대접을 받는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 (1893)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oil, tempera & pastel on cardboard ; 91 x 73.5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그의 이 작품 속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흡사 해골과도 같이 앙상한 모습의 인물은 시대말의 불안과 절망을 표상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20세기 초 등장한 표현주의의 효시로도 일컬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인기는 당시에도 대단해서 주문이 쇄도 했던듯, 이 작품과 유사한, 아니 거의 동일한 작품들이 다양한 매체로 남아있고, 그 중 대표적인 작품만 해도 총 4점이 현존하고 있다.   

뭉크는 1893년의 <절규>와 유사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왼쪽부터 유화 작품 (1893), 파스텔 (1895), 템페라 습작 (1910)
1895 년 파스텔 버전은 2012 년 소더비 경매에서 $120-million 에 판매되었다.  당시 뉴스 참고 https://nyti.ms/2oCtTal

1895년의 파스텔 버전은 2012년 경매에서 무려 1억2천만 달러 (약 1470여억)에 거래되었는데, 이로써 뭉크의 작품의 인기를 재확인된 셈이었다.  물론 그의 <절규> 자체의 인기 이외에도  고가로 거래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액자의 하단에 당시 작품노트에 해당하는 몽크의 일기 내용이 자필로 새겨진 동판이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일기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뭉크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작가의 작품노트라고 할 수 있다.  1892년 1월 22일의 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감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추어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협만에 
마치 화염 같은 핏빛 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이 일기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어왔고, 대부분 작가 개인사 혹은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심리적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예전에 읽었던 한 연구에 따르면, 이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에 큰 화재가 있었는데, 그 화재가 너무나도 크고 며칠동안 계속되는 것이라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을 지구 반바퀴 너머 뭉크가 있던 북쪽 나라에서도 관찰 할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 연구를 읽고서 당시 나는 '내가 안봐서 모르겠네'  정도의 감상만 있었지 딱히 설득당하게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2017년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뭉크의 <절규>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진주 구름 (nacreous clouds)'의 일종일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진주 구름은 때로는 진주처럼 아롱다롱한 빛이 나거나 때로는 붉은 빛을 감도는 구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절규>의 배경이 온통 붉게 표현된 것은 그의 심리 반영이라기 보다는 실제의 하늘과 구름 빛을 묘사한 것일 거라는 것. 그 근거로, 뭉크의 일기에 나타난 "핏빛 구름"이라는 구절.  확실히 이 주장은 이전의 '화재설'보다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해석하자면, 자개 구름에 가깝겠지만, 진주구름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인듯.  아주 추운 지방에서만 보이는 구름이라고 한다. '진주 구름 (nacreous clouds)'의 예

 

왼쪽이 뭉크의 절규; 오른쪽이 진주 구름의 예.  L: Edvard Munch’s ‘The Scream’ 1893. R: Mother-of-pearl or nacreous clouds. Credit: Svein Fikke.

그 와중에, 오늘은 인도네시아의 핏빛 하늘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사진으로 본 검붉은 하늘은 확실히 아름다운 석양을 볼 때의 낭만적인 감상과는 거리가 있고, 기사에 나온 말을 빌자면 세기말적인 비전을 연상시킨다. 이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다 보니, 문득 어쩌면 진짜 뭉크가 발견했던 것이 이러한 류의 하늘은 아니었나 싶어서 기사를 좀 더 찾아 읽어봤다.   인도네시아 잠비 지방에 발생한 이 기상현상은 일종의 스모그라고 할 수 있는데, 일대 산림에 큰 화재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미세먼지들이 발생했는데, 그 미세먼지들이 상층 대기로 이동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화재가 원인이기는 하지만, 색상을 붉게 만든 건 화염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어쨌든 화재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긴 하지만, 하늘을 온통 붉게 만든 대기현상의 원인이 되었고, 이로써 구름이고 하늘이고 다 핏빛으로 물들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읽고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 예전의 기사와 최근의 연구를 결합하면, 뭉크의 <절규>의 탄생이 풀리는 것은 아닐까?  왠지 대발견을 한듯 가슴이 두근두근!  

P.S. 이번 인도네시아에서의 기상현상을 '미에 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빛의 파장의 크기와 같은 입자들이 일으키는 빛의 산란 현상이라고.  화재가 원인인 것도 맞고, 그로 인한 스모그 현상인것도 맞고.  난 처음엔 이 산란현상과 진주 구름과 관계가 있을까 했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서는 두개의 가설이 생긴 셈.  만약 뭉크의 붉은 하늘이 실제의 자연현상을목격한 것에 기반하여 제작된 것이라면, 실제로 그날따라 노르웨이의 하늘에 뜬 핏빛같은 진주 구름을 봤거나, 아니면, 동남아 지역의 대규모 화재에 기인한 '미에 산란'을 목격했거나...  둘 다 그럴듯하다.  자연이나 색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 자연현상을 보고 말세가 왔다며 불안해 하는 인도네시아 인들이 많았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정부측에서 해명 보도를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화염에 휩싸인듯한 검붉은 하늘을 보고 세기말적 불안을 느끼는 것은 뭉크만이 아니라는 것. 물론, 그것이 그와 그의 작품의 위대함에 영향이 미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도네시아 잠비 지방을 붉게 물들인 하늘. BBC의 기사 "Indonesia haze causes sky to turn blood red" 참고 https://www.bbc.com/news/world-asia-49793047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9. 21. 22:34 영화 이야기

오랜만에 영화 한편 감상.  한글 제목은 '데드 위크: 인생 마감 7일전'. 원제를 해석해보면, '일주일 안에 죽음, 아니면 환불 보장'   [Dead in a Week (Or Your Money Back)]  이 정도 될 것 같다. 

첨에 한글 제목을 읽었을 때, Dead Week은 기말고사 전주를 지칭하는 속어라  영화 포스터랑 내용이 매치가 되지를 않아서 잠깐 갸우뚱했는데, 원제를 읽어보니 제목도 흥미롭고,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가벼운 맘으로 집안 일 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코미디 영화는 맞고 가벼운 맘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인 것도 맞지만, 생각해 볼 거리가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꽤 심오한 인생관이 담긴 철학적인 영화라고 볼 수도 있는 영화이다.  IMDB 찾아보니 평점이 애매한 6.2이고, 한국의 다움웹에서의 4점. 전체적으로 좀 박하다는 느낌.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生卽必死 死卽必生'이라고나 할까?  즉, '살려는 자 죽고, 죽으려는 자 살 것이다.'라는 것?  (복선 및 혼선의 의도 있음)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 청년은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번번히 자살에 실패하게 된다.  다리에 기대어 강물어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그의 앞에 마치 선지자와 도 같이  홀연히 검은 실루엣으로 등장한 한 노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왜그러냐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텐데...라고 이야기 할때만 해도, 난 그가 그런식의 선문답을 통해 청년의 인생의 의미를 찾아준다는 식의 다소 뻔한 교훈 감동 스토리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노인은 전혀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킬러' 혹은 '암살자'!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이름도 생소한 자살 대행 킬러 (?).  보험 영업 사원처럼 매달 할당량을 채워야하는 직원이었고, 요새는 동유럽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감을 많이 앗아가서 매달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절벽이나 다리를 다니며 자살 희망자를 만나 직접 구매자를 찾아 영업을 하는 참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죽으려는 청년.  그리고, 청부 킬러 (하지만, 여기서 청부는 죽을 사람에게 직접 받는게 기존 킬러와의 큰 차이점)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열심히 '죽여주며' 살아온 노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포일러 없이 감상을 얘기하자면, 영화 전반에 영국 특유의 블랙 유머가 참 재미있었다는 것이 총평이다.

킬러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 '계약서에 작은 글자들 읽어봤어?' 

킬러 회사 사장과 킬러와의 대화. 특히 그 사장이 '마이클 J 폭스'를 이야기 할때.  

특히, 출판사 편집장과 주인공의 만남에서 편집자가 하는 이야기도 재밌었고, 그와 함께 전개되는 사건의 타이밍도 절묘하다.

(대략 생각나는 대목은 위의 세 장면 정도.  깔깔깔은 아니지만 푸훗푸훗 하게 된다.  궁금하세요?  궁금하면 500원! 아니, 그냥 영화를 보시면 됩니다.) 

브리티시 유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미국 영화의 그것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직업이 '청부 킬러'라는 점을 잠시 잊고 대화를 듣노라면,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내용의 대화다.  킬러도 불법주차 했다가 티켓 끊으면 경찰에게 '잠시 대논거'라며 사정을 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킬러에게 날짜 조정을 요구하면서, 킬러가 그러마 하니 진심 고마워한다.  킬러를 진정 사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조를 하는 사랑스러운 킬러의 아내와 킬러와의 대화는 평생을 함께한 금슬 좋은 부부의 대화이다.  

이러한 소소한 대화가 '자살'이니 '킬러'니 하는 도덕적 잣대나 사회 규범을 잠시 덜어내고 바라보면  일상생활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것 없다. 게다가 평생을 성실한 직업윤리의 노년이 정년을 앞두고 겪는 혼돈과 상실감.  그리고 유머스럽게 전개되지만 끊임없이 재기되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심오하기까지 하다.  전체적으로 잘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조밀하게 잘 엮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엇인가 고민이 있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 '죽음'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고민이 쉽게 풀리고 그전까지 힘들다고 느꼈던 일들이 그다지 심각할 것 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죽음'은 많은 문제를 명쾌하게 해준다.   죽음을 떠올리면 어두워질것 같지만, 내 경험상 반드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련이나 욕심으로 가려져 있던 것들이 선명해지면서, 무엇이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일까 분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복잡했던 맘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맑아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켜주거나, 적어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P.S.  주인공 청년은 백수에 가까운 작가지만, 그의 작업 방식은 참 독특하고 맘에 들었다.  카페의 냅킨 혹은 포스트 잇 사이즈의 작은 메모지에 차례로 적어나가는 그의 이야기와 간단한 삽화. 그렇게 전개된 이야기 책이 있다면 사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예전에 읽던 Micro Fiction, 혹은 Flash Fiction, 혹은 short short stories 등으로 불리던 아주 짧디 짧은 소설 장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말이다.  '마이크로 단편 소설' 혹은, '초단편 소설'은 마치 소설의 하이쿠 버전이라고나 할까?  대략 1500 단어 (짧은 것은 300 단어에 불과하기도) 정도의 길이로 왠만한 광고에서의 상품 설명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당시에 나는 우연히 수업시간에 그런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호기심에 한동안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찾아 읽어보곤 했었다.  이런 마이크로 단편소설은 참신하다는 장점과 짧은 이야기 속에 심오한 내용이 담겼을 때의 감동의 깊이는 생각보다 묵직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무래도 시가 아닌 소설인데 단어의 수의 제한은 많은 내용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가 플롯이 가능하지 않은 길이이니 이야기에도 전개가 있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새 긴 블로그 글이나 페북 포스팅에 꼭 달린다는 댓글 - '좋은 내용 같은데, 위 내용을 세줄로 요약 좀 해주세욤.' - 을 염두에 둔다면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는 않은 장르이긴 하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9. 19. 06:02 미술 이야기

황금 박~쥐!는 아니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당신은 후후훗! 최소 국민학교 다닌분들~) 

이탈리아 작가 모리조 카텔란 (Maurizio Cattelan)의 작품, 무려 싯가 60억원에 해당하는 황금 변기가 도난당했다는 뉴스!  블레넘 궁에서는 모리조 카텔란의 개인전 <Victory is Not an Option (승리란 불가능하다)>이  2019년 9월 12일부터 10월 27일까지 예정으로 개최되었는데, 전시가 시작된지 불과 이틀 뒤인 지난 9월 14일, 전시 중이던  그의 《미국 (America)》 (2016)이라는 금으로 만든 변기가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이 변기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18K 진짜 금으로 만든 변기는 실제로 화장실에 설치되어 관람객들이 사용할 수 있는게 포인트인 작품이다.  사람들은 농담으로 금덩이라 훔치고 싶어도 더러워서 안가져 갈 것이라 그랬는데, 설마설마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Blenheim Art Foundation이 주최하여 블레넘 궁에서 열린 모리조 카텔란의 개인전 <<Victory is Not an Option>> (2019년 9월 12일 ~ 10월 27일)에 전시되었던 그의 "아메리카" (2016)라는 작품이 지난 9월 14일 도난당했다는 뉴스.       
모리조 카텔란의 황금 변기 "미국"이 도난당하고 난 뒤 사건 현장 Photograph: Pete Seaward
2016년 9월 뉴욕의 구겐하임에 전시되었을 당시의 모리조 카텔란의 변기 작품 <아메리카>의 모습. 화장실에 설치하여, 실제로 변기로 사용할 수 있게 한 점이 작품의 핵심!  Installation view: Maurizio Cattelan, “America,” 2016. Gold.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September 16–ongoing. Photo: Kristopher McKay

2016년 뉴욕의 구겐하임에  이 작품 《미국》이 처음 설치되었을 때, 미국 뉴욕의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 '변기'의 제목이 '미국'이라 미국인들이 불편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당시 이 작품에 대해 작가는 현대의 빈부차이와 물질문명에 대한 코멘트라는 파격적 작품을 한 작가치고는 다소 판에 밖힌듯한 뻔한 주장을 한다 싶기도 하지만, 라스베이거스에 건물 전체 유리를 24K로 도금한 트럼프 호텔 (Trump International Hotel Las Vegas)을 떠올리다보면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을 예견이라도 했나 싶기도 하다.    

트럼프의 최애 색상이 황금색이라는 것은 유명하다. 뉴욕의 트럼프 타워의 경우, 간판은 물론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실내 디자인을 온통 금색이다. 가끔 TV에 나오곤 했던 그의 펜트 하우스는 정말 블링블링 온통 황금색. 라스베이거스에 설립된 그의 트럼프 호텔의 경우, 그의 금색 사랑의 결정판! 유리전체에 24K 도금을 했다고 한다. Trump International Hotel Las Vegas 

도널드 트럼프의 황금 사랑은 알만한 사람이 다 안다~치고, 미술사적으로 황금의 상징하는 바, 시공을 초월한 영원이라는 개념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카텔란의 변기의 영감의 원천일 것이라 생각되는 뒤샹 오라버니의 남성 소변기  《샘 (Fountain)》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자.   

 

뒤샹의 1917년 'original' 남성 소변기는 소실되어 현재 테이트를 위시한 세계 각국의 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뒤샹의 소변기는 이후 뒤샹의 승인하에 제조사에 주문해서 새로 만들고, 그가 직접 사인하거나 그의 사인을 에칭으로 복제하여 만든것이다. 원래는 예술가의 독창적이고 유일한 작품!이라는 예술의 개념을 전복하려고 '선택'하여 '제시'했으나, 복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전통적 예술에서의 'originality'에 대한 개념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약간의 참가비 ($6)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그런 전시에 철물점 변기를 하나 사서는 거기에  R. Mutt 라는 서명을 하고는 《샘》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하게 된다.  예술품은 '제작'이 아닌 '선택'에 뽀인트가 있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과 함께. 

결국 그 문턱 낮은 전시에서조차도 퇴짜를 맞았지만, 그의 황당무계한 행동은 이후 미술의 판도를 바꾸게 되었다. 이제 어떤 놀라운 작품을 봐도 현대미술의 관람객들은 '당황하지 않~고' 낯설고도 황당한 작품들을 감상할 자세가 되었다고나 할까? 10대 소년이 장난으로 SFMoMA 전시장 바닥에 안경을 벗어놓아도, 관람객들은 '당황하거나' 그걸 주워서 분실물 센터에 맡기기 보다는, 그 '작품일지도 모르는 안경' 주변에 모여 감상을 하고, 급기야 사진촬영까지 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16년 5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바닥에 떨어진 안경을 작품이라 여긴 관람객 중 한명이 촬영하는 장면. 이후 이 안경은 10대 학생의 장난으로 밝혀졌다고.  촬영: Kevin Nguyen, 출처: New York Times


한편, 이번 소동의 핵심이 된 작품의 작가, 모리조 카텔란은 종교와 정치적 풍자가 담긴 작품들로 유명하다. 아슬아슬 위험하고도 장난스러운 작품들이 특징적인 그 작가가 창간한 잡지의 이름이 Toilet Paper~ 삐딱선을 제대로 탄 작가가 분명하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La Nona Ora(1999)라는 작품이 있다. 유성에 맞아 쓰러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모리조 카텔란의 이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이고,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작품이다.  밀납과 수지 등으로 만든 교황의 모습이 마치 진짜 사람과도 같은 모습이라 충격적인데, 일반인들에게도 그러하겠지만, 독실한 카톨릭 교인들이라면 그 충격은 배가 되리라. 이 작품의 제목인  '9번째 시간'은 예수가 돌아가신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새벽 6시에 하루가 시작된다는 관념에서 계산해서 오후 3시에 해당한다고.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그러하듯 카톨릭 종교하에서 성장한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이라 더욱 의미심장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탈리아판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인가? 아니면 오늘날 종교의 무력함을 얘기하고자 한 것인가? 실사에 가까운 교황이 유성을 맞고 쓰러진 모습 앞으로는 깨진 유리조각들이 붉은 카펫위에 흩뿌려져 있어 더욱더 실감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 밖에도 자신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거나 실제 말의 박제를 이용한 설치를 하기도 하지만, 히틀러의 초상을 이용한 작품도 인상적이다. 《Him》(2001)이라는 작품의 경우, 교복을 입은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경건히 기도 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 조각이 놓인 장소나 맥락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어설프게 작업을 했다면, 더한 비난을 받고 기억 저편에서 잊혀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작품의 스케일이나 풍자의 강도가 워낙 강렬해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뿐더러 미술계에서의 위치도 확고한 듯하다. 자고로 삐딱선을 탈려면 제대로 타야하나보다.  이번 도난 사건도 어떻게 해결이 될 지 모르지만, 그가 언급하고 싶다던 현대의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지적의 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성에 맞아 쓰러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의 제목은  '9번째 시간'이라는 작품.  모리조 카텔란의 이 작품 중 가장 충격적이고,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작품이다. 예수가 돌아가신 시간에 해당하는 9번째 시간은 예전에는 새벽 6시에 하루가 시작된다는 관념에서 계산해서 오후 3시에 해당한다고.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그러하듯 카톨릭 종교하에서 성장한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이라 더욱 의미심장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탈리아판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인가?  Maurizio Cattelan, "La Nona Ora" (1999) wax, clothing, polyester resin with metallic powder, volcanic rock, carpet, glass dimensions variable. Photo by Attilio Maranzano Courtesy of the artist
블렌하임 궁에서 전시 중인 카텔란의 작품 '그' 라는 작품.  누구 닮았는지는 설명안해도 다들 한눈에 알아볼 것이다.  세계를 파멸로 이끈 인물도 기도를 한다? 결국 기독교에 대한 비판인가? 아니면 세계를 파멸로 이끈 인물의 이율배반적 모습을 제시하고자 한것인가? Maurizio Cattelan, "Him" (2001) Wax, human hair, suit, polyester resin and pigment ; 101 x 43.1 x 63.5 cmat Blenheim Palace (Photo: Leon Neal/Getty)
2011년 1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구겐하임에서 열렸던 대규모 전시회인 모리조 카텔란의 전시 <<All>>  구겐하임의 전체적인 건축적 특성과 전시의 구성이 잘 어울렸던 전시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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