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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23. 03:24 미술 이야기

'역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늘날 생존 작가들의 작품들 중 경매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작품들을 설명할 때, 특히 그 작품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다.

2019년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92,210,000로 거래된 제프 쿤스의 <토끼>

올해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의 경매에 제프 쿤스의 강철로 만든 <토끼 (Rabbit)> (1986)이 출품되었는데, 불과 85.1 cm에 남짓한 이 조각품의 예상 가격은 $50,000,000~70,000,000이었다. 그리고, 경매 결과는 예상 가격을 훌쩍 넘긴 $92,210,000 (약 1,073억 상당)였다. 이번 경매로 이 작품은 생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작년 11월, 같은 경매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 (두 인물이 있는 풀장)>(1972)이 $90,300,000 (약 1,050억 상당)으로 생존 작가의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을 세우며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지 불과 6개월만이다.    

벽화 크기로 제작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은 2018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0,000로 거래되어, 세계에서 생존 작가중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화가로 등극했었다.  

이번 경매 결과를 두고 과연 누가 저런 장난감 같은 강철 쪼가리를 샀는가?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 이전부터 제프 쿤스 (1955-)의 작품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그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가격은 고공행진을 수십년째 계속 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의 경박성, 천박함, 그리고 내용 없음을 비판하는 이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의 작품의 평가나 가치가 얼마나 부풀려져 있었는지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 말한다. '역사의 심판'을 거치고 나면, 오늘 날 그러한 잡동사니들에 묻혀 있었던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2019년 5월 17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에 "Stop Hating Jeff Koons (제프 쿤스 그만 미워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피카소나 데이비드 호크니도 불과 수십 년 전에는 경박하다는 평을 받거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피카소나 데이비드 호크니는 '역사의 검증을 거친' 작가들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또 정말 그렇기만 할까?  아카데미 화가 중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작가 윌리엄 부게로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는 손에 붓을 쥔 순간부터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인기 초절정의 화가였다. 

화실의 윌리엄-아돌프 부게로

그의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은 1879년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되었고, 부게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최고상인 로마상을 수상하였다.  무려 가로 3m, 세로 2.18m에 육박하는 이 대작은 주제면에서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라파엘의 <갈라테아의 승리>와 비교되며 여성의 인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화려하게 예술계에 데뷔한 이래, 그의 작품은 너무도 인기가 높았고, 가격도 엄청났기에, 개인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서 주로 록펠러 재단과 같은 대규모 재단에서나 주문을 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번호표를 뽑고서는 몇년씩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부게로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교수직 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도 초청을 받아 각국의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겸임하기도 했고, 유명한 상이나 훈장은 안받은 것이 거의 없었다.

현재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중인 윌리엄-아돌프 부게로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 (1879)은 아카데미 최고상 로마상을 수상하였다. 

그랬던 그의 명성과 작품의 인기는 이상하게도 그가 세상을 뜨자마자, 인기가 폭락하여, 인상주의를 위시한 모더니즘 화가들이 대두하던 20세기 초부터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 뿐 아니었다. 그는 새롭게 부상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쓰러뜨려야만 하는 거인'이었던 아카데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면서, 그의 작품은 '포르노'라고까지 혹평을 받게 되었고, 한 때에는 열을 올려 그의 작품을 수집했던 세계의 유명 미술관들은 다들 앞 다투어 전시실에 걸린 부게로의 작품들을 떼내어 창고 속에 감추었고, 자신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쉬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자신들의 취향이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고 촌스럽다는 것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한 때에는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아예 거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쩌다 경매에 나오는 가격도 50만원 정도까지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사정이 이 쯤되면, 윌리엄-아돌프 부게로는 '역사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한 때 반짝'하던 화가로 묻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1975년 이후로 그의 작품 가격이 다시 점차 오르게 되고, 최근 들어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과거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경매에서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1998년 <The Heart's Awakening> (심쿵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이 $1,500,000에 거래되었고, 다음해 1999년에는 <The Motherland>라는 작품이 $2,600,000 에, 또 2000년에는 <Charity>라는 작품이 $3,500,000에 판매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제까지 창고에 깊숙히 넣어두었던 그의 작품을 이제는 각국의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다시 전시관에 다시 내걸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윌리엄-아돌프 부게로의 <Charity (자선)>(1887) 2000년 경매에서 $3,500,000에 거래되었다.  

자, 그렇다면, 윌리엄-아돌프 부게로는 '역사의 검증'을 받은 작가인가 아니면 '역사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작가인가? 한번 인정받은 작가라고 해서 영원히 역사 속에서 기억되라는 법도 없고,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이 재평가 받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부게로처럼 인정 받았다 잊혀졌다 다시 평가받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일생을 가난 속에 허덕이며 살다가 사후에나 인정을 받는 예술가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의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명작'이며 '역사의 검증'을 통과한 작품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잣대는 앞서 살펴본대로 오늘 날 인기 있는 작품에 대한 미래 평가에 대한 척도로 상반되게 이용된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명작'의 기준은 어디서 찾아야할까? 작품 가격이 높은 '인기작'과 '명작'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란 결코 불가능한 것인가?

과연 이러한 인기나 평가의 부침은 결국은 그 시대의 '취향'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일부 음모론자의 이론처럼 예술가나 그의 작품의 인기란 일부 미술업계의 검은 손이 만들어내는 '은밀한 획책'의 결과인 것일까?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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