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해부학적 비너스 - the Anatomical Venus
2018. 11. 26. 03:49 미술 이야기

비너스의 역사는 보티첼리와 함께 시작하였다는 것은 이전의 글에서 밝힌 적이 있다. 

거의 처음 올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대한 글은 바로 여기~    

물론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비너스의 도상은 있었지만, 누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은 보티첼리가 처음이었고, 누워 있는 누드로서 비너스를 그린 것은 흔히 소장처의 이름을 따서 '드레스덴 비너스'라고 불리는 작품이 있다.  이후 이 도상을 따라 수많은 '누워있는 비너스' 상이 그려졌다.  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남성의 누드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여겨졌고, 여성의 누드는 금기시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술사적으로 살펴보면, 여성의 누드가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중반이나 되어서였다.  이후 서구 회화에서는 육체적인 것을 죄악시하거나 경시하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이르면서 신들은 누드로 그려진다는 회화적 어휘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를 그리는 것은 정당화 되었다.  대부분의 주문자는 남성이었기에 그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 누드의 여인상은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고, 그 중 최초로 그려진 '누워있는 비너스' 도상은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의 '드레스덴 비너스'는 풍경은 조르조네가, 누드는 그의 제자이자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최고 대가였던 티치아노가 그린 것이라 전해진다.  

소장처의 이름을 따서 '드레스덴 비너스'라고도 불리는 서구 미술사상 최초의 '누워있는 비너스'는 조르조네와 그의 제자 티치아노에 의해 그려졌다. Giorgione  (1478-1510) and Titian (1490-1576), Sleeping Venus (1508), oil on canvas ; 108.5 x 175 cm, Old Masters Picture Gallery Dresden 

Titian, Venus of Urbino (1532 or 1534), oil on canvas ; 1.19 x 1.65 m, Uffizi Gallery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대가로 알려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2/34)  이 작품은 마네의 '올랭피아' (1863)의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티치아노의 또 다른 걸작으로는 역시 소장처의 이름을 따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있는데, 이러한 르네상스기의 비너스는 이후 누워있는 누드의 모습으로 마네의 '올랭피아'부터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까지도 수도 없이 그려졌다.  

그 결과,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에 간다면 드물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오죽하면 뒤샹이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보고, 그의 형이 '누드는 누워 있는 것이지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겠는가?  

오늘은 그 친숙한 비너스의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를 더해 소개할까 한다.  

Venerina (Little Venus), life-sized dissectible wax model created by the workshop of Clemente Susini at Florence’s La Specola for Museo di Palazzo Poggi, Bologna, Italy, 1782. Courtesy of Museo di Palazzo Poggi - Università di Bologna. Photo © Joanna Ebenstein.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밀납 모델. 계몽시대에 제작된 비너스 상 '베네리나 (작은 비너스)'라는 명칭으로 불림.


위의 비너스는 밀납으로 만든 비너스 상이다. 이는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들어 졌고, 별칭이 '베네리나 (작은 비너스)'다.  마리 앙토와네트의 오빠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레오폴드 2세의 통치기에 해부학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자는 클레멘트 미켈란젤로 수시니 (Clemente Michelangelo Susini)로 이 외에도 유사한 밀납 비너스 상을 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밀납 비너스 상으로는 '메디치 비너스'라고도 알려진 '분리 가능한 비너스'다. (여기서 '메디치 비너스'라고 불리는 우피치에 소장 중인 대리석 조각상도 있으니 혼돈하지 않도록 하자. 아래 그림 둘 참고) 

 

가장 유명한 분리가능한 밀납 비너스. '메디치 비너스'라고도 불린다. 클레멘트 수시니의 워크샵에서 1780-82년에 제작. Courtesy of Museo La Specola, the Natural History Museum of Florence. Photo © Joanna Ebenstein.

Venus de' Medic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메디치 비너스'라고 불리는 또 다른 비너스 상으로 현재는 우피치에 소장 중이다. 갓 목욕을 마치고 올라와서 수건으로 몸을 가린 모습의 비너스를 묘사한 '정숙한 비너스 (Venus Pudica)' 도상을 따르는 조각상.  

그렇다면, 18세기의 유럽에서는 오늘날 보기에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분리 가능한 밀납 비너스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앞서 밝혔듯, 일차적으로는 해부학 연구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당시의 계몽주의적 분위기도 한 몫을 했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귀족의 문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오늘날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듯 신기한 것을 수집하려고 하는 귀족층의 독특한 취미와 만나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의학이라는 과학에서 출발했으나 '뚜껑' (?)을 덮은 여인의 인체의 모습은 무척 아름답게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미술과 연결이 된다. 

Courtesy of Université de Montpellier, collections anatomiques. Photo © Marc Danton

또한 이러한 밀납 비너스 상을 제작하는 붐이 일었던 시기는 '인체야말로 신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자 인간이야말로 소우주'라는 사상이 만연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학 내지 종교적 측면에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피렌체의 라 스페콜라, 동물학 및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 밀납 조각상들은 한편으로는 과학실의 인체 모형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밀납 인형 박물관을 떠올리게도 한다. 밀납으로 만든 비너스 상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고 징그럽게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인간의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울러,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의 욕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도 인간의 본능 속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결국 미와 과학, 종교와 의학, 영혼과 신체가 결국은 상통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술사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티치아노와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클레멘트 수시니의 '분리가능한 밀납 비너스'는 현대미술에서 자주 논해지는 페티쉬와 순수 미술 사이에서의 간극과 혼용도 한번쯤 생각하게 해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