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술사 안에서 뱀은 어떻게 표현되어 왔었고 어떠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 각 문명에서 뱀은 각각 독특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주요 작품들을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동양의 뱀의 이미지
동양미술에서 뱀은 양가적인 상징을 지닌다. 뱀이 허물을 벗는 모습은 죽음과 재생, 영생을 상징하는데, 이로써 재생과 불멸을 나타낸다. 또한 이는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지속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뱀은 용이 되기 전단계로 해석될 경우 긍정적인 의미로 묘사된다. 옛날 얘기에서 커다란 구렁이는 집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도 등장하기도 한다.
한국 고구려 벽화의 '현무'에서 뱀과 거북이 결합된 모습은 자연의 조화와 방위를 상징하며, 수호적 의미를 지녀왔다.
- 수호와 재생의 상징: 불교에서는 뱀이 부처를 보호하는 역할
- 지혜의 상징: 힌두교의 비슈누 신은 지혜로운 큰 뱀 '아난타'의 몸에서 잠자는 모습으로 그려짐.
- 신성한 존재: 중국에서는 청룡이 되지 못한 신령스러운 뱀을 청망(靑蟒) 또는 청사(靑巳)라고 부름.
이번에 찾아보니 동양의 예술 작품 속에서 뱀이 그림 속에 나타난 경우는 12지신을 표현하거나 현무도와 같이 신화적 동물을 나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 한국 작가 중 천경자의 작품 속 뱀들은 여성의 내면과 억압, 욕망, 그리고 강렬한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서양의 뱀 이미지
서양에서 뱀은 양면적인 의미를 가진다. 앞서 언급한대로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뱀이 악과 유혹의 상징으로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이에 반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어, 치유를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는 뱀 머리카락을 가진 무서운 존재로 묘사되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뱀 모양의 팔찌가 보호의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1. 기독교에서의 유혹과 죄악의 상징: 에덴동산의 뱀
기독교 미술에서 뱀은 대개 유혹과 원죄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뱀은 성경 속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아담과 이브를 유혹한 뱀은 죄악과 타락의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묘사된 뱀은 여성의 모습을 한 이교도적 뱀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인간의 욕망과 유혹을 시각적으로 강화한다. 반면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에서는 뱀이 황금빛으로 묘사되어 이브의 손길과 얽히며 유혹의 순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뱀은 인간의 욕망과 죄의 근원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상징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원죄와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1508-1512)
2.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의 다양한 이미지
2-1. 우로보로스 - 순환, 재생, 영원성
우로보로스(Ouroboros)는 꼬리를 물고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뱀이나 용으로, 고대부터 여러 문화권에서 사용된 상징적 이미지다.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끝과 시작이 없는 순환이다. 뱀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은 끝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보여주면서 자연의 순환(생명, 죽음, 재생)을 상징하며, 우주적 시간의 무한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고대 사람들은 뱀이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보고, 뱀을 죽음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긴데서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 고대 이집트: 태양의 신 라를 상징하는 그림에 등장하며, 우주의 순환을 의미.
- 그리스 철학과 연금술: 플라톤과 연금술사들에게는 우주의 영혼(Anima Mundi)와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상징.
- 노르드 신화: 미드가르드 뱀(요르문간드)은 바다를 둘러싸고 스스로 꼬리를 무는 모습으로, 세계의 순환과 멸망을 상징.
- 동양의 사상: 음양의 순환이나 윤회 사상과도 상통하는 맥락
- 현대 심리학: 자기 성찰과 개인의 통합을 상징. 칼 융의 경우, 우르보로스를 '자기 (self)'의 이미지로 보며, 인간 내면의 재생과 성숙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우르보로스는 고대부터 현대까지도 철학적, 영적, 심리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2-2. 치유와 재생의 상징: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그리스 신화에서 뱀은 치유와 생명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감긴 뱀은 치유와 재생의 상징으로 오늘날에도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의약 길드 문장에서도 뱀은 중요한 도상적 요소로 등장한다. 이는 뱀이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과정을 생명의 재생과 연결 지었던 고대의 시각을 반영한다.
2-3.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세우스 - 조화와 균형, 중재
그리스 신화의 에르메스는 카두세우스를 늘 지니고 다닌다. 카두세우스는 두 마리 뱀이 지팡이를 중심으로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는 조화와 균형을 상징한다. 에르메스는 신들 간의 전령 역할을 했고, 갈등을 중재하거나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전해지는 말로는 헤르메스가 길을 가다가 뱀 두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지팡이를 사이에 넣어 중재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뱀 두 마리가 서로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얽혀 있는 모습은 이러한 조정과 화해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2-4. 기타 - 그리스 신화 속의 뱀
베르니니의 '메두사' (1630)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뱀으로 이루어진 고르곤으로, 그녀를 바라본 자는 모두 돌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베르니니는 이 신화적 존재를 극적인 표정과 함께 사실적으로 조각했다.
루벤스의 '라오콘' (1601-1602)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트로이의 목마를 공격했다는 것으로 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 자신과 그의 아들들이 거대한 뱀들에게 목숨을 잃는다. 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아래의 순간은 라오콘 일가의 비극적인 순간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뱀은 신들의 징벌을 상징한다.
3. 근현대 미술의 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뱀은 유혹과 죽음이라는 상징성을 뛰어넘어 더 섬세하고 감각적인 이미지로 변화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뱀은 같은 신화적 장면을 묘사하는 작품 속에서도 인간의 탐미적 세계와 결합하여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시기의 뱀은 심리적 불안과 동시에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는 초현실적 존재로 여겨졌다.
앙리 루소의 '뱀을 길들이는 여인' (1907)
이 작품은 밀림을 배경으로 한 루소의 독특한 상상력과 상징주의적 해석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다. 뱀과 여인의 관계는 낯설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객에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속에서는 달빛이 비치는 신비로운 정글 속에서 한 여인이 뱀을 다루는 모습을 그렸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플루트를 불며 뱀을 매혹시키는 모습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에서 뱀은 야생적이고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플루트로 뱀을 길들이려는 여인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동시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모습을 암시한다. 여기서 밀림은 문명과 대비되는 신비로운 자연의 세계를 나타내는데 그 속에서 여인과 뱀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시대적 맥락에서의 뱀의 의미가 변화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루소의 작품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산업화와 제국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의 예술적 흐름과 연결된다. 이 시기 서양에서는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제를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루소의 <뱀을 길들이는 여인>은 이국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뱀을 단순한 악이나 유혹의 상징으로 그리지 않고,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매개체로 표현했다.
장-레옹 제롬, 뱀을 길들이는 사람 (ca.1879)
같은 주제로 그린 아카데믹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의 경우, 이국적 정취에 대한 낭만적 감성과 지배주의적 관점이 곁들여진 오리엔탈리즘적 경향을 보여준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물뱀 II' (1904-1907)
클림트는 관능적이고 장식적인 화풍으로 유명한데, '물뱀' 연작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이 뱀처럼 흐르는 듯한 표현으로 에로티시즘을 표현했다.
4. 현대미술과 뱀의 재해석
현대미술에서 뱀은 고정된 상징을 벗어나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 존재로 재해석되었다. 예를 들어 니키드 상팔의 설치 작품에서 뱀은 여성성과 연결되며, 억압된 감정과 생명의 원초적 힘을 표현한다. 이와 함께 뱀은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금기의 상징과 자유의 상징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전달한다.
이처럼 서양에서도 부정적 의미와 긍정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문명권에서 뱀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지 살펴보자.
고대 이집트와 뱀
지혜와 권력의 상징:
고대 이집트에서는 뱀이 보호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파라오의 머리에 장식된 코브라는 신성한 권위와 힘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이 이미지는 신화적 동물 우라에우스(Uraeus)로 발전했으며, 파라오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고 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뱀은 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체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메조아메리카 문명의 뱀
출처 입력
마야 문명에서 뱀은 독특한 의미를 지녔다. 지상과 지하의 생명과 연결된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고 우주와 연결된 신화적 존재로 표현되기도 했다.
케찰코아틀 - 깃털 달린 뱀
아즈텍 문명에서 케찰코아틀은 지혜와 창조의 신으로, 뱀의 몸에 새의 깃털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하늘(새)과 땅(뱀)의 조화를 상징한다. 테오티우아칸과 치첸 이차의 피라미드 등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에서 이 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는 막연하게 동양에서의 이무기, 서양에서의 아담과 이브에서의 뱀, 그리고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의 우르보로스 정도만 머리에 떠올랐었다. 그런데 조사를 하다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를 지닌 상징으로서 여러문화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미술사 내의 미술 작품들 속에서도 뱀이 등장한 작품들도 계속 떠오르기도 해서 리스트의 길이가 점점 늘어났다.
여러가지 상징을 알아보니까 흥미롭기도 했지만, 요는 같은 뱀을 두고도 생각의 방향이 무한대로 다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2025년 푸른 뱀의 해를 맞이하여 부정적 의미는 저 멀리 흘려버리고 긍정적 의미만 남겨서 밝고 긍정적인 한해를 만들어가봐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우리모두 푸른 뱀의 해에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보람되고 즐거운 한해를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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