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미술관 탐방' 태그의 글 목록
2018. 11. 4. 01:00 미술 이야기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전시회에 관련해서 게재했던 글입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 붓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블라맹크의 열정

https://www.sacticket.co.kr/SacHome/playzine/pzArticle?searchSeq=3627

지난 전시에 대한 글이기는 하나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블라맹크 작품들이 소개되었던 전시회였기에, 글로나마 좋은 화가 하나 소개 더 하자하는 맘으로 올립니다. 


붓의 흔적이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들의 경우, 화면을 납작하게 표현해버리는 사진만으로는 그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요.  혹시나 표현주의적인 작품의 전시회를 보실 기회가 있으시다면 반드시 '직접' 가셔서 한번 전시를 보실 것을 강추합니다. 

가을이 가기전 주말에 미술관 나들이 나가보시는 건 어떠신지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5. 01:30 미술 이야기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화가는 인기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저서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화가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저서로는 Secret Knowledge 라는 책이 있다.  원제는 Secret Knowledge: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국내에서의 인기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책이다. 물론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고, 엄청난 논란도 일으킨 책.  

그 책에서 그는 1430년대 이후의 많은 유명 화가들이 실은 렌즈와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음을 밝혔다.  대중들은 '놀랍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천재라고 여겨왔던 베르메르나 카라바조와 같은 대가들이 실은 그런 도구와 기구를 사용해서 그렸었던 것을 알게 된데서 오는 '배반감'에 대한 토로도 많았다. 

거기에 엄청난 반대들... 데이비드 호크니를 반대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자신이 미술교사인데, 학생들에게 한 몇 개월만 가르치면 베르메르나 카라바조 같이 그릴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한다며 반증들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폭탄 발언에 대해서는 언론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표하며, 인터뷰 방송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David Hockney, The Lost Secrets of the Old Masters: camera lucida obscura (이 곳의 댓글도 반대글이 엄청나다)


많은 논란과 관심을 불러 일으킨 그의 Secret Knowledge 의 후속편 아닌 후속편으로는 2016년 출판된  A History of Pictures: From the Cave to the Computer Screen 이 있다. 

그리고 이 책은 어쩌다가 내가 번역하게 되어서, 출판과 동시에 번역을 진행해서 책의 출판과 거의 동시에 국내에서도 출판된 바 있다. 그 제목하야 A History of pictures 한국어로 <그림의 역사>

국내판은 여기참조. (참고로 표지도 다 데이비드 호크니께서 직접 아이패드 사용해서 그린거라 책에서 언급하심)  


그 책의 내용에는 다음번에 기회가 있으면 가끔씩 언급할테지만, 요번에는 아이패드 관련 소식만. 

캔버스 위의 회화작품 뿐 아니라, 2차원의 모든 작품들 (사진, 드로잉, 영화의 스틸...)을 언급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제목에서도 'Painting'이 아닌 소문자 p를 사용한 'pictures'로 한 그.  그 책에서 자신은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반드시 사용해 본다고, 그래서 팩스가 나왔을 때에는 팩스를 이용해서 작품을 제작해봤고, 지금은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한참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이 책이 대담집 형식이니까, 이야기 한 것의 기록이므로)  

그 때였다. 내가 '내가 데이비드 호크니 이름을 들은 게 언젠데, 그리고 도대체 팩스 나올때 작업을 할 정도면 나이가 어느 정도 되시나?' 하고 다시 찾아본게.  1938년 생, 만으로 해도 81세 되셨다.  그 때 대단하다 싶었다.  여하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는, 자신이 몰두한 연구의 결과 에 대한 신념.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열심히 연구했겠는가?) 

그리고, 멈추지 않는 탐구열과 성실성. 

물론 호크니는 매 번 옥션에서 고가로 작품이 거래되는 '유명' 작가임엔 분명하나, 대중적 기호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있는 작가이고, 비평계 쪽에서도 그를 인기만을 추구하는 가벼운 작가라는 평도 적잖게 있는 터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그의 원근법에 대한 관심, 동양의 산수화에서 적용된 이동하는 원근법을 적용한 풍경화가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중에 미술사적으로는 어떻게 평가될까'라며 궁금해 하던 작가였다. 하지만, 그 때 그의 열정적인 탐구심과 노력과 성실성에 대해서는 깊은 경의를 품었었다. 

David Hockney, Garrowby Hill (1998), oil on canvas ; 152.4 x 193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David Hockney, Road to Thwing 제작 장면, 2006년


그런데, 오늘 기사를 하나 봤다. 팔순의 그가 아이패드로 작업해서 그 결과물인 스테인드 글래스를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 설치하기로 했다는.  (뉴스는 여기를 참고)

David Hockney and The Queen’s Window. Photo by Alan Williams.

결국, 모든 논란을 재우는 것은 성실과 끈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번 욕하고 비난하기는 싶지만, 한 분야를 열정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오랫동안 연구하고 실험하고 생산물을 만들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신념을 이야기 할 수도 있으나, 진정한 신념은 끈기와 성실한 노력과 함께 성장하고 확립된다. 안그러면 x고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4. 01:30 미술 이야기

블로그를 시작하고 나니 남이 쓴 글들도 많이 읽게 된다. 

그러고서 느낀 것으로는 요새 부쩍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나부터도 짧은 글을 여기저기 쓰기도 했고, 이 블로그에도 일상 속에서의 단상을 이야기 하면서 언급하기도 했으니.

2018년 한국에서의 삶이 복잡하긴 복잡한가보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논하는 1960-70년대 정점을 이룬 미니멀리즘과 생활 속의 '미니멀리즘 (?)'은 많이 다르다.  

언제 한 번 나부터라도 조용히 앉아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선은 그게 다르다는 것은 나라도 나서서 밝혀두고 싶었다.  앞으로도 미술이랑은 관계 없이 살 것인데 그게 뭐 대수냐 하면 정말 상관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혹시라도 앞으로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은 미술관에 자리를 잡고 있는 미니멀리즘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관련 자료를 접할 기회가 올 때, 그렇게 잘못 잡힌 개념 때문에 정확한 이해에 방해를 받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생활 속의 '미니멀리즘'은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맞고 '미니멀'까지만 쓰시는 게 적확하다는 것. 그리고, '미술에서의 미니멀리즘은 개념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게 개인적 소견.      

그러다 접한 전시 소식이 있어 소개. 가을에 전시한번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뉴스에서만 접한 것일 뿐이므로,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관련도 없고, 전시회의 퀄리티에 대해서도 모릅니다만) 

서울대 미술관 전시관에서 미니멀리즘 작품의 전시회가 열린다네요.

【서울=뉴시스】 오완석 언더페인팅 (마이너스) Underpainting (Minus)2014 불투명 무반사 유리 위에 페인트 paint on groundnon-reecting glass 150x100cm 5점 each 150x100cm 5 piece set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9. 07:00 미술 이야기

Edgar Degas (1834-1917) The Bellelli Family (1858-1867) oil on canvas ; 250 x 200 cm, © RMN-Grand Palais (Musée d'Orsay) / Gérard Blot 



개론서에는 편의상 인상주의에 포함시키고, 실제로 까칠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에드가 드가는 하지만, 살아생전에는 자신의 작품을 인상주의라고 하는 것에는 크게 거부감을 표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에드아르 마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집안의 자제였던 드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는 이탈리아와 미국 등지를 다니면서 집안을 일으키고자 노력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고모를 방문해서 그녀의 가족을 그린 초상화이다. 


화면에는 고모와 그의 남편 벨레리 남작과 그들의 두 딸들이 모여 일단 가족 초상화의 형식을 띈다.  벽에는 최근 작고한 그의 아버지이자 고모에게는오빠인 오귀스탕 드가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드가의 고모는 화면의 왼쪽에 두 딸과 함께 자리하고 서 있고, 남편인 남작은 화면의 오른쪽에 놓인 의자에 등을 돌린 채 앉아서 딸들과 아내가 있는 쪽을 바라다보고 있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가족 초상화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은 인상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설득력이 실릴만큼, 이 작품은 북유럽의 초상화와도 같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이 가족 초상화에서는 지체 높은 귀족의 '화목한 가정'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일설에는 고모부가 처녀시절의 고모를 억지로 범해 결혼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화면 전반에는 고모의 고고함에 미치지 못하는 듯한 이탈리아인 고모부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남편과 아내는 화면의 좌우 가장자리로 멀리 떨어져 있고, 7세와 10세가 되는 조카들은 놀이용 앞치마라고 할 수 있는 pinafore를 착용하고 있지만, 다소 경직되어 보인다. 상중이라 검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입을 꽉 다물고 있어 귀족적 풍모를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모부는 편안한 옷을 입고 가족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지만 그 사이에는 세로선이 강조된 문과 거울의 틀, 그리고 중간에 놓인 탁자로 이들의 사이는 단절되어 있다.  이 둘의 사이가 불편한 것에 대한 암시는 의자에 걸터앉은 조카가 한쪽 다리를 미처 다 뻗지 않고 접은 채 앉아있는 모습, 화면 하단의 오른쪽의 강아지가 잘려나가 화면에 다들어오지 않게 그려진 점 등에서 더 강조된다.  




사실주의자로 불리기 원했던 드가는 전통적 화법으로 그려진 작품을 통해 모델들의 심리를 꿰뚫는 예리한 초상화작품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그가 그린 수 많은 발레리나 그림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7. 08:00 미술 이야기

이번에는 한 남자가 안개로 자욱한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다.  

저번의 작품이 '실내'의 '여인'이라면 이번에는 '거친 자연'속의 '남성'이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등을 보이며 서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작품이다.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c.1817),  oil on canvas ; 98 x 74 cm, Kunsthalle Hamburg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는 “뒷모습의 인물 (Rückenfigur, 혹은 figure from the back)"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인물을 많이 그렸다.  이 '뒷모습의 인물'들은 관람객이 그림 속의 인물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지극히 감상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품은 이러한 장치를 통해 그 뒷모습의 인물들과 함께 자연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게 만들고 있다. 

 

그의 작품은 소위 알레고리 풍경화인데, 밤 하늘이나, 안개낀 아침, 헐벗은 나무나 고딕 풍의 폐허를 바라보는 사색적인 인물이 주를 이룬다. 그의 이러한 상징적인 그림은 보는 이로하여금 감상적인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고전주의적 화풍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거대한 대 자연 속의 미미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다름 아닌 신 앞에서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대한 자연으로 드러나는 신의 존재를 그린 그의 그림의 크기는 실제로 접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작은 크기이다.  (실제로 아주 작다기 보다는 그 이미지의 규모에 비해 작게 느껴진다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를 필두로 대작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 더욱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고.)  

 

Caspar David Friedrich, Monk by the Sea (1808-1810)  oil on canvas ; 1.1 x 1.72 m, Alte Nationalgalerie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바닷가의 승려 (Monk by the Sea)'라는 작품은 아주 작은 작품은 아니지만, 소위 대작이라고 하는 큰 캔버스에 작품과 비교하면 그리 큰 크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자연을 마주하고 겸허한 태도로 신에 대한 명상을 하는 승려의 모습은 'size'가 아닌 'scale'면에서는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드물정도이다. 

 

Seashore by Moonlight (1835–36). 134 × 169 cm. Kunsthalle, Hamburg

 

1835년 처음 뇌졸증으로 쓰러진 이후, 그는 작품활동을 계속 할 수 없었다. 위의 작품은 그가 남긴 마지막 대작이라고 알려진 그림이다.  달빛을 받으며 항해에서 돌아오는 모습은 그의 인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그려져 그 의미가 남다르다.  낭만주의가 유행하던 한 시기를 풍미했던 화가는 이후 낭만주의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미술계에서 잊혀져 친구들의 온정에 기대어 생활하며 쓸쓸하게 인생을 마쳤다.  그의 명성은 표현주의자들이나 상징주의자들에게 그의 작품세계를 재평가 받으며 부활되는 듯 했으나, 나치가 좋아했던 작품으로 낙인 찍히면서 두번째의 몰락이라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이 재평가 받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나 되서야 되서 였다.  그야말로, 그의 작품 인생은 독일 낭만주의의 모토 처럼 '질풍 노도의 시대'와도 같은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작품을 통해서는 격정적 감정보다는 고요한 명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작품 철학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I have to stay alone in order to fully contemplate and feel nature. The painter should paint not only what he has in front of him, but also what he sees inside himself.” —Caspar David Friedrich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6. 03:44 미술 이야기

한 여인이 두손을 다소곳이 앞으로 모은 채, 고개만 내밀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Caspar David Friedrich, Woman by a Window (1822) oil on canvas ; 44 × 37 cm, Alte Nationalgalerie, Berlin


젊은 여인이 서있는 곳은 독일을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의 드레스덴에 있던 스튜디오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카홀리느 (Caroline), 화가의 아내이다. 그녀는 남편의 스튜디오 창 밖으로 보이는 엘브 강과 그 위를 지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린 푸른 빛의  포플러 나무들로 보아, 때는 바야흐로 북구의 긴 겨울을 나고 맞이하는 봄이다. 

강한 수직선으로 이뤄진 그녀를 둘러 싼 모든 환경과 배경과 그녀의 몸과 드레스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곡선의 대조는 그녀의 심리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먼저, 강한 수직이 주를 이루는 실내의 구조를 보라!  창틀에서 마루바닥에 이르기까지 실내에는 수직선이 위주를 이룬다.  특히, 그녀의 양쪽에 내려오고 있는 창 옆의 두 기둥은 그녀를 속박하고 있는 듯하고, 곧게 뻗은 배의 마스트, 저 멀리 보이는 곧게 뻗은 포플러 나무들, 모든 것이 수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 둥글게 말아올린 머리, 그녀의 작고 둥근 어깨, 주름이 잔뜩 들어간 그녀의 드레스... 이 모든 것은 그녀를 둘러싼 수직의 세계와는 상반된 것으로 보인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그녀는 외부 세계를 동경하며 그녀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잔뜩 내비치고 있다.  

한편, 그녀의 모습과 실내의 모습, 그리고 어두운 실내와 찬란한 태양이 비치는 외부의 풍경에서 이중적인 태도와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실내광이 따뜻하게 채워진 집 안에서 아늑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두손은 마주 모으고, 동그랗게 만 몸은 창 쪽으로 기울이고 고개는 길게 창 밖쪽으로 빼고 서있는 그녀의 뒷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안락한 집안에서 벗어날 용기는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집 앞 수로 앞을 지나는 배가 이끌어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인의 심정이 잘 드러난다.  

그녀의 호기심이 집안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이기게 될 때, 그녀는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녀는 잠시 후, 한차례의 꿈을 꾼 듯 멋진 세계에의 상상을 접고 조용한 일상으로 복귀할지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4. 07:00 미술 이야기

Georges Seurat (1859-1891),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1884-86)  oil on canvas ; 207.6 × 308 cm,  Art Institute of Chicago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의 대표작은 단연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이다.  

인증샷  ^^  혹시 직접 작품을 본 적이 없는 분은 대략 사이즈를 가늠해보세요~

만약 쇠라가 오래 살았더라면 미술의 지평이 바뀌었으리라 평하는 천재적인 화가.  그는 당시 유행하던 색채 이론을 깊이 연구하여 역작인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는 그가 2년간의 연구와 다수의 습작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사물에 고유색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Michel-Eugène Chevreul 등의 연구로 여러가지 색채이론이 대두되었다. 시각의 인식와 대뇌의 인지 관계에 대한 차이에 대해 알게 되며, 색채 대비로 인한 착시, 보색 이론 등이 밝혀졌다.  보통 사람들은 이과적 성향과 문과적 성향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쇠라 같은 경우는 이과와 문과의 성향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던듯 하다.  당시의 과학서와 이론서를 섭렵하면서 그 이론을 <그랑자트>에서 실현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최종적으로는 캔버스를 늘려 가장자리를 빙 돌아가면서 채색을 하였는데, 거기에도 보색이론을 적용하였다] 

Seurat, Child in White, 1884-85,  Conté crayon on paper.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그리고, 위의 작품은 종이 위에 콩테 크레용으로 그린 드로잉으로 <그랑자트>의 작품 속의 어린 소녀의 습작이다.  직접 보면, 과연 흑과 백 사이에 그토록 다양한 단계의 채도와 명도가 존재했었나 싶을 정도로 감탄하게 된다. 그 다채로운 흑과 백이 가슬가슬한 미샬레 종이의 표면의 질감과 조화를 이루는데, 자세히 보노라면 그 다양하고 심오한 세계에 빠져들 듯한 느낌이 든다.  

Georges Seurat,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 의  세부.  중앙 부분에 위치한 어린 소녀  

이 소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작품 <그랑자트>의 캔버스에서의 대각선이 만나는 중심에 자리한 인물로 관람자 쪽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서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순수한 소녀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이쪽으로 바라보게 그림으로써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역할, 그림에서의 focalizer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르주 쇠라는 이과 문과를 섭렵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색상에 대한 감수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흑백에 대한 안목도 탁월했음이 분명하다.  과학이면 과학, 섬세한 감수성이면 감수성, 색상이면 색상, 흑백이면 흑백 어느 하나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 ; Seurat, L’écho (Echo), study for Bathers at Asnières (1883–84)  Conté crayon on Michallet paper ; 31.2 x 24 cm, Yale University Art Gallery 

수 많은 드로잉들 속에는 얼마전 다뤘던 <아니에르에서의 해수욕>에 등장한 등굽은 소년도 있고, 손나팔 부는 소년도 있다.  완성작에서 볼 수 없는 적막한 고요가 아련함과 함께 전해져 온다.  

<그랑자트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

그리고, 위의 여인을 보라!  눈,코,입 하나도 확인할 수 없으나, 저 여인은 분명 아름다울것만 같지 않은가!

그가 살던 19세기 말의 프랑스에도 달은 어김없이 뜨고 졌나보다.   짙은 어둠이 깔린 풍경과 휘영청 밝은 달을 쇠라는 오직 흑색의 농담 조절만으로 표현했다. 


추석입니다. 달보고 소원 많이 비시라고 마지막에 달 그림 올렸네요.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23. 06:57 미술 이야기

리움은 사립 미술관 중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일 것이다.  몇 차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리움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다.  현대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 혹은 남길 화가들의 작품들이 비교적 빠짐없이 적어도 한 작품씩 다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 작품들이 다 개론서에 실릴 법한, 그 작가의 장점이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대표작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대표작들은 이미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덜 알려진 작품들이라도 실제 구매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가격은 천문학적 금액이므로 대표작들을 골라서 소장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이해는 된다. 또 장점은 개론서나 여타 미술관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서 아~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하고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한번은 상설 전시관을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 천장을 쳐다봤는데, 거기엔 이런 작품이 있었다. 

Antony Gormley, Feeling Material XXIX (2007). Stainless steel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공사하다가 남은 철사를 미처 치우지 못했나 할 철사 뭉치.  아니, 설마....하며 라벨을 보니 맞.았.다. 그것은 안토니 곰리 (Antony Gormley: 1950~)의 작품이었다. 

안토니 곰리는 198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영국의 중견 조각가이자 설치 작업가이다. 1994년,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그래도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상 중에 하나인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한 이래 다양한 수상 경력을 쌓아가면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2014년에는 기사작위도 받아서 이제는 Sir Antony Mark David Gormley, OBE*이다.  이제는 영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고, 많은 명소들에 그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그의 공식홈페이지는 여기를 클릭!]

2014년 4월 15일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수여받는 안토니 곰리 (photo by Jonathan Brady/PA Wire)

공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는 그의 작품은 실존 철학, 불교 사상 등의 영향이 보이는 심오한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이라고 느낀 작품은 작가의 신체를 철로 주조한 동상들이 수없이 해변가에 늘어서 있는 <Another Place>이다.

Antony Gormley, Another Place, Crosby Beach, Liverpool/England 

이 작품은 리버풀 지역의 크로스비 해변에 철로 주조한 동상 100점을 모두 얼굴이 바다 쪽을 향하도록 하여 설치한 작품이다.  작가의 나체를 그대로 본 뜬 이 설치는 유럽에서 두 번 전시한 적도 있는데, 한때에는 외설논란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2007년 이후에는 이곳에서 영구 설치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위의 사진 처럼 해변가에 세워진 동상도 있으나, 밀물 때엔 상당부분 동상이 잠기게 되는 것도 있는데,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끼도 끼면서, 파티나 혹은 버디그리라고 불리는 녹청이 끼게 된다. 이런 경우,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시간과 자연이 된다. 

그 곳을 찾은 방문자들은 이들 조각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조각에 옷을 입히거나 하면서 색다른 연출을 한뒤 촬영하거나 해서 그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또 다른 작품으로 변신한다. 이 때 동상들은 출연자이기도 하면서 배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그냥 그곳을 지나는 이들과 바다를 지나는 배와 함께 서 있는 동상을 찍은 사진들을 찍기도 하는데, 그 자체로 또 다른 작품이 된다.   특히, 어떤 작품들은 얼마전 여기 블로그에 올렸던 호쿠사이의 우키요에 속의 파도 그림과 같은 미학과 철학이 담긴듯 하기도 하다. 

크로스비 해안에 설치된 곰리의 작품 <Another Place> 그 자체, 그리고 또 그것을 촬영한 사진들. 그 속에는 세월의 흐름과, 자연의 변화, 또 그 곳을 찾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어우러져 끊임없이 색다른 풍경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매번 다른 컨텍스트를 만들어낸다. 자연과 인공, 자연과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의 조건, 숙명, 동과 정, 생과 사... 수 많은 생각할 거리를 끊임없이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과 어우러질때, 무척 아름답다.

[더 많은 이미지는 이 링크를 참조] 

그 밖에도 왠만한 건물만한 크기의 철조 구조물로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야외에 설치하는 작업들이 있다. 이 경우 성긴 철 구조물 사이사이로 바라보는 쪽의 풍경이나 햇살이 투과되는데, 그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빛의 반사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래 작품은 그 철 구조물을 인간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내, 네덜란드의 렐리스태드 지방의 강둑에 설치되어 있는 <Exposure>라는 작품이 있다.   현지인들이 '용변을 보고 있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하는데, 아닌게 아니라.... 하지만, 원체 큰 사이즈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딴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상기되는 여러가지 감상이 생긴다.   전격의 거인이 떠오르는 이 작품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보자면, 오딧세이가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은 사이클롭스가 저러고 쪼그리고 앉아 떠나는 배들을 보고 있었지 않을까...

Antony Gormley, Exposure (2010) in Lelystad/The Netherlands. photo by Herman Verheij

그리고 수년전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작품이 아래 작품인데, 같은 <Feeling Material>의 제목을 달고 시리즈 번호만 다른 이것이 현재 리움의 작품과 비교적 유사한 작품일 것이다. 

Antony Gormley (b. 1950), Feeling Material XIV (2005),  4mm square section mild steel bar ; 224.8 x 217.9 x 170.2 cm 

위의 작품은 실제 인간의 크기를 훌쩍 넘는 크기의 엉킨 철사뭉치들이 어렴풋이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주의 혼돈에서 탄생하는 인간과도 같은 모습이다.  무에서의 유가 창조되는 순간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건가?   무질서 속의 질서감이 느껴지면서 왠지 철학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Feeling Material>이라는 제목에서 'material'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다양하다. 물질, 혹은 질료 하지만, 뭔가 구체적이고 중요하다는 의미도 있지 않은가?   

다시 리움으로 돌아와보자.   아닌게 아니라, 처음에 볼 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1 미터 남짓한 작지 않은 철사더미에서 작은 우주의 소용돌이가 보이는 듯도 하다.  저 혼돈의 끝에는 어떤 생명이 탄생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Antony Gormley, Feeling Material XXIX (2007). Stainless steel

그러나, 솔직히, 이 조그만 철사 뭉치를 보는 것 만으로, 안토니 곰리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것 같다.  더구나 애당초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이가 이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물론, 미술관에 그의 거대한 등신상을 가져다 와서 다른 작품들 사이에 좁게 끼워 세워놓은들 <Feeling Material XIV> (2005)와 같은 작품그렇다치더라도 그 자연 속의 그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는 감동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리움은 종합선물세트인데, 때로는 잘 안팔리는 연양갱이 들어 있는 종합선물세트이므로, 양갱의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명품 장인이 운영하는 화과점을 가서 사먹어 봐야 하듯이, 그곳에 있는 작가들을 하나씩 천천히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종합선물세트의 연양갱이 맛이 없었다고 해서, 양갱이라는 먹을거리 자체의 맛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OBE: Offic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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