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물병과 사자
2019.07.13 18:52 미술 이야기

'빨강색'하면 머릿 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혹자는 붉은 장미꽃, 혹자는 아름다운 여인의 붉은 입술, 많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있겠지만, 의외로 빨강색은 내가 좋아하는 자주색과 연관이 깊다. 그도 그럴것이 보라색 혹은 자주색은 빨강과 파랑의 혼색이기 때문이다.  빨강색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상인데 (생각해보니 나는 싫어하는 색이 그닥 없는거 같네) 빨강과 자주가 절묘하게 혼합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Mark Rothko,  Untitled (Red and Burgundy Over Blue) , 1969, oil on paper mounted on board. 

'무제'라는 제목에 이어 괄호 안에 (파랑위에 빨강과 버건디)라는 제목은 내가 좋아하는 색상들이 다 모여 있어서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캔버스가 아닌 종이위에 그려진 유채라서 그런지 표면의 질감이랄까 마티에르감이 그의 다른 작품과는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몇 년전 경매에도 나왔던 이 작품 이외에도 로스코의 작품은 붉은 색이 많다.  작가의 생존시에도 엄밀히 비밀을 엄수했기에, 아직도 정확한 작법이 밝혀지지 않은 로스코의 작품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각형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톤이 다양한 붉은 색이 어우러진 그의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닌게 아니라 물 속에 잠겨 있는 색면이 물결의 움직임에 따라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한 관람자라면, 작품 앞에서 통곡을 할 것이라 작가는 말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을 보고 '통곡'까지는 아니라도 왠지모를 울컥함을 느꼈다는 사람은 가끔 볼 수 있고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해두는 바이다. 빨강색 색조가 주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초기의 작품에 많고, 이후 그의 작품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1970년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파랑색이 더 강해지면서 밤하늘 같은 푸른색이나 머룬 색, 어두운 갈색을 거쳐서 점점 검은색에 가까워지게 된다.  

Mark Rothko, ‘Untitled (Red on Red),’ 1969. Courtesy Sotheby’s 다양한 빨강의 변주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Mark Rothko, Red, Orange, Orange on Red (1962) oil On Canvas ; 233 x 204.5 cm, Saint Louis Art Museum  이 작품은 창을 통해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크 로스코도 빨강의 변주곡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가이긴 하지만, 미술사를 통틀어 빨강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뭐니뭐니 해도 앙리 마티스라고 할 것이다. 그의 1911년 작품 <붉은 스튜디오>는 야수파의 리더이자, 색채를 해방시킨 화가로 칭송받는 화가인 마티스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색상을 다루는지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자연의 재현'이라는 굴레에 묶여 있던 회화에서는 사물에는 으레 정해진 '색'이 있었다. 하지만, 마티스가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얼굴 한가운데 녹색 선을 과감하게 그어버림으로써 작품 별명을 녹색 선 (Green Stripe)라고 불리게 만든 이후, 화가들은 더이상 일대일 식의 정해진 색상의 규범에 얽매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마티스의 공로는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초등학생이 나무나 산을 빨갛게 색칠하고 있는 것을 본 선생님은 어린 학생에게 조용히 빨강색 크레파스 대신 초록색 크레파스를 쥐어줄지도 모르고, 아니면 학생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요새 아이한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볼 지도 모를 일이다.  

Henri Matisse, The Red Studio (1911)  빨강색 하나만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표현한 마티스는 단연 '색채를 해방시킨 작가'로 불릴만 하다.  

[인터넷 상의 해상도와 색조가 제각각이라 마티스의 진짜 빨강색이 무엇인지 단언할 수는 없지만, MoMA의 이미지를 참고해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 붉은 색이라면, 예전 댈러스의 유명한 콜렉터 라초프스키 (Rachofsky)의 개인 미술관인 라초프스키 하우스(The Rachofsky House)에서 본 마크 퀸 (Marc Quinn)의  <자신 (Self)>이라는 작품이다. 방 한켠에 투명한 플랙시 글래스 안에 들어가 있는 냉동 두상은 작가 마크 퀸이 자신의 얼굴 모양의 본을 뜬 뒤에, 조금씩 수혈한 자신의 피 5.6리터를 모아 액상 실리콘을 혼합해서 얼려 만든 작품이다. 냉동장치에 연결되어 얼어있는 상태로 보존된 이 작품은 둘러쌓인 공간의 흰색 벽과 대조되어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그곳을 안내해주던 그곳의 큐레이터가 전해주는 에피소드 때문에 더더욱 내 머리 속에 각인되는 결과가 되었다.  말인 즉슨, 그 뜨거운 텍사스의 기후 속에서 냉동장치가 고장이 난 적이 있어서 한번은 그 작품이 폭발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피가 흰벽의 방 사방에 튀어서 그것을 청소하는 데도 힘들었고, 이후 작가가 다시 수혈을 거쳐 작품을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왜 그런 작품을 만드는지, 또 왜 그런 작품을 수집하는지 이해불능이겠지만, 자신의 모습을 가감없이 본을 떠서 그 속에 한 사람의 몸 속에 존재한다는 피의 양을 사용해서 만드는 두상은 현대판 '바니타스 정물화'인지도 모른다. 

Marc Quinn, Self (1991) 작가 마크 퀸은 자신의 얼굴을 그대로 본을 뜬 캐스트에 자신의 피 5.6리터를 수차례의 수혈을 통해 모은 뒤 이 속에 채워서 얼려서 '자신 (Self)'라는 작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보통 인체에 존재하는 피의 양 5.6 리터라고 하는데서 착안한 5.6리터이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생과 사를 함께 언급하는 작품이라고.  피는 시간이 지나면 굳기에 액상 실리콘 등의 화학약품을 혼합해서 만들고 이 조각은 플랙시 글래스 안에 보관되고 냉동장치가 연결되어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유명한 콜렉터인 라초프스키가 댈러스에 지은 일종의 서머하우스이자 개인 미술관. 

동굴 속에서 살던 석기인들은 돌에서 추출한 황토색인 '오커(ochre)'를 사용했고, 이후 진사 혹은 주사라고 부르는 시나바 (cinnabar)라는 광물에서 붉은 색을 추출하였다. 이 시나바를 분쇄한 것을 버밀리언 (Vermilion)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이 밖에도 금과 은 다음으로 비쌌다는 카마인 (Carmine)은 특이하게도 콩처럼 생긴 벌레,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충 혹은 코치닐 (Cochineal bug)을 분쇄하여 제조했다고. 마티스가 주로 사용한 붉은 색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색상으로 카드민 레드 (Cadmine Red)로 전통적인 버밀리언을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색이다. 붉은 색을 많이 사용한 로스코의 경우 리솔 (Lithol)이라는 안료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 안료의 경우 결정적으로 빛에 약한게 문제. 로스코 채플에서 천정에 난 창을 통해 자연스런 자연광이 작품에 비추도록 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가림막을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색의 역사를 훑다보면 오늘날 만큼 생활 속에 다양한 색이 풍요롭게 존재하는 시기도 드물었던 것 같다. 쪼꼬마한 벌레들을 직접 잡아 으깨서 빨강색을 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붉은 색의 옷이나 구두를 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7.11 02:03 일상 이야기

글을 기한안에 써본 사람은 크게 공감하겠지만, 꼭 원고가 아니래도 숙제가 밀려있는 학생이라던가, 회사에서 맡은 일의 데드라인이 닥친 회사원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

누가 보내줘서 알게 된건데... 재밌지만, 내가 이걸 남에게 보낼 일은 없을거 같아 구매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여기다 올리면 저작권에 위배가 되려나?  아님 특정 이모티콘으로 지적을 받으려나?

혼자 보긴 아까워서 일단 한번 올려본다. 

'혹시 게임하고 계신가요? 키보드 소리가 찰지네요~' 난 게임은 안하지만 이 대목이 젤 웃기다.   '이것저것 고민만 하고 계시진 않나요? 멍만 때리고 계신건 아니죠?' 사실 이 대목은 찔려서 그렇게 웃을수만은 없는게 함정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7.10 01:20 미술 이야기

며칠전 파랑색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 오늘은 파랑색 그림을 발견~!

Anne Packard라는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는데, 우연히 페북 사이트에서 발견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고, 그 분의 웹사이트를 보고 미국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밖에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은 갖고 있지 않다. 하긴 그게 '내 맘대로 작품보기'의 뽀인트! 

작가 이름으로 구글 검색을 해보니, 작품들이 대체로 낭만주의적 정서가 풍기는 풍경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 나는 아래의 그림 <푸른색 위의 노젓는 배>가 가장 마음에 든다.  작가는 파랑색에 꽤 친숙한 것이 분명하다. 한 화면에 얼마나 다양한 톤의 푸른색이 사용되었는지를 보라!  그리고 같은 톤의 푸른색인데도 그 와중에 깊이감과 원근감도 느껴지고, 무엇보다 왠지 저 노젓는 사람이 어느새 영원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다. 

Anne Packard, Row Boat on Blue
Henri Matisse, The REd Studio (1911)

앤 패커드의 작품은 한편으로는 마티스의 <붉은 스튜디오>(1911)을 연상시킨다. 솔직히 위의 이미지가 마티스의 색조를 잘 재현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이트에는 좀더 빛바랜 붉은 색인데.... 위의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들 중 가장 맘에 드는 빨강색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가져왔다.  직접 MoMA의 사이트의 색조를 확인해보고 싶으면 여기를 클릭!

아무래도 다음번 글은 빨강색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7.08 19:54 미술 이야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제 파랑색에 관한 글을 쓰다가 자유연상 작용으로 오늘 보라색에 대해서도 쓰게 되었다.  어제 파랑색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라고 밝힌 바가 있고, 나도 파랑색을 좋아한다고 썼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밝고 청아한 보라색보다는 좀더 붉은기와 검은톤이 도는 버건디나 머룬 같은 자주색을 가장 좋아하지만 말이다.  무엇인가 색을 골라야하고, 버건디나 머룬이 없으면 바이올렛 색이라도 고른다.  보라색은 다 좋다.  색상 때문은 아니지만 심지어 '마룬 5'라는 그룹도 좋아한다.  (옛날엔 노래방에서 가수 강수지 씨의 '보랏빛 향기'를 즐겨부르기도...하하하 전혀 안어울리는 분위기이긴 하다.)   예전에 내가 '보라색' 좋아한다고 하면, 으레 '보라색 좋아하는 사람은 천재 아님 정신이상자'라던데...라며 내가 어느쪽에 속하는지를 파악하려고 실눈을 뜨면서 나의 정신상태를 가늠해보려는 사람들이 좀 많았는데.  난 천재도 아니지만, 딱히 현재 한국사회 기준으로 봤을 때, '정신이상자'인거 같지는 않으니 그런 설은 맞지 않는걸로.  하지만, 보라색과 함께 연상되는 것은 상반되는 것이 많긴 하다. 

유럽과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살펴보자면, '보라색' 혹은 '자주색'에 해당하는 purple은 왕실이나 신성성 등 귀중한 것, 희소성이 있는 것으로 연상된다. 때로는 마법이나 미스테리와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보라색이 분홍분홍 분홍색과 함께 등장하면 우~ 에로티시즘, 여성성, 그리고 유혹적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보라색,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자주색의 보편적 이미지가 왕실을 연상시키는 데에는 서양에서는 역사적 유래가 깊다. 비잔틴과 신성로마제국을 통틀어 통치자들이 입는 의상의 색상이자 로마 카톨릭의 교주들의 의상의 색상이기도 했다. 유사하게 일본에서도 자주색은 왕과 귀족들을 연상시키는 색상이기도 하다. 

Ravenna의 San Vitale 성당의 모자이크 세부 -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겉옷이 원래는 자주색이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1세와 그의 시종들 모자이크,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Justinian I in the Basilica of San Vitale, Ravenna. consecrated 547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부인인 황녀 테오도라와 시종들의 모자이크,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 Mosaic of Empress Theodora and attendants in Basilica of San Vitale in Ravenna Italy.

왜 그러면 보라색은 왕실 전용의 색상이 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염료의 색상을 만들기가 어렵고 따라서 가격이 무지무지 비쌌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왕족이 아니면서 자주색 옷을 함부로 입었다가는 대역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았다고도 하니 요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다 싶다.

영국을 너무 사랑하여 영국과 결혼하느라 처녀 여왕으로 지냈다고 칭송받는 대영제국을 이끈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실은 '나보다 예쁜 애들 다 꺼져!'라는 정책을 펴신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신만 화려한 옷을 입고, 다른 여인들은 모두 수수한 색상의 옷만을 입게 했다고 한다.  이 당시에도 보라색을 함부로 입었다간 아주 큰 벌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Queen Elizabeth in Tyrian Purple (mollusk)

 

1998년의 영국 영화 <엘리자베스 1세>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분한 케이트 블랑쳇.  짙은 보라색의 복장을 차려 입은 배우의 모습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보라색이 너무 잘어울리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왕족이라서 그런건가?

알고보면 이 보라색은 뿔조개에서 채취하는 것이라고 한다.  조개 하나에서 정말 개미 눈물만큼 밖에 얻을 수 없었고 채취방법도 까다롭기에 엄청난 노동량이 필요했다고. 그러니 염료의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었다고. 요새도 해안가에 이 조개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곳도 있다하니, 이 조개로서는 체액의 색상이 인간들 눈에 이뻐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대량학살을 당해왔던 셈이다.  

Bolinus brandaris 라는 어려운 이름의 이 뿔소라는 자주색 염료를 채취하는데 주로 사용했던 관계로 purple dye murex 혹은 the spiny dye-murex라고 불린다. 
뿔소라를 각각 다른 각도에서 찍은 모습

이에 비해 멕시코 인들도 이 뿔소라의 염료를 이용해서 자주색을 채취했지만, 죽이는 대신 뿔소라를 염색하고 싶은 천 위에다 놓고 소라들에게 바람을 쐬는 방식을 택했다 한다. 그렇게 바람을 불어넣어 주면 이 소라들이 스스로 체액을 짜내고, 그 체액이 점차 천에 스며들며 자연스레 염색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염색이 완전히 끝나면 멕시코인들은 이 소라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주고, 산란기에는 이러한 행위조차 금했다고 한다. 덕분에 이 뿔소라가 멸종하는 일은 면했다고 하는데, 고대 멕시코인들은 참으로 지혜롭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태양신을 믿어서 인간제물의 피를 태양에게 바치느라 살아있는 인간의 심장을 꺼내서 제사 지낸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긴 하지만 말이다) 

p.s. 자연에서 보라색을 추출하는 방법은 그밖에서 식물들에서 얻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슈퍼푸드들 -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의 각종 딸기들과 나무 껍질이나 체리나무의 뿌리등에서도 추출할 수 있다고 한다. 자연 속의 색상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7.07 17:23 미술 이야기

구글 어스에서 마우스를 잘못 놀려 바다 쪽으로 커서가 움직여서 확대 화면이 되기라도 하면 컴퓨터 스크린에 검푸른 색만 가득할 때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그렇게 화면 전체가 검푸른 색이 될 때 왠지 모를 공포심이 느껴진다. 난 그렇게 느끼는 내가 좀 유별난가보다 라고만 느꼈는데, 우연히 나보다 더 예민하게 푸른 색에 공포를 느낀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 같은 경우, 푸른 색 벽지의 벽만 봐도 공포가 느껴지고, 심지어는 푸른색 원피스 같은 옷도 무서워서 못입겠다고 했다.  언젠가 본 설문 조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 파랑색이었다는 걸 기억하는데, 그게 결국 개인차가 있다는 얘기다.  나의 경우 극단적 파랑색 공포증은 아니고, 심연을 연상시키는 검푸른 바다로 가득찬 화면에서 '죽음'과 '숨막힘'이 연상되어 무섭다고 느껴지는 것이지,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푸른 색 계열은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다. 사실 심연에 대한 연상은 정신분석학이나 종교적 측면에서 더 깊이 할 이야기도 많겠지만, 오늘은 일단 봐서 기분 좋은 파랑색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파랑색을 좋아한 예술가는 바실리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루이 브루조아 등 셀 수 없이 많지만,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파랑색은 뭐니뭐니해도 이브 클라인 (Yves Klein: 1938-1962)의 IKB (International Klein Blue)일 것이다. 서양미술에서의 전통적 푸른색 울트라마린을 연상시키지만, 라피스 라즐리라는 자연석에서 추출한 것이 아닌 합성 안료로 제작법을 특허받은 색상이다. 

이브 클라인 (1928-1962)가 자신의 IKB를 손바닥에 찍어서 들어보이고 있다. Yves Klein with his signature International Klein Blue. Photograph: . Charles Wilp/BPK Berlin

 

Yves Klein, IKB 191 (1962) monochromatic painting

단명한 이브 클라인이 보다 깊은 탐구를 미처 다 못한 그의 푸른색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 적어도 그에게는 시공을 초월한 색상이었고,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색상이었다. 그가 발명한 푸른색과 스펀지를 이용한 작품이 200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6,716,000에 거래된 것을 보면, 그의 파랑색의 인기는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Yves Klein, RE I (1958), Dry pigment and synthetic resin, natural sponges and pebbles on plywood ; 78 1/2 x 65 x 5 inch, Museum Ludwig, Cologne, Germany © The Estate of Yves Klein c/o ADAGP, Paris  $6,716,000 at Christie's New York in November 2000

일설에 따르면 여러가지 기본색들 중 가장 늦게 '발견'된 색이 파랑색이라고도 하고, 하늘을 파랑이라고 느끼는 것은 파랗다는 교육을 받고 나서라고 하는데, 적어도 고대에는 자연 속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색이 아니라는 얘기다. 파랑색을 알고 사용했던 가장 오래된 자취는 고대 이집트의 예술에서이다.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 파랑 (Egyptian blue)는 최초의 합성 안료로 그들이 만든 조각품이나 벽화등에 사용된 은은한 푸른 색이 그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조각품, 하마 (Hippopotamus)(c. 3800-1700 BC), Louvre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 그려진 연못이 있는 정원의 그림 속에 다양한 색조의 푸른색이 사용되어 있다.  Pond in a Garden from the Tomb of Nebamun, Thebes, Egypt. Late 18th Dynasty, around 1350 BC

중세 때부터는 푸른색의 최고봉, 울트라캡숑 비싸고 귀중했던 "울트라마린 (Ultramarine)"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라피스 라즐리 (Lapis Lazuli), 청금석이라고 하는 귀중한 준보석으로 만든 안료라 성모 마리아의 망토에만 사용될 수 있는 아주 값비싼 안료였다.  천하의 라파엘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 안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에 아주 쪼끔씩 아껴서 써야만 했고, 때로는 안료의 품귀현상으로 작품제작에도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고 한다.  '진주 귀걸이 소녀'로 유명한 요하네스 베르메르도 이 안료 구입하는데 돈을 많이 써서 엄청난 빚을 지기도 했다는데....

Johannes Vermeer (1632-1675), Girl with a Pearl Earring (c.1665)

이토록 값비싼 푸른색 안료를 대체하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여러가지 대안안료가 개발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18세기 만들어진 '프러시안 블루 (Prussian Blue).' 프러시아의 염료제작자가 우연히 만들어낸 이 화학염료는 장-앙토안 바토와 같은 유럽의 화가들 뿐 아니라 일본까지 퍼져서, 우키요에 화가들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호크사이, 카나가와의 큰 파도 神奈川沖浪裏 (1829-33)  

그 밖에 파랑색은 '청사진 (blue print)'라는 단어에도 드러나듯이 사진에도 활용되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 피카소의 '청색 시대 (Blue Period)'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표적인 색상으로 자리잡아왔다.  2009년에는 새로운 파랑 안료 개발 되었다고 하는데, 어떤 색상인지 궁금해진다. 

색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맘에 들어하는 푸른색은 아래의 푸른색이 아닐까 한다.

Tiffany Blue Box®. © Tiffany & Co. Courtesy of the Tiffany & Co. Archives

 

Michael Moebius, Audrey Tiffany Blue 2, 2018Eternity Gallery

티파니가 언제부터 이 독특한 청록색을 독점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한다. 다만 만국박람회 출품 당시부터 이 청록색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푸른색과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낀다는 초록색을 절묘히 섞은 '티파니 블루'.  물론 포장지 색에서보다 뚜껑 열었을 때 내용물에 더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의 티파니 전시장
1878년 티파니 포장 박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6.23 03:24 미술 이야기

'역사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오늘날 생존 작가들의 작품들 중 경매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작품들을 설명할 때, 특히 그 작품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다.

2019년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92,210,000로 거래된 제프 쿤스의 <토끼>

올해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의 경매에 제프 쿤스의 강철로 만든 <토끼 (Rabbit)> (1986)이 출품되었는데, 불과 85.1 cm에 남짓한 이 조각품의 예상 가격은 $50,000,000~70,000,000이었다. 그리고, 경매 결과는 예상 가격을 훌쩍 넘긴 $92,210,000 (약 1,073억 상당)였다. 이번 경매로 이 작품은 생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이는 작년 11월, 같은 경매에서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 (두 인물이 있는 풀장)>(1972)이 $90,300,000 (약 1,050억 상당)으로 생존 작가의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을 세우며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지 불과 6개월만이다.    

벽화 크기로 제작된 데이비드 호크니의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은 2018년 11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90,300,000로 거래되어, 세계에서 생존 작가중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화가로 등극했었다.  

이번 경매 결과를 두고 과연 누가 저런 장난감 같은 강철 쪼가리를 샀는가?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 이전부터 제프 쿤스 (1955-)의 작품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비판이 지속되어 왔다. 그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가격은 고공행진을 수십년째 계속 해왔던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의 경박성, 천박함, 그리고 내용 없음을 비판하는 이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의 작품의 평가나 가치가 얼마나 부풀려져 있었는지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 말한다. '역사의 심판'을 거치고 나면, 오늘 날 그러한 잡동사니들에 묻혀 있었던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2019년 5월 17일자 뉴욕 타임즈 기사에 "Stop Hating Jeff Koons (제프 쿤스 그만 미워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피카소나 데이비드 호크니도 불과 수십 년 전에는 경박하다는 평을 받거나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또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피카소나 데이비드 호크니는 '역사의 검증을 거친' 작가들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또 정말 그렇기만 할까?  아카데미 화가 중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작가 윌리엄 부게로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는 손에 붓을 쥔 순간부터 세상을 뜨는 순간까지 인기 초절정의 화가였다. 

화실의 윌리엄-아돌프 부게로

그의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은 1879년 파리의 살롱전에 출품되었고, 부게로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최고상인 로마상을 수상하였다.  무려 가로 3m, 세로 2.18m에 육박하는 이 대작은 주제면에서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나 라파엘의 <갈라테아의 승리>와 비교되며 여성의 인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화려하게 예술계에 데뷔한 이래, 그의 작품은 너무도 인기가 높았고, 가격도 엄청났기에, 개인이 그의 작품을 구매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서 주로 록펠러 재단과 같은 대규모 재단에서나 주문을 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번호표를 뽑고서는 몇년씩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부게로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교수직 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도 초청을 받아 각국의 아카데미의 교수직을 겸임하기도 했고, 유명한 상이나 훈장은 안받은 것이 거의 없었다.

현재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중인 윌리엄-아돌프 부게로의 대표작인 <비너스의 탄생> (1879)은 아카데미 최고상 로마상을 수상하였다. 

그랬던 그의 명성과 작품의 인기는 이상하게도 그가 세상을 뜨자마자, 인기가 폭락하여, 인상주의를 위시한 모더니즘 화가들이 대두하던 20세기 초부터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그 뿐 아니었다. 그는 새롭게 부상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쓰러뜨려야만 하는 거인'이었던 아카데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면서, 그의 작품은 '포르노'라고까지 혹평을 받게 되었고, 한 때에는 열을 올려 그의 작품을 수집했던 세계의 유명 미술관들은 다들 앞 다투어 전시실에 걸린 부게로의 작품들을 떼내어 창고 속에 감추었고, 자신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쉬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자신들의 취향이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지고 촌스럽다는 것을 보이기 싫어서였다. 한 때에는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아예 거래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쩌다 경매에 나오는 가격도 50만원 정도까지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사정이 이 쯤되면, 윌리엄-아돌프 부게로는 '역사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는 '한 때 반짝'하던 화가로 묻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1975년 이후로 그의 작품 가격이 다시 점차 오르게 되고, 최근 들어 그의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과거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경매에서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1998년 <The Heart's Awakening> (심쿵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이 $1,500,000에 거래되었고, 다음해 1999년에는 <The Motherland>라는 작품이 $2,600,000 에, 또 2000년에는 <Charity>라는 작품이 $3,500,000에 판매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제까지 창고에 깊숙히 넣어두었던 그의 작품을 이제는 각국의 미술관들이 앞다투어 다시 전시관에 다시 내걸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윌리엄-아돌프 부게로의 <Charity (자선)>(1887) 2000년 경매에서 $3,500,000에 거래되었다.  

자, 그렇다면, 윌리엄-아돌프 부게로는 '역사의 검증'을 받은 작가인가 아니면 '역사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작가인가? 한번 인정받은 작가라고 해서 영원히 역사 속에서 기억되라는 법도 없고,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들이 재평가 받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리고 부게로처럼 인정 받았다 잊혀졌다 다시 평가받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일생을 가난 속에 허덕이며 살다가 사후에나 인정을 받는 예술가에 대한 로망이 있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의 작품이야 말로 '진정한 명작'이며 '역사의 검증'을 통과한 작품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잣대는 앞서 살펴본대로 오늘 날 인기 있는 작품에 대한 미래 평가에 대한 척도로 상반되게 이용된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명작'의 기준은 어디서 찾아야할까? 작품 가격이 높은 '인기작'과 '명작'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란 결코 불가능한 것인가?

과연 이러한 인기나 평가의 부침은 결국은 그 시대의 '취향'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일부 음모론자의 이론처럼 예술가나 그의 작품의 인기란 일부 미술업계의 검은 손이 만들어내는 '은밀한 획책'의 결과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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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19:04 분류없음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시 관련해서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한 특강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5월 30일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성황리에' 특강을 마쳤구요~

이번에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점과 신촌점에서 각각 특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 한번 들어보세요.

  

무역센터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특강

 장소: 무역센터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백화점 11층)

일시: 2019년 6월 13일 목요일 19:10~20:10  

수업료: 일만원 

강좌신청 바로가기

 

신촌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특강

장소: 신촌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백화점 11층)

일시: 2019년 6월 18일 화요일 16:30~17:30 

수업료: 일만원 

강좌신청 바로가기

 

참고로, 제가 이 블로그에 올린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한 글 참고해보시고, 전시보기 전이시라면 예습삼아, 보신 후라면 복습삼아 강의 들어보세요~ 

찾아보니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글을 몇 개 올렸길래 링크를 함께 붙여둬봅니다.

경매소식 - David Hockney -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가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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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16:58 미술 이야기

공지사항)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관련 특강안내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시 관련해서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한 특강을 갖습니다. 

장소: 압구정본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백화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자세한 위치는 네이버 검색을 해보심이...  압구정 장로교회와 붙어있고, 현대아파트 79동 앞쪽에 위치하고 있어요.)

일시: 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오후 2시 40분 (약 한시간 20분 진행)

회비: 무료는 아니구요. 회비가 있는데 정확한 가격은 제가 책정한게 아니라서 잘 모르겠어요.  이후라도 확인되면 수정해서 올리겠지만, 대략 만원에서 만오천원 사이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참고로, 제가 이 블로그에 올린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한 글 참고해보시고, 전시보기 전이시라면 예습삼아, 보신 후라면 복습삼아 강의 들어보세요~ 

찾아보니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글을 몇 개 올렸길래 링크를 함께 붙여둬봅니다.

경매소식 - David Hockney -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가 한국에!!!

 

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 Acrylic on canvas ; 2.1 m × 3.0 m  이 작품이 최근 경매에서 현존작가 작품으로서는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  아쉽게도 이번 전시회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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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20:13 미술 이야기

요새 미술-제프 쿤스의 표절 사건

 

요새 미술-제프 쿤스의 표절 사건

요새 미술 - 제프 쿤스의 표절 Jeff Koons's Plagiarism 네오팝 아티스트 혹은 차용 작가로 불리는 제프 쿤스는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의 미학 (그런 것이 있다면)과 담론을 결합하여 극대화 시킨 작가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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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8:23 영화 이야기

일전에 올렸던 영화 <<화양연화 (花樣年華)>>에 대한 글을 다시 한번 올려본다.

화양연화 ... In the Mood for Love

 

화양연화 ... In the Mood for Love

며칠 전 지인이 앙코르와트 여행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떠올랐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영어판 제목으로는 In the Mood for Love. 사실 이 포스터가 요약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자는 남자가 다가올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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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보니, 저번에 올릴 때 덜 친절하게 처음 도입부에 등장한 싯구를 언급하지 않았다.  모두 봤다 치고, 글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그 싯구가 소개된 한글판 화양연화 트레일러를 올려본다.

https://youtu.be/Ak3HxhTx3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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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00:10 미술 이야기

Banksy, Love is in the Bin, 2018, Private Collection, Photo: Sotheby’s © Banksy SOTHEBY'S © BANKSY

 

작년 2018년 10월 5일, 소더비 경매에 나온 뱅크시의 작품이 경매 망치가 내려쳐지자마자, 그의 작품이 분쇄되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다. 거기에 대한 글을 남기면서 나름 추측을 해봤다. (그 글에 대해서는 요새 미술~뱅크시 Banksy ...또 사고치다를 읽어보길)  

https://sleeping-gypsy.tistory.com/49

불러오는 중입니다...

 

예상한대로 그 경매에서 낙찰 받은 익명의 유럽인 여성 콜렉터는 그 작품을 그대로 소장하기로 했고, 이 작품은 이제는 <Love is in the Bin> (2018)이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다.  이 제목을 달게 된 것은 경매가 끝난 후 일주일 경 지난 10월 11일 소더비 측이 뱅크시의 정식 인정기관인 "해충구제 (Pest Control)"에서 발부한 인증서가 첨부되어 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인지 모를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그 기세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강렬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 뿐인건가?

이후 뱅크시 자신의 작품이 절반 정도만 분쇄된 것에 대해서는 '분쇄기의 오작동'이라며 '해명 (?)'을 했다고 한다.   (건전지는 수명이 긴 에너자이저를 썼는데, 분쇄기는 좋은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나보다)   

이 해명을 읽고, 잠시 내가 올린 위의 글에서 제기한 의혹을 뱅크시가 구글 번역기를 돌려 읽었나 생각을 했....   그럴리는 없고. 사실상 이 절반 쯤 분쇄된 작품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기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으리라. 

이 작품은 이제는 <Love is in the Bin> (2018)이라는 제목을 달고, 지난 2월 5일부터 3월 3일까지 독일의 바덴바덴 소재의 프리다 버다 미술관 (Museum Frieder Burda, Baden-Baden)에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그 익명의 낙찰자가 독일계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Museum Frieder Burda, Baden-Baden

관람객들에게 관람료를 받지 않고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그 미술관의 웹사이트에 소개글에 언급된 것같이, 과연 경매시장이라는 불에 기름을 때려 부으면서 그러한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남긴다. 

BANKSY @ MUSEUM FRIEDER BURDA LOVE IS IN THE BIN

Museum Frieder Burda, Baden-Baden 전시 준비 중인 모습

 

이후에는 작품의 소유자로부터 영구 대여를 받는 형태로 2019년 3월 7일부터 스튜트가르트 주립미술관 (the Staatsgalerie Stuttgart)에서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독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뱅크시 팬이라면 한번쯤 일정을 짤 때 참고해보시기를...

스튜트가르트 주립미술관의 구 건물. 예전 예술 아카데미가 있던 건물이라고 한다

 

1984년 완성된 스튜트가르트 주립미술관의 신축 건물, 주로 현대미술을 전시한다고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9 00:10 미술 이야기

어제의 비트코인과 튤립 마니아에 대한 글에 이어 바니타스에 대한 글도 한번 다시 올려본다.

바니타스 정물화 - Vanitas

https://sleeping-gypsy.tistory.com/80

 

바니타스 정물화 - Vanitas

이번에는 저번의 ‘튤립 매니아’에 이어 ‘바니타스 정물화’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Philippe de Champaigne, Vanitas or Still Life with a Skull, 17th century. Oil on panel, 28 × 37 cm. Mus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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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8 00:10 미술 이야기

이전에 올린 글인데, 조회수가 너무 저조하고 (흐흑), 내가 티스토리 블로그를 편집하기엔 기술적 측면이 너무 모자라, 예전 이야기를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게 하기엔 역부족이라 이렇게 '밑장 빼서 윗돌 쌓기'하고 있다.

https://sleeping-gypsy.tistory.com/78

 

튤립 매니아

한동안 비트 코인 신드롬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Tulip Mania)와 비유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은 새로운 시리즈 전에 잠시 단편극 형태로 튤립 매니아와 미술사와의 관련에 대해서…… "튤립 매니아" 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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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7 00:30 영화 이야기

François Boucher (1703–1770), The Toilette of Venus (1751) oil on canvas ; 108.3 x 85.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사실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배경음악은 바로크 음악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이 영화와 패러럴을 이루는 것은 바로크일지도 모르나, 정서는 어디까지나 로코코라는게 개인적 감상이다.  프랑소아 부셰는 로코코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위의 작품은 그 중에서도 '로코코'의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제목은 <비너스의 화장대> 정도에 해당할텐데, 여인의 모습은 여신이라기보다는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의 정부같은 분위기다.  발그레한 볼을 가진 곱디고운 그림 속의 앳된 여성은 '신들은 누드로 그리자'라는 회화적 관례에 따라 비너스라고 억지로 주장하기엔 그녀가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현세적이기 때문이다.  쾌락적이고 방탕하고 경박한 것이 로코코 문화의 특징이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비판의 근거로 사용해도 될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 천사, 푸토들이 있어도, 품에 새하얀 비둘기를 품고 있어도, 이 여성은 궁전이나 저택의 한 방에서 꽃 단장을 하고 있는 현세의 여인이지 천상의 비너스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부셰의 이쁘지만 왠지 분위기 요상한 이 그림은 당시 귀족들의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의 일면을 보여줬던 <<위험한 관계>>라는 프랑스 소설, 그리고 그 프랑스 소설의 창조적인 한국화 버전인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Boucher, Diana Resting after Her Bath (1742)

사정은 부셰의 또다른 작품 <목욕 후 휴식을 취하는 다이애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초승달 모양의 티아라를 머리에 장식하고 있고, 사냥 도구와 포획물들이 옆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보아 사냥을 즐기던 달의 여신, 다이애나의 지물은 충실히 지니고 있다. 설정상, 사냥을 마친 다이애나가 자신의 수행원의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다이애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처녀의 신으로 자신만 처녀로 남기를 고집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수행원들도 처녀로 남기를 명했고, 이를 어길시엔 엄벌을 내렸던 여신이다. 오죽하면 우연히, 정말 우연히 사냥하다 다이애나가 목욕하는 장면 한 번 쳐다봤다고 악테온을 쪽쪽 찢어 죽임을 당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부셰의 다이애나가 그렇게 결벽증 있는 여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너무 숨김이나 경계가 없어, 감상자들이 맘껏 그녀의 아름다운 누드를 감상할 수 있게 그려져있다. 위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앳되보이고 발그레한 볼이 어여쁜 이 아가씨 둘이 누드라는 것의 정당성은 결국 제목에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라는 (얇디얇은) 외투를 입은 암묵적이지만 명백한 관능성 또한 로코코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예전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영화평을 읽어보시고 이 영화의 로코코성에 대해서 한번 판단해보십사~

https://sleeping-gypsy.tistory.com/84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Untold Scandal, 2003)

보통 리메이크 영화는 믿고 거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의 경우, 소설이 원작인 영화인 경우에도 좀 신중해지는 편이다. 특히, 내가 영화화가 되는 소설을 이미 읽었던 경우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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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6 00:10 미술 이야기

이전에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좋아하는 영화를 꼽다보면 그 좋아함에도 여러가지 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휴일'처럼 매번 볼 때마다 왠지 아련하면서도 즐거워지는 영화가 있는 반면, '블레이드 러너'처럼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그 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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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내가 하는 블로그 글 밑장 빼서 윗장 괴기 작업의 일환으로 오늘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글을 퍼 올리는 한편,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필름 느와르 (Film Noir) 장르와 에드워드 호퍼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좀 덧붙이고자 한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단연 <나이트 호크스 (Nighthawks)>(1942)라고 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서도 쓴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 (1942)

 

니가 외로움의 맛을 알아?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 (1942)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 84.1 x 152.4 cm, Art Institute of Chicago '도시 군중 속의 고독'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평가받는 에드워드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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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긴 하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도 영감을 준 작가로도 명성이 높다. 최근의 작품으로는 <<셜리 (Shirley)>>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영화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13점을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한 독특한 작품으로 미국의 3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긴 시간을 배경으로 셜리라는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호퍼의 작품이 미장센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그대로 재현되고 있어서 배우의 극적인 동작보다는 정지된 듯한 장면이 많아 연극적인 분위기의 작품이다.  

영화 <<셜리>>의 공식 트레일러 Shirley: Visions of Reality (2013)

구스타프 도이치 (Gustav Deutsch)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감독 작품인 이 작품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 영화 감독들에게 에드워드 호퍼의 영향력을 이야기하면서 더 자주 언급된다.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의 호퍼의 인기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유럽의 감독들에게도 폭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젠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만 인기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호퍼의 작품이 영화 감독들에게 그토록 인기가 높은 것일까? 

Edward Hopper, Night Shadows (1921) Etching: Plate: 17.4 x 20.8 cm, Sheet: 33.5 x 36.6 cm, MET

그의 스케치나 소품의 에칭 작품 (윗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 제작시의 콘티라고 부르는 '스토리보드'와 무척 유사하다. 그의 작품을 그대로 영화의 콘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호퍼의 독특한 시각은 그대로 카메라의 각도로 적용시킬 수 있고, 그의 감성이 녹아든 화면은 영화 장면으로 그대로 옮기고 싶게 만든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1935년 영화 "39 Steps"의 한 장면.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그림자'라는 에칭 작품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호퍼의 작품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 활용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콘티 혹은 스토리보드의 예. Robert Wise 감독, Maurice Zuberano 제작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이 스토리보드와 함께 쥴리 앤드류스와 7명의 아이들이 넓은 정원을 가로누비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이처럼, '콘티' 혹은 '스토리보드'란 영화 제작시 일종의 가이드라인 혹은 설계도로 카메라의 프레임으로 구획되는 세계 속에 어떤 식으로 글로 된 시나리오를 이미지화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두는  것이다. 일견 네모난 틀 안에 그려진 만화의 컷과도 같은 이러한 콘티를 통해 실제 영화 제작전에는 준비를, 실제 촬영시에는 배우의 동작과 동선, 카메라의 움직임과 위치를 지시하는 것이다.     

대공황에 이어 급격히 현대화의 과정을 지나온 미국의 모습을 잘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 호퍼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느끼는 군중 속의 고독감을 잘 포착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흑백의 대비를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필름 느와르에 적합한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해볼 수 있다. 

Edward Hopper (1882–1967),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33 1/8 × 60 in. (84.1 × 152.4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영화 Abraham Polonsky 감독의 1948년 영화 Force of Evil의 한 장면.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거리 장면과 유사하다.  동시대를 그린 동시대의 작품이니 풍경이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의 구도와 필름 느와르의 미장센과 유사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호퍼의 작품을 관통하는 적막감과 고독감은 필름 느와르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고, 이는 동시대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세기말 적이고도 묵시록적 <<블레이드 러너>>의 분위기도 호퍼의 <<나이트호크스>>의 적막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야시장의 장면은 호퍼의 작품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1997년 영화와 같은 제목의  PC 게임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은 각도까지 호퍼의 작품과 유사하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한 장면
1997년 비디오 게임 Blade Runner의 한 장면으로 영화에서 데커드가 들렀던 야시장의 국수집을 묘사한것. 이는 다시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와 구도가 유사하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특히 <나이트 호크스> (1942)와 필름 느와르의 관계에 대해서 살짝 알아보았다.  자, 그럼,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그만큼 유명한 회화 작품,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콜라보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 

Juan Cairos라는 작가의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의 패러디로 화면을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등장인물로 구성했다.  이 작가에 대해서는 알아봐도 더 이상 알아낼 수가 없었다.  여기서 화룡점정은 카페안의 '매 한마리' 진짜 나이트 호크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5 00:10 일상 이야기

일자를 보니 이 '시험 문제 (?)'가 출제된 것은 2016년이니 그렇겠지만, 이 시험지가 인터넷 상에 돌아다닌 건 꽤 오래된 모양. 내가 읽은 포스팅에서 예전에 본적이 있다며 댓글 단 것을 봤지만, 난 며칠 전 처음 봤다.  처음 보자마자 문제 자체에 거부감이 !  들었는데, 답변이 명답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이 답변을 한 주인공이 당시 초등학교 3년생이라고.  과연 내가 초딩 3학년때 저렇게 사려깊고 인권 감수성이 발달해 있었던가?   

 

 

본문 내용:

난 행복한 사람

다음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그림 속의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5분간 그림을 보며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 봅시다. 

문제 1. 그림 속의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해 봅시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그림 속 하나하나를 상상하며 이야기해 봅시다. 

학생의 답변글: 굶은 아이가 길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서 배가 고파 바닥에 떨어진 빵가루를 주워 먹고 있다. 

질문2. 내 자신을 그림 속의 아이와 비교해 봅시다.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이유를 들어서 설명해 봅시다. 

학생의 답글: "남의 아픔을 보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이 아픔을 해결해 주려하고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될 것이다." 

남의 불행을 보고서야 자신의 행복을 가늠할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질문이다.  그걸 5분이나 명상을 하라고 하다니!  그런데 어린 학생의 답변이 명답이다. 그 와중에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완벽한 어린 학생의 기특한 답변을 보고 나니, 그나마 한국의 미래에 대해서 안도가 되는 상황이다.  질문의 발상이 어떤의미에선 (물론 나쁜 의미로) 참신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곰곰히 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건 내가 예전 미국에 있을 때의 경험담이다. 

지인 부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삿짐이 제 때 도착하지 않아서 애먹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을 때였다.

내가 사는 주로 진입했다는 소식 알려주는 전화 한번 놓쳤다고 이삿짐을 실은 트레일러가 이미 주를 벗어나서 돌아오려면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낭패를 겪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일이었다. 애당초 너무 저렴한 이삿짐 센터는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내게 남겨준 에피소드였다.  한 사나흘 동안, 학교는 벌써 개강을 했지, 그 사이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어, 타겟에서 싸구려 긴팔 옷을 몇벌 사야만 했던, 대략난감한 상황. 그 와중에 카디건이나 외투, 두꺼운 바지 등 다 있는데 새로 사기엔 고가의 옷가지랑 역시 다 이삿짐 속에 있는데 당장은 없는 간단한 주방기기 따위를 빌려주던 같은 과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조언을 해줘서 학교의 변호사랑 상담을 해보게 되었고, 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오래 기다리는 일 없이 무사히 해결했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삿짐을 배달하러 온 직원이라는 사람들이었다. 무슨 청소년 불량배들 같았던 두 명의 청(소)년은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너무 대충대충 일을 했다.   건들건들 짐을 나르는 것까지는 뭐 개성이라고 봐주겠다 싶었고, 날라온 짐을 정말 아무데나 쌓아 놓는 것도 뭐 (저렴한 곳 예약한 내 탓이니) 애교로 봐준다 쳐도, 운반용 카트에 박스를 너무 높게 쌓아, 무리해서 박스들을 싣고 오다가 복도에서 와장창 무너뜨리기를 몇 번.  나르는 태도를 계속 보고 있자니 부아가 올라서 나중에 그 직원들에게 뭐라고 좀 나무랐다. 너무 무리해서 박스 쌓지 말라고, 그러다 자꾸 무너뜨리지 않냐고, 그러다 망가지면 어쩌냐고.  

처음엔 아무리 이삿짐 회사와는 문제가 있었지만, 배달하는 애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겠나 싶어서 팁을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성의 없이 일을 하고, 내가 항의를 해도 들은둥만둥 함부로 짐을 옮기길래, 나도 화가 많이 나서, 결국 일 끝내고 나서 '너희가 너무 일을 못해서 난 팁을 줄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제까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대꾸도 제대로 안하던 그 두 청년 중 한명이 갑자기 방언이 터졌다. 

'오~ 맨~ 빈 라딘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무너뜨렸다고, 이슬람 인 전체를 다 탄압하는 경우!'라며 자신들의 회사가 이삿짐을 늦게 배달했다고 자기들한테 팁을 안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막 항의를 했다. 그 비유가 너무 웃겨서, 나는 걔들이 알아들으리라는 기대는 없었지만, '밖에 나오면 너희들이 회사야.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해!'라고 하면서 애초에 주려던 팁의 절반 정도만 줬고, 걔들은 여전히 뾰루퉁 입이 튀어나온 상태로 돌아갔다는 얘기다. 

난 사실 지인들에게 얘기를 시작한 포인트는 이 10대 후반 혹은 기껏해야 20대 초반 어린 직원들의 이 대사에 빵 터져서 였다.  자기들이 잘못한건 생각도 안하고 비유를 해도 비유를 해도, 그렇게 정치적이고 범세계적 사건에 자신들이 받은 부당한 (?) 대우를 빗대 이야기 하다니!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부부 중 와이프, 갑자기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의 팔짱을 스을쩍 끼면서,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우리는 미국에 와서 그런 나쁜 경험은 안해봤지.' 라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내 동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살면서 나쁜 일 안 겪고 살아왔다는 일은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내 에피소드를 듣고 하는 리액션이, 내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유머의 포인트를 못알아챈건 차치하고서라도, 겨우 남의 불행 (나는 솔직히 그게 그렇게까지 나쁜 경험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에 자신의 무사무탈에 안도하는 것이라니!  이후 난 그들 부부와 그다지 교류가 없이 지냈지만, 만약 계속 엮여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것 같다. 어차피 내가 그런 얘기를 한다고 바뀔 감수성이 아니고 인격이란 하루 아침에 성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개의 인간은 깊이 들어가면 어차피 생존본능으로 똘똘 뭉친 이기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고 나부터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변의 인간들이 다 불행한데 혼자서 행복할 수는 없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남의 불행으로 인해서만 자신이 행복한 상태임을 확인하는 것은 지극히 편협하고 위험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종류의 행복은 자기가 보기에 자기보다 더 '행복'해보이는 사람을 보면 깨지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4 00:10 미술 이야기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삼미신 (Three Graces)은 비너스의 수행단원들로 젊은 여성들에게 미와 매력과 활기를 부여해주는 역할을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세분해보자면, 아글라이아 (Aglaia), 탈리아 (Thalia), 유프로진 (Euphrosyne)으로 각각 담당분야가 아래와 같다.  

아글라이아 (Aglaia) – 우아함 혹은 총명함

탈리아 (Thalia) – 젊음과 활기

유프로진 (Euphrosyne) – 환희 혹은 즐거움 

이들은 우아함, 미, 그리고 매력이라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미덕을 의인화한 것이다. ‘삼미신’은 오랫동안 많은 작품들에 자주 등장한다. 사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삼미신은 이상적인 미학적 주제였다. 완벽을 상징하는 삼이라는 숫자와 아름다운 여인들이 셋이나 등장하는 그림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삼미신을 주제로 한 작품은 회화와 조각을 망라한다.    

삼미신이 등장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 (봄)’을 들 수 있다. 물질계와 정신계를 좌우로 나누고 그 둘을 통합하는 존재로서 비너스를 등장시킨 작품에서 삼미신은 당연히 신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Sandro Botticelli La Primavera (Spring), (1477) Ufizzi, Florence

그 밖에도 보티첼리의 작품으로 “비너스가 삼미신과 함께 젊은 여성에게 선물을 주다’라는 프레스코 작품도 있다. 이 프레스코는 플로렌스 근교 레미라는 마을에서 1873년에서야 발견된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일원의 결혼식 선물이라 추측된다. 

Sandro Botticelli (1445–1510), Venus and the Three Graces Presenting Gifts to a Young Woman (1486/1490), fresco ; 212 x 284 cm, Louvre  왼쪽의 네여인이 비너스와 삼미신이고, 오른쪽의 여인이 신부라고 추측된다. 
Raphael, The Three Grace (1504) oil on panel ; 17 × 17 cm, Musée Condé, Chantilly, France  르네상스 3대가 중 한명인 라파엘의 소품 중에서도 삼미신은 등장한다.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을 그린 화가인만큼 그의 삼미신에는 그의 성모상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럽고도 온화한 느낌이 담겨있다.     

르네상스 3대가 중 한명인 라파엘의 소품 중에서도 삼미신은 등장한다.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을 그린 화가인만큼 그의 삼미신에는 그의 성모상에서 느낄 수 있는 부드럽고도 온화한 느낌이 담겨있다.   

Lucas Cranach the Elder, The Three Graces (1531) Musée du Louvre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 중 하나인 루카스 크라나흐 (부)도 삼미신은 빠뜨리지 않고 그렸다.     

북유럽 르네상스 작가 중 하나인 루카스 크라나흐 (부)도 삼미신은 빠뜨리지 않고 그렸다.    

그 밖에도 고대부터의 회화나 조각 작품들도 많고, 아카데미에서도 즐겨다뤄지는 주제였다. 

1세기경의 삼미신, 폼페이의 프레스코

 

삼미신, 2세기 대리석 조각. 로마시대의 복제품.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Antonio Canova, The Three Graces (1813-16) marble ; 182 cm, Hermitage Museum   

이 죽을놈의 인기! 삼미신의 인기는 도대체 식을줄을 모른다. 현대에 와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카소가 그린 ‘세 무용수’는 전통적인 삼미신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고, 니키드 상팔의 ‘삼미신’의 경우 여성작가의 해석이라는 면에서 참신하다. 

Pablo Picasso, The Three Dancers (1925) Tate Modern   피카소가 그린 ‘세 무용수’는 제목은 '무용수'이지만 전통적인 삼미신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The Three Graces, 3.7~4.6 m, 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Washington D.C.  니키드 상팔의 ‘삼미신’의 경우, 기존의 삼미신 도상과 비교해봤을때, 훨씬 자유로와 보인다. 수영복 차림의 풍만한 세 여성이 마치 해변가에서 공놀이를 하거나 춤을 추는듯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Male Gaze’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주문자나 제작자나 거의가 다 남성이었던 예술계에서 아름다운 미녀들의 앞면 측면 뒷면을 다 감상할 수 있는 삼미신은 도대체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도상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3 18:34 일상 이야기

Albrecht Dürer, The Large Piece of Turf (1503) Watercolor, 40.8 x 31.5 cm, Albertina

요새 들어,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들어 베란다 화원 가꾸기를 취미로 발전시켜볼까 생각하고 식물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꽃 이름이나 관엽수의 이름을 묻는 포스팅을 볼때마다 클릭해서 확인해보면 10에 9, 아니 100에 99는 모르는 식물이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식물에 조예가 깊은 누군가 답글을 단 것을 읽으면서 그 식물의 이름을 앎과 동시에,  '아, 어차피 이 이름 내가 곧 까먹겠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된게 몇 개를 제외하면 학명을 그대로 딴 거인지 어려운 이름 투성이다.  한글로 된 이름도 어떨때엔 생김새랑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연상암기를 할 수 없다. 히잉. 난 그래도 계속 꽃과 나무를 늘 좋아해왔다고 자부해왔는데...  걸핏하면 용량부족하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내 저렴하고 용량 적은 핸드폰 때문에 일전에 깔았던 네이버 앱도 지워버렸지만, 그 앱이 깔려 있던 그때도 찍어서 검색해보면 죄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 뿐이긴 했다. 

예전 어떤 문인이 '이름없는 들풀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식의 표현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하는 요지의 글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에 이름없는 들풀이나 꽃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글에 올릴 식물의 이름 정도는 조사를 해서 파악하고 있어야지, 어떻게 그 이름 하나도 알아볼 생각않고 글을 쓸 생각을 할 수 있냐는 요지의 글이었다.  글을 읽을 당시에는, 글을 쓰는 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신의 글의 내용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는데, 요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이름없는 들풀'이라고 쓴 작가는 분명히 찾아봤는데 막상 글을 쓸 그 순간 까먹은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새로 시작한 '원예' (라고 하기엔 너무 미미하지만) 취미 탓에 떠오른 생각.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3 18:27 일상 이야기

작년 방울토마토 씨앗과 배양토가 봉투에 들어있는 것 키워보고 열매을 수확하고서 '원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있다.  이번 봄에는 난생 처음 본격적으로 '파종'이란 것을 해본 것이 지난 4월 28일. 

인터넷에서 어림짐작해서 주문한 상토, 화분 얼추 맞아 떨어졌고, 허브는 마조람, 세이지, 레몬밤, 허브딜, 페퍼민트, 라벤더, 카모마일, 야로우.  다들 처음 보는 씨들인데, 씨라고 안했음 먼지인줄 알고 싹싹 닦아버렸을 크기의 작은 씨들이라 과연 얘들이 싹을 틔우긴 할건지.... 걱정이 됐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초근접 확대를 해야 겨우 보낼 크기이긴 하지만 새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맘 착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새싹들.  화면에선 잘 안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이 작은 아이들이 또 햇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다 고개를 향하고 있다. 

아울러, 방울토마토 씨도 좀 더 사서 뿌리긴 했고, 파종하는 날, 예전에 뿌려둔 파프리카 씨가 막 자란건 화분이 너무 작다는 지적들이 있어서 분갈이 해줬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사시사철 길고 가늘게 계속 몇개씩 열리는 방울토마토는 아직 열매가 맺혀서 그거 다 따고 분갈이 해주려고 이번엔 안했다. 그리고 잘자라는 파프리카에 의욕 뿜뿜해서 다시 슈퍼서 파프리카 사서 먹고 남은 씨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 수가 많아서 난처하던 차에, 흙주문한데서 주문 안했는데도 보내준 계란판 같은데다가 뿌려놔줬다.  

그런데, 방울토마토 싹도 나고, 파프리카는 붐비는 데서 너른데로 오니 당장 꽃이 폈다. 

방울토마토 새싹들
파프리카 꽃

5mm 남짓한 새싹들이 살아보겠다고 햇볕 드는 창쪽을 향해 일제히 그 작은 고개를 쪼옥 빼고 있는 것을 보니 사랑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생명의 신비함이라는 진부한 표현 외에 달리 더 할 말이 없다. 

오늘은 사진을 안찍었지만, 허브들도 조금씩이지만 잘들 자라고 있는 것 같다.  가성비 갑인 취미를 찾고 계시다면 식물 키우기를 적극 권하는 바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5.02 00:10 미술 이야기

한동안 뜸했던 '내 맘대로 작품보기'

Elena Yushina

이번에도 우연히 페북에서 발견한 그림.  사실 이 작품의 작가에 대해 알아내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그 페북 주인장이 작가 이름을 잘못올려서.  좀 더 검색하다가 우크라이나 작가들을 소개하는 한 웹사이트에서 그 작가의 이름이 Elena Yushina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가는 1958년생의 생존 작가이고 그 어느 웹사이트에 따르면 '인상주의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 웹사이트에는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게재되어 있던데, 전반적으로 멜랑콜리하다고나 할까 감상적이라고나 할까.  아름답게 채색된 작품들이긴 한데, 뭔가 호기심이 일어나는 작품들은 아니라는게 내 솔직한 감상이긴 했다. 하지만, 봄과 여름의 중간 햇살이 따사함과 따가움 사이에 있는 길목에 부합해서일까 ?  이 창 그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해서 내맘대로 써보기로 맘먹게 되었다. 


내 관심사가 관심사다 보니, 똑똑한 페북은 계속 '이것도 네가 좋아할 거 같아'라며 미술 관련 사이트를 권해주곤 하는데, 그런 계정들 대부분이 작품들에 대한 정보나 의견 없이 그냥 그림들만 하나씩 올리는 곳들도 많다.  덕분에 처음보는 작품들을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 이 글도 그 덕분에 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페북과 핀터레스트 등에 수도 없이 올라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다소 감상적인 주제에 인상주의와 사실주의적 화풍이 적당히 섞인, 장식적인 회화 작품들이 많아 커다란 감흥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작가의 작품들도 아름답긴 한데, 다른 작품들은 그런 많은 그림들과 유사한 것 같긴하다.  이 창문 그림은 결정적으로 찻잔 옆에 그려진 나비 한마리가 감성을 더해준다고도 할 수 있고,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미묘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상적과 감성적, 결국 한끗 차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창인데, 사실 회화 작품과 창의 관계는 역사가 깊다. 

폼페이 유적에 그려진 창문을 그린 벽화 Example of First Style painting, House of Sallust, Pompeii, (B.C. 2nd C)

 고대에 건축기술이 아직 덜 발달되어 창을 빵빵 뚫지 못하던 시절, 그 갑갑한 심경을 달래고자 사람들은 벽에다 창을 통해 바라본 듯한 바깥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원근법이 발전하면서 회화와 창의 메타포는 더욱더 발전을 하게 되었고,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앙리 마티스 등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창을 즐겨  그리곤 했다.  

개인적으로 엘레나 유시나의 창 그림을 보고 두 작품이 뇌리에 떠올랐다.  둘 다 미국 국적의 작가들로, 하나는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1882-1967)이고 또 하나는 앤드류 와이어스 (Andrew Wyeth: 1917-2009)이다.    

Edward Hopper, Evening Wind (1921) Etching, Plate: 17.6 x 21 cm ; Sheet: 24 x 27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먼저 에드워드 호퍼의 경우, 창을 즐겨 그린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의 소품 중에서, 엘레나 유시나라는 작가와 유사한 분위기의 '저녁 바람'이라는 에칭 작품이 있다.  자신의 침대위로 오르려던 나체의 여인이 창에서 불어들어온 바람에 문득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은 작품이다.  여인은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공허하고 쓸쓸한 표정일 것 같다.  감상적 혹은 감성적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매체의 특성상 흑과 백만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녀의 머리칼과 벽면의 검은 색을 표현한 펜의 선의 변주와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 창 밖의 풍경의 공허함이 전체적으로 쓸쓸한 분위기의 효과를 잘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Andrew Wyeth, Wind from the Sea (1947), tempera on hardboard ; overall: 47 x 70 cm, framed: 66.4 x 89.5 x 7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보고 처음 떠오른 작품은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작품인데, 구도나 분위기 면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보다 좀 더 그녀의 작품과 근접하다.  물론 아래에서 창을 올려다 본 듯한 엘레나 유시나의 그것에 비해, 이 그림은 그냥 성인 어른이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본 각도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녀의 창이 찻잔에 내려앉은 나비때문에도 그렇지만 좀더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라면, 와이어스의 창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다락방의 창을 환기를 위해 열었을 때의 모습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이겠지만, 낡고 삭아버린 레이스 커튼이, 제목대로라면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계산되지 않은듯 펄럭이는 거의 투명한 커튼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별 주제 없이 그려진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다시 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바람이나 커튼이 계산을 할수 없으니 계산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작품은 스냅 사진이 아니라, 작정하고 시간을 들여 그린 회화 작품이고, 그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선택한 것은 화가일테니, 그렇게 계산되지 않게 보이는 것도 작가의 실력이다.  

사실 앤드류 와이어스의 대표작으로는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으로 이 작품 덕에 거의 미국 국민 화가 반열에 들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작품이 훨씬더 감동적이다.  

Andrew Wyeth, Christina's World (1948) Egg tempera on gessoed panel, 81.9 cm × 121.3 cm,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엘레나 유시나의 창을 바라다보면 따뜻한 봄날의 바람이 볼을 어루만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면서, 새로운 날들에 대한 희망이 내게 불어드는 것 같다면, 앤드류 와이어스의 낡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은 그다지 눈부실 것도 없고 어쩌면 때로는 냉혹하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 인생의 파고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겸허함과 의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같은 창 그림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진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