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물병과 사자
2019.03.21 00:30 일상 이야기

이 블로그에도 쓴 적이 있지만, 난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못하니 좋아하지 않는건지 좋아하지 않아 잘하게 되지 않는건지 알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런데 작년부터 체력이 떨어지는 걸 자각하게 되었고, 목감기가 오래가서 너무 고생을 하고나서는 운동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한동안은 운동을 등록하고도 그것만으로도 뿌듯해하며 실상은 운동에 한번도 안나가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나가자 하고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다. 일주일에 달랑 두번 나가는데, 일주일 내내 온 몸이 아프다. 내 몸의 그런 곳에 근육이 있었나~ 할 정도로 땡기고 쑤시고...  근육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이왕 시작한 운동이니 좀 제대로 빠지지 말고 제대로 해봐야겠다. 

친구 중 하나가 '죽지 않으려고 운동 시작했어'라는 톡을 보냈을 때 하하호호 웃었는데, 사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계속 해야겠다. 운동 좋아하기로 알려진 김 모 종국 씨만큼은 아니라도 나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정도가 되어봤음 좋겠다. 체력과 근력을 기르는 게 올해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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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21:25 일상 이야기

몇 차례 작은 수확 (그래봤자 대여섯개씩 두세번)



지난 주일엔 놀러온 조카들에게 하나씩 하사. 

오늘 마트에 갔더니 봄이라 그런지 유난히 꽃 화분이 많았다. 예전부터 허브도 길러보고 싶은데 그곳에서 일하는 분한테 여쭤보니 꽃화분보다 허브를 키우기가 훨씬 더 까다롭다고 한다. 

유실수를 성공적으로 길러본 나로썬 직접 수확하는 즐거움을 포기하기 힘든데... ㅎㅎ  봄엔 허브를 키워볼까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3.19 20:31 미술 이야기

올해는 유난히 큰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 듯하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전시회이긴 하지만, 마르셀 뒤샹 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고, 다른 거물급 작가들의 전시들도 줄을 서고 있다. (뒤샹전 소개 글은 여기를 클릭!)

그리고 3월 두둥~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열린다. 


3월22일부터 8월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와의 협력하에 열린다고 하니 제대로 된 전시가 될 듯해서 기대가 된다.  

이 블로그에도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서는 여러차레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은 아래 링크를 클릭클릭~) 

데이비드 호크니-팔순의 아이패드

경매소식 - David Hockney -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실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영국 화가이면서 LA로 이주한 이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굳이 예술 사조의 범부로 나누자면 팝아트에 속한다고 할 수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폭넓고도 다양해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회화 작업만 해도 이전의 팩스가 등장하자마자 팩스로 작업하는 것은 물론, 팔순이 넘은 나이에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얼리 어댑터'로 다양한 기기와 기법을 활용한 작업을 해왔다. 예술 이론적인 면으로도 관심이 많아 서양미술의 원근법이 아닌 동양 산수화의 원근법에도 관심을 가져 자신의 풍경화를 동양의 원근법을 적용해서 제작하기도 했다. 

뿐 만 아니라 서양 대가들의 카메라 옵스큐라의 사용에 대한 저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도 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어 있다.  그 대표작으로는 Secret Knowledge: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와 A History of Pictures: From the Cave to the Computer Screen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이 전의 글에 쓴 적이 있으니 그 글을 참고 할 것)

광고를 보아하니,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시로는 처음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라고 하고, 그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을 망라한 전시라고 한다.     

내가 누누히 얘기하는 바이지만, 특별전은 특별전 만의 이점이 있다. 혼자서는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동시에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나란히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의 격동기를 거쳐 온 대가가 일생에 걸쳐 생산해 온 창작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임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짧고 찬란한 봄 날 나들이 삼아 전시회를 하나 본다면?  난 이걸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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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17:29 일상 이야기

네이버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네이버가 알아주는 내 생일. 아니 네이버 밖에 안 알아주는 내 생일? ㅎㅎㅎ  예전에 인터넷 검색 해보고 나면, 내 핸드폰이나 컴퓨터 광고에 내가 지금까지 살펴봤던 상품이나 아니면 관련 상품이 뜨는 것 보고 놀란 적도 있는데... 이젠 그 정도로는 놀라지 않지만, 생일까지 알고 축하해주는 걸 보고는 좀 놀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변화 ('발전'이라고 썼다 고쳐씀)해갈까?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웹 서핑도 생각해보면 불과 2-30년전에 내 주변에는 없던 것이다.   

학문을 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나보다 이전 세대야 어떻게 했는지 감도 안잡히지만, 아마도 도서관에서 전문 서적을 뽑아들고, 그리고 도서관 한 켠에 마련된 색인함에서 주제별로 검색해서 카드에 적힌 청구기호를 보고 관련자료를 찾아보지 않았을까? 나만 해도 그런 세대는 아니긴 하지만, 관심 있는 주제에 관련된 전문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bibliography 전문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야 했고, 주요 논문의 뒷 쪽의 참고문헌 목록에 의지해서 자료를 추적하곤 했다. 

학부 때야 딱히 공부를 많이 안해서 그런 경험이 많이 없지만.  나중에 다시 공부한 과목이 미술사이다보니 발표나 페이퍼에 사용하거나 첨부할 이미지들이 많았는데, 처음엔 직접 사진을 찍어 제작한 슬라이드라는 걸 캐러솔이라고 하는 동그란 통에 발표 순서대로 집어 넣어 발표 준비를 했다.  촬영을 할 수 있는 이미지를 내가 가진 책에서 구할 수 없을 경우, 그 이미지를 발표할 때 제시할 수 없어도 양해가 되었다.  


오늘날은 사용되지 않는 슬라이드와 캐러솔

캐러솔을 장착시켜 작동시키는 프로젝터

 

그 이미지 중 일부는 인화를 해서 페이퍼에 첨부하는 식으로 준비했고. 곧 파워포인트를 쓰는 방식으로 바뀌긴 했지만, 이미지들은 역시 전문 기관의 사이트에 들어가서 찾아야 했는데, 그 사이트는 유료사이트였다. 그 사이트에 들어가면 각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명 학교의 도서관들이 자신들의 소장작품들과 희귀 자료들의 이미지들을 업로드해 놓은 것이었다. 물론 학생인 경우에야 학교에서 그 기관과 계약을 맺어 놨기에 학교 도서관 사이트로 들어가면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입맛에 맞는 이미지를 반드시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그 사이트들 여러개 합한것보다, 구글에서 찾는 이미지들의 품질이 더 좋고 방대하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물론 출판을 할때에는 보통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화질이 필요하므로 직접 소장처에 문의해서 이미지를 구입해야 하긴 하지만, 그냥 파워포인트로 발표 준비하거나 페이퍼 쓸 때 정도는 가뿐히 커버가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바뀐 건 주제에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는 방식일 것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도서관에서 찾아야 했던 자료의 주제를 이제는 구글로 검색하면 된다. 오죽하면 '구글링 (googling)'이라는 단어가 탄생했겠는가? 예전엔 웹 상의 정보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많으니까 거르라는 충고를 선생님들이 많이 하셨는데, 요새는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전에는 특정 사이트에 등록을 해서 들어가야 할 전문 포털에서만 가능했던 정보들이 간단한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필요한 아티클이 있으면 더이상 도서관 복사기 앞에서 두꺼운 책을 이리저리 방향 바꾸어 가면서 복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클릭만 하면 pdf파일로 글자 번지는 일 없이 깨끗하게 내 컴퓨터에 저장이 된다.  혹 필요한 자료가 pdf화 되지 않은 오래된 자료이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그 자료가 없을 경우에도 보통 interlibrary service라고 해서 도서관 간에 협조가 이뤄져서,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신청을 하면, 그 자료를 가진 학교에서 pdf파일화 시키거나 복사한 자료로 내게 배달해준다.  

공부하기 너무 편해진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더이상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미처 읽을 수 없었다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미지가 없어서 이미지를 준비 못했다는 핑계는 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예전 학생들보다 요즘 학생들이 공부를 더 하는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차원이 다르게 달라졌기에 앞으로 학문의 방향이나 자세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23 21:50 일상 이야기

손대면 톡~하고 떨어질것 같은 것만 일단 수확한 나의 방울토마토들. 동네방네 자랑하고 하나씩 주면서 생색을 내고 싶었지만, 그건 아직 덜익어서 매달려 있는 나머지 애들로 하기로 하고, 일단 잘익은 것을 수확. 먹어보니 너무나도 달콤한 것. 정말 열매가 달아서일까 그냥 기분탓일까?  후숙이 아니라서 그런지도. 정말 별것 아니긴 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으로 주말 저녁이 즐거웠다. 

(2019년 2월 23일 수확한 방울토마토들)


(우정출연: 2018년 4월2일 수확한 방울토마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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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2 21:34 일상 이야기

난 성질 급해서 이런 류의 퍼즐 원래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건 상상 이상의 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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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20:35 일상 이야기

내가 다니는 이마트의 주차장 5층에 손세차 하는데가 있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매일 4층에만 주차를 해서. 

차 산지는 조금 되었지만, 손세차는 한번도 따로 안해봤는데, 얼마전부터 트렁크랑 내 자리 밑에 나뭇잎 마른게 들어가서 부스러져 가루가 되어 있는게 신경이 쓰여 손세차를 생각해낸거다.  며칠 전 거기 가서 가격을 물어보려고 기웃거리니 사무실에서 젊은 직원이 하나 나와서, 손세차 처음 하냐고 묻더니 2-3년 동안 한번도 안했으면 광택, 코팅 뭐 이런거 다해야한다며, 기계세차만 했던 나의 관리태만을 질책했다.  그러면서, 내가 갔던 그때 하면 원래 35만원 65만원... 각각 해서 다하면 요금이 100만원도 넘는데, 둘 합해서, 실내 가죽 광택까지 다해서 60만원에 해주겠다 거다. 그러면서 시간은 4시간 이상 걸리니까 그냥 아예 차를 맡기고 가라고 했다.   

내가 세상 물정이 원체 어둡기도 하고, 차에 대해서는 그 무지함이 극을 달하므로, 요금이 생각보다 훨씬 비싸다 하면서도 다들 그렇게 하는데 나만 몰랐나, 싸게 해준다고 할 때 해야하나 망설여졌다.  만약 그때 이후 약속이 없었으면 맡겼을 수 도 있을 뻔 했다.  근데 나는 거기서 물건 하나 사서 그걸 차에 싣고 그 다음 약속 장소로 가려고 했기에, 짐들고 다니기 그렇다 그랬더니, 그 청년 택시비로 10만원 빼주겠다는거다. (그 때 약간 이상하다 느꼈다. 아무리 서비스래도 날 언제 봤다고 무슨 택시비로 10만원이나 빼주겠다는 것인지?)  그래서 내가 다른 가족과 상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더니, 지금 (그 당시) 예약 캔슬이 되어서 자기네 시간이 나서 그런거니 다음엔 그 가격 보장 못해준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어리숙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때만 해도 난 거기가 바가지라는 생각은 못하고, 그 직원분 전화번호까지 물어서 저장하면서, 담에 전화해서 시간 빌 때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결정적으로, 그 직원은 자기 핸펀 번호는 가르쳐주면서도 자기 이름은 안밝히면서, '클*보이 (상호) 부장'이라고만 적어두란다. 거기서 부장은 자기 하나라면서.  나중에 카톡으로 자동 연결된 그의 카톡 프사에는 여자친구랑 뿌잉뿌잉 사진도 찍은 젊은 친구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바가지를 씌우다니... (물론 지금은 기분이 나빠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나중에 알아보니, 다들 펄쩍 뛰면서 무슨 세차에 그렇게 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크게 당할뻔 했다고 했다.  

물론 내가 어리바리한 것도 있지만, 거기 위치가 어디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이마트 안에 있으니까 거의 동네 장사인데 설마 사기에 가까운 바가지를 씌울리가 있겠냐 하는 심정도 커서 그렇게 의심을 못했다. 게다가 이런게 나이 차별인지 모르지만, 그 권유한 직원이 엄청 어린 친구이다.  나이가 지긋하고 영업에 뼈가 굵은 사람이면 경우에 따라선 좀 어리바리한 나 같은 사람한테 바가지 씌울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직장생활 오래 안한것 같은 젊은 청년이 막 열성적으로 권하니까, 그렇게까지 바가지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내 생각에는 원체 유동인구 많은 장소에서 영업을 하면 정직하게 하는게 장기적으로는 낫지 않나 싶기도 했는데, 그렇게 바가지 씌워도 영업이 잘 되나보다. 과연 그 영업점의 사장은 그런 바가지 행태를 알고는 있는지....  신뢰사회는 아직 요원한가 싶어서 뒷맡이 씁쓸했고, 나의 이 끝없는 어리바리함에 스스로에게 약간의 자괴감도 느껴졌다.  다들 이러지 맙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14 12:15 일상 이야기

한겨울인지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는 우리집 과수원. 빈약하기 그지없는 줄기에 무려 방울 토마토가 20개가 열렸다. 처음엔 모두 녹색이라 구분도 안되더니, 이제는 제법 붉은 색이 올라와서 확연히 열매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이다. 

2019년 1월에는 모두 푸른 나의 방울토마토 줄기와 열매 

이제는 확연히 붉은색을 띠는 방울토마토들



그리고 독야청청 올라오는 줄기는 파프리카인지 방울토마토인지 알 수 없었는데,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방울토마토 같다.  재작년 방울토마토가 열린 후, 난생 처음 수확의 기쁨을 가지고 이번에는 내가 사서 씨를 뿌렸건만 아무 소식도 없어서 그냥 망했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중에 생존한 씨앗이 있었나보다. 

정체를 알수 없었던 독야청청 줄기 

이제는 방울토마토임이 분명해진 독야청청 줄기

파프리카도 너무 무성해서 분갈이를 해준다고 했는데, 난생처음 해보는거라 제대로 살아날지 안할지는 모르겠다.  파프리카 싹들은 분갈이 후에 다시 올리는 걸로...제발~ 살아나라~ 

너무 무성해진 파프리카 싹들. 


키우는 즐거움 3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13 00:13 미술 이야기

우연히 발견했다. 갖고 싶은 양말.  Keith Haring (1958-1990)의 Happy Socks!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판매중인 상품이다. 가격은 $42.00불, 5만원 남짓한건가?  다른 예술도 아니고 팝아트인데, 5만원에 키스 해링 소장이라.... 

누굴 탓할 입장인가 싶은 뱅크시가 미술관에서 전시실을 가려면 기념품 샵을 들러야한다고 비판 했지만, 아닌게 아니라, 기념품 가게가 전시실에서 들어가는 길목이던 나오는 길목이든 사람들이 오가는 동선 상에 있는 미술관이 대다수이다. 요는 앞이든 나중이든 샵을 지나지 않고서는 미술관 밖을 드나들 수 없다는 것.  

나도 간혹 체력 떨어질때에는 샵에 먼저 들러서 둘러보기도 한다.  이쁘고 독특한 기념품을 '득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다.  물론, '진짜' 작품이 아닌 기념품 용으로 제작된 '가짜'를 먼저 구경한다며, 함께 미술관을 간 지인들과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사실 무엇인가를 '소장'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그것이 아주 오래도록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금액이면 부담도 그만큼 줄어드는 행위이다.  또하나의 장점으로는 기념품 샵에 전시된 상품들을 대충 훑어보면, 그 미술관이 자랑스럽게 '밀고 있는' 작품이 무엇인지 금방 알수 있다.  따라서, 미술관 기념품 샵 구경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특히 '요새 미술'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다 '팝 아트'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런 기념품 제작과 작품과의 관계는 더욱더 밀접해지는 것 같다. 예술의 상업화를 논하지만, 뒤집어보면, 반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이 몇 천억하는 것이 더한 예술의 상업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9년에는 유난히 유명한 해외 작가들의 전시가 많다.  

키스해링전 : 예술은 삶, 삶은 곧 예술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날짜를 보니 3월 17일까지다. 이 전시는 못가봤지만, 저번에 앤디 워홀 전시때 가보니 기대이상으로 충실한 전시였던 기억이었기에 이번 전시도 기대해본다.  그곳에 가면'행복한 '양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양말을 신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05 22:40 미술 이야기

2019년 2월 3일 슈퍼보울 광고에 앤디워홀 (Andy Warhol: 1928-1987)이 등장했다. 그냥 등장한게 아니라 버거킹의 햄버거를 포장지에 케첩 퐁퐁 뿌려서 콕콕 찍어 냠냠 먹는 장면이 45초간 방영된다. 원래 덴마크 출신 감독 요한 레츠 (Jørgen Leth: b.1937)의 실험적인 영화 66 Scenes From America의 일부를 버거킹의 광고에 사용한 것이라고.  

2019년 2월 3일 슈퍼보울의 버거킹 광고에 등장한 앤디 워홀의 모습 

감독 요한 레츠 (Jørgen Leth: b.1937)의 실험적인 영화 66 Scenes From America에는 66 장면의 '전형적인 미국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그 중 한 세그먼트에 워홀이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담겨있는데, 이 부분을 이번 광고에 사용한 것이다.  무미건조하게 먹고나서 '나 앤디 워홀이 햄버거를 먹었다'는 무미건조한 멘트를 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부분을 다시 활용한다는 면에서는 내 블로그에서 몇 번 이야기한 '차용' 기법에 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실제로 '광고'에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과연 티브이 광고를 예술 작품으로 간주하느냐 마냐에 따라 이를 '차용'이라고 명명할 수 있냐 없는가가 나뉠 수는 있다.  한편으로는 '차용' 기법이라는 것 자체가 '공허한 복제'인데 그렇게 엄격하게 정의하고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반론이 있을 수도 있다. 

요는, 팝 아트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앤디 워홀이 세상을 떠난지 30년도 훌쩍 넘은 이 시점에 광고주들이라면 모두 눈독을 들일만한 미국에서 가장 핫한 광고 시간대인 슈퍼 보울 광고 시간대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등장한 것은 광고 출연이 아니라 원래는 영화의 창작에 참여했던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이 자아내는 아이러니.   


감독 요한 레츠 (Jørgen Leth: b.1937)의 실험적인 영화 66 Scenes From America에는 66 장면의 '전형적인 미국의 모습'중 하나인 워홀이 햄버거를 먹는 장면 


사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충분히 성공한 뒤, 그는 예술가로 전향했고, 팝 아티스트로 충분히 유명해지고 부를 거머지고 나서는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그가 제작한 영화들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무성 영화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무지하게 지루하다. 그가 이러한 영화의 제작의 이유를 '권태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다. (짐작컨데, 천재가 분명한 워홀은 분명 일상이 무지 권태롭긴 했으리라.)  

그 무성 영화라는 것인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한자리에서 8시간 촬영하거나 (Empire, 1964), 한 남자가 45분간 천천히 버섯을 먹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Eat, 1964), 한 남자가 자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Sleep, 1963)....  

앤디 워홀의 초기 흑백, 무성영화 중 최강자는 단연 <Empire>(1964)일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고정된 카메라로 무려 8시간 5분 동안 촬영한 것이다.  무려 8시간 5분 동안 한 장면이 지속되는 것이다.  사실 그런 영화를 안봐도 '권태'라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한편으로는 '멍때리기'가 우리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그 용도로 사용해보는 게 좋을 수도 있을까? 


앤디 워홀 (Andy Warhol), 잠 (Sleep)(1964년 출시, 러닝타임 5시간 20분), 요하네스 메카스 (Jonas Mekas) 촬영, 워홀 필림즈 배포. 워홀의 친한 친구이자 시인인 존 지오르노가 잠자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촬영한 것.   

Eat (1963)은 앤디 워홀 (Andy Warhol)이 제작 한 화폭 45 분짜리 언더 그라운드 영화로 1964 년 2 월 2 일 일요일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가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스튜디오에서 그가 버섯을 먹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사운드 트랙도 없이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이 무성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등장한 고양이를 로버트 인디애나가 웃으면서 안는 장면이리라.  


<엠파이어>(1964)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고정된 카메라로 무려 8시간 5분 동안 촬영한 것. 지루함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작년부터 올해 3월까지 휘트니에서 워홀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관심이 있고, 그 곳에 갈 일이 있다면 방문해보면 좋을 것 같다.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홈피 참고할 것) Andy Warhol—From A to B and Back Again  (Nov 12, 2018–Mar 31, 2019)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04 00:30 일상 이야기

드라마 Sky 캐슬이 인기가 있긴 있었나보다.   

모르긴 몰라도 선생님 말씀은 듣는게 좋은거 같다. 그리고 선생님은 전적으로 신뢰해야한다.  올해는 꼭 대박나고 복많이 받는다 믿어야겠다. 블로그를 읽는 모든 분들도 선생님 말 잘 들으셔야 합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03 00:30 미술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라고 할 만한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Edvard_Munch, The Scream (1893)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91 x 73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心臓の「叫び」(支援キャンペーン)원본 페이지

 

뭉크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일본의 공익광고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내가 본 것만 몇 가지 된다. 지금와서 찾아보니 검색이 되는 것은 방향제 광고 하나이지만 말이다.  광고를 보다보면 우리의 절규 청년의 지시대로 방향제를 얼른 플러그에 꽂아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꽂아주니 저렇게 행복해하니 더더욱!  

90년대 글레이드 플러그 인 (콘센트식 방향제)의 광고에 사용된 뭉크의 <절규> 이미지


엊그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패러디하여 (예술적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일레인 스터트번트에 대해서 언급한 김에 패러디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았다.  아래가 엊그제 올린 두 작가의 작품들.    

Roy Lichtenstein, Crying Girl (1963), lithograph on lightweight, off-white wove paper, 40.6 cm × 61.0 cm 

Elaine Sturtevant (1926-2014), Lichtenstein, Frighten Girl (1966), oil and graphite on canvas ; 115.6 x 161.9 cm. 

  '무의미한 복제', '차용'이 하나의 특징이 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컴퓨터 그래픽, 포토샵의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다보니, 정말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결은 다르지만, 알고 있는 예술 작품을 광고에 활용하는 것은 적절히 이용하면 확실히 효과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패러디의 효과란 이런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02 00:30 일상 이야기

사단이 된 것은 내가 본 이 기사, 아니 사진 한장이 발단이었다. 

Frigid Chicago Bean Shrivels Up From Below-Zero Temperatures 라는 기사아래 사진 한 장 달랑. 

아무리 아래위로 훑어도 기사는 없고....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하지만, 그 외에는 사실에 기반한 포스팅 하나를 올렸다. 제목하야, 내 맘대로 작품 보기-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의 <구름문 (Cloud Gate)>

하지만 '합리적 의심'이 뒤늦게 발동해서 그 외 사이트를 검색해봐도, 그런 기사는 없었고, 그래서 2탄 포스팅을 했다. 역시 사실에 기반한 포스팅이었다.  그 제목하야, 내 맘대로 작품보기-아니쉬 카푸어 2탄...Cloud Gate 다시 한번

내 잘못은 첫째. Onion.com이라는 매체의 성격을 모르고 그 곳에 오른 사진을 보고 그것이 실제 모습을 찍은 사진이라고 성급하게 믿어버린 것에 있다. 뉴스 매체와 같은 모습을 띠고 있으면 믿기 쉽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범한 두 번째 잘못은 그런 사진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채, 포스팅을 작성한 데 있다.  알고 보니, Onion.com이라는 내가 사진을 발견한 저 사이트는 진지한 매체는 아닌듯하고, 따라서, 위의 이미지는 합성한 이미지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나마 내가 '합리적 의심'이 발동하여 Onion.com이라는 매체의 성격을 모르면서도, '그럴 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에 있을까? 두 번째 포스팅에는 그러한 사실을 전달하고, 첫 번째 기사의 오류를 정정하면서 해당 작품에 대한 다른 사실들을 보강해서 올렸다. 

문제는 링크를 건 페북의 그룹에서 몇 차례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다. 그룹의 성격 상 회원의 포스팅은 관리인의 승인 후 게시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후속 글이 안 올라 간 상태에서, 내 첫 번째 포스팅만 보고 내 글의 오류를 지적하는 댓글들이 달리고 메시지들이 온 것이다. (오류를 지적하는 메시지나 댓글이 친절한 것만은 아니라서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험이었음은 안비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인류가 검증없이 말 퍼뜨리는 부류인데, 졸지에 그 반열에 합류하게 된 지경이 되었다. 으흑~  두 번째 글 쓰면서는 내가 '가짜 뉴스 & 합성 사진'에 홀라당 넘어간 것에 어의없으면서도 그래도 헤프닝같기도 해서, 약간 재밌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글 막쓴다'라는 식의 대응을 겪다보니,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내 신념과 이제까지의 노력에 반하는 반응이라 화도 좀 났다. 그러나 단초를 제공한 건 어쨌든 나이고 그 첫 번째 글을 올린 것도 나니까 어쩌겠는가?  앞으로 조심하는 수 밖에.  그리고 잘못한건 잘못했다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수 밖에.  

이번 기회로 좀더 신중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요즘 같은 시기에 소위 거짓 뉴스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에 경각심을 다지는 계기도 되었다. 

하지만, 합성 사진 하나로 펼쳤던 상상의 나래가 즐거운 순간을 제공한 것도 사실이긴하다.  앞으로 글을 읽는 분들이 순차적으로 글을 읽는다면 어떤 감상이 들까? 댓글도 있고, 이미 글을 올린 곳도 있으니, 그냥 글들은 그냥 남겨두는 걸로...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2.01 00:30 미술 이야기

어제 Anish Kapoor에 대해서 글을 올리고 (어제 올린 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 좀 더 검색해보았다. 인스타그램의 폐해라고나 할까?  이미지 하나 달랑 올라와 있어서 그걸 보고 오만가지 상상력의 나래를 폈으나, 그 다음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공공 조각을 목적으로, 그것도 알루미늄으로 만든 설치 작품이 알루미늄 호일도 아니고 그렇게 쪼그라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이후 짬짬히 다른 뉴스 사이트를 뒤져봤지만, 그랬다는 뉴스는 한 군데도 없었다. 

낚인거 같다! 거의 확실하게...

덕분에 난 '내 맘대로 작품 보기' 시리즈에 포스팅 하나 더 올리고, 블로그 읽고 아니쉬 카푸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고 그의 작품에 공감하며 좋아했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니 그닥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위안하며.... 어제 포스팅은 그냥 두고 다시 하나 글 올리기로 한다. 

하지만, 가짜 뉴스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경각심을 가져야겠다 생각해본다. 이게 일개 조각상의 뉴스가 아니라 좀더 중대한, 이를테면 우주인들의 지구침공이라던지 아틀란티스의 반격이라던지 이런 뉴스였는데, 내가 홀라당 믿어서 글을 퍼날랐다면 얼마나 큰 후폭풍이 있었겠는가!  (반성.반성.)

눈오는 날의 <구름 문>

 

바람으로 유명한 시카고의 한겨울, 진짜 '구름 문'의 모습.  어제 글을 읽은 분들께 혼란을 야기했다면 진정 쏴리~ 

사과의 의미라면 뭣하지만, 이왕 내친 김에 <구름 문>의 다른 모습도 몇 개 보너스로 올려보자면. 

이 정도 규모의 설치 작품은 사실상 제작에 있어서는 건축에 가깝다. 설계도와 함께. 

<구름 문>이 모형 단계를 지나서는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아 제작을 했다고 알려져있다. 

위에서 바라본 <구름 문>  위에서 이렇게 바라본 적은 없지만, 하늘의 풍경도 한아름 다 담고 있는 모습은 내가 아래서 느꼈던 감상을 또 한번 확신에 가깝게 해준다.  

배꼽이라고도 불리는 가운데 옴폭 파인 부분에서 올려다 본 <구름 문>


다시한번 느끼지만, 분위기에 따라서는 세기말 적이기도 하고, 외계에서 내려온 비행선 같기도 하고, 생명체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제이크 질렌할이 주연으로 등장한 2011년 영화 <소스 코드 (Source Code)>에 SF스럽게 등장하기도 했다.  

Kapoor’s Chicago work figured in the 2011 movie “Source Code” starring Jake Gyllenhaal.


덧붙이자면, 아니쉬 카푸어의 <구름 문>과 너무도 흡사한 중국 짝퉁이 있어서 작가가 격노해서 소송 중이라고도 들었다... (이것도 자세히 나온 기사가 없어서 확실한 전말은 알수 없고, 어제 낚이고 난 직후라 기사의 진위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중국의 커라마이시에 있다고 하는데...  위그르어로 '검은 석유'라는 뜻의 도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전이 있는 도시라고 한다.  이 중국 작품의 작가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 지역에서 자주 발견되는 유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름 방울들의 거품'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자세히보면, 카푸어의 작품과 유사한 큰 덩어리 주변으로 자잘한 알루미늄 반구체들이 늘어서 있는데, 작가의 말을 믿자면 (혹은 그렇게 말했다고 하는 기사를 믿자면), 기름 방울들 중에 큰 놈을 묘사한게 어쩌다 보니,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과 유사한 것이 된다.  


중국의 커라마이시에 설치된 '기름 방울들'이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아니쉬 카푸어가 격분해서 항의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소송 중이라고도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알수 없지만 그가 화가 난건 이해가 된다. 

누가 봐도 비슷하다고 할 것 같은데, 아류 작가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품을 대놓고 카피하다니! 대범하다고 해야할지.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한  일레인 스터트번트 (Elaine Sturtevant)의 경우, 전체적인 작품세계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리고 예술계에서 실제 리히텐슈타인 작품보다 그의 작품을 모사한 스터트번트의 작품이 열 배가까이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었던 것이 현실이니까. 

Roy Lichtenstein, Crying Girl (1963), lithograph on lightweight, off-white wove paper, 40.6 cm × 61.0 cm

Elaine Sturtevant (1926-2014), Lichtenstein, Frighten Girl (1966), oil and graphite on canvas ; 115.6 x 161.9 cm. 

리히텐슈타인의 <우는 소녀>는 2007년 경매에서 $78,400에 낙찰되었다. 반면, 스터트번트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모사한 <Lichtenstein, Frighten Girl>(1966)의 경우, 2011년 경매에서 무려 $710,500에 판매되었다. 이어, 그녀가 사망한 2014년 이 작품의 가격은 예상 최고액 $800,000을 가볍게 뛰어 넘고 $3,413,000에 팔렸다. 물론 중국의 복제품과 스터트번트의 경우 차이는 있다. 중국의 복제품의 경우, 인터뷰 (혹은 인터뷰라고 알려진 글)에서조차 아니쉬 카푸어의 이름을 언급하지도 않는 반면, 스터트번트의 경우 제목에서조차 대놓고 리히텐슈타인의 이름을 넣고 있다. 이러한 이유없는 모방, 복제를 '차용 (appropriation)'이라고 하는데,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혹 아는가, 향후 수십년 지나면 중국의 짝퉁 (?) 설치작품이 다시금 새로운 작품 경향으로 회자되면서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 어떨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1.31 13:52 미술 이야기

이 글에는 2편이 있어요.    1편만 읽고 오류를 지적하시지 마시고~ (뭐 하셔도 괜찮습니다만), 어쨌든 2편까지 꼭 읽어주세요~ 혼란을 야기했다면 죄송합니다. 

인도계 영국작가인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아마도 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구름 문 (Cloud Gate)>라는 작품일 것이다. 나만 해도, 아니쉬 카푸어라는 외우기 힘든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 사진 찍듯이, 너나없이 모두 이 거대한 강남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곤 했다.  물론 나도 이 앞에서 몇 차례....  선촬영 후감상.  

공공설치인 탓에 이 작품은 당시의 기후의 변화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따라 비춰지는 풍경의 모습도 매번 변한다.  일단 거대한 조각품은 전통적 조각에서 느낄 수 없는 규모와 미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느끼느냐 아니냐는 개인차가 있으니 패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작품은 알루미늄이라는 현대적 매체를 사용하고 형상도 도우넛 모양의 충분히 현대적 형상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전달하는 미학은 지극히 동양적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bean'이라는 별칭처럼 도우넛 같기도 하고, 콩의 형상을 하고 있는 형태의 특징과 거대한 규모 탓에 주변의 풍경이 오롯이 다 비춰진다. 따라서 삼라만상을 다 담고 있는 우주와도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그 속에 비춘 나의 작은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우주 속에 갖힌 또다른 나와 마주하게 되고, 과연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하는 '장자의 나비'같은 생각도 하게 한다. 한편 거대한 <구름 문>과 대비되는 그 속에 비친 조그마한 내 모습에서 내 존재의 미미함을 느끼면서 철학적 사유를 하게 된다고나 할까?  

Anish Kapoor, Cloud Gate (2006), Stainless steel sculpture, 10 × 13 × 20 m,  Millennium Park, Chicago.  고광택제의 알루미늄으로 제조한 조각으로 아니쉬 카프어의 대표작. 북쪽의 마천루를 비추고 있는 모습을 동쪽에서 촬영한 것. 북쪽으로는 East Randolph Street을 따라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Anish Kapoor, Cloud Gate (2006), Stainless steel sculpture, 10 × 13 × 20 m,  Millennium Park, Chicago 

그러던 작품이었으나, 최근 영하를 밑도는 강추위에 이렇게 쪼그라들었다는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댓글 중에는 '이제야 작품 같아졌네.'라는 글도 있더라마는, 나같은 경우는 원상회복이 될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나의 추억도 담겨 있는 조각품이 또 다시 아름답게 삼라만상을 비추어줬음 좋겠다는 바람.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국내에도 있다. 리움 미술관 야외 정원에 두 점과 실내에 한 점~

하늘 거울 (Sky Mirror)는 여러버전이 있고, 리움의 작품과 대동소이하다. 

예전에 안토니 곰리에 대한 글을 쓰면서 리움 미술관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건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에도 해당이 되네요.  안토니 곰리에 대한 그 글이 궁금하신분 여기를 참고하세요.  


아니쉬 카푸어의 공공조각 다른 작품으로는 <하늘 거울 (Sky Mirror)> 있다.  시카고의 <구름 (Cloud Gate)> 마찬가지로 고광택제 알루미늄으로 제작되어 하늘을 비추는 오목한 접시모양의 설치물로 여러가지 버전이 세계 곳곳에 있다.  

최초의 버전은 2001 영국 노팅엄의 웰링턴 서커스 (Wellington Circus, Nottingham, England) 설치된 것이다. 작품은 무게가 10 톤에 육박하고 6 미터 너비의 오목한 접시로 하늘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 거울과도 같은 매끈한 표면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반영한다.   버전은 2006 9 19일부터 10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되었던 버전이 있는데, 무려 11m 지름으로 3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볼록한 면은 5번가를 오목면은 록펠러 센터의 안뜰 쪽을 향해서 독특한 풍광을 제공했었다

이밖에 영구 설치로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허미타지 미술관 (Hermitage Museum) 네덜란드 틸버그 (Tilburg) 드퐁 현대미술관 (De Pont Museum of Contemporary Art), 달라스의 AT&T Statium 있다. 그리고, 한국의 리움 미술관.  

아니쉬 카푸어, <하늘 거울 (Sky Mirror)> 2006 9 19일부터 10 27일까지 한시적으로 뉴욕의 록펠러 센터에 설치되었던 버전이 있는데무려 11m 지름으로 3 높이에 해당하는 규모

1980년대부터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명실공히 세계적 작가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세계는 시기별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시카고의 <구름 문>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내가 한차례 아핫! 하고 아이디어에 감탄했던 작품은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승천 (Ascension)>이라는 작품.  

‘ascension’ by anish kapoor, basilica di san giorgio, venice image by oak taylor-smith

 


서양의 중세때부터 수도 없이 그려졌던 예수 승천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런 신박한 표현을 착안해내다니!   어떤 의미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가장 '리얼리즘'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쉽게도 나는 예수님이 승천하시는 모습은 고사하고, 직접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을 목도한 경험도 없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본래 형상을 지닌 것이 아니니, 만약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니시 카푸어의 작품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원을 따지자면, 뒤샹의 '남성 소변기'에서 출발했고, 이후 팝아트와 네오팝 작가들이 끊임없이 시도해온 '발상의 전환'과 '사고의 전복'을 통해 유발되는 '충격'이 예술의 목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충격 요법'을 지향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 중 하나라면, 그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참고로 아래는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그려졌던 예수 승천의 다양한 예들 중 일부.  아래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이 얼마나 참신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Rembrandt (1606–1669), The Ascension (1636), oil on canvas ; 93 x 68.7 cm, Alte Pinakothek 


Master of the Rabbula Gospels, The Ascension of Christ (586) Parchment, 34 × 27 cm, Biblioteca Medicea-Laurenziana

Benvenuto Tisi da Garofalo, Ascension of Christ, 1510-20. Source: Wikimedia Commons

Gebhard Fugel, Ascension of Christ (1893/94), Catholic Parish Church of St. John Baptist, Obereschach, Ravensburg


쪼그라든 강남콩 모양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을 보고 써본 내맘대로 작품 보기 세번째 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1.26 05:18 일상 이야기

평소에는 엄청 점잖은 사람인데, 차만 타면 쉽게 흥분하고 욕설도 마다 않는다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그건 우리나라만 그런게 아닌듯, 옛날 디즈니 초창기 시절 운전으로 위법을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운행 교육용 화면으로 만들어진 것에도 등장한다. 차를 탈 때엔 평소 우리가 보던 순하고 느릿느릿한 구피였는데, 운전대를 잡는 순간 눈빛이 바뀌며 헐크 같이 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면 안된다는 교육용이다. 


왜 운전대만 잡으면 분노조절이 안되는 것일까?  갑자기 끼어드는 차를 향해 욕설을 내뱉는 것은 어쩌면 놀람을 넘어선 공포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과연 난폭 운행이 분노조절 장애 있는 운전자들을 낳는 것인지, 아니면 원체 분노조절 장애 운전자가 많다보니 난폭 운행이 많아진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밀리는 상황이 많으니 짜증이 나고 여유가 없어져서 그럴 수도 있는데, 가끔 깜빡이 없이 갑자기 훅-하고 눈 앞에 차가 끼어들면 무엇보다 사고의 위험때문에 등골이 서늘하고 그 다음 순간에는 화가 확 치민다.  내 경험상 너무 놀라면 경적을 울릴 틈도 없다. 제발 그러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운전자들의 시야가 그렇게 넓거나, 모두가 그렇게 순발력이 뛰어나지 않다. 그러다 사고나면 그렇게 끼어든 운전자도 손해지 않은가?  내가 몇 번 그 차 도대체 얼마나 빨리가나 싶어 눈으로 좇으며 가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끼어든 차가 나중에는 내 뒤쪽으로 오는 것도 몇 번이나 봤다. 그래봤자 별 수 없다는 것이다. 

병목 현상있는 구간에서는 차례로 한 대씩 지나가면 될 것을 한번 양보를 시작하면 끝도 없이 같은 쪽 길에서 차들이 밀고 들어와서 난감한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결국 감정 싸움을 야기하고 서로 머리 박고 꼼짝 않는 황소 두마리 처럼 길을 막아서는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아무도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결과이다. 여하튼 운전을 하면서 '왜 저러나' 싶은 적이 많은데, 이런 상황에서 초보 운전자의 경우 길 위로 나서려면 적잖은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차가 초보운전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작년에는 차를 몰고 가는데, 옆 라인 차의 뒷쪽에,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빵 터진 적이 있다. 그걸 주변에 이야기 했더니, 원체 널리 퍼진 문구였는지, '참 싱거운 사람'이라는 평도 들었다.  (내가 싱거운 건 딱히 부정 못하겠지만, 날 그렇게 놀린 사람도 처음 봤을때엔 좀 웃지 않았을까? 속으로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미국 버전을 발견했다. 직접은 아니고, 페북에서...  '열심히 가고 있잖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규~' 이런 뉘앙스일텐데, 이번 경우 스티커가 아닌 차 번호판을 아예 그렇게 만들었다. (미국은 돈을 더 내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저렇게 원하는 문구를 넣을 수 있다. No.1 Daddy, No.1 Mom을 비롯해서, 의사라던가 변호사라던가 직업을 넣는 사람,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이름을 넣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과연 어느 쪽이 분노에 차 뒤따라 오는 운전자들을 효과적으로 달랠 수 있을 것인가?  맥락은 비슷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 쪽이 좀 더 페이소스가 더 묻어난다고나 할까...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1.25 00:30 일상 이야기

알함브라 궁전

난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내가 본 드라마는 손꼽는데, 드라마를 안보는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래도 매주 그 시간 기다려서 보는게 너무 힘들어서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광고 나오는 동안 딴 짓하다가 매번 흐름을 놓치곤 하다가 시들해져서 안보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20대 초반 남녀간의 연애 드라마인데, 이건 뭐 주인공이 의사이면 병원에서, 변호사이면 법정에서 알콩달콩 연애만 하는데, 나로선 드라마에 설득당하지 못해서 딱히 공감이 되지 않아서이다. 

내가 최근 들어서 본 드라마 중에서 재미있게 본 드라마는 '비밀의 숲'하고 '라이프 온 마스'였는데, 이 두 드라마는 광고 없는 스트림으로 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주 다음주를 기다렸다 본 드라마였다. 

비밀의 숲은 왜 다들 '조승우, 조승우' 하는지 알게 해 준 드라마였고, 난생처음 드라마 작가가 누구인지 이름을 찾아본 드라마였다. 단 하나의 살인 사건과 그것에 대한 해결 과정만으로 드라마 전체를 아우르며 빅 픽쳐까지 그려낸 수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라이프 온 어스'는 한국 드라마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새삼 감탄한 드라마였다.  애초에 BBC의 드라마를 리메이크라고 한 것이라고 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처음에 1회 한국 드라마를 보고, 영국 건 어떻게 만들었나 궁금해져서, 힘들게 BBC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단순히 한국 사람이라서인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 드라마 쪽이 훨씬 더 재밌고 구성이 조밀했다. 내가 전문적인 연출가도 아니라 자세한 것은 분석 내지 비평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긴 하지만, 나로서는 한국 드라마 쪽이 10점 만점에 10점이었다. 영국 드라마는 한 두편 보다가 중간에 재미없어서 관둬서 모르긴 하지만, 너무 축축 처지고 음울하기만 하고,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라고 할까 흡인력이라고 할까 하는 것이 너무 약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보게 된 드라마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연말에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 두명다 재밌다고 재밌다고 한 두 드라마 중 하나였다.  다들 재미있다고 장안이 떠들썩한 'SKY캐슬'은 뒤늦게 첫 회보고서 전반적으로 주인공들의 행동설득당하지를 못해서 계속 보지 않기로 하고, '그렇다면...'하면서 오랜만에 본 드라마였는데....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실망이었다. 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본다고 하더니만, 그렇다고 딱히 중반 넘어 본 드라마 몇개 되지도 않는데, 중간에 그만두게도 안되었다.  불만이 차오르는데 끝까지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 이렇게 악평 하나 남기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아 글이라도 하나 쓰는 것이다. 

난 겜알못이라 처음에 한 두회는 정말 참신하고 신선했다. 아, 이래서 겜 폐인이 나오는 거구나 생각도 하면서... 

'가상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 철학적 사유를 유도하는 화두이고 많은 철학자들이 이에 주목해서 담론도 활발한 분야이다. 내가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주변의 현실에 대한 반응인데, 그 현실이 가상일 경우의 우리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늘 생각해온 인간의 정의, '인간이란, 그 주체의 경험의 결정체'라는 정의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의 주제를 듣고 혹 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회를 보았을 때의 스페인의 아름다운 풍광도 한 몫을 했다. 다음 번 유럽 여행에는 반드시 스페인을 넣자,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회가 갈수록 시청자들을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로 아는지 매번 전회의 요약편을 회상씬 형태로 절반 이상을 채우더니, 후반으로 갈 수록 'PPL의 추억'이 되어 갔다. 덕분에 많은 별명이 생긴 것 같았다. '발암브라 궁전의 추억',  '서브웨이의 추억', '토레타의 추억' 등등.... 

그리고, 아무리 내가 게임의 전문 세계를 모른다고 해도 그렇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물론 원체 설정 자체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으니까, 어느 정도 말이 안되는 건 안되는대로 오히려 그게 드라마의 재미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들의 대처 능력이랄까 사고 처리 방식이랄까 납득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례적으로 드라마 작가의 이름을 찾아본 두번째 드라마였다. 전작과는 다른 이유로....  

왠만하면 드라마 잘 보지도 않는 1인으로서 비판으로만 가득 찬 글로 마무리 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다 보니, 정작 드라마 작가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거나 자부심을 느낀다거나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나보다. 그런 내용의 글을 몇 개나 뉴스 포털의 헤드라인에서 봤다.  아마 작가의 주변에는 전부 드라마 참가자들. 서로 전부 좋다 좋다 해주고 자축하는 분위기였나보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참 많구나, 그리고 모름지기 주변에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위험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밀의 숲'이 '조승우', '라이프 온 마스'가 김경호의 발견이었던 드라마였다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현빈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수확이었다면 수확이다.  명불허전. 솔직히 현빈이라는 배우가 나온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분명 CG로 처리했을 장면들에서의 연기를 포함해서 미묘한 감정표현에서 참 탁월했다.  왜 다들 그렇게 '현빈, 현빈~'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반면 잘생기고 이쁜 배우들도, (맡은 역이) 너무 어버버하고, 너무 맨날 울기만 하는 것이면 매력이 반감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드라마를 보고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1. 스페인은 한번 꼭 가봐야겠다.

2. 주변에 자신에 대한 칭찬만 해주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사는 환경은 자신을 정확히 바라볼 기회를 잃을 위험이 크므로 항상 경계해야한다. 

3. 역시 드라마는 내 선호 장르는 아니다. 매주 챙겨봐야 하는 문제나, 중간의 광고 문제는 어떻게 어떻게 해결해도 역시 나랑은 잘 맞지 않는 장르이다. 

4. 무슨 일을 진행하던 예산의 안배는 중요하다. 이번 드라마처럼 스페인 로케로 초반에 예산을 때려부으면, 나중엔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가진 역량의 안배도 중요하다. 초반에 너무 소진하면 일이 결국은 용두사미가 될 위험이 있다. 

5. 이 드라마가 주려는 교훈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게임에 빠지면 건강에도 안좋고 (총이나 칼 맞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 때로는 목숨도 진짜 잃는다 (말 그대로 게임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귀에 익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곡이 어디선가 들리면 칼든 자객이 내 주변에 없을까 휘이휘이 둘러보게 될 것 같은 건 이 드라마의 후유증이리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1.24 00:30 미술 이야기

어제는 음악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렸다. 거기에 탄력을 받아서 음악과 미술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려보려한다. 

2018년 제18회 송은미술대상의 대상작으로 선정된 김준 작가의 작품은 무려 '사운드' 작품이다.  이름하여, '사운드스케이프'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작품이다.  사운드스케이프, 즉, Soundscape란 음악이라는 뜻의 단어 'sound'에 '-scape'라는 접미어를 붙인 단어이다. 여기서 '-scape'는 'landscape'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넓게 펼처진 경치, 풍광이라는 뜻이나, '그러한 풍광을 묘사한 그림'을 의미한다. 같은 어미를 사용한 단어로는 도시 풍경을 의미하는 cityscape, 달의 표면의 경치를 뜻하는 moonscape, 바다의 풍경이라는 뜻의 seascape 등이 있다.  따라서, '사운드스케이프 (soundscape)'란 이를테면, '소리로 표현한 풍경'이라고나 할까? 

에코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 2018 12채널 사운드, 스피커, 앰프, 나무, 사진, 이미지 북, 돌, 식물 450 x 300 x 220cm [사진=송은문화재단]

신문방송학과 미디어학을 공부한 이례적 이력을 갖고 있는 김준 작가는 흔히 시각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미술에 청각을 들여온 다소 생소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런던, 시드니, 베를린 등 여러 곳에서 수집한 소리들과 함께 그 장소에서 채집한 다양한 사물들을 서랍 속에 넣어 전시한다. 감상자는 설합을 빼고 넣는 행위를 하면서 설합 속의 사물이 위치했던 장소의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 <에코시스템: 도시의 신호, 자연의 신호>(2018)은 관람자의 참여를 이끈다는 점, 그리고 found object의 활용한다는 점에 있어서 미술사적으로는 '다다'의 영역 속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소리'가 추가됨으로써 인간의 시각과 청각, 그리고 촉각을 모두 총체적으로 활용하여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바로크적 종합예술을 구현한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바로크적 종합예술의 경험은 건축, 인테리어, 미술이 총체적인 조화를 이룬다는 개념이지만, 김준의 작품이 구현하는 바로크는 인간의 오감과 기억과 추억, 정서와 감정을 모두 통합하고자하는 '내적인 바로크'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제18회 송은미술대상전 김준, 박경률, 이의성, 전명은 2018/12/21-2019/02/28

(참고로 '송은미술대상'은 역량있는 국내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재)송은문화재단이 시행하는 공모전으로 2001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수상자들을 배출해오고 있었다.  송은문화재단은 현재 송은아트스페이스도 운영하고 있고, 수상자들의 전시가 2월말까지 진행되고 있다.)

도시와 자연에서 수집한 소리와 함께 해당 지역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함께 전시하므로써 관람자들로 하여금 청각과 촉각, 시각이 함께 작용하는 경험을 하게 함으로써 관람자 각각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하거나 상상력을 발현하도록 이끈다. 

많은 관람객에게는 낯선 이러한 작품은 실은 예술계에서 최근 많이 주목받고 있다.  일례로 2010년 터너 상을 수상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수잔 필립스의 작품이 있다.  2014년에는 작위까지 받은 그녀의 경우, 자신이 부르는 노래를 녹음하여 특정 장소에서 그 녹음된 음악을 트는 식의 작품을 한다. 그녀의 노래는 어떻게 들어도 가수의 음성과는 거리가 멀고, 녹음도 어떠한 보정이나 수정도 하지 않아 불안정한 음정은 물론 그녀의 호흡도 다 담겨있다.  

2010년 터너 상을 수상한 수잔 필립스의 <저지대 (the Lowlands)>라는 작품을 한번 감상해보자. 


Susan Philipsz, Lowlands (2008/2010), Clyde Walkway, Glasgow. photo: Eoghan McTigue

위의 사진은 수잔 필립스의 작품을 원래 설치했던 글래스고의 클라이드 워크웨이라는 곳, 아래는 수잔 필립스의 작품을 2010년 10월 영국의 테이트에 설치했을 때의 사진.  같은 작품을 테이트 갤러리에 설치했을 때와 원래 설치한 글래스고우의 한 다리 아래 설치했을 때 그 음악으로 인해서 감상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불러 일으켜지는 정서는 사뭇 다른 것이리라.  

1950년대 중반의 Psychogeography와도 연관되는 그녀의 작품은 지리학적 위치가 인간의 정서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측면이 그녀의 작품과 김준의 작품이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Susan Philipsz, The Distant Sound (2014), Three channel radio transmission, Installation view Moss, Norway, 2014. Photograph: Eoghan McTigue


예술의 경험을 시각에 국한하지 않고 청각과 촉각 등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하여 감상자가 인간으로서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일깨운다.  인간이 갖고 있는 감각은 또한 얼마나 쉽게 주변 환경에 의해 영향받는가를 실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총체적 경험과 자각이 김준이나 수잔 필립스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 이러한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왜 요즘에 들어 예술계에서 부상하고 인정받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더 생각해볼만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 참고로 2019년 제19회 송은미술대상의 공모요강에 대해서는 송은 아트스페이스의 웹사이트를 참고하기 바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1.23 10:26 일상 이야기

나의 모든 취미와 관심은 시각적인 것에 집중되어 있다.

미술사 공부를 하고 있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고, 시간이 날때 거의 모든 시간을 책을 보거나 요새는 인터넷을 통한 자료를 읽는데 보내고 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좋아하는 음악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요새 음악도 모르고, 외국 생활이 길어서 한국의 대중 가요에도 오랫동안 노출이 안되어서 잘 모른다.  (예전에 god를 '갓'으로 읽어서 면박을 당한 일도 있다. 다행히 HOT는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음악을 들었는데 좋다고 느껴서 올려본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이 노래 제작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으니, '내맘대로 음악듣기'가 되는건가?

내가 어제 첨 '발견(?)' (음악이니 발청이 되나?)한 음악은 일본 그룹인거 같은데, King Gnu라는 가수의 'Prayer X'라는 노래이다.  물론 음악과 함께 뮤직비디오라는 시각적 요소에도 맘이 끌린것도 사실이니 내 취미와 관심사와도 약간 관련이 있는지도...

 

얼마전, 그 유명하다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봤다. 

그룹 퀸에 대해서는 그냥 사람들 아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이전부터도 라디오에서 퀸의 노래는 자주 나온 터라, 딱히 음악에 관심없는 나도 그들의 노래 몇 곡은 익숙하다.  '위 윌 위 윌 락유'라던가, '위 아 더 챔피언'이라던가, '라디오 가가'라던가...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도 제목과 노래를 연결지은 것은 좀 이후였지만, 라디오에서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정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 그룹 퀸은 회화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같은 거다.  대중문화에서의 노출이 워낙 많아 익숙하다 느끼지만, 정작 곰곰 생각해보면 아는 것이 없는 것.  그리고 알려고 하기엔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알기도 전에 이미 지겨워진....  

나한테도 그랬다. 그룹 퀸은 원체 들어서 알고 있지만, 얼핏얼핏 들어서는 그닥 좋은지 모르겠고, 호기심을 갖기엔 원체 많이 들어서 알고싶다는 맘이 들지도 않았던....  락 음악이라는 자체도 시끄러운 음악이라는 편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고. ('락'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은 굉음과 다소 폭력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길고 고운 머리카락 휘날리는 헤드 뱅잉... ㅎㅎㅎ)

그런데 개인적으로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는 수 년전에 우연한 기회에 자세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알고 있던 것보다 한 곡 속에 담긴 음악의 깊이와 다양함에 깜짝 놀랐고 감탄하면서 좋아하게 되었다. 당시에 힘든 일을 겪을 때 나는 내 아이팟에 담긴 그 노래를 아이팟이 테이프였다면 분명히 늘어났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감정이입이 되어서, 'Mama I just killed a man'이라는 프레드 머큐리의 목소리가 '엄마 누가 날 죽였어'라고 하는 것 같이 슬프고 애절하게 들렸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음 좋았어'라는 부분에서는 반드시 눈물이 났었다. 

나중에 관심있는 곡이라 조금 찾아봤더니, 혹자는 그 곡을 프레디 머큐리의 '커밍아웃'을 노래한 것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었다. 말이 되긴 한다. 양성애자 혹은 동성애자로서의 성인이 된 자신이 엄마가 낳아주신 한 남자 (어릴 때의 자신)을 죽인 것이 된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톨레랑스가 많이 생긴 요즘도 힘들다는데, 그 당시 그가 느꼈던 고통과 고민이 얼마나 엄청났겠는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음 좋겠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해석이 사실인지 아닌지 난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어떤 경위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든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노래를 들은 나에게 프레디 머큐리의 그러한 경험과는 관계없이, 당시 겪고 있던 나름의 슬픔과 고통 고민에 공명을 일으켰고, 위안과 감동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대단한 이유는 그런 것 아닐까? 

사실, 난 한 바탕의 인기의 파도가 지나고 나서 영화를 봐서인지, 아니면 하도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한껏 올라가서 인지 그렇게까지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가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받을 감동은 몇년전에 이미 충분히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는지도. 

하지만,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명곡이라는 평에는 나도 추호의 이의가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의 그닥 영향력없는 표라도 한표 더 던지고 싶다.  

음악은 공중에 떠도는 음들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임에 분명하다.  칸딘스키를 위시한 추상화가들이 그토록 음악 같은 미술을 만들고자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이 즈음 해서 안듣고 갈 수 없겠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입니다. 듣고 가실게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01.23 00:30 일상 이야기

원예가의 일기...

이렇게 말머리를 농담삼아 올렸다가 원성을 들을까봐 참았다. 

저번에 방울 토마토의 성과에 힘입어 일전에는 슈퍼에서 산 파프리카 다듬다가 나온 씨들을 모아서 말렸다가 뿌려보았었다.

아무리 물을 줘봐도 싹이 올라올 낌새도 안보이길래, 다시한번 씨를 모아다가 다른 화분에는 그냥 마구마구 뿌려보기도 했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물을 가끔 주긴 했어도 별 기대를 안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까 연한 녹색잎이 올라오더니, 며칠 새 여러개가 올라오고... 그러더니 어느새 이렇게 많이 자라 있었다. 

처음에 싹 튼 파프리카들

분갈이 하면서 씨를 더 뿌려준 후 자란 파프리카들

너의 정체는 뭐냐? 혼자 무럭무럭 크는 정체불명의 식물


중간에 키가 큰 이 놈은 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전에 방울 토마토 씨를 한 번 더 사다 뿌렸는데, 걔들은 다 죽은거 같았는데, 그 중 살아남은 한 녀석인지 아니면 파프리카 우성 종자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여하튼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보면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겠지만, 나로서는 기특하고 대견하고 뿌듯한 생명체들이다. 별 것 아니지만,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뿌리내리고 생명을 키워가는 존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적잖은 힐링이 된다. 

나중에 정말 본격적으로 조그마한 정원은 꼭 꾸며보고 싶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