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현대미술' 태그의 글 목록
2019. 5. 1. 00:00 미술 이야기

전시명: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기간: 2019.4.12~2019.9.8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작품수: 회화, 조각, 사진 및 아카이브 자료 90여점

 

전시회 소개를 해달라는 열화같은 (?) 요청에 힘입어 좀 신경써서 예술계 뉴스를 살펴보다 발견한 전시회. 다시 말하지만, 내 블로그가 전시소개 블로그라고 하기엔 전문성이 좀 떨어진다.  시작한지 한참 지난 전시회 소식을 전하기 일쑤고, 그것도 엄격히 선별......은 아니고 지극히 개인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리고 소개하는 전시를 내가 미리 보고 올리는 것도 아니다.  적고보니 너무 내 맘대로다. 어쨌든 그러니 감안하고 읽어보시란 말씀. 

오늘 소개할 전시회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4월 14일부터 시작된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이다.  (전시는 이미 시작했지만, 앞으로 한참동안 계속 하니까, 전시소개 글로서 유효한 걸로~)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개하는 아스거 욘 (Asger Jorn: 1914-1973)이라는 작가는 대부분의 한국 미술애호가들에게 생소하리라 짐작된다. 덴마크 출신인 그는 코브라 그룹 (CoBrA)라는 그룹의 대표작가로도 꼽히지만, 이 코브라라는 그룹 역시 그렇게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룹은 아니다. 여기서 ‘코브라’란 뱀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코(Co)펜하겐, 브(Br)뤼셀, 그리고 암(A)스테르담의 머리 글자를 따 명명된 명칭이다. 그래서 영어로 표기할때, 대문자와 소문자가 들쑥날쑥하게 CoBrA이다. 1948년 결성되어 1951년 해산하여 단명한 미술 운동 그룹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전후의 아르 앵포르멜에 포함된다. 이 그룹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는 아마 카렐 아펠 (Karel Appel: 1921-2006)일 것이다. 카렐 아펠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계기는 1955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개최되었던 <<새로운 세대 (The New Decade)>>라는 전시회에 소개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장 뒤비페 (Jean Dubuffet), 그리고 피에르 술라주 (Pierre Soulages) 등 22명의 유럽의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기념비적인 전시회였다.  전후 예술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미국에서 전시회를 했던 유럽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아스거 욘은 반골적이고도 혁명투사 같은 면모를 지닌 작가였고 사회참여적 작가였다. 1964년 구겐하임 어워드(현 구겐하임 펠로우십)의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는 의사를 전보로 보냄으로써 그의 예술 활동과 언행이 일치하는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아스거 욘이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선정 소식에 구겐하임측에 보낸 전보


 

아스거 욘이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선정 소식에 구겐하임측에 보낸 전보 내용 번역:

니 돈 가지고 지옥에나 떨어져! 빌어먹을 것들아.   

상은 거부한다.

상 달라고 한 적 없다. 

격조라곤 없이 너희들의 떠들썩한 인기나 얻으려고 원치 않는 행동을 하는 어중이떠중이 예술가가 되기를 거부한다.

나는 대중들의 동의를 원하는 것이지, 웃기지도 않는 너희들의 게임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스거 욘의 행보는 당시 유럽 사회의 유행하는 경향을 반영하고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제도와 권력에 반발하는 태도를 일관하였다. 기존 아카데미의 고루한 교육과 틀에 박힌 작법을 배격하며 어린아이나 정신병자들의 작품과 같은 자유롭고도 순수한 작품을 지향했다는 면에서는 아르 앵포르멜 작가들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또 국가라는 틀 속에 갇히지 않은 국제적 연대와 창의성을 중시하는 사상은 코브라 그룹 작가들과 공유하고 있다.  또한 예술이 상품으로 전락하는 상황에 반발하며 예술과 일상생활의 접목을 꾀하는 태도는 일찍이 바우하우스에서 추구된 바 있는데, 그 역시 이러한 사상을 견지하였고 이는 SI (Situationist International)라는 그룹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이후 그는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냉전시대의 논리에 자신이 속한 북유럽 전통예술을 연구함으로서 제3의 대안적 관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 스칸디나비아 반달리즘 비교 연구소 (Scandinavian Institute of Comparative Vandalism)’ 를 설립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 유명한 ‘구겐하임 텔레그램’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달리즘 비교 연구소’의 방대한 북유럽 민속 예술의 도상 기록 사진이 공개된다고 한다.  매번 같은 음식만 차려진 밥상 같이 인기작가들의 전시만 계속되는 미술계에서 이렇게 덜알려졌으나 흥미로운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22×97cm 캔버스에 유채 욘미술관소장 1962 /국립현대미술관
 ‘세속의 마리아’ (1960)
<무제 (데콜라쥬)> 64×49.1cm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욘미술관소장 1964 /국립현대미술관

 

 ‘그려진 시’(파르파와의 협업) (1954)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20. 00:10 미술 이야기

Antony Gormley, Another Time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9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7. 00:10 미술 이야기

Norman Rockwell (1894-1978), Going and Coming, 1947. Oil on canvas, 16" x 31 1/2". Cover illustration for The Saturday Evening Post, August 30, 1947  휴가 가기전 기대와 희망에 부푼 이들의 모습과 휴가지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난 뒤 집으로 향하는 기진맥진한 모습의 상태를 대비해서 보여주는 작품. 노먼 락웰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예리함과 인간 심리 포착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예 

미술 비평가들은 '일개 일러스트레이터'인 노먼 락웰의 작품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다시 봐도 그만큼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한 작가도 사실은 드물어 보인다.  그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를 담당했던 시기 무려 47년. 1916년부터 1963년까지로 미국이 공황과 전쟁, 그리고 케네디가 암살을 당했던 시기를 다 아우른다. 개인적으로도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락웰 스스로가 개인적으로는 우울한 기질의 소유자라고 했다고 하니 그가 표지로 그렸던 작품들이 '냉혹한 현실의 표현'이라거나 '작가의 자아나 실존의 표출'이 아니었음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게 실존의 표명이라야만 한다는 규율은 또 어디에 있는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미국 소도시에서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머금었고 행복해 했고,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려 당의정을 입혀 표현한 작가라는 비판을 의식해, 자신은 주변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랬으면...하는 소망'을 담아 그린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후 'Look'이라는 사회성 짙은 잡지로 옮겨가서는 보다 사회비판적 작품을 그린 것을 보면 그러한 낙천적이고 소시민적 행복감 넘치는 그의 작품의 주제는 그가 표지를 담당했던 'Saturday Evening Post'의 잡지 성격에도 영향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때로는 '대한 뉘우스'급의 바른생활 어린이스러움이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의 유머와 위트, 세상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은 높이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음번 리바이벌 때에는 존 커린 (John Currin: 1962-)에 대해서 좀 써보기로 하련다.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1

이하는 작년 추석을 맞이하여 올렸던 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9. 00:10 미술 이야기

Edward Hopper, Nighthawks (1942) oil on canvas ; 84.1 x 152.4 cm, Art Institute of Chicago

내 블로그 글을 쭈욱 읽어온 독자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에드워드 호퍼는 소위 나의 '최애' 작가 중 하나이다. 

자고로 심슨네가 패러디 하지 않은 작품은 유명작품이 아니다.

몇 차례 그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블로그 글들을 여기 모아본다. 

1940년의 <주유소>라는 작품에 대한 글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나이트호크스>에 대한 글

TCM이라는 옛날 영화 전문 채널에서 사용되는 호퍼의 작품들 소개 

2018년 11월 경매에서 판매된 호퍼의 <찹 수이>에 대한 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7. 11:26 미술 이야기

Norman Rockwell (1894-1978), “The Gossips,” 1948. Painting for “The Saturday Evening Post” cover, March 6, 1948.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SEPS: Curtis Publishing, Indianapolis, IN 락웰의 작품중 가장 널리 사랑받은 작품 중 하나. 사람의 본성을 유쾌한 유머로 포착한 노먼 락웰의 작품 <가십>은 뒷담화의 끝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늘 유쾌하고 유머스럽고 따뜻한 눈으로 미국 중산층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어서 인기가 높았던 노먼 락웰 (Norman Rockwell: 1894-1978)의 좀 더 날카롭게 사회비판적 작품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았다. 

https://sleeping-gypsy.tistory.com/13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문제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Norman Rockwell (1894-1978).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1964. Story illustration for Look, (January 14, 1964). oil on canvas. 36 x 58 in. (91.4 x 147.3 cm).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 of the..

sleeping-gypsy.tistory.co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5. 00:30 일상 이야기

어제 뉴스에서 이마트와 디지털 사이니지 라는 기사를 읽었다. 

출처: 파이낸셜 뉴스 http://www.fnnews.com/news/201903240903129669 

'디지털 사이니지'라는 용어 자체는 좀 생소한데, 뉴스 본문을 인용하자면, ''디지털 사이니지'란 TV, LED 등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옥내외 광고로, 중앙관제센터에서 통신망을 통해 광고 내용을 제어할 수 있는 광고판을 말한다."라고 나와있다.  그러니까, 현재 시내 한복판 커다란 건물 위에 있는것 같은 전광판인건가. 확인할 겸, '디지털 사이니지'가 'digital signage'인건가 싶어 찾아보니, 그냥 '전자간판'을 의미한다. 즉, 대형 전자광고판을 외부에 설치해서 거기다 서구 미술사적으로 유명한 작품을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여러 개 보여주는 것을 연말까지 하겠다는 것 같다.

시각적인 시대에 시각적인 프로젝트라는 면에서는 시의적절하다고 해야할까? 동네 축구가 잘되어야 궁극적으로 월드컵에 참가할 선수가 많아진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과연 이런 프로젝트가 예술의 저변확대에 도움이 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모나리자는 질리게 봐왔지만, 과연 그 때문에 모나리자를 사랑하게 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긴하다. 모르는 사람도 없었지만.  저화질의 화보나 패러디로 먼저 접한 모나리자는 자칫 알기도 전에 질리는 작품 중에 하나가 되기 쉽다. 물론 직접 루브르로 가도 유명세에 몸살을 겪는 모나리자는 그닥 적절하지 않은 예인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우리가 예술을 감상하는 태도와 감각을 얼마나 바꾸었는가를 생각하면 굉장히 놀랍다.  게티 센터의 프로젝트로 돈황 벽화가 가상 경험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을 시작으로, 폴 세잔의 카탈로그 레조네가 온라인으로 그것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이 뉴스는 굉장히 혁신 적이었는데, 이제는 왠만한 미술관은 360도 회전해서 볼 수 있는 가상경험이 다 가능하다.  구글 맵이나 네이버 맵에서 길찾기 하는 것 처럼 미술관 안을 휘휘 둘러 보며 다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직접 가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만, 직접 돈황 벽화를 일일이 여행가서 탐방하는 수고는 덜 수 있고, 미술관의 가상 경험은 가기전 오리엔테이션으로, 그리고 갔다와서 추억을 되살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또, 2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블라맹크 전>>의 경우, 블라맹크의 눈이 내린 풍경화를 디지털화하여 마치 그 풍경 속을 차를 몰고 달리는 듯한 가상현실 공간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본 작품들을 직접 봤을 때, 지면으로 봤을 때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만, 직접 봤을 때 놀라운 감동을 느낀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러한 '버추얼 시각 경험'은 전반적으로 좀 조심스럽다.  물론 나부터도 보고 싶은 작품 있는 나라로 다 여행다닐 수 없는 터라, 해상도 높은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높아진 21세기 현대의 시각적 문화를 만끽하는 사람중 하나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은 환영하지만, 자칫 어설픈 경험은 초심자들에게 애초에 좋아할 기회를 앗아갈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우려도 된다. 이왕 시작하는 프로젝트에서 퀄리티 높은 화면이 제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연 어떻게 진행될 지 앞으로 이마트 앞을 지날때마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22. 00:08 미술 이야기

지지난주였던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때, 창 밖이 온통 뿌옇게만 보이고, 평소 날 맑을 때 잘만 보이던 산과 한강, 그리고 근처 건물들까지 레오나르도 풍경화 속 스푸마토 효과 최고조일때, 창을 닫고 있어 그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숨이 턱턱 막혔다. 

SF나 공상미래 영화에서 미래는 항상 그렇게 그려졌다. 돈많은 부자들은 아예 다른 행성으로 이사가거나, 아니면 첨단 공기 정화 시스템, 인공 태양 빵빵하게 작동되는 인공 도시 속에 살고, 빈민들은 모두 공기 저렇게 뿌옇고 건물들 다 무너져가는 폐허 속에서 살고 있었다. 바깥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박탈감과 위기감이 극에 달하던 주가 지나고, 다시 푸른 하늘을 다시 봤을 때의 감격이란!  늘 있어 감사함을 잊고 지내는 것을 공기에 빗대는 말은 이제는 고어가 되었다.  정말 공기의 중요함이 뼈저린 시간. 안그래도 짧아지는 봄날이 더욱더 소중해지는 순간.  

오지호, <남향집> (1939) 캔버스에 유화, 80.5 x 60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봄날의 따스한 햇빛을 이보다 잘 표현한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은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근대회화의 선구자 중 하나로 잘 알려진 오지호 화백의 <남향집>이라는 작품이다. 해방 전후로 개성에 살던 집을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그림 속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화가의 둘째따님이라고. 얼굴이 보이지 않으나 귀엽게 생겼음이 분명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아버지의 애정이 담겨 있어서일까?  마당에서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과 함께 이를데 없이 평화롭고 따뜻한 일상의 단면을 보여준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양화계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동경미술학교의 유학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에 대해서 알게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인상주의의 빛과 어둠, 일광의 효과에 대한 관심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토담과 초가 지붕 위로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는 검정 혹은 회색이 아닌 보랏빛이 감도는 푸른색이다.  <남향집>에서는 그 푸른색이 지붕 너머 푸른 하늘과 맞닿으면서 청명한 공기와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인상주의의 대표작격으로 알려져 왔었는데, 최근 이 작품이 그려진 제작년도를 1960년대로 주장하는 연구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그의 후기 작품은 필치가 좀더 빠르고 붓자국이 좀더 거칠다고 느꼈는데, 좀 의외였다. 거기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둔 상태에서,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가 오지호가 인상주의의 색과 빛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깊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프랑스산 인상주의를 성공적으로 '한국화'했다는 것에 대한 평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 중이므로  언제 기회가 된다면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블로그가 전시 소개 블로그라고 하기엔 다소 뒷북 소개가 되어 면목이 없긴 한데, 현재 그 이 작품이 현재 전시되는지 아닌지는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해서 모르긴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소장품전: 근대를 수놓은 그림 展>>을 열고 있다. 소장품 위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깜짝 놀랄만한 작품은 없을지 모르나, 우리나라 근대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전시일 것 같다.  시작은 작년 여름부터 했는데, 다행히 올해 5월 12일까지 전시를 한다고 하니 한번쯤 봄나들이 나간 김에 전시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소장품 위주의 연대순으로 정리한 전시라서, 무난히 연대순으로, 아래와 같이 세 부분으로 구획되어 전시되는 듯하니 참고로 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 외국에서 새로운 미술 양식 유입  한국 미술 전환기 (1900~1920)

  • 개성적인 양식과 독창적인 예술정신 표출 (1930~1940년대)

  • 고난과 좌절의 극복, 예술로 그린 희망 (1950~1960년대)


봄날이 다가기 전에, 또다시 미세먼지들이 습격해와서, 디스토피아적 영화의 흙먼지 같은 공기 속 폐허 같아지기 전에 찬란한 봄과 꽃과 새순들의 향연을 만끽하러 가봐야겠다. 그리고, 한국근대미술 복습도 해봐야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3. 19. 20:31 미술 이야기

올해는 유난히 큰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 듯하다. 

작년부터 이어지는 전시회이긴 하지만, 마르셀 뒤샹 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고, 다른 거물급 작가들의 전시들도 줄을 서고 있다. (뒤샹전 소개 글은 여기를 클릭!)

그리고 3월 두둥~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 열린다. 


3월22일부터 8월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영국의 테이트 갤러리와의 협력하에 열린다고 하니 제대로 된 전시가 될 듯해서 기대가 된다.  

이 블로그에도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서는 여러차레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은 아래 링크를 클릭클릭~) 

데이비드 호크니-팔순의 아이패드

경매소식 - David Hockney -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데이비드 호크니는 사실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영국 화가이면서 LA로 이주한 이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다. 굳이 예술 사조의 범주로 구분해보자면 팝아트에 속한다고 할 수있지만, 그의 관심사는 폭넓고도 다양해서 '르네상스 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회화 작업만 해도 이전의 팩스가 등장하자마자 팩스로 작업하는 것은 물론, 팔순이 넘은 나이에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기도 하는 등 '얼리 어댑터'로 다양한 기기와 기법을 활용한 작업을 해왔다. 예술 이론적인 면으로도 관심이 많아 서양미술의 원근법이 아닌 동양 산수화의 원근법에도 관심을 가져 자신의 풍경화를 동양의 원근법을 적용해서 제작하기도 했다. 

뿐 만 아니라 서양 대가들의 카메라 옵스큐라의 사용에 대한 저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도 하고 있고, 그의 저서들은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어 있다.  그 대표작으로는 Secret Knowledge: Rediscovering the Lost Techniques of the Old Masters.와 A History of Pictures: From the Cave to the Computer Screen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소개는 이 전의 글에 쓴 적이 있으니 그 글을 참고 할 것)

광고를 보아하니, 이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비드 호크니》전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시로는 처음 열리는 대규모 개인전이라고 하고, 그의 초기 작품부터 최근 작품을 망라한 전시라고 한다.     

내가 누누히 얘기하는 바이지만, 특별전은 특별전 만의 이점이 있다. 혼자서는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동시에 볼 수 없는 작품들을 나란히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의 격동기를 거쳐 온 대가가 일생에 걸쳐 생산해 온 창작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임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짧고 찬란한 봄 날 나들이 삼아 전시회를 하나 본다면?  난 이걸로 정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