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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30. 00:18 미술 이야기

 

11월 26일 월요일 오후,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권위있는 경매소 도로테움 (The Dorotheum)에서 11월 28일 경매 예정이었던 르느와르의 작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Pierre-Auguste Renoir)의 1895년 작품<Golfe, mer, falaises vertes (Gulf, Sea, Green Cliffs)>은 28일 경매에서 약 $131,000~$181,000 (1억4685만원~2억290만원)으로 판매될 것으로 추정된 작품이다. 

Pierre-Auguste Renoir, Gulf, Sea, Green Cliffsoil on canvas ; 27 x 40 cm. 

The Dorotheum in Vienna, which dates to 1707. A Renoir was stolen off its walls on Monday.  Credit Leonhard Foeger/Reuters

 

빈 경찰이 공개한 CCTV 화면에 잡힌 범인으로 추정되는 세명의 남성 Credit Vienna Police

이번 사건으로 경매소 측 뿐 아니라 구매를 희망했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받았음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그림을 액자에서 빼내가는 시간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 짧아 범행은 순식간에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경비가 삼엄했을 경매소를 그렇게 간단히 통과했는지도 미스테리다.  르느와르 작품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고 독특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귀중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하루빨리 경찰이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유명 작품과 도난 사건은 드문 일은 아니다. 

대표적 도난 사건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가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이 <절규>가 그 인기에 힘입어 1893년부터 1910년에 걸쳐 유화와 파스텔 등,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처음 독일어로 제목을 붙일때에는 <Der Schrei der Natur (The Scream of Nature)>, 즉 '자연의 절규'라고 명명했었다는 것도. 

진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해골과 같은 모습의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 얼굴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간략화된 선들로 현대인의 고독과 절망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의 모나리자'라 불리기도 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거의 국보 대접을 받는 이 작품들은 지금은 거의 국외로 반출이 금해져 있는 상태. 예외적으로 2015년 반고흐 뮤지엄에서 1893년 파스텔 버전이 전시된 적이 있긴하다. 

총 4점의 작품 중 2점은 오슬로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중이다. (참고: 아래 두 이미지)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pastel on cardboard ; 74 x 56 cm, Munch Museum  최초의 버전으로 파스텔로 스케치를 한 작품으로 기본이 되는 구도를 잘 살펴볼 수 있다.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oil, tempera & pastel on cardboard ; 91x 73.5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절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작품 일것이다.  

뭉크 뮤지엄에서는 1910년 버전 (참고: 아래 이미지)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910) 

tempera on panel ; 83 x 66 cm, Munch Museum  이 버전은 1910년 카드보드위에 템페라로 제작된 작품으로 2004년 도난당했다가 2006년 무사히 찾은 작품.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5) Pastel on board ; 79 x 59 cm, private collection Leon Black.  이 1895년 파스텔 버전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119,922,600 [약1344억원 상당]라는 높은 가격으로 Leon Black에게 판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하단에는 뭉크가 작품을 구상했을 당시의 느낌을 적은 일기가 동판에 새겨져 덧붙여져 있는 점도 특징이다.  

 

뭉크의 절규 작품의 도난 사건은 1994년과 2004년 두차례 일어났다. 첫번째 1994년 도난 사건은 오슬로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일어났지만 수개월 안에 작품이 회수되었고, 2004년 도난 사건은 <절규>와 함께 <마돈나>가 뭉크 뮤지엄에서 도난당했다가 수년후 회수되었다.

 

1994년 올림픽을 맞이해서 노르웨이의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하는 관계로 뭉크의 <절규>를 기존의 전시실에서 1층에 옮겼는데, 그 틈을 타 도둑들이 사다리를 놓고 그림을 가져가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고, 게다가 엉성한 보안에 감사!”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갔다 한다. (범인들이 명탐정 코난 만화에 나오는 괴도 키드를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수개월 내에 작품은 회수 되었고, 범인은 잡혔지만, 위법수사를 이유로 범인 네명중 세명은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다 한다. 그 중 한 명은 1988년 뭉크의 <뱀파이어>라는 작품을 훔친 전력이 있는 폴 앵겔 (Pål Enger)이었다고.      

 

1994년 도난 당시 범인들이 사용했던 사다리. 이 사다리를 타고 오슬로의 내셔널 미술관에 잠입하여 뭉크의 <절규>를 떼가고, 거기다 "엉성한 보안에 감사!"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떠나는데 50여초 밖에 안걸렸다고 한다. 

  

 

2004년 도난사건의 경우엔 좀더 험악했는데, 백주 대낮에 두 명의 무장괴한이 뭉크 뮤지엄에 출몰하여 뭉크의 <마돈나><절규> 두 점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었다.  한때는 증거인멸로 작품들을 태워버렸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품은 무사히 회수하였다.   

 

보통 이러한 미술품들의 도난 사건의 경우,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에 미술관 측에서 은밀히 처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서 경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도난시 작품이 위작과 교체될 위험도 있고, 미술관 측으로서는 엄청난 손해와 비난을 감수해야하므로.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은밀히 도둑들로부터 되사는 경우까지도 있다고.  개인 경매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은 모르긴 몰라도 첩보전을 방불케하리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3.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 랭킹 20위'로 포스팅을 한 후로 하나씩 짚어가고 있는 중.   처음의 전체 랭킹을 논한 포스팅으로는 여기를 클릭!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오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이제까지처럼 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포함 된 경우, 중복되는 언급을 피하기 위해서 이처럼 묶어서 진행하려고 한다. 

두둥~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품도 두 작품이 들어가 있다. 그 두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5위)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206-millions [약2,333억원 상당]

인플레 고려 11위) Jackson Pollock's "No. 5” (1948) oil on fiberboard ; 2.4 × 1.2 m,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약1,585억원 상당]

잭슨 폴록의 경우, 윌렘 드 쿠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이 미술사상 최초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미술사조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나치의 압박이나 전쟁을 피하여 많은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이 뉴욕으로 망명을 오게 되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에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결과, 에콜 드 파리를 형성하게 된 것과 유사한 현상이었다. 

실제로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이 정착되기 이전에, 이들을 '뉴욕화파 (The School of New York)'로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에콜 드 파리를 구성하는 화가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이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포함되는 작가들의 원래의 국적 또한 다양하다.  미국이 주도한 현대미술사조라고  미국이 그렇게까지 으쓱으쓱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직전에 살펴본 윌렘 드 쿠닝이 네덜란드에서 밀입국하여 뒤늦게서야 (1961년) 미국 국적을 획득하였고, 마크 로스코의 본명은 마르커스 로스코비치, 즉 이민 1.5세대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실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이에 반해, 오늘 살펴볼 잭슨 폴록의 경우, 미국 토박이로 와이오밍주 출신이다. 즉, 진정한 미국인인 것이다.  폴록은 어릴 적 불우한 환경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하였고, 가정 형편상 서부 지역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그의 이미지와 이후의 성공한 그의 모습은 거칠면서도 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미국에 대한 선입견적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가 스튜디오 바닥에 넓게 펼쳐 놓은 캔버스 천 위를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물감을 뿌리는 모습은, 드넓은 대륙 위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미국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냉전 시대, 소련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정치적인 선전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즉, 폴록이 자유롭게 펄쩍거리면 펄쩍거릴수록,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규제되는 구 소련과 강하게 대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추상표현주의가 이러한 정치적 선전으로 이용되었다는 의견은 당시 유난히도 해외순회전이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해외순회전 덕분에, 추상표현주의자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명성도 드높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폴록의 작품은 보그지에도 등장할 만큼 문화현상이 되었고, 그가 작업하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되거나, 한스 나무스라는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유명해져서, 그의 이름과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당시 미국 사람들 중에는 없었으리라.  

클래식한 드레스를 떨쳐입은 모델들의 뒷쪽에 폴록의 작품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묘하게 어울리고 아름다운 이러한 사진들로 명실공히 그는 미술계 뿐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서의 인기까지 얻는 이례적인 화가가 되었다.  

Jackson Pollock in the act of painting (1950)  Photographed by Hans Namuth 몰아 상태에서 자유롭게 바닥에 눕혀놓은 캔버스 천위르 뛰어다니며 작업을 하는 그의 모습은 실존주의에서의 인간의 모습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자유민주주의의 표상에도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이전 윌렘 드 쿠닝의 포스팅에 대해서 밝혔듯이, 폴록의 <Number 17A>는 데이비드 게픈 재단 (the David Geffen Foundation)이 헤지 펀드 재벌 케네스 그리픈 (Kenneth C. Griffin)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윌렘 드 쿠닝의 작품에 대한 포스팅을 함께 읽으면 폴록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유명한 잭슨 폴록이긴 하지만, 아마도 잭슨 폴록의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과 함께, '세살짜리 꼬마'들이 가장 많이 소환되는 작품일 것이다. 즉, '우리집 세살짜리도 이것보다는 잘그리겠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현대 미술 작품 중 하나라는 얘기다.  

하지만, 호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폴록의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처음에 봤을 때에는 chaos였던 그의 작품이 나중에는 cosmos로 느껴지는 순간이 올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 회화에서의 figure/ground, 즉,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그 외의 바탕이 되는 부분의 경계가 모호한 현대 미술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붓이 아닌 막대기나 심지어 대형 스포이드를 이용해 물감을 흘리거나 흩뿌린 그의 작품에서 어떤 것이 주된 형태이고 어떤 것이 배경을 이루는 바탕인가를 구분해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들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움직임과 일견 엇비슷해보이는 색상들의 미묘한 얽힘은 자세히 바라보다보면 그 속에서 색다른 조화와 균형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과 엘에이의 현대미술관 (MoCA)를 위시해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는 널리 소장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폴록이 창의성과 독창성이 뛰어난 작가였다고는 해도 시대를 잘 타고 난 것도 맞다고 생각된다.  마치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의 이미지와 드넓은 캔버스 위로 뛰어다니는 그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표현하기 더할나위 없는 적합한 아이콘이었고, 전후 냉전시대 필요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거기에 그의 작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미술비평계의 헤밍웨이'라 불리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존재도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그 자체로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폴록 자신의 경우, 그러한 유명세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독한 가난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간절히 성공을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성공과 유명세가 자신이 바라고 기대하던 것보다 지나치게 과하다고 느꼈을까?  만나는 이들마다 눈을 반짝이며, '이번에는 얼마나 더 놀라운 것을 창조해낼까?'라는 기대의 눈빛에 견딜 수 없는 부담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지닌 독창성과 창의성을 초창기에 너무 남김없이 발휘해버린 것일까? 

1954년부터 그는 더 이상 말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부터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알콜중독이 더욱더 심해졌고 (애당초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알콜중독 치료의 일환이었다), 결국 음주운전의 결과로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기파괴로 성급한 결말을 맞이한 잭슨 폴록이지만, 그는 앞으로도 미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린 대표적 인물로, 또한 이후 앨런 카프로우 (Allan Kaprow)등이 주도한 퍼포먼스 아트의 대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인물로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9. 01:0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시작했으니 계속 달리는 걸로~  

처음 밝힌 대로, 가요 순위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공약을 지켜가고 있는 겁니다.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지만~  ^^  (처음 소개 포스팅은 여기!)

오늘은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9위와 15위를 차지한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981-1973)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다.  9위와 15위를 차지한 작품은 각각 아래와 같다.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s (2015 Christie's auction)   $185.2-millions

15)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162.8-millions 

20세기 화가로 가장 유명한 화가를 꼽자면 단연 파블로 피카소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20세기 태어나고 활동한 화가 중에 피카소의 영향을 받지 않은 화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모두가 피카소를 추앙하고 따랐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 화가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자면, 그를 숭배하고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와 그의 작품을 너무 싫어해서 의식적으로 그런 작풍과 경향을 피한 화가들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인플레 고려 9위)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s (2015 Christie's auction)   $185.2-millions [약 2,082억에 상당]

피카소는 자신이 거장임을 잘 알고 있었고 마티스가 자신의 적수가 될만한 상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마티스가 세상을 뜨고 난 뒤, 그는 '나는 내일부터 두배 열심히 일해야 한다, 마티스의 몫까지.'라고 멋있는 말을 하고 난 뒤, 이제는 세상을 뜬 동시대의 적수를 대신해 서양미술사 내에서 존재하는 거장들에게 차례차례 시합을 신청했다.  위의 작품은 낭만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외젠 들라크로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알제리의 여인들>을 재해석한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가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볼 때까지 해보는 타입이었다.  '알제리의 여인들'이라는 주제로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이후 미술사가들은 그 작품들을 연구하기 위해 작품들에 알파벳의 별칭을 붙였다. 위의 작품은 이름하여 '버전 O'.  그 외에도 다양한 스케치, 유화, 석판화 등으로 동일한 주제의 작품들이 남아있다.   

피카소는 현대미술의 포문을 열었고 추상미술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입체파 (Cubism)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초로 '입체파' 양식의 작품을 제작한 것은 초기에 피카소의 룸메이트로 지내며 공동작업을 했던 조르주 브라크라는 것도 입체파 전문가들 다수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후에도 브라크는 조용히 입체파적 작품을 평생 꾸준히 제작하며 독자적 영역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왕성한 창작열과 창의성에 있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작품 수는 어마어마해서 그의 긴 인생의 나날들로 나누어봐도 하루 20여점은 제작한 것으로 나온다고도 한다. 그는 '창의적인 진공청소기'라 불리며 항상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을 창조해냈고, 회화 뿐 아니라 판화, 도자기, 조각, 무대 장치,시, 희곡 등 다양한 부문에서 열정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쳤다.  자타공인 그의 이미지를 '황소'에 비유한 것은 단지 그가 스페인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피카소는 왕성한 창작열 뿐 아니라 그의 엄청난 '연예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잘 알려진 그의 여자친구만 해도 무려 7명, 두번의 결혼을 했고, 세명의 자손을 남겼다.  물론 그외 잘 알려지지 않은 여자친구는 수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15세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사창가를 드나들기 시작한 이래, 여인들은 그의 삶과 예술의 동력이기도 했다.  미술사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한 연구에 따르면, 그의 유명한 '아비뇽의 여인들' (1907)은 당시 유럽에 널리 퍼졌던 성병, 매독에 대한 공포와 그의 여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의 딜레마, 그리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부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Picasso, Demoiselles d’Avignon (1907) oil on canvas; 243.9 × 233.7 cm, MoMA

오늘의 주제인 <꿈>이라는 작품은 Marie-Thérèse Walter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그림으로 일기를 쓰는 화가여서, 그의 연애 변천사는 작품 속에 다 드러나서 그의 작품을 조금만 연구하다보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마리-테레즈 월터의 경우, 그의 7명의 애인들 중 4번째의 여인에 해당한다.  (그녀와 연애를 할때에는 그는 첫번째 부인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상태였고,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녀와 사는 집은 본가 살림 집 근처에 따로 구해야만 했었다.  이후 올가가 집을 나가고 이혼을 신청했지만, 위자료가 주기 싫어서 '끝까지 이혼은 안했다'는 후문이 있다.) 

공교롭게도 마리-테레즈 월터를 그린 초상화는 모두 경매에서 고가로 거래되었다.  이 작품은 예술계의 두 큰 손 사이에 거래되어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을 뿐 아니라, 호텔 재벌 윈 (Wynn)이 증권계 큰손 스티브 코헨 판매 직전에 작은 흠집을 내어서 한때 거래가 중지되었다가, 수리 후 처음보다 훨씬 고액으로 결국 다시 코헨에게 팔았다는 에피소드가 더해져 더 유명해졌다.  

인플레 고려 15위)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s (2013 private sale)   $162.8-millions [약1,834억원에 상당]

마리-테레즈 월터를 모델로 한 또 다른 작품이 아래. 생전, 피카소는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인이 있지. 한 종류는 여신이고 또 한 종류는 발닦개 (doormat)'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는데, 여기에는 여신 (흉상으로 묘사)과 발닦개 (바닥에 누운 여인으로 표현)가 다 등장한다.  이 작품은 개인 소장으로 한동안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다가 소장자 Frances Brody가 2009년 사망 후, 현재는 장기 대여형식으로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 중이다.  

Picasso, Nude, Green Leaves and Bust (1932)  oil on canvas; 162 × 130 cm (2010년 경매 $106.5-millions) (private collection ; 현재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장기 대여중)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8. 04:27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계속~ 쭈욱~  

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다. 이제까지처럼 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포함 된 경우, 중복되는 언급을 피하기 위해서 이처럼 묶어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을 다루었던 포스팅은 아래를 참고!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오늘은 모딜리아니 (Amedeo Clemente Modigliani: 1884-1920)에 대해서 살펴볼까 한다.  

어제 살펴 본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우, 매니아 층의 팬들은 있었지만, 대중적인 관심에서는 벗어난 작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모딜리아니는 그의 작품 뿐 아니라 작가 자체까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 받아온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미남 화가, 잔느 에뷔테른느와의 순애보, 가난과 싸우며 예술혼을 불태우다가 각혈을 쏟으며 요절한 화가. 그가 죽은 뒤, 임신한 몸을 던져 자살한 그의 연인까지. 흔히 막연히 생각하는 고뇌하는 천재 예술가에 이 이상 부합잘되는 화가도 드문 것이다.  (반 고흐, 프리다 칼로와 함께, 삶이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할수록 대중적인 인기가 더 높은 경향이 있는듯 하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있기에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화가의 삶은 신화화되고, 이후 사실이 밝혀져도, 대다수는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작가의 삶이 좀 더 드라마틱한 영화같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인지, 사실보다는 '~카더라'일지도 모르는 통설을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믿음은 반복되어 재생산되고 이후 통설은 어느샌가 진실로 탈바꿈하게 된다.  

모딜리아니의 경우, 고뇌하던 천재 (게다가 미남)가 세상의 몰이해와 가난과 싸우며 피를 토해가며 예술혼을 불태운 화가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잔느 에뷔테른느와의 순애보는 거기에 드라마를 더했던 것은 물론이다. 눈동자가 없는 초상화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은 '이발소 그림'이라고 일컬어지는 밀레의 작품만큼이나 복제품으로 제작되어 여기저기서 많이 접할 수 있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인기는 경매에서도 위력을 발휘하여, 그의 작품은 경매에 나오기만 하면 연신 고가로 판매되어 예술부문의 기사에 실리곤 했다.  죽고 나서야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천재화가의 신화는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딜리아니의 작품도 랭킹 20위 안에 두 작품 포함되어 있고, 그 작품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대략 100위 안에 적어도 4점은 포함되어 있다.) 

인플레 고려 10위)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s (2015 Christie's auction)   $175.9-millions 

우선 위의 작품은 모딜리아니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2015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중국의 대부호 리우 이치안이 $170.4-millions (약 1,920억)에 구매하였다. 이는 현재 인플레를 고려해서 대략 $175.9-millions (약 1,982억)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그가 아멕스 (아메리카 익스프레스) 카드로 대금을 지불했다는 것까지 보도할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작품은 공개 당시에도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경우에는 '외설논란'이었지만 말이다.   

1914년부터 몇년간 여성 누드를 집중적으로 그렸던 모딜리아니는 1917년에는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인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 당시 여성 누드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외설죄'로 경찰이 출동하고 전시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한다. 하지만, 알려진 것처럼, 모딜리아니가 이 좌절과 함께 건강을 더 해치게 된 것 같지는 않다. 경찰 출동 및 전시회가 일시적으로 중지되긴 했지만, 이후, 갤러리 앞 창가 쪽의 작품들을 치우고는 전시는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는 에콜 드 파리 화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최초의 아방가르드 화가로 일컬어지는 인물이지만, 상당기간 전통적 아카데미 미술 교육을 받은 인물이다. 오늘 살펴보는 여인 누드상들은 모두 전통적인 비너스 상의 도상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화법, 원근법을 무시한 시점과 공간처리 등에서 아방가르드 미술의 특징을 잘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물론 파리에 와서의 생활이 곤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탈리아 출신 유태인인 그는 상당히 유복한 유년생활을 보냈다. 어릴때부터 병약하여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는 없었으나, 그런 그의 소양을 키워주기 위해 그의 모친은 베니스, 로마, 플로렌스 등 여러 곳을 데리고 다니며 폭넓은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후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미술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시키기도 하고 말이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곱게 자랐고, 전통적 아카데미 훈련을 받아왔던 그는, 웬일인지 파리에 와서 일년이 채 되지 않아서부터는 갑자기 아방가르드적 보헤미안으로 변신하여 폭음과 약물 과용은 물론, 폭넓은 연예를 하는 생활을 이어갔는데, 이에 대한 이유로는 그가 어릴적부터 앓았던 결핵의 증세를 감추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당시, 결핵은 불치병이자 감염성이 강한 병으로 인식되어, 결핵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주변에서 소외당하기 일쑤였다한다.]  

인플레 고려 16위)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157.2-millions 

위의 '왼쪽으로 돌아누운 누드'의 경우, 올해 소더비 경매에서 $157.2-millions (약1,771억)에 판매되었다.  이 작품은 다른 모딜리아니의 작품에 비해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누드이기도 하고, 여타 작품보다 크기도 크고 전신을 다 포함하고 있는 이례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앞서 밝혔듯이,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항상 고가로 거래되어 유명한데, 비슷한 누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래 두 작품을 들 수 있다. 

모딜리아니, 푸른 쿠션에 기대누운 누드 Amedeo Modigliani, "Modigliani Nu Couché au coussin Bleu" (1917) oil on canvas ; 60.1 x 92.1 cm,  Rybolovlev collection $118-millions (2012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 인플레 고려 $126-millions (약 1,420억)에 상당  [Steven A. Cohen to Dmitry Rybolovlev,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

이 작품은 금융계의 큰손이자 아트 콜렉터로 유명한 스티븐 코헨이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에게 이브 부비에를 통해 2012년 판매한 것인데, 인플레를 고려하면 약 1420억원에 상당하는 작품이다.  [이브 부비에와 러시아의 부호 리볼로프레프를 연관한 법적 사건에 대해서는 클림트의 작품 소개글에 언급했다.]  

아래의 작품은 모딜리의 작품 중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2010년 소더비 경매에서 거래된 작품이다. 누워있는 누드가 많으나, 이 작품의 경우, 모델은 고대 비너스 조각의 포즈와도 비슷한 손동작을 짓고 있으나, 정작 현대적인 긴의자 (혹은 매트리스 침대)에 걸터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렸고, 배경과 인물사이의 공간은 없어 화면은 상당히 평면적이다. 이러한 화면의 평면화는 이후 현대미술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처럼, 모딜리아니는 전통과 아방가르드 사이에서 작업한 화가로, 그가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딜리아니, 긴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  Amedeo Modigliani, Nude Sitting on a Divan ("La Belle Romaine") (1917), $69-millions (2010 Sotheby's New York) 인플레 고려 $77.4-millions에 상당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4. 01:13 미술 이야기

며칠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대한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 때, 개별 작품에 대해서 하나씩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공약'을 걸었다.  그 공약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있던 없던 일단 약속은 약속이니....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대한 글은 여기를 참고)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나 보통 순위처럼 아래쪽 순위부터 하나씩 올라가는 식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매일 그 순위에 있는 작품을 다루지는 못하겠지만, 순차적으로 하나씩 올릴 것이다.  두둥~  

먼저 오늘은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의 <의사 가셰의 초상> (1890)과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 (1876)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저번에 밝힌 대로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2018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경매에서 팔렸던 작품 17위에 오른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20위에 해당하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는 1990년 경매에서 그해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인플레 고려 17)위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s (1990 Christie’s auction)  (현재 154.5-millions 상당) 같은 제목의 다른 버전은 오르세이에 소장 중인 작품. 이 작품은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Gustav Klimt의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이 $135-millions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경매 판매가 1위를 고수했다. 

인플레 고려 20)위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78 × 114 cm. $78.1-millions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먼저,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은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1990년 5월 15일 크라마스키 (Kramarsky) 가족 소장이었던 작품을 일본의 제지 회사 재벌 (大昭和製紙)의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US$82.5 millions (대략 한화로 950억원) 에 구입하였다. [참고로 당시의 경매가를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을 해보면 US$154.5 millions (대략 1750억) 상당.] 이 사이토 료에이라는 분은 다시 이틀후, 소더비 경매에서는 르느와르의 물랭 드 갈라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를 $78.1 millions (대략 898억원)에 구입하므로써 미술계의 큰손으로 우뚝 섰었죠. [오늘날 인플레를 감안해서 계산하면 이 작품 또한 약 US$146.3 millions (대략 1657억) 상당.]

위의 두 작품은 1990년 5월에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경매에서 모두 일본의 제지 재벌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에게 판매되었다는 공통점 이외에도 두 작품 모두 다른 버전이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Oil on canvas, 67 cm × 56 cm, Musée d'Orsay, Paris 2nd Version.

누가봐도 우울한 성격인거 같은 인물인 의사 가셰는 인기와 유명세 때문에 유독 ‘~카더라’ 통신이 많은 반 고흐의 삶의 끝자락에 화가에게 많은 의지가 되었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가셰 씨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해보면, 두 번째 버전으로 알려져 있는 오르세이 소장 중인 작품과 비교를 해보면, 필치나 색조, 그리고 세부 구도에 있어서 쉽게 구별이 된다.  

크기는 동일하지만, 두 번째의 현재 소재 미상의 작품 쪽이 필치나 색상 면에서 훨씬 더 공을 들여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책도 이 작품에만 그려져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초창기에는 잠시 위작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다. 현재는 두 작품 다 명실상부한 그의 작품이라고 인정받고 있고, 이 작품이 가셰 본인이 소장 중이었던 작품이라고 밝혀졌다. 참고로 그가 들고 있는 꽃은 흔히 팍스 글러브 foxglove 라고 불리는 식물로 정식 학명은 디지털리스 digitalis라고 한다. 꽃이 아름다운 이 식물은 소량씩 사용하면 심장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다량 사용하면 독이 되기도 하는 식물이라고 한다. [미드 Psych에서 이 식물을 사용한 독살 사건 케이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아마도 여기서는 책과 함께, 동종요법 의사였던 그의 직업을 나타내기 위한 지물 attribute로 사용된 것이리라. 인물의 섬세하고도 우울한 성향은 ‘블루’한 자켓의 색상으로 방점 찍고 있다. 그리고, 턱을 괸 도상 역시 알베르히트 뒤러의 ‘멜랑콜리아’에서 나타나듯이 예전부터 ‘우울’을 표현하는 포즈이기도 하다.

Albrecht Dürer, Melencolia I (1514) 24 × 18.8 cm,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개인적으로는 첫번째의 작품의 가셰 씨의 표정보다 두 번째 작품에서의 표정에서 그의 우울함 뿐 아니라 섬세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통찰력도 함께 표현된 듯 해서 더 맘에 드는 바이다. 실제로 그는 반 고흐와도 친했을 뿐 아니라,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하였고, 예술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가셰 씨 말고도 반 고흐가 의사 선생님을 그린 작품이 또 하나 있다. 엄밀히 말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의 초상. 유명한 고흐의 귀 절단 사건 당시 인턴이었던 펠릭스 레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처치를 하면서 고흐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귀를 다시 봉합하는 수술까지는 못했긴 했지만 말이다. 그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반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선사했는데, 정작 그 인턴 선생님은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 그림을 닭장 수리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그냥 ‘개나 줘버렷!’ 하는 심정이었을까? 남에게 줘버렸다고…. 훗날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현재 이 작품은 러시아의 푸쉬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작품의 가치는 무려 US$50millions에 상당한다고 하니…. 역시 사람은 안목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Van Gogh, Portrait of Doctor Félix Rey (1889) oil on canvas, Pushkin Museum

반면,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던 폴 가셰 박사는 예술에도 조예가 상당히 깊었던 듯 하다. 반 고흐 뿐 아니라 당대의 ‘아직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훗날 미술사에 기리 이름을 남기게 되는’ 화가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가졌다. 참고로 아래의 그림은 세잔이 아직 화풍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의 작품 중 하나. 제목하여 <오브르에 있는 의사 가셰의 집>. 이 시기 세잔은 이 지방에 몇 개월 체재하면서 동료이자 스승 격이던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 등과 함께 가셰 박사와 예술에 관한 토론을 자주 가졌다고 한다.

Cézanne, The House of Doctor Gachet at Auvers (c.1873) oil on canvas 46 x 38 cm Musée d'Orsay, Paris

한편,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렸던 작품 20위를 차지한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걀레트의 무도회>(1876)는 어떠한가? 이 작품 역시, 앞서 밝힌대로 다이쇼와 제지 명예회장이었던 사이토 료에이가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1990년에 구매한 작품이다. 이전에는 유명한 휘트니 가문의 일원으로 영국주재 미대사를 역임했던 존 헤이 휘트니의 소장이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이 밖에도 공통점을 꼽자면, 유사한 구도의 동일한 제목의 작품이 오르세이 미술관에 소장 중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제3회 인상주의에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인상주의 화가이자 후원자 역할을 했던 구스타브 카이유보트의 소장이었다가 1894년 프랑스 정부가 구입한 후, 룩셈부르, 루브르를 거쳐 오르세이 소장이 된 것이다.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Oil on canvas ; 1.31 m x 1.75 m, Musée d'Orsay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첫번째 버전과 두번째 버전이 명확히 밝혀졌으나,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걀라트의 무도회>의 경우, 경매에서 팔린 작품과 오르세이 소장 작품 중 어떤 것이 오리지널이고 어떤 것이 나중에 다시 그려진 그림인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은 상태이다. 반 고흐의 작품이 구도나 세부 묘사에서 확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인데 반해, 르느와르의 작품의 경우 경매 작품의 크기가 오르세이의 소장품에 비해 약간 작은 것을 제외하고 구도 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인상주의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이 둘 중 어느 작품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육안으로 봤을 때, 경매에서 판매된 작품 쪽의 묽은 물감을 이용해서 빠른 붓놀림으로 유연하게 그려진 작품이라는 차이를 알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의 인상주의 사랑은 유별나기로 유명하지만, 특히나 당시 75세였던 이 일본 재벌의 인상주의 작품에의 열정은 남달랐다. 이 분은 자신이 죽었을 때 이 작품과 함께 화장을 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기겠다 천명하기도 했는데, 이 말의 여파로 논란이 너무 거세지자, 부랴부랴 ‘그 정도로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한다는 뜻’이라며 그 말을 철회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후에 일본 정부나 미술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어떠한 염원도 이뤄지지 못했다. 두 작품 다 1996년 그의 사후 비공개 경매로 판매 되는 바람에, 1997년 이후의 소장처가 묘연하다. 이후 2007년 리포트에 따르면 <닥터 가셰의 초상>은 1997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은행가이자 미술계의 또 다른 큰 손 Wolfgang Flöttl에게 판매했다고 밝혔지만, 정작, 프뢰틀 Flöttl은 경제적 사정 때문에 그 작품은 진작에 매각했다고 밝힌 관계로 현재 이 작품의 구매자에 대한 정보는 알려진 바 없다. 르느와르의 작품도 스위스 소장가가 구매했다고만 알려졌을 뿐. 이 아름다운 작품들은 어느 누가 가지고 있을까? 특히 <닥터 가셰의 초상>의 경우, 가뜩이나 전설에 가까운 일화들로 가득한 반 고흐의 삶과 예술에 신비로움을 더해주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11. 01:30 미술 이야기

며칠 전 경매에서 소더비 경매에서의 해프닝에 대해서 짧은 글을 썼다.  

http://sleeping-gypsy.tistory.com/49

평범한 직장인의 경제 관념으로서 뱅크시의 그 조그마한 작품이 15억에 달한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실제로 진행되는 경매의 경우, 그 거래 금액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건전한 일상의 금전 감각은 집에다 두고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금액이 밝혀지는 것은 그나마 공개 경매의 경우이고 'private auction'이라고 칭하는 비공개 경매의 경우, 그야말로 은밀한 사적인 경매라 그 금액조차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놀랄 금액으로 판매되는 작품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작품들의 거래 가격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경매 최고가를 정리하는 기사는 매년 나오지만, 여기에는 이미 세계 유명 미술관에 소장 중인 작품들은 제외된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될 것이다. 1962년 당시 추정가격이 1억달러였다고 하는데, 이는 2017년 인플레를 고려한 금액으로 환산하면 8억1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한화로 환산하면 무려 약 9천218억원. 현재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플레가 계속되고, 미술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이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1위 자리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2018년 현재, 경매에서 판매된 가장 비싼 작품들 15점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 

The Most Expensive Paintings in Auctions – 2018
1)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약5천151억에 해당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3천414억원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389억원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276억원
6)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216억원
7)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약2천91억원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80억원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2천41억원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1천939억원
11)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약1천877억원
12)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약1천789억원
13)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약1천764억원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약1천707억원 
15)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약1천620억원

 

1)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약5천151억에 해당 - 아직 확실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라고 결정난 것은 아닌 이 작품이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으로 등극했다.  현재 아부 다비의 루브르에 전시 중이라고.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의 작품이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1위를 차지했다.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3천414억원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 자세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카타르의 왕족이 구입했다고 알려졌다.  언젠가 카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주로 별도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지만, 세잔은 이 주제로 다수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외의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큰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389억원  - 타히티의 원주민언어로 단 제목을 해석하면 '언제 결혼 할거니?'라고 한다. 문명에 찌들지 않은 이상향으로 타히티를 그리며 현대판 '전원시'를 제작한 고갱의 작품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276억원

6)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약2천216억원

 

7)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약2천91억원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약2천80억원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2천41억원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약1천939억원

 

11)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약1천877억원

12)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약1천789억원

13)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약1천764억원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약1천707억원  - 인플레를 고려하면, 클림트가 같은 모델을 대상으로 1907년 그린 초상화가 14위에 해당되고, 이 작품은 18위에 해당한다.  참고)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15)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약1천620억원 - 1992년 세상을 뜰 때까지 생존화가로서는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화가 중 하나였던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루시앙 프로이트를 모델로 한 작품이다. 

아래의 목록은 인플레를 감안했을 때, 경매에서 가장 비싸게 판매된 작품 20점의 리스트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므로, 최근에 최고가를 경신하며 판매된 작품들 10점에는 순위가 변동이 없다 (6위와 7위만 살짝 바뀜) 그리고, 20위 안에는 현재 랭킹 15위까지 다 포함 됨을 알 수 있다(2018년 현재 최고가를 기록했던 작품 11위부터 15위에 해당하는 작품은 볼드체로 표시했다.)

The Most Expensive Paintings in Auctions – 2018
1) attributed to Leonardo da Vinci, "Salvator Mundi" (ca.1500)  $450.3-million (Christie's 2017 auction) $450.3-milliona  
2)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310-millions
3) Paul Cézanne, "The Card Players" (ca. 1890) estimated $250- to $300-million (2011 private sale)  $272 +-millions 
4) Paul Gauguin, "Nafea Faa Ipoipo (When Will You Marry?)" (1892) $210-million (2014 private sale)  $217-millions
5)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206-millions
6) Gustav Klimt, "Wasserschlangen II (Water Serpernt II)" (1904) $183.8-million (2012 private sale)  $193.1-millions
7) Mark Rothko, "No. 6 (Violet, Green and Red)" (1951) $186-million (2014 private sale via Yves Bouvier) $192-millions
8) Rembrandt van Rijn, "Pendant portraits of Maerten Soolmans and Oopjen Coppit" (1634) $180-million (2015 private sale)  $186-millions
9) Pablo Picasso, "Les Femmes d' Alger" ("Version O") (1954-55) $179.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185.2-millions
10)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1917) $170.4-million (2015 Christie's auction)   $175.9-millions
11) Jackson Pollock's "No. 5” (1948)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12)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13)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 (2017 private sale)   $165.0-millions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15) Pablo Picasso, "Le Rêve" (1932) $155-million (2013 private sale)   $162.8-millions
16) Amedeo Modigliani, "Nu couché (sur le côté gauche)" (1917) $157.2-million (2018 Sotheby's auction)  $157.2-millions
17)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 (1990 Christie’s auction)
18)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I" (1912)  $150-million (2016 private sale via Larry Gagosian)  $153.0-millions
19) Francis Bacon,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142.4-million (2013 Christie's auction)  $149.6-millions
20)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78.1-million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앞서 밝혔듯이 인플레를 고려해도 많은 작품들이 가격 순위면에서는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물가가 계속 올라서 인플레가 지속되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여하튼 이하는 위의 랭킹 15에서 빠진 이미지들을 보충해서 올린다.  

인플레 고려 11) Jackson Pollock's "No. 5” (1948)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인플레 고려 12)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인플레 고려 14) Gustav Klimt,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1907) $135-million (2006 Christie’s auction)   $163.9-millions, 현재 뉴욕의  Neue Galerie에 전시

인플레 고려 17) Vincent van Gogh, Portrait of Dr. Gachet (1890) $82.5-million (1990 Christie’s auction)

인플레 고려 20) Pierre-Auguste Renoir, Bal du moulin de la Galette (1876)  $78.1-million (1990 Sotheby’s auction)  $146.3-millions  - 위의 빈센트 반 고흐의 '닥터 가셰의 초상'과 함께 두 작품 모두 일본의 제지회사를 소유한 사이토 료에이 (齊藤了英)가 각각 크리스티와 소더비에서 구입하여 당시에 큰 뉴스거리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을 본 소감이 어떠신지요?  앞으로 위에 언급된 작품들에 대해서 한 작가씩, 그리고 해당 작품에 대해서 한번씩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8. 00:18 미술 이야기

예술계의 홍길동이라고 할까 쾌걸 조로라고 할까?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 (Banksy)가 또 사고를 쳤다. (상황은 여기서 확인!)

사건은 10월 5일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의 유명 작품 '풍선을 든 소녀 (Girl with Balloon)가 1백4만 파운드, 한화로 15억을 훌쩍 넘는 가격에 팔리고 난 직후에 일어났다.  직후에 뱅크시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작품이 경매에 나와 팔리게 되면 작동하도록 이 작품에 분쇄기를 장치했음을 밝혔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당시 경매에서 작품이 조각조각 분쇄되는 장면을 보고 진정으로 놀라는 관중들의 모습이 담긴 인스타그램들과 함께 여러 뉴스에 게재되었다. 

물론, 이 상황 자체가 과연 어떻게 가능했는지 여러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1. 분쇄기가 액자 속에 장치가 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과연 경매를 준비하는 측에서는 액자에 끼워져 있는 작품을 사전에 살펴보지 않았던 것일까? - 경매 이전 작품의 상태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서 한번쯤은 작품을 액자에서 빼보지는 않았던 것일까? 게다가 작품과 액자 무게 외에 그 정도의 장치가 되어 있었다면 작품은 이상할 정도로 상당한 무게였을텐데 말이다.

2. 그 분쇄기는 왜 작품의 절반 정도밖에 분쇄가 진행되지 않은 것일까?  전부다 분쇄되었다면 그야말로 휴지조각이 되었을텐데, 지금 상태로는 미묘하다.  예상했던 대로, 구매자는 이 상태의 작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 작품은 이 상태로 또 거래가 될 것이라 짐작된다. 

3. 그 분쇄기를 장치하고 나서 경매에서 판매될 때까지 수년은 걸렸을텐데, 과연 그 분쇄기는 어떻게 작동했던 것일까?  - 뱅크시의 정보원 (?)이 그 작품의 소재를 계속 추적해오다가 소더비 경매장에 잠입하여 경매가 이뤄지는 순간 원격 조정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던 것일까?   건전지 없이 그런 작동을 할 수 있는 장치가 있나? 전기 장치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미스테리다. 

경매 관련자들을 깜쪽같이 속였다 치고, 지치지 않는 건전지 에너자이저를 써서 성공적으로 경매사가 경매봉을 두드리는 순간 분쇄기를 작동시켰다 치자.  방법이야 어떻게 되었든, 이번 사건은 미술사에 또 다른 역사를 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종의 퍼포먼스라고도 볼 수 있는 이번의 사건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터무니 없기까지 한 천문학적인 금액들이 오가는 경매에서의 작품거래에 대한 반항의 메시지를 보내는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유명세에 따른 작품 가격이 높아지고 하는 미술계의 통례에 반대하기 위해 자신(들)의 얼굴이나 구체적인 이력을 밝히지 않아 왔던 것이다.  

뱅크시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애당초에 그 (혹은 복수의 작가군단?)가 익명으로 활동한 것은 그(들)의 작품이 영국 브리스톨 거리에 그리피티를 그리는 것을 시작해서인데, 영국에서 거리에 낙서를 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법적인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라고도 알려져 있다. 물론 위에 밝힌대로 미술계의 통상적인 관례에 대한 반항이라는 설도 있다.  (일부 웹사이트에서는 그가 1974년 영국 출생이라고 밝힌 곳도 있는데, 대부분의 미술관련 사이트에서는 여전히 그에 대해서 밝혀진 것이 없다고 씌여있다.) 

후에 그리피티 이외에도 꾸준하게 기발한 활동을 해온 그의 작품은 많은 논란과 함께 경매에서의 작품의 가격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자세한 활동은 그의 홈페이지를 참고하라.  http://www.banksy.co.uk/out.asp)

다분 정치적이고, 반전주의,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로 가득한 그의 작품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그의 명성에 편승해 뱅크시를 자처하는 작품도 적지 않고, 그에 대해 '내 작품 아님'을 홈페이지에서도 밝히기도 한다. (한번 더 꼬아서 생각하자면, 이러한 의사표명 또한 그의 자작극이 아닌가 의심하게도 된다. 왜냐하면, 익명으로 작품활동하는 것 자체가 '작품에 따라다니는 작가의 이름'이라는 관례에 대한 반항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애당초 굳이 저렇게 주인 찾아주기 식의 성명서를 낼 필요가 있나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몸으로 반자본주의적이고 반체제적인 작품을 하는 그가 미술시장에서 몸값을 높이게 된것은 어찌된 영문인걸까? 

일례로 2003년 제작되었던 Bomb Hugger라는 그래피티 작품의 경매 경과를 살펴보자. 




Sotheby's London 

Date:2010-02-11 

Lot Number :284 

Low Estimate :$39,200[+92%]* 

High Estimate :$54,800[+37%]* 

Hammer Price :$75,200 

Sold For :$92,250*



2010년 2월 11일자 경매를 보면 이 작품의 최종 가격은 최저 예상 가격 4만불을 가볍게 넘어 최종가는 9만2천불, 한화로 1억이 넘는 금액에 거래가 되었다.   애당초 미술 작품에 터무니 없는 가격을 매기는 이러한 미술 시장에 대한 비판은 경매서 고가로 팔린 작품을 거리에서는 60불에 파는 행위를 하거나 직접적으로 아래와 같은 작품을 제작하는 등, 여러차례 그의 작품 속에서 언급되었다. 

Banksy – I Can’t Believe You Morons Actually Buy This Shit, 2007  '너희같은 멍청이들이 정말로 이런 쓰레기를 사다니, 나는 당최 믿을 수가 없다.'는 제목으로 경매장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쯤 되면, 그의 작품 값을 올리는 것은 미술 시장이자 미술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가깝게는 앤디 워홀의 팝아트, 좀 거슬러 올라가면 마르셀 뒤샹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Banksy, Soup Cans (2006) EHC Fine Art 앤디 워홀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인건가? 현대미술가들은 스프캔이라는 상품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미술사 적으로 보면, 이는 마르셀 뒤샹이 1917년 한 전시회에 철물점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에 R. Mutt라는 서명만 하고, '샘 (The Fountain)'이라는 제목으로 출품을 한 것에 비견될 만한 사건이 되지 않을까?    

애시당초 참가비만 내면 전시를 허용하는 허술한 전시회에 출품했음에도 당시에는 그가 출품한 변기는 출품이 거절 당했다.  이후, 작가는 작품을 '제작'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만 해도 되는 것이라는 면죄부 (?)를 받게 되는 미술사적인 일대사건으로 기록되게 되는 것이다. 이후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그 면죄부로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선택'해왔던가. 

이번 뱅크시의 첩보전을 방불케할 '퍼포먼스'는 미술사적으로 또 다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경매에서 작품의 가격을 매겨 유통하는 과정에 대한 반항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퍼포먼스 자체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 형태로 자리잡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절반쯤 분쇄기를 통과한 그 작품은 이번 경매가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더 높은 가격에 판매될지도. 

한편, 뱅크시가 자신(들)의 인스타그램에 사전에 분쇄기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해당 경매에서 작품이 순식간에 분쇄되어 액자밑으로 흘러내리는 과정을 촬영한 것을 올리면서 "The urge to destroy is also a creative urge" - Picasso라는 구문을 함께 실었다. 이는 항상 자신의 이전의 작품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창조를 추구했던 피카소가 '창조적인 진공청소기'라 불렸던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천명했다고 볼 수도 있다.  미술계의 황금만능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을 했지만, 그 미술계에서 최고가를 갱신하며 그러한 시스템을 만끽한 피카소에 대해서는 별 저항이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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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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