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특강 때문에 바쁜 한 주. 게다가 매주 있는 강의 준비까지 겹쳤는데, 요번주 따라 지점마다 수업 내용이 다른 수업이라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체력을 회복하느라 일정 따라 잡느라 정신없이 연말연시를 보내다보니 1월1일을 그냥 정신없이 보냈다. 어차피 정식 설은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라 집안 행사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넘길 수도 있었지만, 나로서는 그래도 매년 1월 1일에는 새해 계획도 세우고 새 수첩에도 일정 기입해놓고 하는 의식 아닌 의식을 하곤 했는데 올해는 못했다.
정작 설이라고 해도 요새는 그렇게 시끌벅적한 가족모임은 없어졌다. 설이나 추석에 큰댁에 내려가서 사촌들 만나서 노는게 내 어린 날의 즐거운 추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명절 며칠 전부터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의 역순으로 만들기 시작해서 명절 전날에는 별채의 광에 음식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아이들은 맛있는 것 먹으면서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여러가지 놀이들을 하고 명절 당일 날은 윷놀이도 하고 어른들이 준비해주신 제비 뽑기나 보물찾기 같은 놀이 하다보면 2-3일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을 가득 채운 추억의 근간이 되는 명절 가족 모임은 큰 댁이 서울로 올라오시고 큰집 어른들이 연로해지시면서 집안의 제사들을 다 없애버리면서 없어졌다. 그러고 나서는 친척들과 모일 일도 줄어들었다. 같은 사촌이래도 어릴 때 자주 얼굴보고 놀았던 사촌들은 친하게 느껴지는데 자주 못보던 사촌들은 서먹서먹하다. 이젠 사촌이라도 자주 보지도 못하니 아마도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나중에 만나면 사촌이라고 해도 데면데면하게 느낄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야 마냥 즐거웠지만 광 가득히 채워져있던 음식들은 결국 큰어머니를 위시해서 집안의 며느리들이 다 해야했던 일들이었다 싶다. 물론 안그런 집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집안 행사를 하다보면 그렇다. 명절 증후군이니 뭐니 말도 많아지고 또 아이들은 입시 경쟁에 내몰리면서 점점 예전같이 명절을 지내고 제사를 모시는 집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다 내 유년 시절의 즐거운 추억은 역사책에서 기록에나 남는 풍속이 될 지도 모른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은 나이가 들면 더 그립고 생각이 난다. 아니 어릴 때엔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음식인데도 커서는 문득문득 생각이 나고 먹고 싶고 그렇다. 난방 없는 별채에 놔둬서 표면엔 살얼음이 살짝 낀 수정과, 100퍼센트 깨로만 만들어져 있던 깨강정, 우리 집안 특유의 동그랑 땡 혹은 완자 (돼지고기 다진 것과 두부를 넣고 작게 빚어 노릇노릇하게 구워냈던 작은 크기의 전), 그리고 탕국 (작게 썰어 구운 두부, 오징어, 쇠고기, 무 등을 넣고 푹 끓여낸 국) 등... 프로스트는 마들렌의 향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지만, 난 탕국 냄새나 계피 냄새를 맡으면 내 어릴 적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데 나이 먹고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해보니, 결국 어린 식구들이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어른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뤄진거겠구나 싶다. 지금에서는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소중하고 풍요로운 유년의 추억을 선사해주신 집안 어른들과 부모님들께 새삼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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