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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6. 29. 16:55 미술 이야기

이번 학기에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네덜란드 미술로 보는 서양미술사 - 르네상스에서 현대까지』

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업 중 서양미술사의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미술을 언급하긴 하지만 수업시간이 제한적이라 이렇게 보조자료 겸 하나 포스팅을 한다.

​프랑소아 부셰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미술사적으로 그가 속한 로코코 미술에 대해서 잠깐 써보려한다. 로코코 미술은 바로크 미술에 이어 유행했던 미술사조를 의미한다. 먼저 프랑소아 부셰 (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François Boucher (1703-1770), Toilet of Venus (1751) oil on canvas ; 108 x 85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The Toilette of Venus" - 비너스가 치장하는 방

부셰의 원제는 "The Toilette of Venus"다.

여기서 "toilette"는 영어로 번역하면 화장실이지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화장실, 즉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때론 목욕을 하는 방'이다. 불어로 트와이예트 toilette는 '치장' 혹은 '화장'이라는 의미도 있고, '목욕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등 치장을 하는 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향이 약한 향수를 '오드 트왈렛'은 원래 '화장 + 물' 즉, '화장수'라는 의미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토일렛 toilet'보다는 '베스룸 bathroom'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인데, 이 '욕실'이라는 표현이 불어의 트와예트 toilette와 더 가깝다. 뭐 지금은 어차피 '베스룸'도 '화장실'이라는 의미긴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어 꿀팁 하나. 미국에서 '토일렛'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치자면 '변소'라는 정도의 어감이라 쓰지 않는 편이 좋다. 화장실 찾을 때, 손을 씻을 데를 찾는 'Where can I wash my hands?' 우회적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toilet'이라고 하지말고, 그냥 'bathroom' 한 단어만 얘기하자.)

프랑소아 부셰는 로코코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위의 작품은 그 중에서도 '로코코'의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제목은 <비너스의 화장방> 정도에 해당할텐데, 여인의 모습은 여신이라기보다는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의 정부같은 분위기다. 발그레한 볼을 가진 곱디고운 그림 속의 앳된 여성은 '신들은 누드로 그리자'라는 회화적 관례에 따라 비너스라고 억지로 주장하기엔 그녀가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현세적이기 때문이다. 쾌락적이고 방탕하고 경박한 것이 로코코 문화의 특징이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비판의 근거로 사용해도 될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 천사, 푸토들이 있어도, 품에 새하얀 비둘기를 품고 있어도, 이 여성은 궁전이나 저택의 한 방에서 꽃 단장을 하고 있는 현세의 여인이지 천상의 비너스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 - 로코코 미술의 상징적 존재

이 작품은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았던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의 주문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로도 유명했지만, 예술과 문화 애호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프랑소아 부셰에게 퐁파두르 부인은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그녀의 주문을 받은 작품도 많았고, 그녀의 초상화도 그렸다.

François Boucher (1703-1770), La Marquise de Pompadour (1700~50), oil on paper ; 60 x 45.5 cm, Louvre

 

베르사이유 궁에서 소장 중인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로 나타낸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다. 일설에 따르면, 루이 15세가 처음 퐁파두르 부인을 만난것이 베르사이유 궁에서의 가면 무도회였다고 하는데, 그때 그녀가 꾸민 모습이 바로 다이애나였다고 한다. 이때 반한 왕이 그녀를 정부로 삼게 되었고, 그녀는 평생 그의 사랑을 받았다. Jean-Marc Nattier (1685-1766), Marquise de Pompadour (1746), oil on canvas ; 102 x 82 cm, Palace of Versailles

 

부셰가 그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 의상이나 가구의 화려함을 보라! 이것이 로코코다! 방안의 분위기를 보면 위의 <비너스의 화장방>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rançois Boucher (1703-1770), Portrait of Madame de Pompadour (1756), oil on canvas ; 212 x 164 cm, Alte Pinakothek

 

목욕후 휴식을 취하는 다이애나 Boucher, Diana Resting after Her Bath (1742) Louvre

사정은 부셰의 또다른 작품 <목욕 후 휴식을 취하는 다이애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이애나 여신과 퐁파두르 부인과의 관계는 앞서 살펴봤다. 그래서일까? 또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라는 제목의 작품을 그렸다. 초승달 모양의 티아라를 머리에 장식하고 있고, 사냥 도구와 포획물들이 옆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보아 사냥을 즐기던 달의 여신, 다이애나의 지물은 충실히 지니고 있다. 설정상, 사냥을 마친 다이애나가 자신의 수행원의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다이애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처녀의 신으로 자신만 처녀로 남기를 고집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수행원들도 처녀로 남기를 명했고, 이를 어길시엔 엄벌을 내렸던 여신이다. 오죽하면 우연히, 정말 우연히 사냥하다 다이애나가 목욕하는 장면 한 번 쳐다봤다고, 무구한 사냥꾼 청년 악테온을 쪽쪽 찢어 죽임을 당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부셰의 다이애나가 그렇게 결벽증 있는 여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너무 숨김이나 경계가 없어, 감상자들이 맘껏 그녀의 아름다운 누드를 감상할 수 있게 그려져있다. 위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앳되보이고 발그레한 볼이 어여쁜 이 아가씨 둘이 누드라는 것의 정당성은 결국 제목에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라는 (얇디얇은) 외투를 입은 암묵적이지만 명백한 관능성 또한 로코코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술사에선 바로크 미술이 남성적이라면, 로코코 미술은 여성적이라는 평가를 하곤 한다. '바로크'는 '다듬지 않은 진주 (baroque)'에서 기인한 것이고, '로코코'는 '로카이유 (rocaille)'라는 장식때 잘 사용되는 조개껍질에서 유래했다고 구분한다. 하지만, 교육받지 않은 눈으로는 바로크 미술과 로코코 미술을 단박에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두 사조다 화려하고 장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 우리가 여행 중 구경하는 성의 건축이나 그 안의 인테리어는 바로코 시대에 제작된 것과 로코코 시대에 제작된 것이 혼재되어 있어 그러하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작품들은 너무나도 로코코 적인 회화 작품이라 혼동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10. 28. 20:28 미술 이야기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문화센터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거나 혹은 특강이나 전시 가이드에서 만나는 분들에게서 미술사에 대해서 좀더 공부하고 싶은데 추천해줄 만한 책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고는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몇 권 수업시간에 들고 가서 소개를 할 때도 있긴 했는데, 매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책을 늘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여기 글을 하나 남겨두고자 한다.  물론 관심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미술사 분야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읽었을 책들 몇 권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책 몇 권을 함께 소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는 에른스트 H. 곰브리치<<서양미술사 (원제: The Story of Art)>>이다.

에른스트 H. 곰브리치는 미술사 분야에서는 인지심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인물이지만,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개론서인 <<서양미술사>>, 원제대로 해석해보자면, "예술에 대한 이야기"라는 저서와 어린이들을 위해 출판한 <<세계사>>로 유명인사가 되었다.  특히 <<서양미술사>>는 미술사 개론서 분야의 성서라고도 일컬어질 정도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 셀러이다.  제목도 'History of Art'가 아닌 'Story of Art'이다. 제목처럼 무겁고 딱딱하지 않게 이야기하듯이 깊이 있는 미술사에 대한 이야기를 평이하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전혀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다소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미술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맘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해보는 바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책은 여러차례 번역이 되었고, 문고판 양장판등 판본도 다양하다.  가장 도판도 훌륭한 최근 버전은 예경에서 나온 것이지만,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 볼 사람이라면 그 곳에 소장되어 있는 버전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이다.  나도 처음 미술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나중에 그가 미술사 분야에서도 권위자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그가 자신의 전공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진정으로 미술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겸허하고도 아름다운 태도에 더욱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 경지에 오른 분들만이 내용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대학의 교양 수준으로 교과서로 채택되는 책들로는 예전에는 H. W. 잰슨<<서양미술사 (원제: History of Art for Young People)>>가 있다.  잰슨의 미술사 책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대학교의 미술사 교양과목의 교과서로 오랫도록 애용되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하면서, 서양의 백인 남성 지성인의 시선으로 씌여진 책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후 이 책 자체도 그러한 비판을 염두에 두고, 기존에 다루지 않았던 제3세계 미술이나 여성 미술 등의 분야들을 보강하여 증보판을 펴내기도 했다. 워낙 오랫동안 교과서로 군림했던 책이다보니, 한국에서도 여러차례 번역이 되기도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원 책의 내용이 원체 방대하고 크기도 장난 아니게 크다보니, 한국에 출판될 때에는 편역이라는 이름으로 요약본이 주로 출판된 듯하다. 

그리고 잰슨 책의 대안으로 교과서 류의 책들이 출판되는데, 그 대표적 예가 <<가드너의 시대를 통해 본 미술사 (Gardener's Art Through the Ages)>>와 매를린 스톡스태드 (Marilyn Stockstad)의 <<미술사 (Art History)>>가 있다.     대학 교재용으로 출판되는 책들은 매년 새로운 책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자주 새로운 에디션을 펴내는 편인데, 가드너 책은 최근 에디션으로는 16판이 나왔다. 

Gardner's Art Through the Ages: A Global History 16th Edition

그리고, 매릴린 스탁스태드의 미술사 책은 6번째 에디션이 나왔다. 

Art History (6th Edition)

위의 두 책은 내가 알기엔 한국어로 번역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못 찾아낸 것일 수도 있기에 자신은 없다.

 

그 다음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라고 알려진 <<클릭! 서양미술사>>이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에 있을 때에는 이 책에 대해서도 캐롤 스트릭랜드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몇 차례 출판 관계자들로부터 이 책이 한국에서는 서양미술에 관한 개론서 중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스테디셀러라는 말을 들었다.  궁금한 맘에 몇 번 훑어보았는데, 개인적 소감으로는 이 책의 인기 비결은 '편집의 승리'라는게 개인적 소감이다.  이 책은 원본 보다 한국어판의 편집이 훨씬 더 잘되어 있다는데, 두 세 페이지 안에 각 사조의 특징과 미술사적 의의에 대한 요약이 실려 있고, 대표작가들과 그 대표작이 실려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따라서, 미술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이 책 한 권만 잘 읽고 나면 어느 정도 윤곽은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이 장점은 입문자가 선택하기엔 절대적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금이라도 미술사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개론서라고 꼽기에는 요약이 지나치게 되어 있다고 할까?  대표 사조와 그 대표작가, 대표작 만으로도 그 정도의 부피는 나올 것이니 일단 내용이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개인적 소견으로는 그 책의 내용에 실린 내용이 소위 말하는 '카더라 통신'이 여과 없이 실린 것들도 있고, 그렇게 한정된 페이지 안에 굳이 그런 에피소드를 넣을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도 있어서 좀 아쉬웠다.

 

그 다음으로는 개인적 인연 내지는 사견이 첨가된 추천서이다. 

1. 폴 존슨 (Paul Johnson) <<새로운 미술의 역사 (원제 : ART: A New History)>>

폴 존슨은 유명한 역사학자이지만, 예술에도 조예가 깊은 인물로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하다.  노 역사학자가 평생 취미와 직업 사이에서 연구한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은 내가 번역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책의 두께도 두껍고, 폴 존슨의 예술에 대한 내공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라 결코 손쉽게 읽어버릴 책은 아니다.  그리고 저자가 엄밀히 말해서 '미술사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미술사 책들과는 예술사조의 구분이나, 작품과 작가 선정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개인적 사견이 가감 없이 담긴 점은 곰브리치의 저서와는 대척점에 이른다 할 정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의  식견과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기사인데, 미처 언급 못한 미술사 개론서에 대한 설명도 있기에 덧붙여둔다.

[깊이읽기] 우리 눈으로 … 독특한 눈길로 … 미술사를 다시 본다 [출처: 중앙일보]  

 

2. 데이비드 호크니 (David Hockney)<<그림의 역사 (원제 : A History of Pictures)>>

이 책 역시 내가 번역을 하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블로그의 이전 포스팅에서 "데이비드 호크니-팔순의 아이패드"라는 제목으로 올린 적이 있으므로 그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 해나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가 소개할 수 있는 미술사 개론서 목록이다.  아름답고도 심오한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은 분이라면 위의 책들을 먼저 읽어보시길 권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므로...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23. 01:14 미술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7. 00:10 미술 이야기

Norman Rockwell (1894-1978), Going and Coming, 1947. Oil on canvas, 16" x 31 1/2". Cover illustration for The Saturday Evening Post, August 30, 1947  휴가 가기전 기대와 희망에 부푼 이들의 모습과 휴가지에서 하얗게 불태우고 난 뒤 집으로 향하는 기진맥진한 모습의 상태를 대비해서 보여주는 작품. 노먼 락웰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예리함과 인간 심리 포착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예 

미술 비평가들은 '일개 일러스트레이터'인 노먼 락웰의 작품을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다시 봐도 그만큼 인간의 심리를 잘 포착한 작가도 사실은 드물어 보인다.  그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를 담당했던 시기 무려 47년. 1916년부터 1963년까지로 미국이 공황과 전쟁, 그리고 케네디가 암살을 당했던 시기를 다 아우른다. 개인적으로도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락웰 스스로가 개인적으로는 우울한 기질의 소유자라고 했다고 하니 그가 표지로 그렸던 작품들이 '냉혹한 현실의 표현'이라거나 '작가의 자아나 실존의 표출'이 아니었음은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 작품이 다 그렇게 실존의 표명이라야만 한다는 규율은 또 어디에 있는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미국 소도시에서 소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머금었고 행복해 했고,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려 당의정을 입혀 표현한 작가라는 비판을 의식해, 자신은 주변 세상이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랬으면...하는 소망'을 담아 그린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후 'Look'이라는 사회성 짙은 잡지로 옮겨가서는 보다 사회비판적 작품을 그린 것을 보면 그러한 낙천적이고 소시민적 행복감 넘치는 그의 작품의 주제는 그가 표지를 담당했던 'Saturday Evening Post'의 잡지 성격에도 영향을 받았음에 분명하다.  때로는 '대한 뉘우스'급의 바른생활 어린이스러움이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의 유머와 위트, 세상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은 높이 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다음번 리바이벌 때에는 존 커린 (John Currin: 1962-)에 대해서 좀 써보기로 하련다.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1

이하는 작년 추석을 맞이하여 올렸던 글.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6. 00:10 미술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4. 15. 11:17 미술 이야기

깊은 우물 속 물 길러 올리듯, 목차가 일목요연하지 않은 내 블로그의 깊은 곳 글들 하나씩 다시 재게재하는 작업 중.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에는 주로 여성의 누드로 표현되곤 하는데, 아름다운 젊은 남성의 누드가 화면 전체를 차지하도록 그린 예외적 작품, '바닷가의 젊은 청년'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차용' 혹은 'appropriation'이라고 불리는 고전을 '의미없이' 복사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잠시 살펴보는 시간.  

Photograph after Flandrin's study by  Wilhelm von Gloeden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2

 

건강과 미의 상관관계-플랭드랭의 바닷가의 젊은이

흔히 미의 여신 비너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로 표현된다. 하지만, 이폴리트 플랑드랭은 청년의 누드로 지극히 고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어떤 사연을 가지고 바닷가에 올 누드로 저런 포즈로 앉아있었어야..

sleeping-gypsy.tistory.co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30. 00:18 미술 이야기

 

11월 26일 월요일 오후,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권위있는 경매소 도로테움 (The Dorotheum)에서 11월 28일 경매 예정이었던 르느와르의 작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느와르 (Pierre-Auguste Renoir)의 1895년 작품<Golfe, mer, falaises vertes (Gulf, Sea, Green Cliffs)>은 28일 경매에서 약 $131,000~$181,000 (1억4685만원~2억290만원)으로 판매될 것으로 추정된 작품이다. 

Pierre-Auguste Renoir, Gulf, Sea, Green Cliffsoil on canvas ; 27 x 40 cm. 

The Dorotheum in Vienna, which dates to 1707. A Renoir was stolen off its walls on Monday.  Credit Leonhard Foeger/Reuters

 

빈 경찰이 공개한 CCTV 화면에 잡힌 범인으로 추정되는 세명의 남성 Credit Vienna Police

이번 사건으로 경매소 측 뿐 아니라 구매를 희망했던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받았음에는 틀림없다.  실제로 그림을 액자에서 빼내가는 시간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 짧아 범행은 순식간에 이뤄졌다고 알려져 있다. 어떻게 경비가 삼엄했을 경매소를 그렇게 간단히 통과했는지도 미스테리다.  르느와르 작품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고 독특한 작품이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귀중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을 하루빨리 경찰이 되찾기를 바랄 뿐이다. 

유명 작품과 도난 사건은 드문 일은 아니다. 

대표적 도난 사건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가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지만, 이 <절규>가 그 인기에 힘입어 1893년부터 1910년에 걸쳐 유화와 파스텔 등, 4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처음 독일어로 제목을 붙일때에는 <Der Schrei der Natur (The Scream of Nature)>, 즉 '자연의 절규'라고 명명했었다는 것도. 

진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해골과 같은 모습의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린 얼굴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간략화된 선들로 현대인의 고독과 절망을 절묘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의 모나리자'라 불리기도 한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거의 국보 대접을 받는 이 작품들은 지금은 거의 국외로 반출이 금해져 있는 상태. 예외적으로 2015년 반고흐 뮤지엄에서 1893년 파스텔 버전이 전시된 적이 있긴하다. 

총 4점의 작품 중 2점은 오슬로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중이다. (참고: 아래 두 이미지)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pastel on cardboard ; 74 x 56 cm, Munch Museum  최초의 버전으로 파스텔로 스케치를 한 작품으로 기본이 되는 구도를 잘 살펴볼 수 있다.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oil, tempera & pastel on cardboard ; 91x 73.5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절규>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작품 일것이다.  

뭉크 뮤지엄에서는 1910년 버전 (참고: 아래 이미지)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910) 

tempera on panel ; 83 x 66 cm, Munch Museum  이 버전은 1910년 카드보드위에 템페라로 제작된 작품으로 2004년 도난당했다가 2006년 무사히 찾은 작품.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5) Pastel on board ; 79 x 59 cm, private collection Leon Black.  이 1895년 파스텔 버전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119,922,600 [약1344억원 상당]라는 높은 가격으로 Leon Black에게 판매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하단에는 뭉크가 작품을 구상했을 당시의 느낌을 적은 일기가 동판에 새겨져 덧붙여져 있는 점도 특징이다.  

 

뭉크의 절규 작품의 도난 사건은 1994년과 2004년 두차례 일어났다. 첫번째 1994년 도난 사건은 오슬로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일어났지만 수개월 안에 작품이 회수되었고, 2004년 도난 사건은 <절규>와 함께 <마돈나>가 뭉크 뮤지엄에서 도난당했다가 수년후 회수되었다.

 

1994년 올림픽을 맞이해서 노르웨이의 문화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개최하는 관계로 뭉크의 <절규>를 기존의 전시실에서 1층에 옮겼는데, 그 틈을 타 도둑들이 사다리를 놓고 그림을 가져가는데 채 1분이 걸리지 않았고, 게다가 엉성한 보안에 감사!”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갔다 한다. (범인들이 명탐정 코난 만화에 나오는 괴도 키드를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수개월 내에 작품은 회수 되었고, 범인은 잡혔지만, 위법수사를 이유로 범인 네명중 세명은 제대로 처벌하지도 못했다 한다. 그 중 한 명은 1988년 뭉크의 <뱀파이어>라는 작품을 훔친 전력이 있는 폴 앵겔 (Pål Enger)이었다고.      

 

1994년 도난 당시 범인들이 사용했던 사다리. 이 사다리를 타고 오슬로의 내셔널 미술관에 잠입하여 뭉크의 <절규>를 떼가고, 거기다 "엉성한 보안에 감사!"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떠나는데 50여초 밖에 안걸렸다고 한다. 

  

 

2004년 도난사건의 경우엔 좀더 험악했는데, 백주 대낮에 두 명의 무장괴한이 뭉크 뮤지엄에 출몰하여 뭉크의 <마돈나><절규> 두 점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었다.  한때는 증거인멸로 작품들을 태워버렸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작품은 무사히 회수하였다.   

 

보통 이러한 미술품들의 도난 사건의 경우, 복잡한 문제가 얽혀있기에 미술관 측에서 은밀히 처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서 경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도난시 작품이 위작과 교체될 위험도 있고, 미술관 측으로서는 엄청난 손해와 비난을 감수해야하므로.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은밀히 도둑들로부터 되사는 경우까지도 있다고.  개인 경매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작업들은 모르긴 몰라도 첩보전을 방불케하리라~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1. 26. 03:49 미술 이야기

비너스의 역사는 보티첼리와 함께 시작하였다는 것은 이전의 글에서 밝힌 적이 있다. 

거의 처음 올린 보티첼리의 비너스에 대한 글은 바로 여기~    

물론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비너스의 도상은 있었지만, 누드 여인의 모습을 그린 것은 보티첼리가 처음이었고, 누워 있는 누드로서 비너스를 그린 것은 흔히 소장처의 이름을 따서 '드레스덴 비너스'라고 불리는 작품이 있다.  이후 이 도상을 따라 수많은 '누워있는 비너스' 상이 그려졌다.  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남성의 누드가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여겨졌고, 여성의 누드는 금기시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술사적으로 살펴보면, 여성의 누드가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 중반이나 되어서였다.  이후 서구 회화에서는 육체적인 것을 죄악시하거나 경시하던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에 이르면서 신들은 누드로 그려진다는 회화적 어휘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를 그리는 것은 정당화 되었다.  대부분의 주문자는 남성이었기에 그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서 누드의 여인상은 인기 있는 주제가 되었고, 그 중 최초로 그려진 '누워있는 비너스' 도상은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의 '드레스덴 비너스'는 풍경은 조르조네가, 누드는 그의 제자이자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최고 대가였던 티치아노가 그린 것이라 전해진다.  

소장처의 이름을 따서 '드레스덴 비너스'라고도 불리는 서구 미술사상 최초의 '누워있는 비너스'는 조르조네와 그의 제자 티치아노에 의해 그려졌다. Giorgione  (1478-1510) and Titian (1490-1576), Sleeping Venus (1508), oil on canvas ; 108.5 x 175 cm, Old Masters Picture Gallery Dresden 

Titian, Venus of Urbino (1532 or 1534), oil on canvas ; 1.19 x 1.65 m, Uffizi Gallery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대가로 알려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2/34)  이 작품은 마네의 '올랭피아' (1863)의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티치아노의 또 다른 걸작으로는 역시 소장처의 이름을 따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있는데, 이러한 르네상스기의 비너스는 이후 누워있는 누드의 모습으로 마네의 '올랭피아'부터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까지도 수도 없이 그려졌다.  

그 결과,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관에 간다면 드물지 않게 살펴볼 수 있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오죽하면 뒤샹이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를 보고, 그의 형이 '누드는 누워 있는 것이지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겠는가?  

오늘은 그 친숙한 비너스의 이미지에 새로운 이미지를 더해 소개할까 한다.  

Venerina (Little Venus), life-sized dissectible wax model created by the workshop of Clemente Susini at Florence’s La Specola for Museo di Palazzo Poggi, Bologna, Italy, 1782. Courtesy of Museo di Palazzo Poggi - Università di Bologna. Photo © Joanna Ebenstein.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밀납 모델. 계몽시대에 제작된 비너스 상 '베네리나 (작은 비너스)'라는 명칭으로 불림.


위의 비너스는 밀납으로 만든 비너스 상이다. 이는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들어 졌고, 별칭이 '베네리나 (작은 비너스)'다.  마리 앙토와네트의 오빠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레오폴드 2세의 통치기에 해부학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자는 클레멘트 미켈란젤로 수시니 (Clemente Michelangelo Susini)로 이 외에도 유사한 밀납 비너스 상을 제작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밀납 비너스 상으로는 '메디치 비너스'라고도 알려진 '분리 가능한 비너스'다. (여기서 '메디치 비너스'라고 불리는 우피치에 소장 중인 대리석 조각상도 있으니 혼돈하지 않도록 하자. 아래 그림 둘 참고) 

 

가장 유명한 분리가능한 밀납 비너스. '메디치 비너스'라고도 불린다. 클레멘트 수시니의 워크샵에서 1780-82년에 제작. Courtesy of Museo La Specola, the Natural History Museum of Florence. Photo © Joanna Ebenstein.

Venus de' Medic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메디치 비너스'라고 불리는 또 다른 비너스 상으로 현재는 우피치에 소장 중이다. 갓 목욕을 마치고 올라와서 수건으로 몸을 가린 모습의 비너스를 묘사한 '정숙한 비너스 (Venus Pudica)' 도상을 따르는 조각상.  

그렇다면, 18세기의 유럽에서는 오늘날 보기에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이러한 분리 가능한 밀납 비너스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일까?  그 이유는 앞서 밝혔듯, 일차적으로는 해부학 연구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당시의 계몽주의적 분위기도 한 몫을 했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귀족의 문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오늘날의 미술관과 박물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듯 신기한 것을 수집하려고 하는 귀족층의 독특한 취미와 만나게 된다)  일차적으로는 의학이라는 과학에서 출발했으나 '뚜껑' (?)을 덮은 여인의 인체의 모습은 무척 아름답게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미술과 연결이 된다. 

Courtesy of Université de Montpellier, collections anatomiques. Photo © Marc Danton

또한 이러한 밀납 비너스 상을 제작하는 붐이 일었던 시기는 '인체야말로 신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이자 인간이야말로 소우주'라는 사상이 만연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학 내지 종교적 측면에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피렌체의 라 스페콜라, 동물학 및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 중인 이 밀납 조각상들은 한편으로는 과학실의 인체 모형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밀납 인형 박물관을 떠올리게도 한다. 밀납으로 만든 비너스 상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고 징그럽게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인간의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울러,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지식에의 욕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도 인간의 본능 속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결국 미와 과학, 종교와 의학, 영혼과 신체가 결국은 상통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미술사적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티치아노와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클레멘트 수시니의 '분리가능한 밀납 비너스'는 현대미술에서 자주 논해지는 페티쉬와 순수 미술 사이에서의 간극과 혼용도 한번쯤 생각하게 해준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