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네덜란드 미술로 보는 서양미술사 - 르네상스에서 현대까지』
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수업 중 서양미술사의 메인스트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미술을 언급하긴 하지만 수업시간이 제한적이라 이렇게 보조자료 겸 하나 포스팅을 한다.
프랑소아 부셰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미술사적으로 그가 속한 로코코 미술에 대해서 잠깐 써보려한다. 로코코 미술은 바로크 미술에 이어 유행했던 미술사조를 의미한다. 먼저 프랑소아 부셰 (François Boucher: 1703–1770)의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The Toilette of Venus" - 비너스가 치장하는 방
부셰의 원제는 "The Toilette of Venus"다.
여기서 "toilette"는 영어로 번역하면 화장실이지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화장실, 즉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때론 목욕을 하는 방'이다. 불어로 트와이예트 toilette는 '치장' 혹은 '화장'이라는 의미도 있고, '목욕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등 치장을 하는 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향이 약한 향수를 '오드 트왈렛'은 원래 '화장 + 물' 즉, '화장수'라는 의미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토일렛 toilet'보다는 '베스룸 bathroom'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인데, 이 '욕실'이라는 표현이 불어의 트와예트 toilette와 더 가깝다. 뭐 지금은 어차피 '베스룸'도 '화장실'이라는 의미긴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어 꿀팁 하나. 미국에서 '토일렛'이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치자면 '변소'라는 정도의 어감이라 쓰지 않는 편이 좋다. 화장실 찾을 때, 손을 씻을 데를 찾는 'Where can I wash my hands?' 우회적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toilet'이라고 하지말고, 그냥 'bathroom' 한 단어만 얘기하자.)
프랑소아 부셰는 로코코의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위의 작품은 그 중에서도 '로코코'의 시대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제목은 <비너스의 화장방> 정도에 해당할텐데, 여인의 모습은 여신이라기보다는 부유한 귀족이나 왕족의 정부같은 분위기다. 발그레한 볼을 가진 곱디고운 그림 속의 앳된 여성은 '신들은 누드로 그리자'라는 회화적 관례에 따라 비너스라고 억지로 주장하기엔 그녀가 있는 공간이 너무나도 현세적이기 때문이다. 쾌락적이고 방탕하고 경박한 것이 로코코 문화의 특징이라고 비판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비판의 근거로 사용해도 될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 천사, 푸토들이 있어도, 품에 새하얀 비둘기를 품고 있어도, 이 여성은 궁전이나 저택의 한 방에서 꽃 단장을 하고 있는 현세의 여인이지 천상의 비너스처럼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 - 로코코 미술의 상징적 존재
이 작품은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았던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의 주문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로도 유명했지만, 예술과 문화 애호가로도 널리 알려졌다. 프랑소아 부셰에게 퐁파두르 부인은 가장 중요한 고객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그녀의 주문을 받은 작품도 많았고, 그녀의 초상화도 그렸다.
사정은 부셰의 또다른 작품 <목욕 후 휴식을 취하는 다이애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이애나 여신과 퐁파두르 부인과의 관계는 앞서 살펴봤다. 그래서일까? 또 사냥의 여신 다이애나라는 제목의 작품을 그렸다. 초승달 모양의 티아라를 머리에 장식하고 있고, 사냥 도구와 포획물들이 옆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보아 사냥을 즐기던 달의 여신, 다이애나의 지물은 충실히 지니고 있다. 설정상, 사냥을 마친 다이애나가 자신의 수행원의 도움을 받으며 목욕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다이애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처녀의 신으로 자신만 처녀로 남기를 고집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수행원들도 처녀로 남기를 명했고, 이를 어길시엔 엄벌을 내렸던 여신이다. 오죽하면 우연히, 정말 우연히 사냥하다 다이애나가 목욕하는 장면 한 번 쳐다봤다고, 무구한 사냥꾼 청년 악테온을 쪽쪽 찢어 죽임을 당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부셰의 다이애나가 그렇게 결벽증 있는 여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너무 숨김이나 경계가 없어, 감상자들이 맘껏 그녀의 아름다운 누드를 감상할 수 있게 그려져있다. 위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앳되보이고 발그레한 볼이 어여쁜 이 아가씨 둘이 누드라는 것의 정당성은 결국 제목에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라는 (얇디얇은) 외투를 입은 암묵적이지만 명백한 관능성 또한 로코코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술사에선 바로크 미술이 남성적이라면, 로코코 미술은 여성적이라는 평가를 하곤 한다. '바로크'는 '다듬지 않은 진주 (baroque)'에서 기인한 것이고, '로코코'는 '로카이유 (rocaille)'라는 장식때 잘 사용되는 조개껍질에서 유래했다고 구분한다. 하지만, 교육받지 않은 눈으로는 바로크 미술과 로코코 미술을 단박에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두 사조다 화려하고 장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 우리가 여행 중 구경하는 성의 건축이나 그 안의 인테리어는 바로코 시대에 제작된 것과 로코코 시대에 제작된 것이 혼재되어 있어 그러하다. 하지만 오늘 소개한 작품들은 너무나도 로코코 적인 회화 작품이라 혼동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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