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집에 있던 전래동화집에서 읽은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났다. 하도 옛날 어릴 적 읽었던 내용이라 가물가물하긴 한데, 인터넷을 찾아봐도 자세한 이야기가 없다.
이야기인즉슨, 옛날 어느 농부가 사주를 봤더니 왕이 될 사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농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왕이 될 날만을 기다렸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왕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니 가세는 점점 기울었다. 결국 농부는 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를 먹고 늙어갔다. 세상을 떠나는 날, 그는 '짐이 붕하신다. 태자 불러라'라고 하면서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붕하다'는 임금이 돌아가시는 것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가물가물 하긴한데, 알고보니 왕과 생년월일과 생시가 같더라는 뒷이야기도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여하튼 집에 있던 그 책을 우리 가족 모두 다 읽었고, 그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집에선 가족 중 누군가가 뭔가를 자꾸 미루면 '짐이 붕~하신다!'라며 '붕'에 리듬을 실어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그건 내 방 정리를 미루는 내게 엄마가 이야기 할 때도 있었고, 숙제를 미루는 우리에게 아빠가 이야기 하실 때도 있었고, 뭔가 맛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했을 때 엄마가 '다음에~'라고 미루시면, 우리 형제들이 목소리 높여 외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예전에 정말 왕이 될 사주나 관상이라고 손가락 빨고 아무일도 안한 사람이야 있었겠냐 싶고, 오늘날에도 이를테면 재벌될 사주라고 집에서 재벌될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야 있겠냐마는, 크든 적든 자꾸만 '언젠간 ~을 할거야'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결국은 '짐이 붕~하신다'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간 정원이 넓은 집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여유있게 지내야지. 생각해왔는데, 그냥 내친김에 베란다에 작은 허브 화분들과 꺽꽂이 한 화분 몇 개를 만들어 정리해놨다. 언젠가 한국에서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꽃꽂이도 배우고 본격적으로 필라테스도 배우고 하려고 했는데, 이번 봄에 본격적으로 하나라도 시작하려고 한다. 어차피 상황 다 갖춰지고 모든 조건이 딱 맞아떨어지는 때란 오지 않을테니까. 매일매일 조금씩 하나라도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지내야겠다.
올해는 봄 날이 꽤 길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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