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을 때 추석이 되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잘지내냐는 안부와 함께 타향에서 송편이나 챙겨먹냐며 외롭더라도 잘지내라며. 덕분에 간만에 정다운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난 솔직히 그다지 외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이 다 명절이라고 고향 가고 송편 빚고 차례지내고 했다면 나도 쓸쓸한 느낌에 가족들 생각이 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추석은 미국에서는 평일. 누군가 일러주지 않으면 모르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반면, Thanksgiving 이라 불리는 추수감사절 때에는 한국에서는 아무런 상관없는 날이지만, 미국에서는 꽤 큰 명절이다. 11월 4째주 목요일이라 정해져 있기에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금요일도 그냥 쉬다보니, 나흘의 연휴가 주어진다. 집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칠면조 구이를 하고, 고구마와 머시멜로우를 섞어 만든 다소 정체불명의 음식도 하고, 크렌베리 소스를 만든다. 그리고 보통 후식으로는 펌프킨 파이를 준비하는데, 이는 나중에 식탁에 낼 때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씩 얻어서 낸다. 경우에 따라 추수감사절 전날부터 가족들이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당일 가족들이 하는 약간 늦은 점심 식사가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이날은 다들 모여 준비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으며 느긋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저녁 식사 때에도 비슷한 메뉴. 그리고 남은 터키는 다음날 샌드위치 속에 넣어서 먹곤 한다. 칠면조를 요리하는 방법은 집집마다 달라서 마당에 커다란 찜통같은 솥을 걸고 그 속에 기름을 채워 통째로 튀겨내는 집도 있고, 요리용 종이 봉투 속에 칠면조를 넣어 '촉촉하게' 요리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추수감사절은 시기 상으로는 대학원에서는 기말을 향해 나가는 시기. 유학 초반에는 준비해야할 발표와 기말 페이퍼로 늘 맘은 무거운 상태인 경우가 많긴 했지만, 나중에 학기 수업과정이 끝나고 나서는 아닌게 아니라 쓸쓸한 느낌도 들고 고향 생각도 나고 그랬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전화 한통 메일 하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언제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추수감사절 때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벽을 긁거나 베겟잇을 눈물로 흠뻑 적시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유학을 간 이후에 매년 추수감사절 식사에 누군가에게 초대받고는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휴라고 편히 쉴 수 없는 학생의 처지였기에 그 때에는 초대 받으면 받는대로 응하면서도 맘이 바빴다. 한두번은 예의가 아닌듯 해서 거절하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상대방의 초대가 빈말이 아니라 몇 번이고 간곡한 초대이다 보니, 나중에는 그런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게 느껴졌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날 추수감사절 식사에 초대를 해 준 사람들은 다양했다. 학과 친구도 있었고, 과 친구는 아니라도 거기서 사귄 친구들도 있었다. 학과 교수님도, 타과 교수님도 있었고, 직장 동료도, 직장 상사도 있었다. 심지어 타주에 있는 친구의 고향의 집까지 가서 그 집에서 머문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명절 날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함께 불러 쇠는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 있는 동안, 거의 매년 난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서 명절을 함께 보내곤 했다. 그때마다 난 노먼 락웰의 그림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집집마다 풍경은 다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커다란 파티가 이뤄지기도 했다.
날짜를 보니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다. 혹시 미국에 거주하는 친척을 둔 분들은 거기서 쇠지 않는 추석이 아니라 오늘 안부 전화를 한번 해주시라. 원래 주변의 사람들이 즐거울 때 사람은 외로워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절, 가족이 아닌 친구들을 한번씩 초대하는 건 어떨까? 실제 초대 받아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덕분에 난 자칫 벽을 긁거나 베겟잇을 적시는 일 없이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고, 그들의 말을 내가 곧이 곧대로 믿자면, 가족끼리의 모임도 좋지만, 내가 참석을 해서 색다르고 즐거웠다는 말을 했다. 명절의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어 가고 있으니 이런저런 다양한 명절의 풍경도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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