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미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글 목록 (107 Page)
2018. 9. 11. 08:00 미술 이야기

Norman Rockwell (1894-1978). The Problem We All Live With, 1964. Story illustration for Look, (January 14, 1964). oil on canvas. 36 x 58 in. (91.4 x 147.3 cm). From the permanent collection of the Norman Rockwell Museum. © The Norman Rockwell Estate / Licensed by Norman Rockwell Licensing Company, Niles, Illinois


위의 작품은 1964년 1월 14일 발간된 격주지 Look의 표지 삽화이다. 

미국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락웰 (Norman Rockwell : 1894-1978)은 장장 47년간 가벼운 오락 잡지인 Saturday Evening Post의 삽화를 그렸는데, 그 삽화의 주제는 대부분 미국의 보통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모습을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려냈고, 그의 작품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런 그의 화풍에 혹자는 '설탕을 바른 그림' 즉,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적 사회로 미화해서 그린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문제는 작가 자신도 느꼈던 듯 하다. 만년의 그는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지를 떠나 그보다는 좀 더 시사문제를 다루는 '룩'이라는 잡지의 삽화를 맡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 작품인 것이다. 


The Runaway, Cover illustration for  The Saturday Evening Post, September 20, 1958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 삽화에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담아 묘사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맨 위의 그림에서 노먼 락웰은 당시 인종 분리 정책을 폐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회 문제에 대해서 뉴 올리언즈에 사는 루비 브릿지라는 6살 먹은 흑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1960년 11월 14일,  루비 브리짓은 인종분리 정책을 폐지함에 따라, 이전까지는 백인학교 였던 초등학교에 등교하게 된 장면을 그리고 있는데, 그림을 보는 관람자 쪽에는 아마도 이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자리 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화면의 가운데에는 어린 소녀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고, 그녀의 앞과 뒤에 완장을 찬 경찰관들이 시위대로부터 어린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호위하여 걸어가고 있다. 벽에는 인종 분리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던진 것으로 짐작되는 토마토가 터진 채 떨어져 있고, KKK, Nigger 등 보기 거북한 낙서들이 커다랗게 써 져 있다. 



우리는 부모님들에게서, 또 학교에서 가르치는대로 지식은 물론 예절과 법규를 배우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한 지식과 예절, 법규를 잘 익히고 배울수록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식을 쌓고, 신념을 갖게도 되고, 자연스럽게 관례와 관습에 대해서도 익숙해지고 동화된다. 그리고, 사회적 관습과 관례 속에서 산다는 것은 상당한 안정감과 소속감을 갖게 해준다.   

시위대에 속한 이들도 그러한 '관례 속의 상식'을 지닌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음을 의심치 않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싸움은 옳은 가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정의로운 투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것이다. 

55년 후에 어떻게 세상이 변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받게 될지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1957년 노스 캐롤라이나의 15세의 소녀가 백인 학교에 등교할 때에도 그랬다. 뒤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흑인 소녀를 조롱하던 소년은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죄 없는 소녀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지던 사람들도... 


그 때에는 그 소녀를 비웃고 있던 저 소년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었을 때에 자신의 어린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차별은 내면화 될 뿐, 좀처럼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아서, 오늘날도 맘 속에 저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의 한계는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저런 결정적인 오류를 가진 신념은 갖지 않고 살고 싶다. 


백인학교에 등교한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이 던진 돌멩이나 나무 작대기를 맞았고, 선생님들은 그것을 모른척 하거나 묵인하는 일이 허다했고, 심지어 선생님들 조차도 흑인 학생을 무시하곤 했다고 한다.  


#노먼락웰 #NormanRockwell #DorothyCount #역사속책임 #인종분리정책 #SaturdayEveningPost #Look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10. 08:00 미술 이야기

어디 늦게 밖을 쏘다녀, 돈은 내가 벌거야. 당신은 조신하게 집에나 있어.’  

무슨 소리야! 운전은 내가 해야지. 도시락은 싸오려나…’


남자의 입에서 나왔다면 시대착오적인 발언이라고 빈축을 샀을지도 모르는 말은 개그 우먼 숙의 입에서 나왔기에 모두에게 웃음을 줬다.  개그맨 정수와의 찰떡 호흡 덕에 그들의 가상 결혼 프로그램은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방은 이었다고 하나, 요새도 회자 되는 것을 보면 인기가 있기 있었나보다.  

리가 김숙의 가모장적인 말을 듣고 웃을 있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상식 위배되기 때문이다.  , 개그 우먼 숙은 전통적인 남녀의 역할을 전복시킨 발언을 통해서, 통념의 허점을 찌르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면서 듣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말을 남자 개그맨이 여자 개그맨을 상대로 했다면, 절대로 재미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논란을 불러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 만약 우리 사회가 남녀의 역할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비교적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 남녀 구별없이 경우에 따라 경제활동과 가사를 분담하는 사회였다면, 말은 누구 입에서 나온 것이든 전혀 재미없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개그 우먼 숙의 유머코드는 현실 전복 있다고 있다그녀의 유머를 통해 남성 우위의 억압적 사회에 살고 있다고 여기는 여성들이나, 남성이 부양의 임을 져야하는 남성 압박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일종의 코믹 릴리프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전복적 남녀관계를 묘사한 미술 장르 내지 표현법이 존재한다

이름하여여성 파워 (Power of Women)”!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전통적 서구에서도 남녀의 역할을 전복시켜 문학과 시각 예술에서의 수사법 내지 시각적 장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Weibermacht” 혹은 “Power of Women,” 여성 파워 이다이는 12세기 경부터 문학에서 수사학적 장치로 사용되면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시각 예술에서 인기를 얻었던 것은 15세기에 이르러 독일과 네덜란드에서였다당시 유행했던 주제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타는 필리스, 삼손과 데릴라, 살로메와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스, 시세라를 죽이는 야엘, 바구니 속의 버질 등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Phyllis and Aristoteles” , 요부인 필리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을 무릎 꿇린 , 말을 타듯이 등에 올라탄 장면을 묘사한 것이 그것이다.


Lucas Cranach the Elder, Phyllis and Aristotle (1530), oil on panel ; 55.3 x 35.3 cm 


Hans Baldung, Aristotle ridden by Phyllis (1515) woodcut  

다음으로는 유명한 이미지는 유명한 대시인 버질이 아름다운 공주의 속임수에 넘어가, 한밤 중에 그녀를 만나려고 바구니를 타고 성을 오르다가 중턱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처지가 되고, 날이 밝자 동네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Lucas van Leyden (1494-1533), Virgil in His Basket (1512-16) woodcut ; 41 × 28.7 cm. Rijksmuseum Amsterdam 


이러 작품들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인기를 끌게 되었던 것일까?  작품의 제작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 1. 자고로여자란 요물!  남성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 2. 사랑의 앞에선 세상 유명한 학자나 현자라도 없다. 위대한 사랑의

  • 3. 결혼이라는 시련 (?)’ 풍자했다는

의미가 무엇이든 위의 가지 도상은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주는 코믹적 요소가 강하다.  

한편, 같은 여성 파워 주제로 제작된 미술 작품들 중에서, 신체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이 남성을 제압하는 표현은 미술사에서 손꼽히게 드물다.  크게 가지 정도? 

대표적인 예로, 유디트와 야엘이 있다.  이들 같은 경우, 신체적으로 힘이 약한 여인의 몸으로 전쟁에 잔뼈가 굵은 적장들과 대적하기 위해, 우선 미인계로 접근하여 술을 진탕 먹인 다음, 적장이 취해서 잠든 사이 거사를 치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멱을 따고, 야엘은 드러누워 있는 적장 시세라의 귀에다 커다란 못을 박아 넣는다.  일견 잔혹하기 그지 없는 방식의 살인을 저지르는 여인들은, 하지만, 유대판 논개들로, 조국을 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적군을 살해하는 인물들이기에 악인이라기 보다는 의인으로 묘사된다.  


Lucas Cranach the Elder (1472–1553), Judith with the Head of Holophernes (1530), on beech wood ; 74.9 x 56 cm, Jagdschloss Grunewald 


 

Lucas van Leyden (1494-1533), Jael Killing Sisera, ornamental frame (c.1517) woodcut; second state ; 34.3 x 23.2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세례 요한의 목을 가지고 있는 살로메  Titian  (1490-1576), Salome (c.1515), oil on canvas ; 90 x 72 cm, Doria Pamphilj Gallery 


이에 반해, 같은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요물'로 묘사되는 살로메는 연회 때 의붓 아버지인 헤롯왕 앞에서 섹시 댄스를 추고 나서, 그 상으로 쟁반에 담긴 세례 요한의 목을 하사 받는다. (이 경우, 살로메는 어머니 헤로디아의 눈 밖에 난 세례 요한에게 괘씸죄를 적용하길 원한 어머니의 소원을 대신 들어준 것이다) 

서구 미술에서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대략 정도라고 있는데, 따라서 도상학 적으로 손에 칼을 들고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담겨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주머니를 들고 있으면 유디트, 남자의 목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으면 살로메라고 구분한다. (야엘 경우, 직접 살해 장면이 묘사된다

이러한 Power of Women 수사는 여기에 관능성과 성적인 암시를 더하면서,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19세기 말의 팜므 파탈 (femme fatale) 이미지로 이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19세기의 대표적 팜므 파탈의 이미지로 재부상한 살로메의 경우, 유혹적 모습으로 남자의 목숨을 앗아간 요부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한 추정이 가능해보인다.   


Henri Regnault  (1843–1871), Salomé (1870), oil on canvas ; 160 x 10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그녀와 함께, 단골 모델이 되었던 것은 사이렌.  로렐라이 언덕에서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천상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뱃사공들을 모조리 물에 빠뜨렸던 여인의 모습이다.  

John William Waterhouse, Siren (1900)  oil on canvas ; 81 × 53 cm 


그리고, 그의 유혹에서 벗어날 없는 것은 오늘날, 비단 남자 뱃사공 만은 아닌 하다.   


우리 모두 조신하게 .벅에서 커피 한잔

스타벅스 로고 변천사 – 꼬리가  달린 사이렌의 형상화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9. 18:25 미술 이야기

친구 필라델피아에 출장을 건데, 거기서 만한 없는지 알려 달라고 하네요.

여러분은 필라델피아~’ 하면 뇌리에 뭐가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크림치즈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고기를 좋아라 하신다면, 필리 치즈 스테이크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게 수도 있겠군요.  


교육열 높으신 분이라면, 아이비리그 학교 하나인유펜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있는 곳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구요.  연배가 되시는 분이라면 덴젤 워싱턴과 행크스의 영화 <Philadelphia> 떠오르실지도 모르겠네요. 최근에는 케서방이라고 불리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재미있는 영화 <National Treasure> 배경이었다는 것에 기억이 미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실제로 필라델피아 출신이라는 친구들을 만나보면 출신지에 대한 자부심이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에게게? 싶지만, 역사가 일천한 미국 안에서 필라델피아는 유서 깊은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미국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이 많은 곳입니다. 미국 최초의 비즈니스 스쿨인와튼,’ 미국 최초의 병원, 미국 최초의 동물원, 미국 최초의 미술학교 등등….

 

영화 얘기를 다시 돌아가보면, 많은 남자분들에게는 <필라델피아> <내셔널 트레져>보다는 <록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에서 재기를 꿈꾸는 왕년의 챔피언 실베스터 스텔론이빰빠라 빰빠 빰빠~~’ 유명한 OST 울려퍼지는 가운데,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 올라선, ‘훅훅, 훅훅, 이건 입으로 내는 소리가 아니여라며 특훈에 매진하던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특훈의 현장이 바로 필라델피아 미술관 (Philadelphia Museum of Art) 건물 계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유명세에 힘입어 현재에는 록키의 커다란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 동쪽 입구]

 

록키 팬이고 미술에 딱히 관심이 없다시면 바깥 쪽에서 동상 앞에서 날리는 포즈로 사진 하나 멋있게 찍고 돌아서도 상관없겠죠.  


니면, 곳에서 방문 당시 열리는 특별전이나 맘에 드는 작품들을 골라 보셔도 상관은 없어요하지만,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미국 세번째로 미술관이고, 훌륭한 컬렉션으로 유명합니다미술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을 위해서, 혼자서 모르고 보면 휘익~ 지나칠 것만 같은 작품 점을 소개합니다.   


1. Marcel Duchamp,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dust, two glass panels, 277.5 × 177.8 × 8.6 cm


2. Paul Cézanne (1839-1906), The Large Bathers (1906), oil on canvas ; 210.7 x 251.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아, 그전에 잠깐~!

곳에는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 전통을 미국내에서 최초로,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평가받는 토마스 이킨스 (Thomas Eakins: 1844-1916)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요. 미국 최초의 미술학교로 유명한 펜실바니아 미술 아카데미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에서 우여곡절은 있었고 당시에는 논란을 야기한 적도 있긴 하지만, 명실공히 미국에서 미술 아카데미에서의 미술교육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미국 미술사에서 사실주의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인물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필라델피아 미술관 안에는 마르셀 뒤샹의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벌거벗겨진 신부, 심지어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작품이 있는데요. 작품의 다른 버전이라기보다는 복제품은 3각각 스톡홀름의 현대 미술관 (Moderna Museet),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일본 동경대 코마바 미술관 소장 있습니다.   


Marcel Duchamp, The Bride Stripped Bare by Her Bachelor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oil, varnish, lead foil, lead wire, dust, two glass panels, 277.5 × 177.8 × 8.6 cm © Succession Marcel Duchamp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공사하다 부서진 같은 구조물이기에 주변에 펜스가 없었다면 작품인지도 모르고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작품의 제목도 길긴 엄청 제목인데, 심지어 말조차 되지 않는사정이 이렇다보니, 글을 쓰거나 토론할 ~ 힘들어서 그냥 < 유리 (the Large Glass)>라고 엄청 짧은 별칭을 자주 씁니다.   


마르셀 뒤샹은 철물점에서 구입한 변기를 R. Mutt라는 서명만 채로 전시회에 출품한 것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이후, 미술관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구요, 고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요새 미술이란~’이라는 한탄을 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죠.  


거두절미하고 이야기 하자면, 유리의 주제는 남녀간의 사랑은 힘든다정도가 될런지요. 신부의 영역인 위쪽과 남자들의 영역은 아래쪽으로 나눠져 있고, 둘은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보이고 있죠. 근거로는 상단과 하단은 각기 다른 유리로 만들어져 이어져 있고 가운데는 단절이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하는 말은 남자들이 알아듣기 힘들고, 남자들의 구애는 번번히 운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좌절되기도 합니다. 20세기 버전의 화성에서 남자, 금성에서 여자입니다.   


제목도 해괴하고 작품도 괴상하지만, 미술사 적으로 유명해서 관련된 서적이나 아티클이 너무 많은 작품입니다. 뒤샹도 그냥 가는대로 만든건 아닌 것이라는 증거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형체들 코코아 그라인더, 세개의 실린더 (독신자들에 해당) – 드로잉이 남아있고, 작품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 노트를 모아서 녹색 상자( 이름하여, ‘Green Box’)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유명 미술관 소장품들이 되었구요.  


노트들을 보면, 과학에도 관심이 많던 뒤샹은 원래 작품들에 등장하는 기계들이 움직이는 것들로 만들고 싶어했던 같습니다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유명세가 대단한 작품인 것은 이렇게 보그 표지에 아름다운 모델과 함께 실린 것만 봐도 아시겠죠?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하나의 명물은 세잔의 작품인데요. 후기 인상파의 일원이자, 모더니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들> 시리즈 가장 작품 하나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같은 주제로 많이 그린데다가 곳의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보니 통칭필라델피아 수욕도라고 부릅니다.  


[‘욕녀들이라고도 번역되는 작품은 한정된 주제로 지속적 작품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세잔의 주제들 하나죠.  세잔의 단골 주제로는 목욕하는 여인들,’ ‘상트-빅트와르 ,’ ‘사과들이 있는 정물,’ ‘카드 놀이 하는 사람들 있죠]


[세잔의 대수욕도]ㅡ통칭필라델피아 수욕도

Paul Cézanne (1839-1906), The Large Bathers (1906), oil on canvas ; 210.7 x 251.0 cm,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영화 <아저씨>의 원빈은 놈만 노린다하시지만, 세잔은 주제에 하나 꽂히면 그것만! 그렸습니다. 워낙 많은 수욕도를 그린 탓에 세계 곳곳에 비슷비슷한 수욕도 소장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MoMA,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같은 필라델피아의 반즈 파운데이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가 있습니다.]    


신화나 역사에서 찾을 있는 특정 에피소드가 없고, 일견 특별할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작품은 삼각형으로 비워진 공간 가운데 멀어지는 이의 뒷모습이 너무 현대적이라, 누드로 묘사되는 여인들은 보통 여신이라는 회화적 언어와 상반됩니다. 도대체 저렇게 19세기 프랑스에 저렇게 많은 수의 여인들이 야외에서 목욕을 있는 공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누드의 여성이 저렇게 떼로 몰려 있는데, 관능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없는 작품은 세잔의 특징이라고 있는 조형성에 대한 관심이 아주 나타납니다.



최근 들어서는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건물의 레노베이션에 착수했다고 들은 같은데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8. 05:29 미술 이야기

 

카츠시카 호쿠사이 (葛飾北: 1760-1849) 세계적으로 알려진 우키요에 화가이고 

그의 대표작으로는 넘실대는 파도가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 

 

 

 

우키요- (ukiyo-e; 浮世) 우키요-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의 모습과 풍경을 묘사한 그림, 정확히는 목판화이다. 여기서 우키요 덧없는 세상 (浮世)’, 불교적인 사상에서 비롯한현세 의미한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한자 의 일본식 발음.   우키요에는 일본에서는 중하층민의 도락으로 여겨져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만국박람회, 국제 유통 등에 힘입어 유럽에 전파된 ,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본풍의 유행, 자포니즘 (Japonisme) 일등공신이 되었다.

 

원체 실제로도 여러가지 기행으로도 알려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의 작품 자체가 유명하다보니, 이로 인해 생긴 가십이나카더라 통신들의 이야기들도 원체 많다. 대표적인 30개의 호를 지녔다는 . 그리고 평생 무려 93번의 이사를 했다는 , 그리고 식사를 챙기지 않은 인물임에도 그가 장수했던 이유로쿠와이라는 풀 꾸준히 먹어서라는데

 

 

[쿠와이: 그게 뭔지 몰라서 찾아보았다. 우리말로는벗풀이라고 하는데, 번역을 봐도 백과사전에 실린 사진을 봐도 뭔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통상소귀나물이라고도 한다는데, 그건 잎사귀의 모양을 보고 만들어진 이름이리라 짐작이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소문이 널리 퍼진다면….. 어느 약품회사에서 제품화하고 홈쇼핑에서는 판매를 해서 건강장수 식품으로 불티나게 팔릴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짧지 않은 인생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호가 30개라니많아도 ~ 많지 않은가?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호쿠사이가 호를 많이 가진 이면의 심리에는 작가의 자아도취적 성향도 몫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자뻑화가의 작품이 수백 지난 오늘날까지 세계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될 누가 알았겠는가?  

 

 

 

The Great Wave off Kanagawa 葛飾北斎, 『冨嶽三十六景 神奈川沖浪裏』 (1831-33) 多色刷木版画, 25.7 × 37.9 cm

 

 

 

가장 유명한 <후지산 36> 작품 카나가와의 파도라는 작품이다. 작품은 아마도 우키요에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하나일 것이다.

 

 

멀리 후지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카나가와의 거대한 파도가 배들을 집어삼킬 넘실거리고 있다. 좁은 나룻배에 사람들은 사나운 파도에 배가 뒤집힐까 노심초사하며 바닥 쪽에 납작하게 몸을 붙이고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풍진 세상에서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이상 표현한 작품이 있을까?  

 

<후지산 36>이라는 원제를 아는 이는 많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움켜지려는 듯한 손가락들과 같은 모양을 파도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할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패러디를 만들어내는 파도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부악36> 작품인데, 일어로 후아쿠라고 읽는 부악은 후지산의 다른 이름이다.  명승지의 풍광을 담아 시리즈로 제작된 우키요에가 유행했는데, 작품은 후지산의 풍경을 담은 46점의 작품 하나인 것이다. (판화집의 제목은 후지산 36.  36이라고 쓰고, 46점이라고 읽었다고나 할까?)

 

그의 작품의 세계적인 인기는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저택을 위시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의 아트 인스티튜트,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의 LA 카운티 미술관, 호주 멜버른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빅토리아 서구의 유명 미술관에 두루두루 소장되어 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호쿠사이가 타고난 재능을 지닌 화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의 인생이 시종일관 순탄한 것은 아니었고, 처음부터 완벽한 예술작품만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인 파도의 모습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강렬한 인상의 파도가 탄생한 것이었다.  (아래의 몇 작품들에서 그의 파도 모양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대목에서, 소설 <해리 포터>에서의 값진 교훈, “아무리 타고난 마법사라도 훈련을 해야만 한다 것을 되새기게 해준다.

 

  

 

斎, Spring at Enoshima (Enoshima shunbô), from the album The Threads of the WIllow (Yanagi no ito)

 

 

 

斎, 1803年 작품 賀奈川沖本』에서의 파도 

 

斎, 1805年『おしおくりはとうつうせんのづ』서양의 서적을 보고 연구한 원근법을 도입한 작품 

 

 

 

 

(아래는 호쿠사이의 <후지산 36 카나가와의 파도> 패러디, 차용하여 재창조된 작품들의  

 

Levi’s 'Live Unbuttoned 501' campaign billboard installation, 2008 

2008년도 빌보드 광고판으로 리바이스 청바지들로 재창조된 호쿠사이의 파도 

 

 

독일 설치작가 토비아스 스텐겔의 2006 작품 <파도>, 드레스덴 소재

호쿠사이의 유명한 <후지산 36> 카나가와의 파도 차용

 

 

 

비디오 작가 워커의 단편 필름에도 호쿠사이의 파도가 등장한다.

Tim Walker, Magical Thinking, 1:09, March 2012

https://www.timwalkerphotography.com/videos/mood

 

사람들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짧았던 일본의 에도시대, 89세까지 살았던 그의 수 많은 호 중에서는 '가쿄우진' 즉,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는 호도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림을 처음 배우기 시작한 6세 이래, 평생 그는 엄청난 양의 그림과 판화를 제작하며 살았다. 그런 그가 노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6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70세 이전에 내가 그린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7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식물의 패턴들을 조금 알게 되었다. 

80세가 되면 그림이 조금 더 발전하게 될 것이고, 90세가 되면 삶의 신비를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100세가 되면 훌륭한 예술가가 될 것이다. 

110세가 되면, 내가 창조한 점과 선들이 삶에 스며들게 될 것인데, 이는 이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들이 될 것이다. 

장대한 계획을 세웠던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훌륭한 예술가가 되지도, 자신이 창조한 점과 선들이 삶에 스며드는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89세가 되던 해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거시적 안목은 실제로 '백세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성급하게 성과만을 바라고 요령을 구하려드는, 조급하기만 한 풍토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호쿠사이 #카나가와의파도 #우키요에 #자포니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8. 00:25 미술 이야기

이쁘면 모든게 다 용서된다. 이쁘면 진리다. 이쁘면 착하다.  

궁서체로 먼저 한번 써봤습니다.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후후...  이런 믿음과 동일하지는 않으나, 일맥상통한 것이 신플라톤주의라고 할수도 있지 않나 혼자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쁘면 진리다'라는 화두를 따라 보티첼리의 작품 하나를 살펴볼까 합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Tempera on canvas. 172.5 cm × 278.9 cm (67.9 in × 109.6 in). Uffizi, Florence


Sandro Botticelli (1445–1510), Primavera (1482) tempera ; 203 × 314 cm, Uffizi

보티첼리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위의 두 작품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 (봄)>라고 할 수 있죠. 이 두 작품이 쌍을 이루도록 메디치가에서 주문했다는 일설이 있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프리마베라>와 <미네르바와 켄타우르스>를 한 쌍으로 묶는 설도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1445–1510), Pallas and the Centaur (ca.1482), tempera on canvas ; 205 × 147.5 cm, Uffizi

여하튼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 두 작품 다 신화 속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지만, 딱히 특정 에피소드와는 상관없는 전개라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비너스의 탄생>은 제목과는 조금 다르게, 귀여운 아기 비너스가 탄생하는 순간...은 아니고, 이러저러 여차저차해서 파도의 거품속에서 탄생했다는 비너스가 이미 다 장성해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도착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비너스는 메디치가 소장 중인 비너스의 포즈와 유사하게, 다소곳이 몸을 가린 모습인데, 정숙한 여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명, Venus Pudica).  조신조신... 

Venus de'Medici,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Italy   통칭 '메디치가의 비너스'

한편, 비너스가 파도에 밀려 조개껍질을 타고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도 고대부터 있는 도상인데, 폼페이 벽화부터 까메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남아있습니다.

Casa de la Venus en la concha Pompeii – 여기서는 비너스가 장막 같은 천으로 바람도 연출하고 있다. (펄럭이는 망토는 바람의 상징)

고대 로마시대 까메오 장식 – 재료와 주제의 적절한 결합을 보여준 탁월한 예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 Zephyr and Aura

<비너스의 탄생> 화면의 왼쪽에서는 서풍(Zephyr)이 볼 빵빵히 바람을 불어 비너스를 해안으로 인도하고 있고, 그의 품에서 미풍(Aura)도 함께 이 일을 거들고 있습니다.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Horae

오른쪽에서는 값비싸 보이는 아름다운 천을 받쳐들고 역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누드의 여인에게 덮어주려는 듯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이 여인은 호라 (Horae), 혹은 계절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간의 흐름을 뜻하죠 (이 단어에서 시간 (hour)이라는 영어단어가 나온건 안 비밀). 혹자는 호라의 포즈를 기독교에서의 예수의 세례 장면과 연관시키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시시콜콜하게 신들의 이름이나, 작품의 주문 배경을 전혀 몰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뭐 어차피 확실하지 않은 것도 많으니까요.  ^^

비너스의 모델이 된 것이 당대 최고의 미녀이자, 메디치가의 청년들 – 로렌조와 줄리아노 – 가 모두 숭배해 마지 않았다는 여인 시모네타 베스푸치 (Simonetta Cattaneo Vespucci)였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뭣이 중한디? 이렇게 이쁜데....

Sandro Botticelli, The Birth of Venus (c. 1486) –Venus 

메디치 가가 설립했던 아카데미에서 플라톤의 사상을 신봉하고 연구하던 일군의 학자들의 주도로 르네상스기에 널리 유행했던 것이 바로 신플라톤주의입니다.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사상을 연구, 재발견하게 되면서,어떻게 하면 중세 천년 동안 신봉해 왔던 기독교의 신앙과 사상을 버리는 일 없이조화롭게 포용할 수 있을까하는 궁리 끝에 나온 사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런 관점에서 비너스는 그리스 로마의 신처럼 현세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을 관장하는 존재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천상의 진리, 신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이해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육체적 아름다움은 제대로 감상하고 명상하기만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더 고상한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처음에는 그 외면적 아름다움에 맘을 빼앗기지만, 종국에는 우리의 맘을 신성한 경지, 신성한 신의 사랑으로까지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거죠.  

따라서, 단순화 하자면, 맞는 말입니다. 적어도 신플라톤주의자에게는요, "이쁘면 진리다~"라는 말은요.  


#보티첼리 #비너스의탄생 #신플라톤주의 #우피치 #메디치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5. 19:53 미술 이야기


이 블로그의 제목과 필명의 근간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 이야기

앙리 루소 (Henri Rouseau: 1844-1910)의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1897)

Henri Rousseau, The Sleeping Gypsy (La Bohémienne endormie) 1897. Oil on canvas; 129.5 x 200.7 cm ; Gift of Mrs. Simon Guggenheim, MoMA


때는 바야흐로 난생 처음 뉴욕을 방문했던 해의 겨울의 어느 날, 처음으로 뉴욕 현대미술관, MoMA를 방문했을 때, 나는 <잠자는 집시>라는 작품을 봤다. 전시실로 들어서자마자 생각보다 컸던 작품이 눈에 안기는 순간, 난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강렬한 감정을 느꼈다.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가 꽂히는 듯한 (그렇다고는 해도 가슴에 비수가 꽂혀 본 적은 없으니, 그냥 느낌상 그러할 것 같다는 의미)..... 그게 요즘 말로 하자면, '심쿵'인건지... 충격과 감동인건지... 그 당시 나로선 그 정체를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이전까지 문학 작품을 보고 울컥하거나 통렬한 감동을 느껴본 적은 있었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그러한 종류의 감정을 느낀 적은 난생 처음이라 당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의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어느 누구도 인생을 한 줄로 요약되게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나라고 해서, 이 작품을 똵! 보고 그 길로 미술사로 똵! 전공을 바꿔서 그 이후로 원탁의 기사가 성배 찾듯 이 작품에 대한 열정 어린 탐구를 주욱!~ 지속적으로 했.... 이런 식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이 작품을 본 이후로 ‘왜 난 문학 작품이 아닌 하나의 시각 예술 작품을 보고 그토록 감동을 받았던가?’ 하는 맘으로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고, 이후 여차저차 결국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이 작품에 감춰진 수수께끼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을 늘 맘 한 켠에 묻어두고 지냈던 것 같다. 이미 미술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던 작품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대했을 때의 받았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었던 것이었단 말이었던가?...하는.


그러다가 몇 해 전 비로소 그 해묵은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풀어줄 만한 아티클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의 quest가 지속적이고 집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들통이 나는 순간. 그도 그럴 것이 이 글이란, 실은 저명한 미술사학자 알버트 보임의 아주 해묵은 아티클로 내가 작정하고 찾아봤다면 진작에 발견할 수 있었을 글이었으므로...)

[Albert Boime, “Jean-Léon Gérôme, Henri Rousseau’s Sleeping Gypsy and the Academic Legacy,” Art Quarterly Vol. XXXIV: No.1 (1971): pp.3-29. [http://www.albertboime.com/Articles/20.pdf 관심이 있으신 분은 한번 읽어보시길]


이 아티클에서 알버트 보임은 19세기 유명한 아카데미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의 출처를 추적해가는데.....

그 글을 요약하자면,

1. 우선 화가 앙리 루소는 독학파였으나, 스스로는 아카데미 풍의 화가로 생각하였고, 자신의 화풍을 화가 윌리엄 부게로나 장-레옹 제롬의 화풍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루소는 이들의 작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2. 제롬은 열강의 식민지 개척이 한창이던 시기, 아카데미 화가의 자격으로 그 개척단을 수행하며 그곳의 자연과 생활상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면 내셔널지오그래픽지의 사진작가 정도의 역할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제롬은 사자를 실제로 보고 그릴 기회가 많았다는 것.


3.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롬은 그 광활한 사막을 돌아다니는 백수의 제왕 사자를 자신과 동일시 했을 거라는 것,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유독 사자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첫째, 장-레옹 제롬은 그의 이름에 사자를 뜻하는 ‘Léon’이 들어간다. ('밀림의 왕자 레오'를 떠올려보자~) 둘째로, 자신의 성인 'Gérôme'은 유명한 성인 St. Jerome과 발음이 같다.


Jean-Léon Gérôme, Saint Jérôme, 1874, oil on canvas painting, 69 x 93 cm., Städel Museum

(기독교인들을 사자굴에 집어넣어서 사자가 잡아먹지 않으면 살려주는 벌을 행했을때, 사자의 발에 박힌 가시를 뽑아주었더니 사자가 성 제롬을 살려주었다는 유명한 전설. 물론 제롬도 알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주제로 그림도 그렸다.)

Jean-Léon Gérôme (1824–1904) The Two Majesties, 1883 oil on canvas; 69.22 × 128.91 cm


장-레옹 제롬의 작품에서 대부분 사자는 광활한 자연을 홀로 거닐거나 앉아서 사색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알버트 보임은 제롬이 당시 아카데미의 화가로 명성과 지위를 얻었음에도 경직된 관료주의와 주변과의 관계에서 항상 고독함을 느꼈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으리라 추측한다.

그리고, 오늘의 작품 <잠자는 집시>에서 등장하는 사자의 출처는 아마도 앙리 루소는 자신이 동일시 하던 아카데믹 화가 장-레옹 제롬의 작품이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래의 작품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라는 작품은 장-레옹 제롬이 주문을 받은 이래 상당한 공을 들여 오랜 기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자는 동물들의 제왕으로서의 위엄은 가득하지만, 위협적 맹수의 모습은 아니다. 또, 지하굴을 아직 채 빠져나오지 않은 사자들도 피에 굶주린 맹수라기보다는 온순하고 조심스러운 고양이와도 같은 모습이다.

Jean-Léon Gérôme, The Christian Martyrs' Last Prayer (1863-1883), oil on canvas 150.1 x 87.9 cm


이제 <잠자는 집시>로 돌아와 보자. 루소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자도 위협적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고 호기심 많고 온순한 모습이다.
실제로 화가 루소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쓴 편지에서도 그 의도를 확실히 하고 있다:

…떠돌이 흑인여성, 만다린 연주자는 물 단지를 옆에 두고 누워서,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사자는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지만, 잡아먹지는 않습니다. 달빛의 효과 탓에 매우 시적이죠. 장면은 완전히 황량한 사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집시는 동양 풍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루소의 <잠자는 집시>의 사자는 장-레옹 제롬의 <기독교 순교자들의 마지막 기도>의 사자들과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제롬의 사자 그림들의 제작 의도는 물론 루소의 <잠자는 집시>의 의미도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직접 정글 탐험은 고사하고, 사자를 본 적도 없이, 파리의 식물원을 방문하면서 그때마다 정글을 탐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하는 루소와 정글과 사막 지대를 누비며 사자를 직접 보았을 장-레옹 제롬이 사자에 대해 느꼈던 감성은 일맥상통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Jean-Léon Gérôme, Solitude, 1890


위의 작품에서는 제목마저 알기 쉽게 <고독>이다. 저명한 아카데믹 화가였던 장-레옹 제롬도 때론 비평가들의 놀림을 받던 일요화가였던 앙리 루소도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외로웠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작품이 그려진 지 100년도 훨씬 넘게 세월이 흐른 후에 루소의 작품을 봤던 나는 왜 엄청난 감동을 받았던 것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 그것은 아마도 ‘외로움’과 ‘안도감’의 공명이 아니었을까?

난생 처음 낯선 타국에 홀로 떨어져 생활하면서, 때때로 위험하다는 뉴욕 거리를 다니면서 불안하기도 했었던 나로서는 누워 있는 집시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고, 엄청난 위력을 갖추었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무방비 상태의 집시를 지켜주고 사자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힘 쎈 사자가 나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니! 그 이상의 든든함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광활한 사막에 홀로 놓여진 사자와 집시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 그 와중에 웃고 있는 달님과 아련한 별 빛으로 채워진 짙푸른 밤하늘로 인해 느껴지는 시상 충만한 감성...

물론 그 이후에도 수없이 MoMA를 방문해봤고, 그 때마다 첫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다시 그 작품을 봤었고, 처음 그때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은 빛이 바래갔다. 그 전시실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 그 작품이 있을 것임을, 그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아마 20살 언저리 뉴욕에 있던 난 외로웠고, 그 작품을 보면서 커다란 위안을 받았고, 그 작품으로 인해 무한한 안도감을 선사 받았다는 것을.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9. 4. 11:13 미술 이야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오늘 티스토리 초대받아서 일단 블로그 개설.... 블로그 제목은 "물병과 사자"로, 그리고 필명은 "잠자는 집시"로.... 아는분은 아시겠지만,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에서 따온 것...보다 정확히는 그 작품의 묘사에서 따온 것.



드넓은 사막을 홀로 걷던 집시는 들고 다니던 만다린과 물병을 내려놓고, 단장은 손에 쥐고 있는 채로 지친 몸을 모래 바닥에 누이자마자 깊은 단잠에 빠져버렸다.  어디선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사자. 맹수 중 맹수인 사자가 하지만 어쩐 일인지 집시를 발견하고서도 킁킁거리며 냄새만 맡고 있을 뿐, 집시를 날름 잡아먹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삭막하고 위험한 사막에서 불침번을 자처하며 집시를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물병과 사자'는  사막에서 집시의 생명을 지켜주는 존재.... 잠자는 집시는 유난히 아름다운 음악을 만다린으로 연주하며 행복해하는 관람객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고, 그러한 사자와 집시를 너그러운 미소로 내려다보는 보름달이 높이 뜨면서 사막의 밤은 깊어져간다.         


#앙리루소 #잠자는집시 #MoMA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