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모리 준이치의 영화 '중력 피에로'
2019. 3. 24. 13:32 영화 이야기

문학성은 차치하고 일본에는 유난히 다작의 소설가들이 많은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러하고 이사카 코타로가 그러하다. 이들의 작품들은 또한 영화나 드라마화 많이 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한동안 일어를 좀 재밌게 배우려고 일본 영화와 드라마를 열심히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나아가서 재밌게 본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을 찾아서 읽어보기도 했는데,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은 그때 알게 된 것이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워낙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혹자는 그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작품들을 출판했다는 가설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처음에 히가시노 게이고나 이사카 코타로도 그런 맥락으로 좀 의심을 했다. 좀 읽다보니, 묵직한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다소 가볍다는 느낌도 들고, 모르긴 몰라도 히가시노 게이고 정도 되면 자료조사를 하거나 편집의 과정에서 돕는 조수나 제자들도 많으니 여러사람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는 건 아니겠다 싶긴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창작력이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와 그것을 작품화 시키는 실천력은 정말 대단하고 부러운 능력이자 재능이다. 

이사카 코타로의 경우, 세상을 보는 눈이 참 특이한 작가인 것 같다.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고, 이들의 문단의 평가에 대해서도 난 알지 못하니, 이건 '내맘대로 작품보기-일본 문학과 영화'편 쯤 되겠다. 내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접한건 2006년 영화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 (陽気なギャングが地球を回す ; A Cheerful Gang Turns The Earth)>>이다. 동명의 소설도 있는 이 작품은 제목부터가 어떤 내용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독특한 내용이다. '코메디, 범죄'로 분류되는 영화인데, 그 속의 영화배우들도 다 좋고, 극의 전개도 빨라 재밌게 본 영화다.  


독특한 주제가 재밌어서 그 원작자의 작품으로 찾아본 그 다음 영화가 2007년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 락커 (The Foreign Duck, the Native Duck and God in a Coin Locker ;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ー)였다. 이 작품은 제목만으로는 무슨 코메디 영화인가 했는데, 내용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다소 무거운 사회문제에 대한 영화라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내맘대로 리뷰'를 해보고 싶다. 그리고 본 것이 2009년의 영화 <<중력 피에로 (重力ピエロ ; A Pierrot)>>인데, 이 역시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는 앞의 <<집오리~코인 락커>>와 유사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가족애가 주제로 녹아들어 있기에 감동은 배가 되는 그런 영화였다.

이 글을 위해 검색을 해보니, 이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 출품해서 상도 많이 받고, 한국에서도 상연된 적이 있는 듯하니 전문적 영화평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실려 있을 것이라 믿고, 나만의 감상을 이어가보고자 한다. (찾아보니, 내가 읽거나 봤던 작품들은 거의다 번역이 되어있고, 영화 포스터에도 한국어 캡션이 달린 것 보니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이고 작품들임이 분명하다) 

워낙 인기 있었던 듯하고, 시간이 좀 지난 상영작이니 약간의 줄거리로 스포일러를 날려보자면, 포스터에 크게 얼굴이 찍힌 두분이 '이즈미'와 '하루'라는 형제로 이 영화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영화나 소설 모두 화자는 형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이 두 형제의 출생의 비밀, 정확히는 동생의 출생의 비밀과 '강간'이라는 범죄, 그리고 가족애가 이 영화의 주제이다. 강간의 결과로 임신을 했음에도 출산을 결심한 엄마, 그 엄마의 결단을 존중하며 그렇게 태어난 아이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보둠어 사랑이 넘치는 가족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사이코패스 강간범이 다시 출현함에 따라 형제가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그 범죄자를 단죄한다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서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는 어린 '하루'가 역시 아직 어린 형 '이즈미'에게 '형 '레이프 (rape)'가 뭐야?하고 묻는 장면이다. 아마도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면서 '넌 레이프로 낳은 아이야.'라는 얘기를 들었으리라. 그러자 어린 형은 한참 궁리하다가 갑자기, '레이프 레이프 환타 그레이프!'라고 외친다. 그 말을 반복하자, 어두워져 있던 동생의 표정이 환해지면서 함께 '레이프 레이프 환타 그레이프!'를 외치며 침대위에서 팡팡 뛰면서 장난을 친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첫 장면과 영화에서의 첫 장면이 겹쳐서 인상적인 장면은 '하루가 이층에서 뛰어내렸다'는 문구는 실제로 동생 하루가 이층에서 공중부양하듯이 뛰어내린 장면과 벚꽃잎들이 흐드러지게 내려앉는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아름답게 묘사된다. 봄을 의미하는 '하루'의 착지장면과 봄의 상징이 벚꽃잎들이 어우러지면서 말이다.  소설에서는 형으로서 동생이 태어날 때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던 형은 들떠서 좋아하기만 했는데, 그 동생이 2층에서 뛰어내린 것은 그 동생이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뛰어내린 행위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방황하게 되는 동생의 심리상태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원문: 弟が生まれた時、私ははしゃいでいた。覚えているわけがないが、そのはずだ。少なくとも、親の苦悩や、周囲の人間の冷ややかな目の理由に気づいてはいなかった。

その弟が二階から落ちてきたのは、それから十七年後、つまり、彼が高校生の時のことになる。]

히가시노 게이고나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나 인기작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소설의 묘사가 굉장히 시각적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아마도 이 점이 이들의 작품들이 연이어 드라마나 영화화되는 이유가 아닐까한다. 

봄을 맞아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년의 아름다운 비상을 그린 이 영화를 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