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 조각 (?) 혹은 설치 작품 하나
2020. 9. 1. 19:20 미술 이야기

아이스크림 트럭에 친숙한 미쿡 아이들이 봤다면 통곡을 할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진짜 아이스크림 트럭은 아니고, PET (Polyethylene terephthalate)라고하는 플라스틱 수지로 만들어진 작품.  2006년 호주의 시드니 한 해변가에 등장한 독특한 작품이다.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회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각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굳이 규정 짓자면, 설치 작품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이다.  <<더운 날씨, 늦게 폭풍우의 가능성 있음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이라는 제목이고, 개인 작가가 아닌, '접착제 협회'라고 번역해야하나?  "글루 소사이어티 (The Glue Society)"라는 그룹의 작품이다. (일부 기사에는 그 그룹에 속하는 제임스 다이브(James Dive)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도 나와있다).  1998년 설립된 이 그룹의 경우 전직 광고 제작자였던 조나단 니본 (Jonathan Kneebone)과 게리 프리드만 (Gary Freedman)이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예술가 공동체)로 뉴욕과 시드니에 회사를 두고 있다. 이 그룹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미디어 작업부터 그래픽 디자인과 조각, 설치, TV 광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작품 역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 하다.   일례로 최근 글루 소사이어티의 작품으로 알려진 '오렌지나 캐논볼 (Orangina Canonball)' (2013)이라는 작품은 오렌지나라는 음료수의 광고로 사용된 미디어 작품이다. 

오렌지나 캐논볼 Orangina Canonball (2013)

www.youtube.com/watch?v=YYK9DUcPQug

글루소사이어티의 멤버들의 협작으로 제작된 오렌지나 캐논볼.  '오렌지나'라는 음료수의 광고로 사용되었다. Orangina Canonball (2013) concept by fred & farid, paris, produced by wanda, paris, directed by the glue society’s gary freedman.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이 글루 소사이어티 혹은 제임스 다이브라는 작가가 제작한 플라스틱 수지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선 모더니즘 시대라면 작가의 이름이 이렇게 불분명한 경우란 상상하기 드물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은 피카소 아니면 마티스 혹은 에콜 드 파리 작가들의 작품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나 있는가?  위의 작품의 원료인 PET 역시 전통적으로 조각의 재료로 사용되는 제품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은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과는 확고한 중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기본이 되는 규범이 부재하거나 그러한 틀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략히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조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와서는 모더니즘 시대 규정되어왔던 딱딱한 틀을 탈피하려는 노력의 와중에 '장르의 파괴'가 큰 특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회화와 조각 사이의 구분이 애매해지고, 더이상 '캔버스에 유화'나 '대리석'과 같은 명확한 매체의 사용도 드물어졌다.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옆 라벨에는 '혼합매체'라고 표기된 것이 더 많아진 연유다. 그리고, 조각이라고 규정짓기 애매한 '설치 미술'도 늘어났기 때문.  그리고 이 '글루 소사이어티'의 여타 작품들을 봐도 장르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열심히 부정하려는 틀과 장르, 규범. 그런데 모더니즘식으로 규정된 수업의 내용으로는 그 범주를 어렴풋이나마 만들어서 진행시켜야한다는 점. 그것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라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다.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