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빈센트 반 고흐' 태그의 글 목록
2020. 5. 1. 00:24 미술 이야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계속해서 반 고흐의 꽃 그림을 올리게 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무려 네번째!  이렇게 포스팅으로라도 꽃 놀이를 해서 소중한 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보상을 해보겠다는 맘이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된다. 반 고흐는 정말 꽃 그림을 많이 그렸구나.   (이전의 반 고흐 포스팅 아몬드 꽃, 복숭아 꽃, 배꽃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

정말 그렇다! 그래서 세계 유명 미술관 곳곳에 그의 꽃 그림이 안 걸린데가 없을 정도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의 어떤 꽃 그림은 내가 본 적이 있는지 아님, 어디서 본 건지 알쏭달쏭 아리까리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의 제비붓꽃 그림은 전시실의 분위기도 기억날 정도로 확실히 기억난다. 가끔 그런 작품들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가 그러했고, 이 블로그의 제목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가 그러했다).  반 고흐의 '제비붓꽃들 (Irises)'는 J. 폴 게티 미술관에서 봤다.  [난 붓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포스팅을 계기로 찾아보고 화면에 나타난 꽃은 '제비붓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Irises (1889) oil on canvas; 74.3 × 94.3 cm, J. Paul Getty Museum

그리 대작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규모보다는 꽤 큰 작품의 크기에 놀라고 화면 가득히 채운 꽃을 그려낸 힘찬 붓질과 생생한 색감에 놀라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제비붓꽃들>을 소개한다.  사실 제비붓꽃은 서양화가들이 많이 그리는 꽃의 종류는 아닌데, 반 고흐는 이 특이한 꽃을 꽤나 좋아했나보다.  그가 그린 또 다른 제비붓꽃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적인 제비붓꽃 그림이 미국의 동서부에 각각 한 점씩 있는 셈이다. 

핑크색 벽과 대조되는 바이올렛 빛깔의 붓꽃이 화려함을 더한다. 반 고흐가 사용한 분홍색은 변색이 심해서 오늘날 남은 작품에서는 거의다 흰색으로 보인다. 이는 아래 장미꽃을 그린 화병의 장미꽃 색들도 마찬가지.  Vincent van Gogh, Irises (1890) oil on canvas ; 73.7 x 92.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위의 제비붓꽃이 가득 꽃힌 화병은 1890년 5월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을 퇴원하기 전에 폭발적으로 그려낸 두 점의 제비붓꽃 화병과 두 점의 장미 화병 그림 중 하나다. 저번 포스팅에도 언급했듯이 그는 1890년 7월 자살인지 타살인지 논란 중인 총상으로 세상을 뜨게 되므로 이 작품은 그가 죽기전 두달 전에 완성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그가 그렸던 장미 화병 그림들 (아래 그림 참고)과 또 한 점의 제비붓꽃 화병 그림은 190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의 어머니가 소장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그렸던 두 점의 장미 화병이 각각 한 점씩 소장 중이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Roses (1890) oil on canvas ; 71 x 9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Vincent van Gogh, Roses (1890) oil on canvas ; 93 x 74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그렸던 두 점의 장미 화병이 각각 한 점씩 소장 중이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Roses (1890) oil on canvas ; 71 x 9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다시 제비붓꽃으로 돌아와 보자. 장미나 다른 화병의 꽃들도 즐겨 그린 반 고흐이지만, 그의 제비붓꽃은 여러모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비붓꽃을 그린 서양화가들이 그리 없기도 하고, 다른 꽃들보다 에너지면이나 색감면에서 단연 그의 제비붓꽃 그림은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아직 학술적으로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난 그가 그의 제비붓꽃 소재를 일본의 작품에서 따온게 아닌가 생각해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제비붓꽃 화병 그림을 감명 깊게 보고 나서, 일본의 장식적인 미술을 대표하는 오가타 코린 (Ogata Kōrin (尾形光琳): 1658-1716)의 제비붓꽃 그림을 그린 대형 병풍을 연이어서 봐서 였을까? 금박을 배경으로 녹색과 청색을 아낌없이 사용한 그의 제비붓꽃이 리드미컬하게 펼쳐져 있는 병풍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Ogata Korin (尾形光琳), Irises at Yatsuhashi (left) (Metropolitan Museum of Art)
 Ogata Korin (尾形光琳), Irises at Yatsuhashi (right)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가타 코린은 금박을 배경으로 제비붓꽃이 만개한 병풍을 수 점 제작하였고, 세계 각곳의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그리고, 이 제비붓꽃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 얘기인 즉슨, '이세 모노가타리 (The Tales of Ise (伊勢物語))' 혹은 '이세 이야기'라고 하는 일본의 헤이안 시대 고전으로 와카라고 하는 일본의 시로 구성된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주인공이 신분이 높은 귀족 여성과의 연애가 발각되어 교토에서 추방되게 되었는데, 떠나는 길에 야츠하시 (8개의 다리) 위에서 연애시를 읊는다.

이세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병풍 속에 인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작품을 보면 일본 사람들이라면 이 꽃과 다리가 그 장면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반 고흐가 그 내용까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가 고가인데다가 부피도 큰 이 금박 병풍을 직접 봤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그는 부채나 우끼요에 작품 같은 저가인데다가 이동이 용이한 작품들 중에 이 작품과 유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Ogata Korin: Irisis, right screen, 151x360 cm. Ink, color and gold on paper, begin. 18th-century. Nezu Art Museum
Ogata Korin: Irisis, left screen, 151x360 cm. Ink, color and gold on paper, begin. 18th-century. Nezu Art Museum.

이로써 무려 네번에 걸친 반 고흐와 함께하는 봄 꽃놀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새 5월이다. 5월에도 꽃들은 피어 있을 것이고, 아직도 전염병에의 공포는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달을 맞아 기분 전환하고 활기찬 생활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4. 27. 16:52 미술 이야기

지난 며칠 계속 반 고흐의 꽃나무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고 있다. (아몬드 꽃복숭아 나무) 오늘은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반 고흐의 꽃나무 한 그루를 올려본다.   이 작품을 그린 시기는 복숭아 나무와 과수원 그림을 많이 그리던 시기 1888년 4월, 장소도 마찬가지로 아를르 지방에서 그린 것이다. 그는 유독 아래 그림처럼 오도카니 한 그루 나무를 많이 그렸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Small Pear Tree in Blossom (1888)  oil on canvas ; 73.6 x 46.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저번에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전방에 뚜렷한 윤곽선으로 주제를 그리는 방식은 우끼요에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몬드 꽃 참고할것) 하지만 그의 나무에는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진다. 주변엔 아무 것도 없이 혼자 서있는 나무. 뒤틀린 나무 줄기에 열린 꽃들은 아름답지만, 보통 그렇게 작은 꽃들이 모여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의 정취와는 좀 다른 고즈넉함이 느껴진다.   꽃은 많아도 아름답고 홀로 피어도 아름답지만 말이다. 

 

위의 배 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꽃 핀 복숭아 나무>  Vincent van Gogh (1853 - 1890),  Peach Tree in Blossom  (1888), oil on canvas ; 50 x 37.5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4. 24. 17:50 미술 이야기

며칠 전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의 <아몬드 꽃>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였다. 오늘 '내 맘대로 작품 보기'편은 저번 작품보기 보다 더 '내 맘대로~'의 취지에는 벗어난다.  이전에 몇 번 스쳐지나듯 봤을지도 못하는 이 복숭아 나무 그림의 뒷야기와 이와 연관된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8년 4월1일 일요일자)를 요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으니, 오늘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는 '그림과 함께 편지 읽기'라고 이름 붙여야할지도...

지난번의 <아몬드 꽃>은 새로 태어난 조카에 대한 사랑과 어린 생명에의 축복과 희망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작품이다. 비록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반 고흐의 분홍색 복숭아 나무 (The Pink Peach Tree)  (1888)이다.  지난번의 작품과 비교하면 약간 작지만 비슷한 크기이고 같은 꽃나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색조면이나 붓자국의 면에서나 많이 차이가 난다.  (인터넷 상으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의 이미지가 아래 띄운 이미지라 원래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음은 아쉽지만 감안하고 감상하시길.) 

 

자신에게 처음으로 화가의 길을 제시해주고,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사촌의 남편인 안톤 모브에 대해 각별한 심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의 부고를 듣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빈센트는 위의 작품 <분홍색 복숭아 나무>를 미망인이 된 사촌에게 자신과 동생의 이름으로 보낼 것이라 밝히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모브에 대한 추억> Vincent van Gogh, <Souvenir de Mauve (Reminiscence of Mauve)> (1888), oil on canvas ; 73 x 60 cm, Kröller-Müller Museum

반 고흐가 (자신의 환상 속의) 일본의 기후와 유사한 아를르 지방에 옮겨온 뒤, 그 해 봄에 그린 것이다.  반 고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그는 과수원을 주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반 고흐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망울을 지닌 장미나 목단보다는 하나보다는 무더기로 모여서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라일락이나 배꽃, 아몬드 꽃, 그리고 복숭아 꽃과 같이 자잘한 꽃들과 나무들을 많이 그렸다. 

위의 작품 <분홍색 복숭아 나무>에 대해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1888년 4월1일자로 보낸 편지에서, 그 제작과정과 그림의 왼쪽 아래에 자신의 서명 위에 "Souvenir de Mauve"라고 쓰게 되었던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빈센트는 위의 작품에 대해서,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야외에서 넓게 펼쳐진 과수원에 복숭아 나무들과 푸르른 하늘과 흰 구름'을 그렸노라 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그린 풍경화 중에서는 제일 잘 된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는 사촌으로부터 안톤 모브 (Anton Mauve: 1838-1888)의 초상화 한 점과 함께 그의 부고 소식을 받게 된다.  

안톤 모브는 헤이그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헤이그 화파는 프랑스의 바르비종 화파와 유사하게 야외의 풍경을 주로 주제로 다루었다. 이들의 화면의 색상에서 '회색 화파'로 불리기도 한다. Anton Mauve (1838-1888), Morning Ride on the Beach (1876) oil on canvas ; 45 x 70 cm, Rijksmuseum, Amsterdam

안톤 모브로 말하자면, 반 고흐의 외사촌의 남편으로 당시에는 꽤 알려진 화가였는데, 친절하게도 방황하던 반 고흐를 화가의 길로 인도해준 사람이었다. 1881년, 반 고흐는모브의 스튜디오로 옮겨가 그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고, 그는 반 고흐의 생활을 돌봐줬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그가 반 고흐에게 그림을 봐 준 것은 길어야 한달 남짓에 불과하기에 그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처음에는 친절했던 그가 금세 차가워져서'는 반 고흐에게 더 이상 그를 돌봐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고 한다. 그게 그의 변덕인지 아님 반 고흐에겐 주변 사람들을 못견디게 하는 뭔가가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모브의 입장에서 보면, 반 고흐는 '그림보다는 산책을 더 좋아하는' 게으르고 싹수 안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당시 반 고흐가 사귀던 여성이 애 딸린 매춘부라 그러한 그의 사생활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처음으로 화가의 길을 제시해주고,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사촌의 남편인 안톤 모브에 대해 각별한 심정을 가졌던 것 같다. 위에 언급한 편지에서, 그의 부고를 듣고 빈센트는 감정이 격해져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이 막 완성한 그림 <분홍색 복숭아 나무>에 "안톤 모브에의 추억, 빈센트와 테오"라고 썼고, 미망인이 된 사촌에게 자신과 동생의 이름으로 보낼 것이라 밝히고 있다. (현재 작품에 Theo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중에 빈센트가 지운 것이리라)

그러면서 편지에는 '내 생각에는 모브 씨에 대한 추억은 너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정답고 즐거운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이런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Don’t believe that the dead are dead.
While there are people still alive 
The dead will live, the dead will live’.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한 죽은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산사람과 더불어) 살 것이다. 죽은 자는 (산 사람과 더불어) 살것이다. 

위의 문구는 마치 반 고흐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세상을 뜬지 무려 1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우리와 더불어 이 봄을 맞고 있다. 

1888년 4월에서 5월 사이 아를르에서 그렸다는 분홍색 배 나무.  빈센트는 비슷한 시기 복숭아 나무 그림을 두 점 그렸는데, 그 중 하나는 모브에게 헌정했고, 또 하나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냈다.   아래 작품은 내가 찾아본 한도에서는 <분홍색 복숭아 나무>와 구도가 가장 비슷한데, 이 작품이 동생에게 본 작품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The Pink Peach Tree  (1888),  oil on canvas ; 80.9 cm x 60.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4. 20. 18:36 미술 이야기

오늘 소개할 작품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 맘대로 작품 보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원래 '내 맘대로 작품 보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가 사전 지식이 없이 우연히 맞닥뜨린 작품 중 맘에 드는 것을 따로 깊이 있는 조사를 하는 일 없이 내가 본 것과 직관에 기초해서 글을 써보자는 것이 취지였다.   그런데 오늘 올리는 작품은 내가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는 이유는....

이 봄 변변하게 흐드러지게 피는 봄 꽃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내는게 안타까워서 그림으로라도 상쾌한 봄 날의 공기속에 만개한 꽃을 만끽하며 그 설렘을 나눠보고자...

예전 학교 다닐 때 주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미술사나 미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로 빈센트 반 고흐가 '당첨'된 적이 있다. 그리고, '왜 우리 모두는 반 고흐를 사랑하는가?'라는 답없는 질문에 한동안 얘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나로서도 반 고흐가 최애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작품 중 몇 작품은 각별히 좋아해서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한동안 스마트폰 커버로 사용하기도 했다. (꽤 거금을 주고 인터넷에 주문을 했는데, 내가 기대해 마지 않았건만, 실제로 받은 제품은  화면으로 봤던 쨍하던 청록색 하늘이 아니라 실망을 하긴 했지만! 거금 (?)을 들인게 아까워서)    

Vincent van Gogh (1853 - 1890),  <Almond Blossom> ( February 1890,  Saint-Rémy-de-Provence) oil on canvas ; 73.3 x 92.4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반 고흐 뮤지엄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미술관 사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1890년 2월  남프랑스 지방인 생-레미-드-프랑스에서 그려진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 소개할 작품은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의 <아몬드 꽃 (Almond Blossom)>(1890)이다. 1890년 2월에 그려진 이 작품은 그해 1월 31일 동생 테오와 그의 아내 조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이었다.  동생 테오의 남달랐던 우애는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특히나 조카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Vincent Willem van Gogh로 지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빈센트는 각별히 더 기뻤던 모양이다. 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 '조카의 이름을 자신들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지었어야 하는거 아닌가'하면서도 '그 소식을 듣자마자 위의 작품에 착수했다'고 알리고 있다.  청록색의 신선하고 청명한 하늘을 배경을 힘차게 쭉쭉 뻗은 가지 위로 아름답게 피어난 흰색 아몬드 꽃들은 새롭게 탄생한 생명에 대한 축복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자연 속에 흐드러지게 핀 꽃나무는 빈센트 반 고흐가 좋아하는 주제였긴 하지만, 아몬드 꽃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던 듯 하다. 이미 2년전 그는 아직 추운 겨울임에도 싹을 틔운 아몬드 가지가 유리병에 담아 2점이나 그리기도 했다.  

Vincent van Gogh, Blossoming Almond Branch in a Glass (1888) Van Gogh Museum, Amsterdam

빈센트 반 고흐가 좋아한 것은 꽃나무 뿐 만은 아니다. 그는 유명한 일본미술 팬이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는 폭넓게 일본풍의 유행이 있었다. 이를 자포니즘 (Japonisme)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을 정도로 콜렉터와 애호가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였다. 빈센트 반 고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일본 미술을 무지 사랑했고, 실제로 일본의 목판화 (우끼요에)를 상당수 수집하기도 했다.   <아몬드 꽃>에서도 일본 목판화의 영향이 보이는데, 주제를 근거리에서 확대해서 그림으로서 강한 윤곽선으로 표현된 가지들이 화면 밖으로 잘려져 나간 듯한 구도는 우끼요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히로시게와 같은 유명 우끼요에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모사하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안도 히로시게의 우끼요에 목판화 작품을 유화로 모사한 작품. 한자를 알았을리 없던 반 고흐가 그려놓은 한자를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Vincent van Gogh, Japonaiserie Flowering Plum Tree (after Hiroshige) (1887) oil on canvas; 55 x 46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안도 히로시게의 에도 100경 중에서 30번째 작품인 <카메이도 매화 공원>. 판화 작품이다보니 소장처는 세계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Ando Hiroshige, Plum Park in Kameido (亀戸梅屋舗, Kameido Umeyashiki) number 30 in the series One Hundred Famous Views of Edo (1857), a woodblock print in the ukiyo-e ; 37 x 25 cm

 

사실 빈센트 반 고흐와 자포니즘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되어 있고, 그런 사전 지식 없이도 시각적으로도 영향이 너무 명백해서 오늘은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뭐 그가 애초에 아를르 지방으로 옮긴 것도 일본과 같은 따뜻한 햇살이 항상 빛나는 곳을 찾다가 가성비가 높은 아를르 지방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고,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다 '일본적'이라고까지 천명한 작가이니까 설명이 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습도 높은 일본의 기후를 지중해의 태양 가득한 기후로 만들어 버린 것은 그가 이상향으로 생각했던 일본에 대한 환상의 결과물!)

이 <아몬드 꽃>이라는 작품을 오늘 선택한 것은 왠지 모르지만, 내가 이 작품을 접할 때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는 내 맘까지 벅차오르는 듯하게... 물론 이와는 상반되게 역시 왠지모를 '처연함'도 함께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벅참과 쓸쓸함의 절묘한 조화가 나로 하여금 이 작품이 프린트된 스마트폰 커버를 사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아몬드 꽃>을 그린 것이 1890년 2월이고,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이 같은 해 7월이니까,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뜨기 전 불과 5개월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불태워서 그린 그림이라서 그런걸까? 아님 그건 그냥 남은자가 덧붙이는 쓸데없는 감상(感傷)적 감상(感賞)인건가?  

오늘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 빈센트 반 고흐의 <아몬드 꽃>이었습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9. 4. 00:08 미술 이야기

블로그 시작한지 만 1년이 되는 날.  2018년 9월 4일부터 시작했네... 

티스토리 '물병과 사자'를 운영할 '잠자는 집시'

 

티스토리 '물병과 사자'를 운영할 '잠자는 집시'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겠지만, 오늘 티스토리 초대받아서 일단 블로그 개설.... 블로그 제목은 "물병과 사자"로, 그리고 필명은 "잠자는 집시"로.... 아는분은 아시겠지만,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에서 따온 것...

sleeping-gypsy.tistory.com

사실 처음 글은 그냥 시작한다는 내용이었고, 두번째 글이 내 블로그 이름의 유래랄까?  내가 애당초 미술사 공부하게된 연유랄까를 썼었다. 

이 블로그의 제목과 필명의 근간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 이야기 

 

이 블로그의 제목과 필명의 근간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 이야기

이 블로그의 제목과 필명의 근간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 이야기 앙리 루소 (Henri Rouseau: 1844-1910)의 <잠자는 집시 (The Sleeping Gypsy)> (1897) Henri Rousseau, The Sleeping Gypsy (La B..

sleeping-gypsy.tistory.com

아무리 여름이 무더워도 어느새 가을은 오고, 아무리 겨울의 찬바람이 매서워도 봄날 새싹은 돋고...

첨에는 꽤 신경쓰고 글도 주기적으로 올리고 하다가 중간에 내팽개치다시피 글을 안올리고 했는데도 어쨌든 1주년은 된다.  그만두지 않는한 2주년 3주년 계속 돌아오겠지.  앞으로는 좀 더 시간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해야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가을의 뽕나무 (The Mulberry Tree in Autumn)>는 1889년 10월 그려졌다. 이 그림을 완성된 후 채 일년이 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떴고,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그가 본 마지막 가을 풍경이 되는 셈이다.   

내친 김에 뽕나무 이야기~  

우리말로 뽕나무의 열매는 오디라고 불리는 건 아는데, 난 우리나라에서 오디를 육안으로 직접 본적은 없다. 옛날 얘기를 듣다보면 가끔 나오는 그 '오디'라는 열매가 무척이나 달콤하다는 이야기만 어른들에게 들었을 뿐이었다.  소시적에 오디를 잔뜩 따먹고 나서 보면 손가락이랑 입주위가 까맣게 물이 들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나중에 뽕나무는 누에들의 최애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비단을 얻기 위해 누에를 키우는 농장에서는 으레 뽕나무도 함께 키운다고 알게 되었다. 이번에 조금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뽕나무를 신성시 했던 것 같다.  '부상 (扶桑)' 이라는 단어는 '해가 뜨는 동해'라는 의미도 있고, 그 곳에서 자란다고 알려진 뽕나무를 일컫기도 한다. 일례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가 딛고 서있는 나무가 뽕나무인데, 이생과 천상을 연결해주는 나무라는 인식이 있고, 이야기에 따라서는 뽕나무에서 해가 열린다는 이야기도 있는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뽕나무는 달콤한 열매도 제공해주고, 그 잎으로 무럭무럭 자라난 누에들이 아름다운 비단실도 만들어주니 귀중한 나무였음에 분명한다. 

2세기 중반 중국의 무씨사의 무덤에 새겨진 부조의 탁본. 부상 扶桑 나무가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부상 扶桑이란 해가뜨는 동해, 혹은 그 곳에서 자란다고 믿는 뽕나무라고 한다. 

한편, 서구에서 뽕나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피라무스와 티스베'의 비극적 사랑이야기와 관련이 깊은 나무이다. 피라무스와 티스베의 러브스토리는 이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뽕나무는 그들의 밀회 장소였고, 그 뽕나무의 열매가 붉은 것은 피라무스와 티스베의 피가 스며들어서라는...  죽기 불과 9개월 전 뽕나무를 그렸던 반 고흐는 이러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까?  단지 고즈넉하게 서있는 나무가 맘에 들어서 그렸던 것일까?

David Kandel의 일러스트레이션,  Hieronymus Bock의 식물도감 Kreuterbuch (1539)에 실린 것. 이 작품은 식물도감용이라 신화의 스토리보다는 '뽕나무'와 '오디'의 형태에 더 주력해서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멀베리는 요새들어서 '슈퍼푸드'로 각광을 받고 있는 '베리' 패밀리의 일원으로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고, 패션계에서는 핸드백 브랜드가 유명하다.  나는 명품백은 잘 모르고, 이 멀베리라는 백이 명품의 반열에 드는지조차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브랜드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의 절반이상이 이 뾰죽 빼꼼 뻗은 귀여운 잎사귀들이 오밀조밀하게 묘사된 로고 때문!  언젠가 위조품을 구분하는 법을 안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어느 브랜드든 그렇겠지만, 위조품의 로고는 조악하기 짝이 없다.  진품의 로고에서는 나뭇잎의 크기와 놓여진 잎들의 간격과 각도가 적당하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균형감이 조화롭다. 그리고 금속을 찍어 낸 패임의 깊이가 적절하다. 이에 반해 위조품 로고에서의 나뭇잎은 너무 크고, 금속판은 너무 깊이 패여있고, 간격도 엉망이다. 패션의 완성이 얼굴이라며 '패완얼'이라 한다고?  그렇다면 명품의 완성은 로고인 것같다. '명완로'?   

핸드백 브랜드 중엔 꽤 알려진 멀베리의 로고는 뽕나무를 형상화 한 것이다. 요리조리 놓인 귀여운 잎사귀의 모습이 절묘하게 조화롭다. 명품백은 잘 모르고, 이게 명품의 반열에 드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브랜드. 그 이유의 절반이상이 이 뾰죽 빼꼼 뻗은 귀여운 로고때문...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에서 진짜와 가짜 로고를 비교해주고 있다. 누가봐도 진품의 로고가 훨씬 귀엽고 예쁘고, 가품의 그것은 왠지 지저분한 느낌이다. 역시 명품의 완성은 로고인가봉가.

참고로 뽕나무와 오디의 사진

posted by 잠자는 집시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