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세상에 '이름 없는 풀'은 없다. 하지만 풀의 이름을 외우기는 어렵다.
2019. 5. 3. 18:34 일상 이야기

Albrecht Dürer, The Large Piece of Turf (1503) Watercolor, 40.8 x 31.5 cm, Albertina

요새 들어, 사람은 죽을때까지 배워야한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요즘들어 베란다 화원 가꾸기를 취미로 발전시켜볼까 생각하고 식물에 관심을 가지다보니, 꽃 이름이나 관엽수의 이름을 묻는 포스팅을 볼때마다 클릭해서 확인해보면 10에 9, 아니 100에 99는 모르는 식물이다.  더 절망적인 사실은, 식물에 조예가 깊은 누군가 답글을 단 것을 읽으면서 그 식물의 이름을 앎과 동시에,  '아, 어차피 이 이름 내가 곧 까먹겠구나'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된게 몇 개를 제외하면 학명을 그대로 딴 거인지 어려운 이름 투성이다.  한글로 된 이름도 어떨때엔 생김새랑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 연상암기를 할 수 없다. 히잉. 난 그래도 계속 꽃과 나무를 늘 좋아해왔다고 자부해왔는데...  걸핏하면 용량부족하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내 저렴하고 용량 적은 핸드폰 때문에 일전에 깔았던 네이버 앱도 지워버렸지만, 그 앱이 깔려 있던 그때도 찍어서 검색해보면 죄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 뿐이긴 했다. 

예전 어떤 문인이 '이름없는 들풀이 어쩌구저쩌구~' 하는 식의 표현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하는 요지의 글을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에 이름없는 들풀이나 꽃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라면 모름지기 자신이 소재로 삼고 있는 글에 올릴 식물의 이름 정도는 조사를 해서 파악하고 있어야지, 어떻게 그 이름 하나도 알아볼 생각않고 글을 쓸 생각을 할 수 있냐는 요지의 글이었다.  글을 읽을 당시에는, 글을 쓰는 이가 마땅히 지녀야 할 자신의 글의 내용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하며 읽었는데, 요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이름없는 들풀'이라고 쓴 작가는 분명히 찾아봤는데 막상 글을 쓸 그 순간 까먹은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된다. 

새로 시작한 '원예' (라고 하기엔 너무 미미하지만) 취미 탓에 떠오른 생각.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