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영화 한편 감상. 한글 제목은 '데드 위크: 인생 마감 7일전'. 원제를 해석해보면, '일주일 안에 죽음, 아니면 환불 보장' [Dead in a Week (Or Your Money Back)] 이 정도 될 것 같다.
첨에 한글 제목을 읽었을 때, Dead Week은 기말고사 전주를 지칭하는 속어라 영화 포스터랑 내용이 매치가 되지를 않아서 잠깐 갸우뚱했는데, 원제를 읽어보니 제목도 흥미롭고,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가벼운 맘으로 집안 일 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코미디 영화는 맞고 가벼운 맘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인 것도 맞지만, 생각해 볼 거리가 있고, 보는 관점에 따라 꽤 심오한 인생관이 담긴 철학적인 영화라고 볼 수도 있는 영화이다. IMDB 찾아보니 평점이 애매한 6.2이고, 한국의 다움웹에서의 4점. 전체적으로 좀 박하다는 느낌.
이 영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生卽必死 死卽必生'이라고나 할까? 즉, '살려는 자 죽고, 죽으려는 자 살 것이다.'라는 것? (복선 및 혼선의 의도 있음)
인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한 주인공 청년은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번번히 자살에 실패하게 된다. 다리에 기대어 강물어 뛰어들어 자살하려는 그의 앞에 마치 선지자와 도 같이 홀연히 검은 실루엣으로 등장한 한 노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왜그러냐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텐데...라고 이야기 할때만 해도, 난 그가 그런식의 선문답을 통해 청년의 인생의 의미를 찾아준다는 식의 다소 뻔한 교훈 감동 스토리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 노인은 전혀 신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의 직업은 '킬러' 혹은 '암살자'!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 이름도 생소한 자살 대행 킬러 (?). 보험 영업 사원처럼 매달 할당량을 채워야하는 직원이었고, 요새는 동유럽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감을 많이 앗아가서 매달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 절벽이나 다리를 다니며 자살 희망자를 만나 직접 구매자를 찾아 영업을 하는 참이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 죽으려는 청년. 그리고, 청부 킬러 (하지만, 여기서 청부는 죽을 사람에게 직접 받는게 기존 킬러와의 큰 차이점)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열심히 '죽여주며' 살아온 노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스포일러 없이 감상을 얘기하자면, 영화 전반에 영국 특유의 블랙 유머가 참 재미있었다는 것이 총평이다.
킬러가 주인공에게 하는 말, '계약서에 작은 글자들 읽어봤어?'
킬러 회사 사장과 킬러와의 대화. 특히 그 사장이 '마이클 J 폭스'를 이야기 할때.
특히, 출판사 편집장과 주인공의 만남에서 편집자가 하는 이야기도 재밌었고, 그와 함께 전개되는 사건의 타이밍도 절묘하다.
(대략 생각나는 대목은 위의 세 장면 정도. 깔깔깔은 아니지만 푸훗푸훗 하게 된다. 궁금하세요? 궁금하면 500원! 아니, 그냥 영화를 보시면 됩니다.)
브리티시 유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미국 영화의 그것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직업이 '청부 킬러'라는 점을 잠시 잊고 대화를 듣노라면,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내용의 대화다. 킬러도 불법주차 했다가 티켓 끊으면 경찰에게 '잠시 대논거'라며 사정을 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킬러에게 날짜 조정을 요구하면서, 킬러가 그러마 하니 진심 고마워한다. 킬러를 진정 사랑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조를 하는 사랑스러운 킬러의 아내와 킬러와의 대화는 평생을 함께한 금슬 좋은 부부의 대화이다.
이러한 소소한 대화가 '자살'이니 '킬러'니 하는 도덕적 잣대나 사회 규범을 잠시 덜어내고 바라보면 일상생활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것 없다. 게다가 평생을 성실한 직업윤리의 노년이 정년을 앞두고 겪는 혼돈과 상실감. 그리고 유머스럽게 전개되지만 끊임없이 재기되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심오하기까지 하다. 전체적으로 잘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조밀하게 잘 엮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무엇인가 고민이 있거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 '죽음'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고민이 쉽게 풀리고 그전까지 힘들다고 느꼈던 일들이 그다지 심각할 것 없이 가볍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곤 한다. '죽음'은 많은 문제를 명쾌하게 해준다. 죽음을 떠올리면 어두워질것 같지만, 내 경험상 반드시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련이나 욕심으로 가려져 있던 것들이 선명해지면서, 무엇이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일까 분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복잡했던 맘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맑아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과는 달리 삶에 대한 의욕을 불러 일으켜주거나, 적어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P.S. 주인공 청년은 백수에 가까운 작가지만, 그의 작업 방식은 참 독특하고 맘에 들었다. 카페의 냅킨 혹은 포스트 잇 사이즈의 작은 메모지에 차례로 적어나가는 그의 이야기와 간단한 삽화. 그렇게 전개된 이야기 책이 있다면 사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예전에 읽던 Micro Fiction, 혹은 Flash Fiction, 혹은 short short stories 등으로 불리던 아주 짧디 짧은 소설 장르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말이다. '마이크로 단편 소설' 혹은, '초단편 소설'은 마치 소설의 하이쿠 버전이라고나 할까? 대략 1500 단어 (짧은 것은 300 단어에 불과하기도) 정도의 길이로 왠만한 광고에서의 상품 설명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당시에 나는 우연히 수업시간에 그런 장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호기심에 한동안 도서관에서 이것저것 찾아 읽어보곤 했었다. 이런 마이크로 단편소설은 참신하다는 장점과 짧은 이야기 속에 심오한 내용이 담겼을 때의 감동의 깊이는 생각보다 묵직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아무래도 시가 아닌 소설인데 단어의 수의 제한은 많은 내용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가 플롯이 가능하지 않은 길이이니 이야기에도 전개가 있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요새 긴 블로그 글이나 페북 포스팅에 꼭 달린다는 댓글 - '좋은 내용 같은데, 위 내용을 세줄로 요약 좀 해주세욤.' - 을 염두에 둔다면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는 않은 장르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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