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인플레 고려 13위 리히텐슈타인
2018. 10. 21. 00:30 미술 이야기

얼마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의 순위를 인플레를 고려한 가격을 적용해서 20위까지 매겨보았다.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거기서 착안해서 이 놀라운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작가들에 대해서 순차적으로 설명해나가고 있다. 오늘은 앤디 워홀과 나란히 팝아트의 거장으로 알려진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1923-1997)의 작품에 대해서 알아볼까 한다.   우선 오늘 다룰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13) Roy Lichtenstein, "Masterpiece" (1962) $165-millions (2017 private sale) [약 1,869억]   말풍선 내용: '어머나, 브래드~ 자기, 이 그림이야말로 '걸작'이에요!  세상에나~ 이제 곧 뉴욕의 모든 이들이 당신 작품을 구하려고 난리가 날 거에요.' 

이 작품은 원래 소장자 아그네스 건트의 맨하탄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아파트에 수년간 걸려있던 작품이었다.  사법 개혁을 위한 Art for Justice fund의 자금 모금의 일환으로 내놓았고, 이를 예술계의 큰손 스티븐 코헨 (Steven A. Cohen)이 2017년에 $165-millions에 구매하였는데, 이는 약 1,869억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아마 '로이 리히텐슈테인'이라는 작가의 이름까지는 좀 길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특징적인 연재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하여 그린 작품의 이미지에 대해서는 친숙하다고 느낄 것이다.  위의 작품은 그가 생애 최초의 개인전을 열 당시 출품했던 작품으로 작가의 장난기가 가미된 것 제목이다.  물론 농담의 이면에는 젊은 화가의 자부심도 약간은 담겨 있었으리라.    

리히텐슈타인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만화의 장면에서 차용한 이미지에 말풍선과 벤데이 닷츠 (Ben-Day dots)*를 활용해서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데, 앤디 워홀과 함께 60년대 예술계를 풍미했던 팝아트의 거장 중 한 명이다.  그는 대중 매체에서 가져온 주제를 캔버스에 유화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그렸다는 데 특징이 있는데, 신문같은 인쇄 매체에서나 볼 수 있는 벤데이 기법을 활용한 그의 그림에서 개인의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1962년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당시의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at Castelli Gallery sitting with Spray (1962), Masterpiece (1962), Engagement Ring (1961) and Aloha (1962), 1962. Photograph by Bill Ray.  

왼쪽: 원본 만화  ; 오른쪽: 리히텐슈타인의 <걸작> 

리히텐슈타인의 <걸작 (Masterpiece)>은 테드 갈린도라는 만화가의 삽화를 자신이 재해석 한 것인데, 원래 만화에서의 말풍선 내용은 다음과 같다: "But someday the bitterness will pass and maybe I'll be the girl to change your heart! But for now at least I can be near you!

즉, 지금은 자신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남자에 대해 언젠가는 자신을 좋아해 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품고, 지금 당장은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내용. 당시 유행했던 닭살돋는 연애 소설적 내용인데, 이런류 만화의 대부분의 대사가 60년대 한국의 영화 대사 같이 다소 감정과잉적인 내용이 많다. 이를 리히텐슈타인은 재치있게 내용을 바꾸었고, 원래 설정 상은 차 안이지만, 리히텐슈타인의 경우, 설정이 화가의 스튜디오 안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아래는 그의 초기 '만화 차용' 작품이자 이후 그의 대표적 작품들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미키, 이것 좀 봐! (Look, Mickey)'이다.  리히텐슈타인이 벤데이 닷츠 기법을 활용하기 전에는 보통 유화를 그리듯이 채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원래 만화와 비교해봤을 때, 구도에 있어서 원본의 주변을 조정을 하였고, 말 풍선을 삽입하므로서 만화같은 효과를 이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화와 미교해보면, 대화창이 아래에 자리한 원래의 삽화보다는 리히텐슈타인의 유화 작품이 훨씬더 만화 컷 같다.) 

왼쪽: 원본 만화 ; 오른쪽: Roy Lichtenstein, Look Mickey (1961), oil on canvas ; 121.9 x 175.3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 Estate of Roy Lichtenstein/DACS 2012 

아래의 작품들은 리히텐슈타인이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확립하고 나서의 작품들의 예이다. 원본이 되는 만화들과 비교해보자.  원본의 만화에서는 그 당시의 멜로 만화가 그러하듯이 감정 충만한 때로는 과잉인 내용이 말풍선 안에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의도적으로 그 '감상적' 대사를 제외함으로써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적 복제를 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이러한 기계 복제와 수작업, 감정과잉과 이성적 표현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하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이 인쇄매체를 이용하여 제작한 만화 컷보다 더 드라이해 보인다는 점. 그리고, 그는 이렇게 차가와보이는 작품을 수작업으로 제작하였다는 점. 이러한 대조적 특성들을 이용해서 예상을 뒤엎는 식으로 작업했다는 것이다. 

위: Roy Lichtenstein, In the Car (1963); 아래 원본 만화. 이 경우에 리히텐슈타인은 말 풍선 속의 대사를 생략해서 그렸다.  참고로, 말풍선 내용은 '(병원이나 미용실 등) 예약 해둔 것은 어기지 않겠다고, 그와 드라이브 따위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건만.... 그런데 어느샌가 난...' 이다. 도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랑에 빠져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여인의 심리가 드러난 말 풍선이다. 

 참. 그리고 이 그림의 복제판 (?)이 한국에도 있다.

이 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다면, 이전의 글 참고 *^^*



맨 위: Lichtenstein, Crying Girl (1964), porcelain enamel on steel ; 116.8 × 116.8 cm. 중간: 리히텐슈타인, 스케치 ; 맨 아래: 원본이 된 만화. 여기서의 말풍선 내용도 감정감정하다.  아마도 데이트 약속을 잊어버리고 어긴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고서는 나중에 눈물 펑펑 흘리면서 후회하는 여자친구인가보다. 

말 풍선 내용: '(흐흑...)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난...난 내일 사과를 해야지... 생각해보면...이번이 그 사람이 처음 성공한 것인걸...그는 너무 신나있었던거야...(그래서 약속을) 잊어버린거야...'

리히텐슈타인 재단(Lichtenstein Foundation)이 발행한 온라인 카탈로그 레조네 (Catalogue raisonné)**를 살펴보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로 발전된 것은 1962년부터로 신기하게도 1961년도까지 그러한 경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아들이 만화책을 보다가 '아빠는 이런 그림 못그리지?'라고 질문에 울끈불끈 해서 이러한 만화에서 착안해서 그렸다고는 하나, 거기에 대한 사실확인은 못했다.  

다만, 미술사적으로 살펴보면, 팝아트의 대두 배경 자체가 그렇지만, 그의 팝아트로의 전향도 그가 활동하기 이전 미술계에서 명성과 권위로 그 아성이 깨질것 같지 않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에의 반동이라는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철학적으로는 실존주의, 칼의 융 심리학 등의 영향을 받아 전후의 상황과 인간의 조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외형적으로는 거대한 캔버스의 추상화로 특징지어지는 미술 사조이다. 미국으로서는 최초로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예술을 인정받은 사조였기에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적인 명성과 위용은 대단했다. 캔버스를 화가의 실존이 내던져진 투쟁의 장으로 해석하던 경향에서 알 수 있듯이,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젊은 화가들이 보기에 추상표현주의는 너무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었고, 생각만 엄청 복잡하고 허세 쩔은 것이었다.    

실크 스크린을 애용한 앤디 워홀과 벤데이 닷츠를 이용한 로이 리히텐슈타인, 이들 모두 기계적 방식을 사용한 복제를 택한 이면에는 너무 심각하고, 말끝마다 실존 실존 하는 아버지들에 대한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개개인 화가의 실존이 드러나는 회화 (추상표현주의)와 정반대되는 대량생산으로 몰개성인듯해 보이는 기계적 작품에 착안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지가 언젠데.... 변화한 사회 속의 대중들도 그러한 심각하고 무거운 추상표현주의의 대안들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히텐슈타인으로서는 그 계기가 무엇이었든지간에, 요새 말로 치면 콘텐츠 개발에 대성공을 이룬 셈이다.  




*벤데이 닷츠: 벤자민 헨리 데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 겸 판화가가 발명한 인쇄기법으로 균일한 원들의 분포 밀도를 조절함으로서 명암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신문의 삽화, 5-60년대 만화등의 인쇄에 많이 사용되었다. 이 기법을 유명하게 한 것은 단연 로이 리히텐슈타인이다.  

**카탈로그 레조네: 주요 작가의 전 작품을 망라하여 주석과 함께 편찬한 작품 집. 해당 작가의 전문 연구가, 미술사학자들이 집필과 연구조사에 참여하여 제작되므로 신빙성이 높은 연구자료로 활용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