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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24 내 맘대로 작품 보기 - 반 고흐를 통해 본 봄 - 2 - 분홍색 복숭아 나무
2020. 4. 24. 17:50 미술 이야기

며칠 전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 - 1890)의 <아몬드 꽃>에 대해서 포스팅을 하였다. 오늘 '내 맘대로 작품 보기'편은 저번 작품보기 보다 더 '내 맘대로~'의 취지에는 벗어난다.  이전에 몇 번 스쳐지나듯 봤을지도 못하는 이 복숭아 나무 그림의 뒷야기와 이와 연관된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8년 4월1일 일요일자)를 요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으니, 오늘의 '내 맘대로 작품보기'는 '그림과 함께 편지 읽기'라고 이름 붙여야할지도...

지난번의 <아몬드 꽃>은 새로 태어난 조카에 대한 사랑과 어린 생명에의 축복과 희망으로 가득한 작품이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작품이다. 비록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말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반 고흐의 분홍색 복숭아 나무 (The Pink Peach Tree)  (1888)이다.  지난번의 작품과 비교하면 약간 작지만 비슷한 크기이고 같은 꽃나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색조면이나 붓자국의 면에서나 많이 차이가 난다.  (인터넷 상으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의 이미지가 아래 띄운 이미지라 원래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다 담을 수 없음은 아쉽지만 감안하고 감상하시길.) 

 

자신에게 처음으로 화가의 길을 제시해주고,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사촌의 남편인 안톤 모브에 대해 각별한 심정을 가졌던 것 같다. 그의 부고를 듣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빈센트는 위의 작품 <분홍색 복숭아 나무>를 미망인이 된 사촌에게 자신과 동생의 이름으로 보낼 것이라 밝히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모브에 대한 추억> Vincent van Gogh, <Souvenir de Mauve (Reminiscence of Mauve)> (1888), oil on canvas ; 73 x 60 cm, Kröller-Müller Museum

반 고흐가 (자신의 환상 속의) 일본의 기후와 유사한 아를르 지방에 옮겨온 뒤, 그 해 봄에 그린 것이다.  반 고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그는 과수원을 주제로 수많은 그림을 그렸다. 반 고흐는 화려하고 커다란 꽃망울을 지닌 장미나 목단보다는 하나보다는 무더기로 모여서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라일락이나 배꽃, 아몬드 꽃, 그리고 복숭아 꽃과 같이 자잘한 꽃들과 나무들을 많이 그렸다. 

위의 작품 <분홍색 복숭아 나무>에 대해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1888년 4월1일자로 보낸 편지에서, 그 제작과정과 그림의 왼쪽 아래에 자신의 서명 위에 "Souvenir de Mauve"라고 쓰게 되었던 경위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빈센트는 위의 작품에 대해서,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야외에서 넓게 펼쳐진 과수원에 복숭아 나무들과 푸르른 하늘과 흰 구름'을 그렸노라 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그린 풍경화 중에서는 제일 잘 된 것'이라 자부한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집에 들어왔을 때, 그는 사촌으로부터 안톤 모브 (Anton Mauve: 1838-1888)의 초상화 한 점과 함께 그의 부고 소식을 받게 된다.  

안톤 모브는 헤이그 화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 헤이그 화파는 프랑스의 바르비종 화파와 유사하게 야외의 풍경을 주로 주제로 다루었다. 이들의 화면의 색상에서 '회색 화파'로 불리기도 한다. Anton Mauve (1838-1888), Morning Ride on the Beach (1876) oil on canvas ; 45 x 70 cm, Rijksmuseum, Amsterdam

안톤 모브로 말하자면, 반 고흐의 외사촌의 남편으로 당시에는 꽤 알려진 화가였는데, 친절하게도 방황하던 반 고흐를 화가의 길로 인도해준 사람이었다. 1881년, 반 고흐는모브의 스튜디오로 옮겨가 그의 밑에서 그림을 배웠고, 그는 반 고흐의 생활을 돌봐줬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그가 반 고흐에게 그림을 봐 준 것은 길어야 한달 남짓에 불과하기에 그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처음에는 친절했던 그가 금세 차가워져서'는 반 고흐에게 더 이상 그를 돌봐줄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고 한다. 그게 그의 변덕인지 아님 반 고흐에겐 주변 사람들을 못견디게 하는 뭔가가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말이다. 모브의 입장에서 보면, 반 고흐는 '그림보다는 산책을 더 좋아하는' 게으르고 싹수 안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고, 혹은 당시 반 고흐가 사귀던 여성이 애 딸린 매춘부라 그러한 그의 사생활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처음으로 화가의 길을 제시해주고,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사촌의 남편인 안톤 모브에 대해 각별한 심정을 가졌던 것 같다. 위에 언급한 편지에서, 그의 부고를 듣고 빈센트는 감정이 격해져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서 자신이 막 완성한 그림 <분홍색 복숭아 나무>에 "안톤 모브에의 추억, 빈센트와 테오"라고 썼고, 미망인이 된 사촌에게 자신과 동생의 이름으로 보낼 것이라 밝히고 있다. (현재 작품에 Theo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나중에 빈센트가 지운 것이리라)

그러면서 편지에는 '내 생각에는 모브 씨에 대한 추억은 너무 심각한 것이 아니라 정답고 즐거운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이런 구절을 덧붙이고 있다. 

‘Don’t believe that the dead are dead.
While there are people still alive 
The dead will live, the dead will live’.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한 죽은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산사람과 더불어) 살 것이다. 죽은 자는 (산 사람과 더불어) 살것이다. 

위의 문구는 마치 반 고흐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그가 세상을 뜬지 무려 1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는 우리와 더불어 이 봄을 맞고 있다. 

1888년 4월에서 5월 사이 아를르에서 그렸다는 분홍색 배 나무.  빈센트는 비슷한 시기 복숭아 나무 그림을 두 점 그렸는데, 그 중 하나는 모브에게 헌정했고, 또 하나는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냈다.   아래 작품은 내가 찾아본 한도에서는 <분홍색 복숭아 나무>와 구도가 가장 비슷한데, 이 작품이 동생에게 본 작품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Vincent van Gogh (1853 - 1890),  The Pink Peach Tree  (1888),  oil on canvas ; 80.9 cm x 60.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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