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하나가 내 포스팅을 보더니, '해골 들어간 그림 처음본다'라는 코멘트를 날렸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내 친구같이 미술과 연이 먼 친구같은 경우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제가 연이어서 '해골 들어간 그림'에 대한 내용을 올렸었네요. 싱숭생숭한 시기에 더 심란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무도회'가 그랬듯이 오히려 그러한 그림으로 위기감에 가슴 눌리는 일없고, 오히려 무거운 마음 가볍게 하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오늘은 요새 '죽음의 무도회'와 '바니타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네오팝'에 대해서 조사와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을 써보려고 한다. (스포일러 경고! 오늘도 해골 이미지 많이 등장할 예정!)
'네오팝'이란 '새로운 팝아트'라는 의미로 1980년대에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팝아트적인 경향을 지칭한다. 팝아트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이용한 작품들을 제작하였다. 단, 이때엔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1960년대가 아닌 1980년대의 대중 문화를 이용한 것이 차이점이다. 대표작가로는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언급했던 제프 쿤스가 있고 그 밖에 YBA의 대표작가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 허스트, 그리고 일본의 무라카미 타카시 등을 들 수 있다.
이전의 "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라는 포스팅에서, 요즘 미술은 심각한 주제를 의식적으로 피하고,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주제를 선호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이 대부분 대중 매체를 통해 친숙해진 것들이라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 미술의 주된 흐름이 이러하다보니,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담거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관람객도 더 이상 작품 이면의 의미라던가 그 작품을 제작할 때의 작품의 의도라는 것에 더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고 중요시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감춰진 의도나 의미'따윈 없다고 천명하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오팝 작가들의 작품 가치는 미술사를 통틀어봐도 이만큼 높이 평가 된 적이 있나 싶고, 작가들은 나날이 높아지는 명성을 뽐내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대중들은 더 이상 팝아트 혹은 네오팝적 성향의 작품을 보고 "천박하다'거나, "저속하다"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작품들에 익숙해져왔기 때문이다. 젊은 예술가들은 더이상 가난하고 고뇌하는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닌 성공도 하고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앤디 워홀을 롤모델로 삼게 된 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데 말입니다~'가 등장할 대목이다. 그렇게 자타공인 표리일치 가볍고 경박함을 지향하는 듯한 이러한 팝아트와 네오팝 작가들이 실은 누구보다 '바니타스' 혹은 memento mori의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제작했다는 것이다.
먼저, 앤디 워홀은 '재난 시리즈'로 죽음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황색 언론을 통해서 구하게 되는 자극적인 사고 사진들을 실크 스크린으로 제작한 것이 그것이다. 그 속에는 오늘날같으면 검열에 걸려 실릴 수 없었을 사진들 - 사형집행용 전기의자, 사망자의 시체가 함께 찍힌 끔찍한 자동차 사고의 장면, 높은 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하는 사람이 찍힌 사진 - 을 하나 혹은 복수의 이미지를 작품화 한 것이다. 워홀의 '재난 시리즈'는 이처럼 당시 현대사회에서 볼 수 있는 죽음과 직결되는 이미지들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해골을 사용하기도 했다.
제프 쿤스의 경우, 물을 채운 수조에 농구 공 세 개를 띄워놓은 것이 다인 <세 개의 공, 총체적 평형 탱크 (Three Ball Total Equilibrium Tank (Two Dr J Silver Series, Spalding NBA Tip-Off)> (1985) 라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바니타스' 개념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제프 쿤스는 ‘도달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한 비극, 지속될 수 없는 부유의 상태, 인간의 정신적 평정 혹은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에 관한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누가봐도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을 재활용한 것일 뿐 인것 같은데, 그렇게 심오한 뜻이? 그가 다른 곳에서 밝혔듯, 관람객의 즉각적 감상을 겨냥했다면 할 수 없는 작가의 철학적인 설명이다. 과연 위의 작품을 보고 '바니타스' 개념을 떠올리는 관람객이 몇이나 될까?
네오팝 계열 중 가장 바니타스 개념에 집착하는 작가로는 단연 데미안 허스트이다. 커다란 수조에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가득 채운 뒤 거대한 상어를 통째로 담궈 놓은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거의 편집증적으로 '바니타스'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상어 작품은 제목조차 거창하게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기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죽음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가 그렇고, 수십만 마리의 나비의 날개를 실제로 뜯어 모아 만든 최근의 작품이 그러하다. 그리고, 그의 바니타스 개념의 탐구의 정점에는 세상에서 제일 비싼 해골이 있다.
18세기 실제의 해골의 본을 떠서 8,601개의 무결점 다이아몬드를 박아 만든 이 <세상에나! (For the Love of God)>라는 작품은 그 자체로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탐내는 금은보화를 그려놓고 역설적으로 '그렇게 인간이 탐하는 물질적인 것이 얼마나 유한하고 덧없는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하는 것이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라면, 이 작품은 실제의 죽음의 결과인 해골의 형태와 거기서 발굴한 치아를 직접 사용하는 한편, 많은 인간들이 욕망하는 최고급 다이아몬드로 만든 작품이니 말이다. 일설에는 자신의 작품이 턱없이 비싸다는 비판에 '그래? 그럼 비싸게 만들어줘봐?'라며 작정하고 만들었다고도 전해지는데, 제작비만 해도 205억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비싸게 만든다 했지, 싸게 판다고는 안했다.'라며 탁월한 흥정실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735억에 판매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17세기 바니타스 정물화를 그렸던 작가들도 자신이 잘 그리는 주제를 선택해서 그림을 그렸던 것이지, 그런 작품을 그렸다고 그들이 모두 '현세적 물질은 유한하고 덧없는 것이니 항상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상기하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고도, 그러한 주제를 전달하려고 살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시 작가들로서는 교회나 귀족같은 기존 고객이 사라진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바니타스 정물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검소와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던 당시의 가치와 상충하는 부에 대한 욕구나 과시욕을 감춰줄만한 장치로서 그러한 도덕개념을 덧입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간에,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네오팝 계열의 작가들은 '바니타스'의 주제를 무척이나 자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포스팅 "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에서 다룬 것과는 다소 상충할 수도 있다. "심오한 것 싫어! 즐거운 것이 좋아!"가 요즘 미술의 추세가 아니었던가?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아무리 '의미'보다는 '즉각적 감각'을 우위에 두는 것이 요즈음의 추세라고는 해도 작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의미를 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관람객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감상하는 작품에서 표면적인 감상 너머 존재하는 의미를 본능적으로 찾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작품 하나에 몇 백억에을 쉽게 호가하는 작품들을 직접 다루는 사람들만큼 역설적으로 '현세의 물질적인 것의 덧없음'에 대해서 가까이 느끼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것이 네오팝 작가들이 '바니타스'의 주제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제프 쿤스에 대한 포스팅은 이하와 같다.
- 요새 미술-제프 쿤스의 표절 사건
https://sleeping-gypsy.tistory.com/85
- '명작'과 '인기작'의 기준, 그리고 '역사의 검증'을 통과한 작품이란 것의 의미
https://sleeping-gypsy.tistory.com/189
- 요새 미술 - 제프 쿤스 제 2 편~ 혹은 제 3편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02
- 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
https://sleeping-gypsy.tistory.com/203
바니타스 주제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지만 해당 포스팅은 아래와 같다.
- 바니타스 정물화 - Vanitas
https://sleeping-gypsy.tistory.com/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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