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내 맘대로 작품 보기 - 반 고흐를 통해 본 봄 - 4 - 제비붓꽃 (Irises)
2020. 5. 1. 00:24 미술 이야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계속해서 반 고흐의 꽃 그림을 올리게 된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라는데, 무려 네번째!  이렇게 포스팅으로라도 꽃 놀이를 해서 소중한 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보상을 해보겠다는 맘이다. 그리고 새삼 깨닫게 된다. 반 고흐는 정말 꽃 그림을 많이 그렸구나.   (이전의 반 고흐 포스팅 아몬드 꽃, 복숭아 꽃, 배꽃에 대해서는 링크를 참고)

정말 그렇다! 그래서 세계 유명 미술관 곳곳에 그의 꽃 그림이 안 걸린데가 없을 정도다.  상황이 그러하니, 그의 어떤 꽃 그림은 내가 본 적이 있는지 아님, 어디서 본 건지 알쏭달쏭 아리까리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의 제비붓꽃 그림은 전시실의 분위기도 기억날 정도로 확실히 기억난다. 가끔 그런 작품들이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 호크스'가 그러했고, 이 블로그의 제목이 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가 그러했다).  반 고흐의 '제비붓꽃들 (Irises)'는 J. 폴 게티 미술관에서 봤다.  [난 붓꽃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포스팅을 계기로 찾아보고 화면에 나타난 꽃은 '제비붓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Irises (1889) oil on canvas; 74.3 × 94.3 cm, J. Paul Getty Museum

그리 대작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규모보다는 꽤 큰 작품의 크기에 놀라고 화면 가득히 채운 꽃을 그려낸 힘찬 붓질과 생생한 색감에 놀라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제비붓꽃들>을 소개한다.  사실 제비붓꽃은 서양화가들이 많이 그리는 꽃의 종류는 아닌데, 반 고흐는 이 특이한 꽃을 꽤나 좋아했나보다.  그가 그린 또 다른 제비붓꽃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적인 제비붓꽃 그림이 미국의 동서부에 각각 한 점씩 있는 셈이다. 

핑크색 벽과 대조되는 바이올렛 빛깔의 붓꽃이 화려함을 더한다. 반 고흐가 사용한 분홍색은 변색이 심해서 오늘날 남은 작품에서는 거의다 흰색으로 보인다. 이는 아래 장미꽃을 그린 화병의 장미꽃 색들도 마찬가지.  Vincent van Gogh, Irises (1890) oil on canvas ; 73.7 x 92.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위의 제비붓꽃이 가득 꽃힌 화병은 1890년 5월 그가 생 레미의 정신병원을 퇴원하기 전에 폭발적으로 그려낸 두 점의 제비붓꽃 화병과 두 점의 장미 화병 그림 중 하나다. 저번 포스팅에도 언급했듯이 그는 1890년 7월 자살인지 타살인지 논란 중인 총상으로 세상을 뜨게 되므로 이 작품은 그가 죽기전 두달 전에 완성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 그가 그렸던 장미 화병 그림들 (아래 그림 참고)과 또 한 점의 제비붓꽃 화병 그림은 1907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의 어머니가 소장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그렸던 두 점의 장미 화병이 각각 한 점씩 소장 중이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Roses (1890) oil on canvas ; 71 x 9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Vincent van Gogh, Roses (1890) oil on canvas ; 93 x 74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그가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그렸던 두 점의 장미 화병이 각각 한 점씩 소장 중이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Roses (1890) oil on canvas ; 71 x 90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다시 제비붓꽃으로 돌아와 보자. 장미나 다른 화병의 꽃들도 즐겨 그린 반 고흐이지만, 그의 제비붓꽃은 여러모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비붓꽃을 그린 서양화가들이 그리 없기도 하고, 다른 꽃들보다 에너지면이나 색감면에서 단연 그의 제비붓꽃 그림은 독보적이라 생각한다.  아직 학술적으로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난 그가 그의 제비붓꽃 소재를 일본의 작품에서 따온게 아닌가 생각해왔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그의 제비붓꽃 화병 그림을 감명 깊게 보고 나서, 일본의 장식적인 미술을 대표하는 오가타 코린 (Ogata Kōrin (尾形光琳): 1658-1716)의 제비붓꽃 그림을 그린 대형 병풍을 연이어서 봐서 였을까? 금박을 배경으로 녹색과 청색을 아낌없이 사용한 그의 제비붓꽃이 리드미컬하게 펼쳐져 있는 병풍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Ogata Korin (尾形光琳), Irises at Yatsuhashi (left) (Metropolitan Museum of Art)
 Ogata Korin (尾形光琳), Irises at Yatsuhashi (right) (Metropolitan Museum of Art)

오가타 코린은 금박을 배경으로 제비붓꽃이 만개한 병풍을 수 점 제작하였고, 세계 각곳의 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그리고, 이 제비붓꽃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그 얘기인 즉슨, '이세 모노가타리 (The Tales of Ise (伊勢物語))' 혹은 '이세 이야기'라고 하는 일본의 헤이안 시대 고전으로 와카라고 하는 일본의 시로 구성된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주인공이 신분이 높은 귀족 여성과의 연애가 발각되어 교토에서 추방되게 되었는데, 떠나는 길에 야츠하시 (8개의 다리) 위에서 연애시를 읊는다.

이세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병풍 속에 인물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작품을 보면 일본 사람들이라면 이 꽃과 다리가 그 장면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반 고흐가 그 내용까지 알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그가 고가인데다가 부피도 큰 이 금박 병풍을 직접 봤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그는 부채나 우끼요에 작품 같은 저가인데다가 이동이 용이한 작품들 중에 이 작품과 유사한 그림을 본 적이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Ogata Korin: Irisis, right screen, 151x360 cm. Ink, color and gold on paper, begin. 18th-century. Nezu Art Museum
Ogata Korin: Irisis, left screen, 151x360 cm. Ink, color and gold on paper, begin. 18th-century. Nezu Art Museum.

이로써 무려 네번에 걸친 반 고흐와 함께하는 봄 꽃놀이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새 5월이다. 5월에도 꽃들은 피어 있을 것이고, 아직도 전염병에의 공포는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달을 맞아 기분 전환하고 활기찬 생활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