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land art' 태그의 글 목록
2020. 9. 21. 18:41 미술 이야기

내가 '옥탑 방의 문제아들'의 팬이라는 건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한 바 있다. 

요새 보는 TV 프로그램 '옥탑방 문제아들'

<옥탑방의 문제아들>과 모나리자

난 특히 거기서 출제되는 미술관련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몇번 포스팅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모르는 분들에게 잠깐 소개를 하자면, '옥탑 방의 문제아들'은 고정으로 출연하는 다섯명의 패널과 매주 바뀌어 출연하는 초대손님이 총 10문제를 맞추어야 옥탑방에서 나갈 수 있다는 설정으로 진행하는 퀴즈 프로그램이다.  그 퀴즈라는 것이 거기서 문제가 나오기 전엔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문제일 뿐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해답 모른다고 세상사는데 아~무런 지장없는 그런 문제들이다. 그런데 일단 문제를 듣고 나면 또 그렇게 해답이 알고 싶고, 그래서 끝까지 보게 되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물론 그 해답을 알아맞추는 과정에 패널들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크게 웃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언급했듯이 난 주로 미술에 관련된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 왔었다. 그런데 지난주 나왔던 새틴 바우어새에 대한 문제는 분명 자연의 새에 대한 문제인데 예술에 대해서 또 나아가서는 창작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문제였다. 

 

질문은 호주에 사는 새틴 바우어새 (Satin bowerbird)는 구애를 위해서 하는 특이한 행동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였고, 해답은 수컷이 암컷을 위해서 아름다운 둥지를 짓고 장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좌) 새틴바우어새의 수컷            우)새틴바우어새의 암컷
같은 색으로 둥지를 장식하고 있는 새틴바우어새 

색상을 구분할 수 있는 새인듯 같은 색상의 폐품들을 모아서 집을 꾸미는데, 인테리어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디자인도 색상도 그렇게 다양할 수가 없다. 물론 파란색을 주로 모은 둥지의 경우, 그것이 인간들이 버린 플라스틱 폐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이 조금 씁쓸하기는 했다. 하지만, 얼마나 놀라운 본능인가? 이걸 미대에서 가르쳐서 저정도의 구성능력과 감각을 갖출때까지 교육을 마치려면 아마 새의 수명이 다할때까지 끝마칠 수 있을까 싶은데 말이다. 

새틴바우어새 둥지의 예들 
새틴바우어새의 둥지의 예

그런데 인터넷에서 예들을 살피다가 아래의 둥지를 봤고, 왠지 데쟈뷰 같아서 곰곰히 생각했는데, 내가 전에 조사했던 작가의 작품과 너무 유사하다.  

새틴바우어새의 둥지의 예
밥 베르슈어렌 (Bob Verschueren), <혼돈 이후 (After the Chaos)> (2010) 가문비와 물푸레나무, Arte Sella, Malga Costa, Italy, 2010

벨기에 출신의 작가 밥 베르슈어렌 (Bob Verschueren: b.1945)의 <혼돈 이후 (After the Chaos)>가 바로 그 작품이다.  새틴 바우어새가 그 누구에게 배운적 없듯이, 이 작가 또한 독학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 또한 자연의 소재만을 이용해서 작업한다. 난 그의 작품을 접하고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합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리 자연처럼 보여도 인간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를수 없겠다 했는데, 새틴바우어새의 둥지를 보니까 (더군다나 인간이 버린 폐품을 활용한) 예전의 그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미처 몰랐지만, 밥 베르슈어렌이 제작한 작품과 똑같은 둥지를 만드는 새가 지구 어디에선가 살고 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밥 베르슈어렌이 어떤 새의 둥지 혹은 비버의 둑을 모방했나는 잘모르겠지만, 진짜 새의 둥지를 모방해서 작품을 만든 작가가 없는 건 아니다. 독일 출신 작가 닐스-우도 (Nils-Udo: b. 1937)의  <클렘슨 진흙-둥지 (Clemson Clay – Nest)> (2005)가 그 예이다.  이 작품은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 소재의 클렘슨 대학의 정원에 설치한 대규모 구조물이다. 내부는 대나무로 틀을 잡고 바깥쪽은 소나무 기둥으로 만든 커다란 둥지 모양의 구조물은 2년간 유지되다가 나중엔 설치에 이용되었던 나무들을 갈아 구멍을 메꾸어서 흔적을 없앴다고한다.  

닐스-우도 (Nils-Udo: b.1937), <클렘슨 진흙-둥지 (Clemson Clay – Nest)> (2005) Clemson University. SC
닐스-우도의 <클렘슨 진흙-둥지>의 설치 장면

닐스-우도의 경우, 때로는 고대의 스톤 헨지를 연상시키는 설치물, 때로는 자연현상과도 같은 설치물을 세계 곳곳에 설치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거대한 규모의 설치물이라 인간이 만든 것이 분명하지만,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자연 환경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밥 베르슈어렌과 상통한다 할 수 있다.  

밥 베르슈어렌 역시 주로 광활한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자연물을 이용한 조형작품을 제작해왔다. 초기에 그는 자연 염료를 들판에 펼쳐놓고 바람에 의해 완성되는 <바람 그림 (Wind Painting)>을 시도하기도 하였는데, 1978년부터 지속적으로 자연과 식물 생장에 관심을 둔 작업을 해왔다.

밥 베르슈어렌의 <바람 그림> (1978)

반드시 천연재료, 특히 1980년대 이후로는 식물 재료만 사용해온 밥 베르슈어렌의 작품은  조형적으로도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그 속에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삶의 주기에 대한 깊은 성찰, 자연과 인간의 상관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인 작품이다.  대지위에 분말 염료를 뿌린 <바람 그림>이외에도 자연과 빛의 관계를 이용한 <빛 그림 (Light Painting)> 등, 그의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는 대지 미술 (Land Art)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환경에 관한 관심에서 부상한 '환경미술 (Environmental Art)' 혹은 비교적 새로운 명칭인 '에코 아트 (Eco Art)'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다.  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의 스펙트럼과 그 작가가 다양한 장르와 사조에 걸쳐서 활동하는 것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라고 볼 때, 닐스 우도와 반 베르슈어렌 역시 명실공히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작가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밥 베르슈어렌의 작품. 전시실에 전시된 모습
밥 베르슈어렌, <삶의 여정 (Chemin de vie)> 
밥 베르슈어렌 (Bob Verschueren), <Sound Installation>  Domaine Du Chateau De Seneffe, Belgium

이들의 작품과 더불어 화요일 밤에 알게된 호주에 서식하는 새의 한 종류가 창조해내는 세계의 오묘한 평행선의 발견은 답을 알아맞히던 못맞히던 간에 내가 '옥탑 방의 문제아들'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9. 8. 04:34 미술 이야기

백화점을 가도 쇼핑을 나온 손님들보다 매장 직원 수가 더 많은 진풍경이 연일 연출되는 기현상이 계속되는 요즈음... 프라다 매장이 너무 가고 싶다면? 

해외여행 가능한 국가가 제한적이고 그나마 그때그때 다르고,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자가격리 2주를 입국과 출국시 감내해야하는 요새 쉬운 일은 아니지만, 텍사스의 마르파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프라다 매장은 어떠신지?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 ( Elmgreen & Dragset), <Prada Marfa>, 텍사스의 외진 지역인 마르파에 설치한 가상의 프라다 매장 

다만 그곳에서 프라다 상품을 구입할 수 없다는 게 함정. 사방에 아무 것도 없는 사막지역인 이곳에 자리한 프라다 매장이라 궁금증이 막 솟구치지 않는가?

넓디 넓은 텍사스의 한 구석,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프라다 매장.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 프라다 매장을 눈 앞에 두고 들어가보지도, 프라다 신상을 살 수도 없다니?! 그 매장은 실제 매장이 아니라 설치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라다 마르파는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 (Elmgreen & Dragset)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공동작업으로 2005년 제작하여 영구 설치 작품이다. 마르파는 텍사스의 서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텍사스 오스틴과 댈러스에 몇년 살았던 나도 들어본 적 한번 없는 변두리 지역이다. 작가들은 이 작품을 "팝 건축 랜드 아트 프로젝트 (pop architectural land art project)"이라고 묘사했다. 실제로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라엘 (Ronald Rael)과 버지니아 산 프라텔로 (Virginia San Fratello)의 협조로 실현된 작품이다.

제작 경비는 $120,000 (약 1억 4천만원 정도)였고, 원래 의도는 일체의 보수 작업 없이 처음의 상태로 둠으로써 세월과 함께 주변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낡아가는대로 놔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누군가가 외벽에 낙서를 하고, 내부 물건들을 다 훔쳐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수정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곳은 관광명소로 자리잡게 되어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방문하게 이르렀고, 유명 연예인들도 방문하여 그들의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남기기도 했다.

프라다 마르파 앞에서 인증샷을 남긴 유명 가수 비욘세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답게 뭐라 부르기 애매한) 이 조각 (?) 작품은 원룸 형식의 프라다 매장처럼 제작하면서 외벽은 흰 스터코 석회벽으로 만들고 주변 삼면은 울타리를 둘러 마무리하고, 매장 안 쪽에는 (프라다 측에서 기증을 받은) 실제 프라다 제품들을 전시한 것이다.  물론 완벽한 건축물은 아니기 때문에 가게 앞쪽의 문은 실제로 드나들 수 있도록 작동하는 문은 아니다.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작가들은 덴마크 출신의 마이클 엘름그린 (Michael Elmgreen)과 노르웨이 출신의 잉가르 드라그셋 (Ingar Dragset)으로 둘은 1995년 이래 공동작업을 해오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작가들이다. 현재 베를린을 기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주로 건축의 양식을 택한 조각/건축 작품을 제작하는데, 이렇게 제작된 가상의 공간을 통해 풍자가 담긴 유머와 위트를 담아 사회문화적 이슈를 언급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 2013년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을 가상의 건축가 노만 스완의 저택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기도 했고, 2015년에는 서울의 플라토 미술관 (예전의 로댕미술관)을 철학가 질 들뢰즈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공항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2015년 서울의 플라토 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 <<Aéroport Mille Plateaux>> 엘름그린 앤 드라그셋이 플라토 미술관 전체를 가상의 공항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천개의 고원 공항'이라는 의미의 전시회 제목은 <천개의 고원>이라는 철학가 질 들뢰즈의 저서에서, 그리고 그의 유명한 '유목민'이라는 개념에서 공항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져왔으리라.  
새벽녁의 프라다 마르파
인스타그램의 인증샷 코너로 자리잡은 프라다 마르파. 왼쪽 옆에 서 있는 말 한 마리가 아~ 텍사스군! 하는 느낌을 완성시켜주고 있다. 

과연 그들의 작품은 '조각'인가 '건축물'인가? 그들의 작품은 '설치 미술'인가 '대지 미술'인가?  아니면, '개념 미술'인가?  그들의 '가상 공간 만들기'라는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던 장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라는 개념과도 상통한다는 면에서 명실공히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들의 인스타그램의 화면을 장식한 프라다 마르파.  언제 찍었나 누가 어떻게 찍었냐에 따라 그때 그때 다른 그의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의 셀카 속에서 또 다른 형태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각도 다른 시각의 프라다 마르파의 모습을 몇 개 더 보너스로 싣는다.

아쉬운대로, 답답한 요새 사진으로라도 쇼핑도 하고 여행도 하는 기분 만끽하십사~ 올려봅니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