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미시시피의 소금쟁이
2018. 9. 28. 03:03 일상 이야기

유학을 간 지 얼마 안되어서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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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첫 유학을 시작한 학교는 미국의 종합대학답게 각 단과대별로 도서관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도서관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내가 다닌 한국의 학교 도서관의 자료는 아마도 한 단과대학의 자료 소장량에도 크게 못미칠 것이라 짐작될 정도로 장서의 양은 압도적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혹시라도 거기서 찾지 못하는 자료는 interlibrary loan이라고 해서, 다른 학교나 기관에서도 서로 빌려주고 빌려볼 수 있는 체계까지 갖추고 있으니, 적어도 자료가 없어서...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터였다. 

나는 그 거대한 중앙 도서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맡은 일은 누락 소장 자료의 기록이었다. [방대한 양의 장서와 소장품을 가진 도서관이다보니, 도서관에서 소장 중이지만 미처 기록이 되지 않은 책이나 자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사람이 찾지 않는 한 확인이 불가능한 일이다.  그때 깨닫게 되었다. 흔히 공식 기관의 웹사이트에 있는 기록이라면 일단 믿고 보는 경우가 많지만, 생각 외로 잘못된 정보와 오류가 많다는 것을).]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 수도 꽤 많았던 것 같은데, 그 학생들에게 섹션을 할당해서 누락 자료 정리를 하도록 하는 식이었다.  내가 할당 받은 구간은 무려 생물 분야의 '곤충학'!  곤충학 분야의 크고 작은 학회지의 누락된 기록 정리.  처음 할당 받고는 세상 재미없고 보람없는 구간을 배정받았다 한숨을 쉬었다. 내 평생 이 자료들을 볼 일 있겠냐 그러면서.....  '뭐, 재미 있으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으니'라고 시작한 일은 정리하는 일 자체는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고, 뭔가 하나씩 정리해서 완성해 나가는 재미도 있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동안 일을 했지만, 그 사이 익숙해진 이름도 생기고 말이다.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한 학자가 있었는데, (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이름은 잊었다) 그는 미조리인지 미시시피*의 (지역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호수인지 저수지(이것도 가물가물) 인지에 거주하는 소금쟁이에 대한 생태를 조사한 것을 1910년대부터 무려 4-50여년간 (2차세계대전 기간 동안의 공백은 있었다) 지속적으로 연구하여 발표를 했었고, 학회지에 게재하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그의 주제가 좀 다른 의미로 놀라왔다. 뭐 그렇게 사소한 것을 이렇게 오랫동안 연구하지? 하는 생각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정리하던 내내 매년 꾸준히, 그것도 몇 십년동안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던 주제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특정 학술지들에 이름을 올리는 그를 보고선 나중엔 경탄해 마지않을 수 없없다. 

그 때 느꼈다. 남들은 관심갖지 않고, 남들이 얼핏 보기엔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그렇게 지속적으로 파고들어야 되는 것이 학문이라는 것이구나.  그리고 결국 학문이라는 것이 저러한 작지만 지속적인 노력들이 모여 우뚝 서게 되는 것이구나... 결국, 우리가 가볍게 찾아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 에서 얻는 지식의 바탕도 실은 저러한 지난한 노력들의 축적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금쟁이에 대한 어린이용 교육 동영상에서 알게되는 것들도 다 학자들의 노력이자 성과이다. 

 

나는 학문이라는 것을 떠올릴때마다, 저 미조리인지 미시시피인지의 작은 마을 조그마한 호수가에서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긴 장화를 신고 손에는 뜰 채같은 것을 들고 하루 종일 작은 곤충들을 관찰하면서 반세기를 보냈을, 이제는 세상에 없을 그 노 학자를 떠올린다. 남들은 어떻게 보든 그는 자신이 하는 그 작업이 좋아서 견딜 수 없게 즐거웠으리라 생각한다.  지리멸렬한 노력들의 축적. 학문이란 그런 것이다.  

* 내 기억으로는 미시시피 강인데, 자신이 없다. ^^;;;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