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다이얼 전화기를 처음 본 아이들 - 역사와 기억에 관한 단상
2019. 9. 30. 08:47 미술 이야기

며칠 전 유튜브에서 10대 청소년 둘에게 다이얼식 전화기를 보고 어떻게 전화 거는지 알아내라고 했는데 주어진 시간안에 결국 전화를 거는 것을 실패하는 것을 봤다.  한편으로는 생전 써본 적 없는 기계를 못쓰는게 이상할 건 없지만, 나로서는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에피소드를 보니까, 얼마전 한국에서 최근에 대규모 회고전을 했던 데이비드 호크니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했던 것이 생각났다.  

 

https://youtu.be/oHNEzndgiFI

17세의 두 소년에게 다이얼식 전화기를 주고 4분내에 전화를 걸어보라는 미션을 줬는데 결국 실패했다.   

David Hockney, Mr. and Mrs. Clark and Percy , (1970-71) acrylic on canvas, 84×120 in.

이 작품에 관해서 설명을 하면서, 호크니는 이 그림 속에 백색 전화기를 넣은 이유가, 이 초상화의 주인공들이 당시 패션계를 주도하던 힙한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후대의 사람들이 저 흰색 기계의 용도를 알기나 할까?' 호크니가 덧붙인다.  그 백색 전화가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기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말이다.  

이것이 미술사가 필요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사소한 것도 기록해 버릇해야하고, 또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기억하는 것들만 남기 때문이다.  

p.s. 요즘 집안 정리를 하면서 예전 수첩이나 메모가 눈에 띌때가 있어서 뒤적이다보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겠는 것들이 간혹 있다. 분명히 그때는 중요했으니 메모를 남겼을 것이고,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어서 그냥 약자로 간략하게 적어놓은 일들일텐데 말이다. 남의 기억도 아니고 나의 기억도 이렇게 재빨리 휘발되는 마당에... 앞으로는 좀더 기록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말씀.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