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드로잉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의 장보기 목록 - 청어, 토르텔리 (라비올리의 일종으로 네모난 만두 같은것), 페넬 스프 두 그릇, 앤초비 네개, 그리고 (이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a small quarter of a rough wine' (아마도 적은 양의 정제가 안된 저렴한 와인이 아닐까싶다). 그리고 심부름을 시킬 하인이 글을 모른 관계로 알아보기 쉽게 일러스트레이션에 해당하는 드로잉을 덧붙인 것이다.
문맹인 하인에게 심부름을 시키기 위해서 일필휘지로 슥삭슥삭 남긴 드로잉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필력이 느껴진다. 그의 대작들, 즉 시스틴 천장화나 다비드 상은 자주 접해봤기에 친숙하다면 친숙하지만, 그의 이런 생활밀착형 드로잉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선하기 이를데 없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하지만, 천하에 없는 거장이라도 매일매일 이렇게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했구나 새삼 자각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나랑은 무관한 옛날 옛적에 살았던 천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드로잉 하나로 그와 나와의 거리가 확 가까워진듯하다.
그와 같은 천재도 이렇게 매일매일 일상이라는 것들로 채워진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면,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나도 매일매일 일상을 충실히 채워가야겠다는 각오 (?)같은 것도 생긴다.
p.s. 이번 포스팅을 올리고나서 이전에 올린 글 하나가 생각이 났다.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아직 경제적 여유가 없던 도제 시절, 둘이 음식점 겸 숙박업소를 동업으로 잠시 경영했다는 것을... 그렇다. 미켈란젤로 뿐 아니라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두 매일매일 생활하는 생활인이었다. 뭐지? 이 말할 수 없이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친밀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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