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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14 요새 미술 - 즐거운 것이 좋아~
2019. 8. 14. 20:37 미술 이야기

며칠 전 제프 쿤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Playfulness' 혹은 '장난스러움'이 아닐까 하며 글을 마쳤다. 

오늘 그 꼬리를 다시 잡아, 그 장난스러움은 실은 비단 제프 쿤스 작품의 특징만은 아니라는 반전으로 이어갈까한다. 

사실 제프 쿤스의 비지니스 능력이랄까 상업적 수완은 타고 난 점도 있다. 작가가 되기도 전 아직 어린 시절 예술에 재능은 있었던 듯, 가구점을 하던 부모의 가게에 자신의 작품을 장식해두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손님이 가구를 사갈 때 그 앞에 걸어둔 작품을 함께 팔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게 또 호평을 받았고 부모님의 상업도 성업을 이뤘다는 소문이다.  시드니에서도 전시된 바가 있고, 록펠러 센터 앞에서도 전시된 적이 있는 꽃으로 꾸며진 거대한 강아지 조각은 원래 1992년, 독일 아롤슨 지방의 작은 성 앞에 전시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자신의 작품이 경매에서는 높은 가격으로 팔리지만, 예술계에서는 그다지 평가받지 못하자,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꽃과 강아지를 결합해서 거대한 조각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그것을 바젤에서 도큐멘타가 열리는 해에 독일에서 전시했다고 한다. 이후 예술계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다소 우호적으로 변했다는 후문도 함께 따르고 말이다. 물론 그 조각품의 가격이 4,500배 오른 것은 안비밀! 

제프 쿤스의 거대한 강아지의 최초 버전. 1992년 독일의 아롤슨 지방의 성 앞에 세워졌다.  Jeff Koons, Puppy (1992) Stainless steel, wood, soil, geotextile fabric, internal irrigation system, live flowering plants ;  1234.4 x 1234.4 x 650.2 cm

그 조각은 여러가지 버전으로 제작되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현재 빌바오 구겐하임에 전시된 작품이다. 제프 쿤스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optimism, confidence and security"를 표현하기 위한것이라고.  어쩌면 이 구호는 비단 이 작품 뿐 아니라, 그의 전 작품 속에 흐르는 정신이 아닐까 싶다. "낙천주의, 확신, 그리고 안정감." 그리고, 이는 요즘 사람들이 작품에서 갈구하는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빌바오 구겐하임에 전시된 제프 쿤스의 <강아지> 조각.  무려 12 meters 40 cm x 830 cm x 910 cm에 이르는 조각상을 빽빽히 채운 꽃들을 30명의 정원사가 끊임없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일전의 포스팅에서 제프 쿤스로 대표되는 요새 미술의 특징이 'playfulness' 혹은 '장난스러움'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그것이 결국은 제프 쿤스가 주장한 'optimism'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시대는 "대공황을 견디고, 전쟁을 겪은 후 더이상 '꽃이나 소파에 기대 누운 미녀'를 그릴 수 없는 상황"이라 토로하던 추상표현주의자 바넷 뉴먼의 대척점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의 삶이 반드시 전후의 상황보다 훨씬 더 즐겁고 평온한가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예술에서 더이상 작가의 치열한 실존적 투쟁을 보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다. 몇년전 한국에서도 크게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 그리고 내가 갤러리들의 홈페이지나 전시장에서 자주 발견하는 작품들의 경향은 어느쪽인가 생각해보면 큐비즘도 추상표현주의도 아닌 팝 아트 쪽이 많다. 조형에 대한 탐구도 심각한 철학적 자아탐구도 아니라는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요새 미술'은 즉각적으로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고, 그 속에서 유머와 즐거움이 넘치는 작품이 훨씬 더 많고, 작법이나 주제면에서 팝아트 혹은 네오팝에 훨씬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David Gerstein, BIKING B (1998) Hand Painted Laser-Cut Metal Cutout, 3 Layers ; 137 x 56 cm, Edition of 295
David Gerstein’s “Fifth Avenue” wall sculpture, 2016
David Gerstein, United States
David Gerstein, Synergy (2013)

사진으로 봐서는 잘 구별되지 않지만,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은 준조각 혹은 부조 작품들로 '벽조각 (Wall Sculpture)'이라 불린다.  색상은 밝고, 주제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사물과 사람들이고, 그 속에서 이들은 활기차고 행복하다.  팝아트의 후예답게 그의 예술은 판화처럼 수많은 에디션이 존재하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affordable'한 편이다. (절대적으로는 물론 아무나 살 수 있는 가격이 아니지만, 경매에서 최고가를 갱신하는 작가들이나, 유명 작가들의 '호당 얼마'하는 가격보다는 저렴하다는 뜻이다. 대략 명품백을 큰 맘먹고 살 수 있을 정도라면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하면 될까?)   

데이비드 걸스타인 스스로도 자신이 팝아티스트임을 밝히면서, 자신이 굳이 앤디 워홀의 추종자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색상이나 대중적 이미지들을 이용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내 철학은 예술은 삶과 맞닿아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작품이란 일년에 한 번 미술관에 가서나 보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그는 "(내 작품은) 관람객의 눈 높이에서 이야기한다. 내 작품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의도한 것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어려운 미술은 안하겠다는 소리다. 그는 심지어 관람객들이 전시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지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예술은 더 이상 심각한 철학을 논하거나, 유일무이한 작품이라거나 극소수의 지성과 교양을 갖춘 이들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팝 아트 이래 지속적 흐름이긴 하다. 물론 이 와중에 추상 작품들에서 빠진 서사를 철학적 담론으로 채워가는 작업은 계속 되고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관람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 삶이 실존인데 굳이 작품까지 심각한 걸 봐야하나 하는 심정이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넷플릭스의 성공이 바로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해서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즉, 명화니 예술 영화니 하는 것에 대해 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그런 사람도 힘든 일 끝나고 집에 가서 보는 영화는 그냥 가벼운 오락 영화이기 십상이고, 그래서 그러한 영화를 다수 제공하는 넷플릭스가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즐거운 미술들이 지배적인 요즈음,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삶이 힘든것일까? 아니면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 저녁 후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오락프로그램과 같은 역할을 자처하게 된 것일까?

아래는 내가 최근 발견한 '즐거운' 미술 작품들이다.  

고근호, 즐거운 상상 

 

김경민 , Good Morning (2012) 청동 , 우레탄 ; 220x90x420 cm
임승현, 도형을 닮아가는 사람들, 원래 도형이었던 사람들
전영근, 자작나무 숲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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