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시속 10Km 접촉사고의 추억
2019. 11. 25. 17:30 일상 이야기

 

 

어두운 내용의 글이라 즐거운 사진 하나 첨부. 내 차를 고치는 분들이 이런 포즈로 일을 하셨다 상상하며 유머감각을 회복했다. 

 

 위 사진의 유러스러운 패러디를 이해못하실 분은 없겠지만 그래도 원전을 첨부~

며칠 전 지상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접촉사고를 냈다.  아주 오래 전, 운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유턴을 하다가 또 다른 초보운전자가 몰던 옆차와 나란히 돌다가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후에 처음이다. 그때가 처음 사고이긴 했지만 그때엔 둘다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처리했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보험사 관여한 최초의 사고다.  난생 처음 낸 사고이긴 했지만,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엔 접촉사고 났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자각이 없을 정도로 '살살' 부딪쳤기 때문이다. 상대방 운전자는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동반한 여성이었는데, 내리자마자, 그렇게 '돌진을 해오면 어쩌냐!'고 화를 냈지만, 나는 '돌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대꾸를 미처 못했다. 사실 '부딪쳤다'기보다는 서로 '살짝 긁혔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오죽하면, 내 블랙박스는 확인을 해보니, 시동 건지 어느정도 지나야 작동을 시작하는 블랙박스인지라, 사고 당시 시간의 첫 화면이 내가 사고가 난 후 내려서 차가 긁힌곳을 살펴보는 장면일 정도였다. 시동 건지 불과 몇 초후의 사고인데, 내 차가 어딜 향해 '돌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난 애초에 사고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내 차의 오른쪽에 정차되어 있던 소형 트럭이 시야를 가리고 있어서 상대방 차가 내 쪽으로 오는 것을 못봤고, 내가 주차한 선이 요금을 내는 부스가 있는 라인이라 그 부스를 향해 나아가던 상대방 차는 내 차를 보지 못해 서로 범퍼가 긁힌 것이다.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럴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었기에 일단 보험사 직원에게 출동을 요청했고, 서로 자신의 보험사 직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아마 내 차가 정지된 상태였다가 출발한 상황이고 상대방 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상태였으니까 내 책임이 더 클 것이라는 보험사 직원 설명을 듣고 '그렇구나~'하고 귀가를 했고, 내 차는 담 날로 보험사서 말해준 공업사에 차를 맡겨 고쳤다.   

내 차가 긁힌 모습. 프라이버시상 상대차 사진은 안올리겠지만, 검은 차에 내 차의 흰페인트가 나보다 조금 더 묻은 정도였다. 

문제는 보험사 사고 조정을 한다는 직원이 전화가 왔을 때였다. 상대방 운전자, 즉 애랑 동승해서 운전을 했던 그 여자 운전자가 사고 때문에 병원을 가겠다고 했다면서, 병원은 그냥 가지 않도록 하고, 렌트 하지 않는 조건을 붙여서 그 대신 차 수리비는 내가 전부 부담하는건 어떠냐고 교섭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계속 '200만원 이하니까', '200만원 이하니까'... 그러는데, 나중에 보니 그 금액이 이후 보험 가입할 때 할증이 붙는 최저 금액이라 했다. 

물론 나는 한국에 온지 몇 년되지 않기도 했고, 미국에서도 사고는 없었으므로 이런 접촉사고 자체에 대한 경험치가 워낙 적기도 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시속 10Km될까 말까한 접촉사고로 병원을 가야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처음엔 이건 사기 아니냐고, 보험사 직원에게 말하며 펄쩍 뛰었는데, 이후 주변에 물어보니, 다들 워~워~ Calm down~ calm down~ 이러는 분위기.  '그런 사람 많다'는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무슨 양아치도 아니고, 아직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 쇼핑을 온 학부형 엄마가 그런 발상을 하는 것에 나는 놀라왔지만 말이다.  듣자하니 그래봤자 큰 이익이 나는 것도 아니다. 또 만약 법(?) 혹은 상식 (?) 대로 책임을 나눠서 처리한다고 해도, 보험 가입할 때 할증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사고로 뭔가 큰 불이익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혹자는 어쩌면 그 쪽 보험사에서 유도를 했을 수도 있다고, 혹자는 저번에 나 같은 입장이었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면 물론 아주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의 금액으로 내 양심과 품위를 맞바꾸며 일처리를 하고 싶었을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한번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 비슷한 경험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경험담들이 쏟아졌다. 혹자는 그걸로 병원 실제로 다닌다고 난리를 치는 상대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영화에서 가끔 가벼운 접촉 사고에 뒷 목덜미 잡고 차내리는 조폭 양반들이 있더니만, 그게 코메디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고, 더욱이 현실 속에서는 그 상대가 깍두기 형님들이 아닌, 나같은 보통 사람이었다.  나도 뭐 평소엔 불의를 보고도 잘 참는 사람이고, 다들 그렇게들 한다고 하니, 그리고 무엇보다 골치아픈거 싫으니, 그 200만원 한도 내에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렇게 하라고 해버렸지만, 며칠내내 뒷맛이 씁쓸하다. 정말 형편이 딱한 사람이었다면 몰라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일처리를 꼭 그렇게 했어야했나?  남들이 그러면 나도 그래도 된다는 발상이 우리 사회에 수많은 문제를 만들어오지 않았던가.  

내차 빼고 다 모지리~ 라고 생각하고 다녀야겠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