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빼앗긴 들에도 온 봄이었기에~
2020. 3. 25. 00:02 일상 이야기

잠시 딴데 정신이 팔려 있던 사이,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왔다.  하긴, 빼앗긴 들에도 왔던 봄이었으니까.

내가 애정을 쏟아 마지않던 나의 베란다 정원은 내가 방치해둔 지난 몇 달동안 황폐해졌지만, 그 와중에 카랑코에는 꽃을 피워냈다, 역경을 이겨내고!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누가 주셔서 받은 화초고, 그걸 집에 남아돌던 화분에 심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찌나 왕성하게 성장을 하는지 몇 개월 후에는 화분 두개에 다시 나눠 심었었다. 그 중 나눠 심은 화분 하나는 올 1월, 계절 모르고 꽃을 틔우려길래 햇볕 좀 더 보라고 베란다에 내놨는데, 하필이면 그날 밤사이에 영하로 뚝 떨어지는 탓에 하루아침에 얼어죽어버렸다. 그 사고 (?) 이후, 트라우마도 있고, 큰 화분은 꽃 필 기색도 안보이길래 내버려뒀다.  한동안 베란다 내다볼 시간도 제대로 없었는데 어느날 가보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거 아닌가!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다면 오버지만 한동안 작은 꽃봉오리들을 하나씩 쳐다볼만큼은 감동받았다.  그래, 어째도 봄은 오는구나~ 

여러가지 이유로 신경을 제대로 못써줬는데도 갸륵하게 봄을 알리며 귀엽고 앙증맞은 꽃들을 피워낸 카랑코에!  

 

우연히 데이비드 호크니가 트위터에 올렸다는 메시지를 읽게 되었다.  올해 84세의 노화가가 태블릿으로 그린 수선화 그림과 함께 보냈다는 메시지는 "그 누구도 봄을 앗아갈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라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라고. 

현재 노르망디에서 살고 있는 그는 세계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요번 전염병으로 인해서 도시가 봉쇄되고, 개최될 예정이던 전시회들이 연이어 취소되고 있는 상황 아래서,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를 띄웠다.   의역으로 '앗아갈 수 없다'라고 했지만, 화가가 사용한 단어는 'cancel'인데, 아마도 전시회들이 연이어 'cancel'되는 것을 염두에 둔 어휘선정이 아니었을까?  

 

언제나 왕성한 창작열과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들을 창조해내면서도 미술사적인 연구도 심도깊게 꾸준히 하는 노작가의 말이라 그런지 무게가 다르다.  아닌게 아니라, 꽃이 피고 새싹이 돋는 풍경을 보면서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봄은 왔구나 싶었는데,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샛노란 수선화 몇 송이에 위안을 받게 된다.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호크니의 수선화 그림. 출전: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B96O0DHgvmo/?utm_source=ig_web_copy_link]

David Hockney, currently resided in Normandy, sent a hopeful message to the Louisiana Museum in Denmark.  

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  [source: Official Instagram of the Louisiana Museum in Denmark]  

Thank you for your hopeful message, Mr. Hockney! 

This shall too pass.    

 


 

※ 이전에 올린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한 포스팅은 아래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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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