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사자 :: 파트라슈와 커튼 너머의 그림 Part II
2018. 9. 22. 06:33 미술 이야기

걸작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평소에 공개하지 않고 커튼으로 막아놓은 작품이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맺은 글, 다시 시작해본다. 


본격적으로 검색에 착수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실제로 그 안트워프의 성모대성당이 그러했다고 알게 되었다. 


김새는 일이다. 


물론, 회화와 커튼은 오랜 인연이 있다.  널리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화가 제욱시스 Zeuxis 가 파라시우스Parrhasius 와의 경쟁 에피소드부터 존재한다. 그 얘기에 따르면, 둘이 그림을 하나씩 그려와서 서로 실력을 겨뤄보자며 한 자리에 모인다. 제욱시스가 그린 포도의 그림은 너무도 생생하고 진짜 같아서, 새들이 몰려와 그 포도를 쪼아먹으려다가 다 부딪혀 떨어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의기양양 제욱시스가 '자, 이제 당신 그림을 보여주시지...그 커튼을 거두어보란 말이다~~'라고 하자, 파라시우스가 씨익 웃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커튼이야말로 그가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제욱시스는 '인정!! You Win!!' 외치게 되는데...  쿨한 제욱시스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그림은 새들의 눈을 속였지만, 파라시우스는 바로 '자신'의 눈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누가누가 더 잘그리냐의 문제는 전문용어로 '눈속임 (trompe l'oeil)'의 기법에 관한 것을 의미한다. 즉 누가 더 진짜같이 잘 그리냐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커튼을 그려넣은 화가들도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덴마크 출신의 코넬리스 노베터스 기스브레히트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 (ca. 1630-ca.1675)라는 어려운 발음의,  잘 안알려진 화가의 작품이 그 예이다.  


Cornelis Norbertus Gijsbrechts, Trompe l'oeil. Board Partition with Letter Rack and Music Book (1668), oil on canvas ;123.5 × 107 cm, Statens Museum for Kunst 


그리고 보다 유명한 화가로는 베르메르 (요새 표기로 하면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있는데,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작품 47점 중 7점에 커튼이 그려져 있다. 


Johannes Vermeer, Girl Reading a Letter by an Open Window (ca. 1659)

베르메르는 커튼을 자주 이용해서, 이 작품을 포함해 총 7점에 커튼이 등장한다고.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가 커튼을 자주 이용한다.  그의 경우, 눈에 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 현실과 진실 사이에 대한 질문을 하는 화가로 유명하기에 왜 그가 커튼을 자주 쓰는지 이해가 된다. 


René Magritte, The Human Condition (1933)

oil on canvas ; 100 x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하지만, 이들은 모두 그림안의 커튼들 이야기이다. 


그런데, 찾아보면, 실제로 커튼을 치고 입장료 내지는 구경하는 값을 낸 사람에게만 그림을 보여주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 최초의 자생적 화파로 알려진 허드슨 강 화파 (Hudson River School)의 대표자 격이라고 할수 있는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이다.


그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초기 이민자의 자손으로, 부유한 은세공사이자 시계제조자 집안의 자손으로 일찌감치부터 그림을 공부했던 인물이다. 그는 여러차례 미국 대륙은 물론 극지방을 탐험하여 그 곳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 유명해졌는데, 대표적 작품이 <안데스의 중심>, <빙하>, <나이아가라 폭포> 등이 있다.  


Frederic Edwin Church, Niagara (1857), oil on canvas ; 101.6 x 229.9 cm, Corcoran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Frederic Edwin Church (1826-1900), The Heart of the Andes (1859)

oil on canvas ; 168 x 302.9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Frederic Edwin Church, The Icebergs (1861), oil on canvas ; 163.8 x 285.8 cm, Dallas Museum of Art


그 중에서도 <빙하 (The Icebergs)>는 그의 탁월한 역량을 과시하는 역작일 뿐 아니라, 그 전시 방법에 있어서의 영리한 마케팅 전략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자신이 직접 1859년 한 달간의 탐험한 북극지방을 묘사한 작품으로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색상, 매끈하면서도 광택이 나는 화면, 만지면 차가울것만 같은 생생한 빙하의 표현은 보는 이의 맘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처치는 무려  100점이 넘는 사생 스케치를 바탕으로 탐험 경험자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읽으며 키운 그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뉴욕 스튜디오에서 위의 <빙하>라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미국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던 1861년 뉴욕과 보스턴에서 전시되었고, 열광적인 호평을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전쟁때문에 구매자를 찾을 수 없었던 처치는 결단을 내려, 1863년 런던으로 건너가 <나이아가라>와 <안데스의 중심>과 함께 그곳에서 이 작품을 전시하였다.  이 때, 처치는 이 <빙하>만은 따로 화려하게 장식된 방안에 별도로 전시를 하면서, 캔버스 앞에 커튼을 장치하였다. 그 작품을 보고자 하는 관람객은 25센트를 내야만 했고, 돈을 낸 관람객은 작품 해설이 적힌 팜플렛을 받고, 작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전시는 그럼에도 호황을 누렸고, 결국 그곳의 자산가가 그 작품을 구매하게 되고, 이후 시간이 흘러흘러 경매에 나온 작품을 익명의 구매자가 높은 가격에 낙찰. 이후 댈러스 미술관에 기증. (2010년에야 그 기증자가 Lamar Hunt, 어메리칸 풋볼 리그 AFL을 창시한 인물임이 밝혀졌다고)....  결국 프레드릭 에드윈 처치의 마케팅 전략은 멋지게 성공한 셈이다.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해본 모습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없고 BBC 다큐멘터리도 없던 시절, 보통 사람들로서는 구경할 수 없던 진풍경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를 했으니, 누구라도 작품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짐작컨대, 오늘날 아이맥스 영화나 4D 영화 이상의 경이로운 경험이었으리라.   



여기서부터는 나의 망상 ~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관계자 중 누군가가 처치의 <빙하> 전시회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성당의 재정난을 타파할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성당의 유명소장품 루벤스 작품에 커튼을 만들어 걸고 관람료를 받게 하자 제안하고 그 제안은 통과된다.  그리고 안트워프 여행 때, 성당의 입장료 제도를 목격한 "플란다스의 개"를 쓴 소설가 Marie Louise de la Ramée가 이 내용을 소설에 포함시킨다. 그녀도 '그건 쫌 너무한걸 ....'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 후 일본에서 그 책은 애니메이션화되어, 그 이래, 안트워프 성모 대성당에는 수많은 일본인과 한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이어지고, 심지어 그 성당 앞에는 일본 자동차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여 제작한 네로의 동상까지 만들어지게 된다는 이야기....  
 


posted by 잠자는 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