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라는 말을 듣고 한국 영화가 아닌 어린이용 만화 영화를 떠올리는 분만 알아들으실 이야기~
감히 '엄마 찾아 삼만리'와 함께 역사에 남을 걸작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플란다스의 개'
이거슨 추억돋는 <플란다스의 개>의 오프닝... 네로가 어깨를 들썩이며 뛰어가는 저 모습을 흉내내며 주제가를 따라부르곤 했었다.
플랜더즈 지방 (현. 벨기에)에서 애완견이라기 보다는 후견인 같은 파트라슈와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와 함께 우유배달을 하는 가난하지만 미술에 재능이 있는 소년 네로의 이야기. 주인공이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단짝 아로아와 노는 것도 금지되고, 부잣집 아로아의 아버지한테 늘 구박을 받는 가난한 소년. 하지만, 사랑과 예술혼 넘치는 어린이.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은데, 커튼을 걷고 구경을 하려면 금화 한닢을 내야하는데, 그 동전이 없어서 항상 커튼이 쳐진 그림 앞을 서성여야만 하는 아이.... 성냥팔이 소녀처럼 눈 내리는 겨울에 얼어죽은 아이. 죽음 직전 드디어 그는 환영속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루벤스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 감동의 도가니 만화영화가 일본 아니메의 더빙 판이라는 것을 알고 난 것은 어른이 되고 난 후 였고, 거기에다 그것이 영국 작가에 의해 쓰여진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지난 뒤였다.
원작 일본 아니메의 오프닝.... 충격적이게도 멜로디가 똑.같.다.
그도 그럴것이 Ouida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는 프랑스계 영국 작가 Marie Louise de la Ramée는 본국 포함 유럽에서 그다지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나보다. 오죽하면, 벨기에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알게된 것이 '플랜더즈의 개를 아느냐?'는 일본 관광객들 때문이라는 설이 있겠는가? 인터넷 상에서도 이 책에 대한 소개에 '일본과 한국'에서 유독 인기가 있다는 해설이 있을 정도이고, 토요타에서 그토록 네로가 구경하고 싶었던 루벤스의 작품이 걸려 있는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The Cathedral of Our Lady) 앞에 네로와 파트라슈의 동상을 세워준 이후로 '일본에서의 인기'는 더 알려졌으리라. [요즘 표기법으로는 안트워프는 본토 발음을 따서 '안트베르펜'이라고 한다고... 요새는 그러냐~~? 모르겠다...난 안트워프로 배웠다.... ^^]
이로써 네로는 홍수 때 구멍 난 댐을 고사리 손과 가느다란 팔뚝으로 막아내, 위기에 처한 조국 네덜란드를 구한 소년 다음으로 일본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가공의 인물인 셈이다.
일본의 토요타사가 기증했다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동상
이 대목에서 의문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루벤스의 작품은 무엇이었던가?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의 루벤스 작품으로는 아래의 3작품이 있다.
1. <십자가에 매닮 (Raising of the Cross)> (1610)
2. <십자가에서 내림(The Descent from the Cross)>,(1612-14)
3. <성모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 (1626)
Peter Paul Rubens, <Raising of the Cross> (1610) oil on Panel ; 460 x 640 cm, Cathedral of Our Lady Andwerp
Peter Paul Rubens, The Descent from the Cross (1612-14) oil on panel ; 420.5 × 320 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Peter Paul Rubens, Assumption of the Virgin (1626) oil on panel ; 490 × 325 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만화의 마지막 회에서 네로는 기아와 추위로 인한 환각인지는 모르나 드디어 염원해 마지않던 루벤스의 명작을 보게 되는데,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에 걸린 작품들 중에서 <십자가에 매닮 (Raising of the Cross)>과 <십자가에서 내림(The Descent from the Cross)>을 본다.
여기서는 <십자가에서 내림>(1612-14)를 바라보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그려져 있다.
교회 내부의 전경으로 살펴보면, 예수를 십자가에 올리는 그림이나 십자가에서 내리는 그림 모두 예수의 몸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리듬의 반복으로 인한 통일감이 있다.
그리고, 정 중앙에는 성당의 이름이 이름인지라 (The Cathedral of Our Lady), 성모가 인간이 아닌 신으로 인정받아 하늘로 오르고 있는 성모 승천의 장면이 그려진 그림이 자리하고 있다.
앤트워프 성모 대성당의 내부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1612-14) 삼면화: <십자가에서 내림 (the Descent from the Cross)>은 삼면화 로 제작된 작품의 가운데 작품
그 양쪽으로 <방문 (the Visitation)>, <예수의 성전 봉헌 (the Presentation of Jesus at the Temple)> 을 묘사한 그림을 좌우에 배치했다.
<십자가에서 내림>은 삼면화 구성으로 제작된 작품의 가운데 작품 그 양쪽으로 <방문>, <예수의 성전 봉헌> 을 묘사한 그림을 좌우에 배치했다. <방문>은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가 사촌 엘리자벳을 방문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이 때 엘리자벳도 세례 요한을 잉태한 상태였다. 그리고 <예수의 성전 봉헌>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모가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 바치는 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묘사 한것이다. 이 두 에피소드는 카톨릭에서 묵주기도에서 '환희의 신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운데의 '고통의 신비' 중 하나인 <십자가에서 내림>과 대조되는 구성이다.
사실 네로의 분위기가 (라고 쓰고 '플란더스의 개'의 그림체라고 읽는다) 루벤스의 화풍과는 매치가 잘 안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네로가 파트라슈를 껴안고 교회앞에서 숨을 거둘때 그의 눈에 떠오른 이미지는 '성모 승천'의 이미지이리라 짐작해본다.
Peter Paul Rubens, Assumption of the Virgin (1626) oil on panel ; 490 × 325 cm, Cathedral of Our Lady, Antwerp
만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위의 저 조그만 아기 천사들이 오종종 모여들어 네로의 주변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만화에서는 돔에서 빛이 내려오더니 좀 있다 아기천사들이 총출동해서 네로와 파트로슈를 하늘로 데려가고 있지만, 사실상 돔의 그림은 루벤스의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트워프의 성모 대성당 돔에 그려진 그림
철들고 이 만화를 떠올릴 때면, 어린이용 만화라고 하기엔 너무 비극적이라 자칫 어린이들의 여린 가슴에 트라우마를 남길 수도 있는 이 작품이 일본과 한국에서 이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특히 일본 같은 경우는 기독교가 정착하지 못한 세계 유일한 나라인데 말이다. 하필이면 루벤스의 대표적인 종교화라니...
하지만, 정작 가장 궁금한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정말로 걸작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평소에 공개하지 않고 커튼으로 막아놓은 작품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치사하게 왜 저럴까? 걸작이면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해야지. 더군다나 성당이면 모든이에게 열린 장소이거늘....
이 의문에 대한 탐구, '커튼 너머의 그림'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해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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