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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3. 00:30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를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 랭킹 20위'로 포스팅을 한 후로 하나씩 짚어가고 있는 중.   처음의 전체 랭킹을 논한 포스팅으로는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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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봐오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이제까지처럼 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포함 된 경우, 중복되는 언급을 피하기 위해서 이처럼 묶어서 진행하려고 한다. 

두둥~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품도 두 작품이 들어가 있다. 그 두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5위) Jackson Pollock, "Number 17A" $200-million (2015 private sale)  ~$206-millions [약2,333억원 상당]

인플레 고려 11위) Jackson Pollock's "No. 5” (1948) oil on fiberboard ; 2.4 × 1.2 m,  $140 million (2006 Sotheby’s auction)   $170.0-millions [약1,585억원 상당]

잭슨 폴록의 경우, 윌렘 드 쿠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Abstract Expressionism)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이 미술사상 최초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미술사조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나치의 압박이나 전쟁을 피하여 많은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이 뉴욕으로 망명을 오게 되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에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든 결과, 에콜 드 파리를 형성하게 된 것과 유사한 현상이었다. 

실제로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이 정착되기 이전에, 이들을 '뉴욕화파 (The School of New York)'로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에콜 드 파리를 구성하는 화가들의 국적이 다양한 만큼이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포함되는 작가들의 원래의 국적 또한 다양하다.  미국이 주도한 현대미술사조라고  미국이 그렇게까지 으쓱으쓱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직전에 살펴본 윌렘 드 쿠닝이 네덜란드에서 밀입국하여 뒤늦게서야 (1961년) 미국 국적을 획득하였고, 마크 로스코의 본명은 마르커스 로스코비치, 즉 이민 1.5세대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실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었다.  

이에 반해, 오늘 살펴볼 잭슨 폴록의 경우, 미국 토박이로 와이오밍주 출신이다. 즉, 진정한 미국인인 것이다.  폴록은 어릴 적 불우한 환경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은 받지 못하였고, 가정 형편상 서부 지역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그의 이미지와 이후의 성공한 그의 모습은 거칠면서도 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미국에 대한 선입견적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가 스튜디오 바닥에 넓게 펼쳐 놓은 캔버스 천 위를 야생마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물감을 뿌리는 모습은, 드넓은 대륙 위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미국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냉전 시대, 소련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정치적인 선전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즉, 폴록이 자유롭게 펄쩍거리면 펄쩍거릴수록,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고 규제되는 구 소련과 강하게 대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추상표현주의가 이러한 정치적 선전으로 이용되었다는 의견은 당시 유난히도 해외순회전이 많았다는 기록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그러한 해외순회전 덕분에, 추상표현주의자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의 명성도 드높이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폴록의 작품은 보그지에도 등장할 만큼 문화현상이 되었고, 그가 작업하는 모습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되거나, 한스 나무스라는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유명해져서, 그의 이름과 그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당시 미국 사람들 중에는 없었으리라.  

클래식한 드레스를 떨쳐입은 모델들의 뒷쪽에 폴록의 작품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묘하게 어울리고 아름다운 이러한 사진들로 명실공히 그는 미술계 뿐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서의 인기까지 얻는 이례적인 화가가 되었다.  

Jackson Pollock in the act of painting (1950)  Photographed by Hans Namuth 몰아 상태에서 자유롭게 바닥에 눕혀놓은 캔버스 천위르 뛰어다니며 작업을 하는 그의 모습은 실존주의에서의 인간의 모습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자유민주주의의 표상에도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이전 윌렘 드 쿠닝의 포스팅에 대해서 밝혔듯이, 폴록의 <Number 17A>는 데이비드 게픈 재단 (the David Geffen Foundation)이 헤지 펀드 재벌 케네스 그리픈 (Kenneth C. Griffin)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윌렘 드 쿠닝의 작품에 대한 포스팅을 함께 읽으면 폴록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유명한 잭슨 폴록이긴 하지만, 아마도 잭슨 폴록의 작품은 피카소의 작품과 함께, '세살짜리 꼬마'들이 가장 많이 소환되는 작품일 것이다. 즉, '우리집 세살짜리도 이것보다는 잘그리겠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현대 미술 작품 중 하나라는 얘기다.  

하지만, 호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폴록의 작품을 바라보다 보면, 처음에 봤을 때에는 chaos였던 그의 작품이 나중에는 cosmos로 느껴지는 순간이 올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 회화에서의 figure/ground, 즉,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그 외의 바탕이 되는 부분의 경계가 모호한 현대 미술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붓이 아닌 막대기나 심지어 대형 스포이드를 이용해 물감을 흘리거나 흩뿌린 그의 작품에서 어떤 것이 주된 형태이고 어떤 것이 배경을 이루는 바탕인가를 구분해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들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움직임과 일견 엇비슷해보이는 색상들의 미묘한 얽힘은 자세히 바라보다보면 그 속에서 색다른 조화와 균형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과 엘에이의 현대미술관 (MoCA)를 위시해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는 널리 소장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폴록이 창의성과 독창성이 뛰어난 작가였다고는 해도 시대를 잘 타고 난 것도 맞다고 생각된다.  마치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의 이미지와 드넓은 캔버스 위로 뛰어다니는 그는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표현하기 더할나위 없는 적합한 아이콘이었고, 전후 냉전시대 필요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거기에 그의 작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미술비평계의 헤밍웨이'라 불리는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존재도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그 자체로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폴록 자신의 경우, 그러한 유명세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지독한 가난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간절히 성공을 바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성공과 유명세가 자신이 바라고 기대하던 것보다 지나치게 과하다고 느꼈을까?  만나는 이들마다 눈을 반짝이며, '이번에는 얼마나 더 놀라운 것을 창조해낼까?'라는 기대의 눈빛에 견딜 수 없는 부담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그가 지닌 독창성과 창의성을 초창기에 너무 남김없이 발휘해버린 것일까? 

1954년부터 그는 더 이상 말할 것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부터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알콜중독이 더욱더 심해졌고 (애당초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알콜중독 치료의 일환이었다), 결국 음주운전의 결과로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자기파괴로 성급한 결말을 맞이한 잭슨 폴록이지만, 그는 앞으로도 미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린 대표적 인물로, 또한 이후 앨런 카프로우 (Allan Kaprow)등이 주도한 퍼포먼스 아트의 대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인물로 미술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8. 10. 22. 05:11 미술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 연재 쭈욱~ 계속 됩니다~ 

먼저, 전체 랭킹을 논한 포스팅은 여기를 클릭!  

http://sleeping-gypsy.tistory.com/51

가요 순위 프로그램처럼 인플레 고려한 가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순위를 20위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은 추상표현주의자들 중 잭슨 폴록과 함께 소위 액션 페인팅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1904-1997)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순위에 포함된 드 쿠닝의 작품은 두 점인데, 이제까지처럼 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포함 된 경우, 중복되는 언급을 피하기 위해서 이처럼 묶어서 진행하려고 한다.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들 랭킹에 무려 2위와 12위에 빛나는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인플레 고려 2위) Willem de Kooning, "Interchange" (1955) $300-million (2015 private sale)  ~$310-millions [약3,511억원에 상당]

인플레 고려 12위) Willem de Kooning, Woman III (1953) (2006 private auction via Larry Gagosian)   $166.9-millions [약1,890억원에 상당]


위의 두 작품은 각각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윌렘 드 쿠닝의 두 가지 관심사를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여인의 인체에 대한 관심이고, 또 하나가 회화에서의 형과 바탕, 즉 figure/ground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였다.    

먼저,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12위를 차지한 <여인 III> (1953)을 살펴보자. 윌렘 드 쿠닝은 <여인> 시리즈로 가장 유명한 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현재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 소장 중인 <여인 I>이 있다.   

20살 되던 해에 밀항으로 네덜란드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드 쿠닝은 초반에 생활이 어려워 같은 캔버스에 여러차례 그림을 그리고 지우곤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의 경우, 적외선, x-ray등으로 검사해 본 결과, 무려 70차례의 채색을 한 흔적이 보인다고! 힘찬 붓질 탓에 캔버스 더러 구멍이 난 부분도 있다고 한다.  시민권이 없던 관계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예술가 구제책이던 FAP (연방 예술 프로젝트)에도 자격 미달이었던 그는 남의 집 페인트 칠해주는 일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알려졌는데, 따라서 그가 사용한 물감도 회화 전문용 물감이 아닌 가정용 페인트였다. 

윌렘 드 쿠닝의 대표작, <여인 I>   Willem de Kooning, Woman I (1950-52) oil and metallic paint on canvas ; 192.7 x 147.3 cm, MoMA 

이 작품은 비평가 헤롤드 로젠버그가  ‘액션 페인팅’ 이라는 명칭을 만들게  계기가  작품이다. 거친 붓질로 구현해놓은 여인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전형적 미인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큰 눈과 날카로운 이, 그리고 큼지막한 손과 가슴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지긴 한다.  이여인의 모습을 융 심리학적 측면에서 보면 여인의 '원형'상에 가깝다고 이해할 수 있다.  드 쿠닝의 <여인 I>은 세계사나 미술사 초반에 등장하는 고대의 여인상과 유사한데, 그 대표적인 예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있다. (아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 여성의 생산에 관련된 신체부분이 강조된 여인상. 독일의 빌렌도르프 지방에서 출토되어 붙은 별명.  원형의 여인상이라고 여겨진다.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제작되었다고도 여겨진다. 

한편, 인플레를 고려했을 때, 랭킹 2위를 차지한 <나들목 (Interchange)>(1955)의 경우,  그가 여인 시리즈 뿐 아니라, 그가 중반기에 몰두했던 풍경화에서도 지속적으로 몰두했던 figure/ground 관계에 대한 관심을 잘 드러낸다.   

figure/ground 관계란, 그림을 그릴 때 주제가 되는 형태 (figure)와 그 주변 및 바탕 (ground)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통적 회화에 있어서는 그 관계가 뚜렷한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 추상에 오면 그 관계가 모호해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잭슨 폴록의 작품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의 그림에서 주를 이루는 형태와 바탕을 구분해내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드 쿠닝의 경우, 인체를 포기하지 않은 추상화가로서 그로서는 추상에서 구현된 figure/ground 관계를 자신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관심이 높았음에 분명하다.  이 <나들목>이라는 작품에서는 입체교차로라는 대상과 그 주변 배경과의 관계를 탐구했다고 볼 수 있다.    

데이비드 게픈 재단 (the David Geffen Foundation)이 헤지 펀드 재벌 케네스 그리픈 (Kenneth C. Griffin)에게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번에 살펴볼 잭슨 폴록의 <Number 17A>과 함께 $500-million 패키지로 판매했다고. (드 쿠닝의 작품이 $300-million, 폴록의 작품이 $200-million. 드 쿠닝에 대한 경쟁심이 남달랐던 폴록이 살아있었더라면 분통을 터뜨렸을지도. 

이 작품은 현재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대여 전시 중이므로 시카고 여행 중이고, 직접 보고 싶다면, 그곳에서 한번 찾아보시길.    

드 쿠닝은 92세의 나이에 별세하였는데, 만년에는 알츠하이머를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규칙적으로 작업실에 나가 작업을 계속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그에게 있어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본능이자 습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가 투병 중에 그린 작품들도 놀라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보인다. 

뉴욕주 이스트 햄튼 작업실에서의 윌렘 드 쿠닝과 만년의 작품들

그의 예술가로서의 공적과 지치지 않는 창작열을 담은 드 쿠닝의 전기는 2005년 플리처 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는데, 밀항자였던 네덜란드 예술가의 전기 제목이 '미국인 대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de Kooning: An American Master, by Mark Stevens and Annalyn Swan (Alfred A. Knopf)]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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