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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2. 03:28 미술 이야기

이 포스팅은 약 2개월 전 수업 준비 하던 중 아이디어 노트를 메모만 해두고 묵혀두었던 아이템.  진작 글 올리려고 했는데, 코로나 19의 파도에 밀려 넘실거리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예정에 없던 일정들을 소화하고 하다보니 이제서야 글을 올린다.   

이번 가을 학기 수업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보니, 수업준비를 위해 참고하는 자료도 좀 달라졌는데, 그 탓인지 예술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관점이 약간 바뀌기도 하고 그랬다. 심지어,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제로 전체 학기를 이끌어가기로 시작한게 작년 겨울이고, 이번 가을학기로 두번째인데, 지난 학기에 비해서도 달라진 점이 꽤 보인다. 이번 학기 수업 준비를 하다가 YBAs (Young British Artists)에 관련해서 처음으로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 1969-2010)에 대해서 조사를 하게 되었다.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고, 그의 해골 문양이 들어간 스카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연구하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그의 해골 스카프 
데미안 허스트와 협업하에 만든 알렉산더 맥퀸의 해골과 나비 스카프 

해명아닌 해명을 하자면, 작년 처음의 포스트모더니즘 수업때엔 처음이라 그나마 보다 오소독스 (orthodox)하다고나 할까 보다 널리 알려졌다고나 할까 하는 작가들을 선택하다보니 알렉산더 맥퀸까지는 언급할 시간적 여유가 안되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동시대 미술로서 접하고 있고 나름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나에겐 아직 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서 소위 '정통적인 미술'의 영역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Alexander McQueen – Savage Beauty Exhibition 2015년 4월1일 게재된 영국의 V&A MUSEUM에서 개최된 SAVAGE BEAUTY 전시소개  Source: https://finestseven.com/alexander-mcqueen-savage-beauty-exhibition-2/  처음 그의 작품에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은 것은 위의 잡지 사진이었다.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촬영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아마 영국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2015년 개최된 전시 홍보차원에서 촬영된 것인듯하다. 

나의 모더니즘적 관점에서 봐서도 알렉산더 맥퀸은 대단한 인물이다. 미국에서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리고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와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콧대 높은 미술관들이 기꺼이 그의 단독 전시회를 기꺼이 개최하였다.  그리고, 좀 더 시각을 넓혀 유튜브에서 그의 패션쇼를 몇 개만 보고 있노라면, 이는 '정통 예술'에서의 '퍼포먼스 미술'의 영역에 포함시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손색이 없다는 정도는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규모나 퀄리티 면에서 내가 이제껏 봐온 퍼포먼스 미술을 뛰어넘는 훌륭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패션쇼를 촬영한 것을 '비디오 아트' 영역으로 놓고 봤을 때에도 내가 감동 깊게 보았던 비디오 아트 작품들을 상회하는 대단한 작품이었던 것이다.      

https://youtu.be/QwiUJ-xK3ZE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에서 알렉산더 맥퀸의 1999년 봄/여름 콜렉션 패션쇼에 대한 소개한 영상 Alexander McQueen's Spring/Summer 1999 Collection entitled No. 13 was showcased in the V&A's Fashion in Motion in June 1999.

[유튜브에서 Alexander McQueen shows만 치면 연도별로 그의 패션쇼가 다 모여있으니 참고하시길. 여기다 옮겨올랬더니 성인 인증을 해야해서 썸네일이 열리지 않아 크게 의미가 없는거 같아서 이 포스팅에는 올리지 않도록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2011년 전시회,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의 2015년 전시회, 이 두 전시회 모두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라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현재 미술관 홈페이지에 남아있는 기록들로만 봐도, 그 스케일이나 큐레이팅 수준이며 정말 어마어마하다. 살펴보니 올해도 알렉산더 맥퀸이라는 이름으로 패션쇼는 한 것 같다. 하긴 그가 세상을 떴어도 그의 패션 브랜드가 없어진 것은 아니니까.  

2011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개최된 알렉산더 맥퀸의 전시회 장면 https://blog.metmuseum.org/alexandermcqueen/abou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의 전시회는 'Savage Beauty'라는 타이틀로 전시는 고전적인 'Cabinet of Curiosities'의 형식을 택하고 있다. 이 '호기심의 캐비닛'이란 계몽주의의 대두에 따라 16세기 말 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희귀한 것' '귀중한 것'을 수집해서 모아둔 방을 지칭한다. 이는 폭넓게 보자면 오늘날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 곳에서는 소유자의 안목을 보여주는 예술 작품들은 물론, 이국에서 수집한 희귀종의 동물들의 박제, 조개, 식물 등을 전시해놓은 것이다. 

초기 Cabinet of curiosities의 예. Ole Worm (1588–1654) "Musei Wormiani Historia" (1655), the frontispiece from the Museum Wormianum depicting Ole Worm's cabinet of curiosities. copper engraving print

 

바로크 시대 소장자의 취향과 안목을 알수 있는 캐비넷의 한 부분. Frans Francken the Younger (1581–1642) Chamber of Art and Curiosities (1636) oil on panel ; 86.5 × 120 cm, Kunsthistorisches Museu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는 이러한 '호기심의 방' 혹은 '호기심의 캐비넷'의 컨셉으로 구성된 것 같은데, 굉장히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패션의 중심지 중 하나인 뉴욕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복식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메카와도 같은 미술관이기도 하기에, 이 미술관에서 맥퀸의 전시회가 열린것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만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타이틀이 딱 어울리는 작품이다. 
알렉산더 맥퀸은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음을 공공연히 밝히곤 했고, 미술관은 2015년 맥퀸의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했고 그의 작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Suit, Alexander McQueen, It’s a Jungle Out There, Autumn/Winter 1997, designed in Britain, made in Italy. Museum no. T.90:1, 2-2011. ©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그리고 그의 사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직 미리보기 밖에 보지 못했지만, IMDb에서의 평점도 7.8인것을 보면 꽤 좋은 작품인거 같아 시간이 나면 한번 보려고 하고 있다. 

https://youtu.be/fNpm9pwDcTw

알렉산더 맥퀸에 대한 다큐멘터리 맥퀸  McQueen (2018) Directors: Ian Bonhôte, Peter Ettedgui

패션쇼를 보시다 보면 아시겠지만, 그가 제작한 옷이나 신발이 착용하기에 편하지는 않다.  그리고, 상식적인 선에서 보자면 실용적이지도, 편한 아름다움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패션을 작품으로 보다보면 그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좀 더 편견없이 폭넓게 작품을 살펴보고 감상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해주었고, 엄청난 창의력으로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선사해준 알렉산더 맥퀸에 감사로 글을 마친다.  

아시는 분만 아시겠지만, 제가 블로그를 네이버로 옮겼잖아요? ㅎㅎ  앞으로는 네이버 블로그 찾아주시고, 이웃해주시고 해주세요~

blog.naver.com/eunicemin/222181411946

 

알렉산더 맥퀸 (Alexander McQueen)의 패션? 혹은 예술?

이 포스팅은 약 2개월 전 수업 준비 하던 중 아이디어 노트를 메모만 해두고 묵혀두었던 아이템. 진작 글 ...

blog.naver.co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9. 1. 19:20 미술 이야기

아이스크림 트럭에 친숙한 미쿡 아이들이 봤다면 통곡을 할 장면이 연출되었다.  다행히 진짜 아이스크림 트럭은 아니고, PET (Polyethylene terephthalate)라고하는 플라스틱 수지로 만들어진 작품.  2006년 호주의 시드니 한 해변가에 등장한 독특한 작품이다.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회화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각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굳이 규정 짓자면, 설치 작품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이다.  <<더운 날씨, 늦게 폭풍우의 가능성 있음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이라는 제목이고, 개인 작가가 아닌, '접착제 협회'라고 번역해야하나?  "글루 소사이어티 (The Glue Society)"라는 그룹의 작품이다. (일부 기사에는 그 그룹에 속하는 제임스 다이브(James Dive)라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도 나와있다).  1998년 설립된 이 그룹의 경우 전직 광고 제작자였던 조나단 니본 (Jonathan Kneebone)과 게리 프리드만 (Gary Freedman)이 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예술가 공동체)로 뉴욕과 시드니에 회사를 두고 있다. 이 그룹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작업을 하고 있어서 미디어 작업부터 그래픽 디자인과 조각, 설치, TV 광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작품 역시, 지구온난화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 하다.   일례로 최근 글루 소사이어티의 작품으로 알려진 '오렌지나 캐논볼 (Orangina Canonball)' (2013)이라는 작품은 오렌지나라는 음료수의 광고로 사용된 미디어 작품이다. 

오렌지나 캐논볼 Orangina Canonball (2013)

www.youtube.com/watch?v=YYK9DUcPQug

글루소사이어티의 멤버들의 협작으로 제작된 오렌지나 캐논볼.  '오렌지나'라는 음료수의 광고로 사용되었다. Orangina Canonball (2013) concept by fred & farid, paris, produced by wanda, paris, directed by the glue society’s gary freedman.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이 글루 소사이어티 혹은 제임스 다이브라는 작가가 제작한 플라스틱 수지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선 모더니즘 시대라면 작가의 이름이 이렇게 불분명한 경우란 상상하기 드물다. 예를 들어, '이 작품은 피카소 아니면 마티스 혹은 에콜 드 파리 작가들의 작품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나 있는가?  위의 작품의 원료인 PET 역시 전통적으로 조각의 재료로 사용되는 제품은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은 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과는 확고한 중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기본이 되는 규범이 부재하거나 그러한 틀을 부정하는 것으로 간략히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조각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와서는 모더니즘 시대 규정되어왔던 딱딱한 틀을 탈피하려는 노력의 와중에 '장르의 파괴'가 큰 특징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회화와 조각 사이의 구분이 애매해지고, 더이상 '캔버스에 유화'나 '대리석'과 같은 명확한 매체의 사용도 드물어졌다.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옆 라벨에는 '혼합매체'라고 표기된 것이 더 많아진 연유다. 그리고, 조각이라고 규정짓기 애매한 '설치 미술'도 늘어났기 때문.  그리고 이 '글루 소사이어티'의 여타 작품들을 봐도 장르를 규정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열심히 부정하려는 틀과 장르, 규범. 그런데 모더니즘식으로 규정된 수업의 내용으로는 그 범주를 어렴풋이나마 만들어서 진행시켜야한다는 점. 그것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라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았다.  

James Dive (the Glue Society), Hot With a Chance of a Late Storm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20. 8. 10. 01:10 미술 이야기

다음 학기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정규 강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제반 사항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스케줄에 대해서는 다시 포스팅을 올리겠습니다.  한동안 포스팅이 뜸했는데, 정규 강의 준비가 바쁘기도 바빴고, 개인적으로는 알게모르게 '코로나 블루'도 있었던 듯 합니다. 아무래도 나는 언택보다는 컨택이 익숙한 옛날 사람인가봐요. 

 


사진 작품이 많은 캐나다 출신 작가인 제프 월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계의 주요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갑작스런 돌풍 (호크사이 작품을 따라서)> (1993)은 일본의 우키요에 작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크사이의 잘 알려진 작품을 라이트박스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로 '재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호크사이의 작품을 빌어서 어떤 것을 비판하고자는 의도는 보이지 않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패러디 (Parody)라고 하기보다는 패스티쉬 (Pastiche)라고 할 수 있다. 패러디는 예전부터 문학에서 시작되어 폭넓게 사용되어 온 기법이라면 패스티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접어들어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기법이라고 할 수 있고, 넓은 의미에서는 '전용 (Appropriation)'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패러디인가? 무엇이 패스티쉬인가? 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정규 수업에 자세히 다뤄보고자 하지만, 오늘은 일단 시각적으로 감상해보는 걸로! 

Jeff Wall,  <A Sudden Gust of Wind (after Hokusai)>, (1993) Transparency on lightbox ; 25 × 39.7 × 34 cm, Tate  

 

Katsushika Hokusai (1760–1849), Yejiri Station, Province of Suruga. Part of the series Thirty-six Views of Mount Fuji, no. 35. (c. 1832), woodblock color print ; 24.3 x 36.3 cm, Brooklyn Museum

패러디와 패스티쉬의 차이에 대해서는 논의할 점이 많겠지만, 일단 쉽게 접근해서 공통점을 하나 들어보자면, 둘다 원작을 알고 있을 때, 작품을 즐기는 재미가 훨씬 커진다는 점.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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