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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3. 21:27 미술 이야기

뭉크의 <절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뿐 만 아니라 그닥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이 작품은 미술책에서 소개될 뿐 아니라, 광고 등에서도 수없이 차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나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맥컬리 컬킨의 앙증스러운 포즈도 그의 작품에서 따온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품을 직접 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인데,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소듕한 작품이라 이 작품은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에서 외부로 반출되는 일 없이 그곳에 모셔져 있기에.   

이전의 뭉크에 대한 포스팅은 아래를 참고 

광고에서의 예술.... 뭉크 (Edvard Munch)의 절규 (Scream) 

르느와르 도둑 맞다 - 예술작품의 도난사건들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서 국보대접을 받는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 (1893)  Edvard Munch (1863–1944), The Scream (1893) oil, tempera & pastel on cardboard ; 91 x 73.5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그의 이 작품 속에서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흡사 해골과도 같이 앙상한 모습의 인물은 시대말의 불안과 절망을 표상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20세기 초 등장한 표현주의의 효시로도 일컬어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인기는 당시에도 대단해서 주문이 쇄도 했던듯, 이 작품과 유사한, 아니 거의 동일한 작품들이 다양한 매체로 남아있고, 그 중 대표적인 작품만 해도 총 4점이 현존하고 있다.   

뭉크는 1893년의 <절규>와 유사한 작품을 다수 제작하였다. 왼쪽부터 유화 작품 (1893), 파스텔 (1895), 템페라 습작 (1910)
1895 년 파스텔 버전은 2012 년 소더비 경매에서 $120-million 에 판매되었다.  당시 뉴스 참고 https://nyti.ms/2oCtTal

1895년의 파스텔 버전은 2012년 경매에서 무려 1억2천만 달러 (약 1470여억)에 거래되었는데, 이로써 뭉크의 작품의 인기를 재확인된 셈이었다.  물론 그의 <절규> 자체의 인기 이외에도  고가로 거래된 이유 중 하나는, 이 작품에는 특이하게도 액자의 하단에 당시 작품노트에 해당하는 몽크의 일기 내용이 자필로 새겨진 동판이 부착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일기란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 뭉크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작가의 작품노트라고 할 수 있다.  1892년 1월 22일의 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감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추어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협만에 
마치 화염 같은 핏빛 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이 일기 내용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어왔고, 대부분 작가 개인사 혹은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심리적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예전에 읽었던 한 연구에 따르면, 이 당시 동남아시아 지역에 큰 화재가 있었는데, 그 화재가 너무나도 크고 며칠동안 계속되는 것이라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붉은 빛을 지구 반바퀴 너머 뭉크가 있던 북쪽 나라에서도 관찰 할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 연구를 읽고서 당시 나는 '내가 안봐서 모르겠네'  정도의 감상만 있었지 딱히 설득당하게 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2017년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뭉크의 <절규>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진주 구름 (nacreous clouds)'의 일종일 것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진주 구름은 때로는 진주처럼 아롱다롱한 빛이 나거나 때로는 붉은 빛을 감도는 구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절규>의 배경이 온통 붉게 표현된 것은 그의 심리 반영이라기 보다는 실제의 하늘과 구름 빛을 묘사한 것일 거라는 것. 그 근거로, 뭉크의 일기에 나타난 "핏빛 구름"이라는 구절.  확실히 이 주장은 이전의 '화재설'보다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해석하자면, 자개 구름에 가깝겠지만, 진주구름이라는 명칭이 일반적인듯.  아주 추운 지방에서만 보이는 구름이라고 한다. '진주 구름 (nacreous clouds)'의 예

 

왼쪽이 뭉크의 절규; 오른쪽이 진주 구름의 예.  L: Edvard Munch’s ‘The Scream’ 1893. R: Mother-of-pearl or nacreous clouds. Credit: Svein Fikke.

그 와중에, 오늘은 인도네시아의 핏빛 하늘이 등장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사진으로 본 검붉은 하늘은 확실히 아름다운 석양을 볼 때의 낭만적인 감상과는 거리가 있고, 기사에 나온 말을 빌자면 세기말적인 비전을 연상시킨다. 이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다 보니, 문득 어쩌면 진짜 뭉크가 발견했던 것이 이러한 류의 하늘은 아니었나 싶어서 기사를 좀 더 찾아 읽어봤다.   인도네시아 잠비 지방에 발생한 이 기상현상은 일종의 스모그라고 할 수 있는데, 일대 산림에 큰 화재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미세먼지들이 발생했는데, 그 미세먼지들이 상층 대기로 이동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현상은 화재가 원인이기는 하지만, 색상을 붉게 만든 건 화염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어쨌든 화재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긴 하지만, 하늘을 온통 붉게 만든 대기현상의 원인이 되었고, 이로써 구름이고 하늘이고 다 핏빛으로 물들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내가 읽고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 예전의 기사와 최근의 연구를 결합하면, 뭉크의 <절규>의 탄생이 풀리는 것은 아닐까?  왠지 대발견을 한듯 가슴이 두근두근!  

P.S. 이번 인도네시아에서의 기상현상을 '미에 산란'(Mie scattering)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빛의 파장의 크기와 같은 입자들이 일으키는 빛의 산란 현상이라고.  화재가 원인인 것도 맞고, 그로 인한 스모그 현상인것도 맞고.  난 처음엔 이 산란현상과 진주 구름과 관계가 있을까 했는데,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지금으로서는 두개의 가설이 생긴 셈.  만약 뭉크의 붉은 하늘이 실제의 자연현상을목격한 것에 기반하여 제작된 것이라면, 실제로 그날따라 노르웨이의 하늘에 뜬 핏빛같은 진주 구름을 봤거나, 아니면, 동남아 지역의 대규모 화재에 기인한 '미에 산란'을 목격했거나...  둘 다 그럴듯하다.  자연이나 색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 자연현상을 보고 말세가 왔다며 불안해 하는 인도네시아 인들이 많았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정부측에서 해명 보도를 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화염에 휩싸인듯한 검붉은 하늘을 보고 세기말적 불안을 느끼는 것은 뭉크만이 아니라는 것. 물론, 그것이 그와 그의 작품의 위대함에 영향이 미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인도네시아 잠비 지방을 붉게 물들인 하늘. BBC의 기사 "Indonesia haze causes sky to turn blood red" 참고 https://www.bbc.com/news/world-asia-49793047

 

posted by 잠자는 집시
2019. 2. 3. 00:30 미술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다음으로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노르웨이의 국민 화가라고 할 만한 에드바르드 뭉크의 <절규>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전에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

Edvard_Munch, The Scream (1893)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91 x 73 cm, National Gallery of Norway

心臓の「叫び」(支援キャンペーン)원본 페이지

 

뭉크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일본의 공익광고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내가 본 것만 몇 가지 된다. 지금와서 찾아보니 검색이 되는 것은 방향제 광고 하나이지만 말이다.  광고를 보다보면 우리의 절규 청년의 지시대로 방향제를 얼른 플러그에 꽂아야 할 것 같지 않은가?  꽂아주니 저렇게 행복해하니 더더욱!  

90년대 글레이드 플러그 인 (콘센트식 방향제)의 광고에 사용된 뭉크의 <절규> 이미지

 

엊그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패러디하여 (예술적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일레인 스터트번트에 대해서 언급한 김에 패러디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았다.  아래가 엊그제 올린 두 작가의 작품들.    

Roy Lichtenstein, Crying Girl (1963), lithograph on lightweight, off-white wove paper, 40.6 cm × 61.0 cm 

Elaine Sturtevant (1926-2014), Lichtenstein, Frighten Girl (1966), oil and graphite on canvas ; 115.6 x 161.9 cm. 

  '무의미한 복제', '차용'이 하나의 특징이 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컴퓨터 그래픽, 포토샵의 기술은 나날이 발달하다보니, 정말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결은 다르지만, 알고 있는 예술 작품을 광고에 활용하는 것은 적절히 이용하면 확실히 효과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패러디의 효과란 이런 것이다.

 

posted by 잠자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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